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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이 무슨뜻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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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3.01.15 조회수 10,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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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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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즉시공, 색즉섹시?

SEXIONARY
색(色)1 [명] (1) 빛깔 ㅡ 이 짙다
(2) 색사(色事), 또는 여색(女色) ㅡ을 좋아하다. / ㅡ을 쓰다.

색(色)2 [명] 불교에서 형상과 색채를 가지고 직관적 감각으로 인식되는 모든 존재, 또는 물질을 이르는 말.
색즉시공(色卽是空) “ 세속적 욕망, 또는 그것을 밝힘(?)은 덧없다. ”
‘색즉시공’의 본 뜻과는 달리 영화 <색즉시공>의 인물들은 넘치고 주체 못하는 욕망으로 한바탕 소동들을 벌인다. 당연 벌어지는 사건들도 몸과 몸이 ‘愛로틱’ 하게 섞이고 코믹하게 부딪치는 한바탕 소동들이다.
숱한 수도자의 수행정진의 길을 결정적으로 가로막아왔을 뿐만 아니라 유수한 영웅호걸의 위풍당당한 면모를 아낌없이 깎아 내렸던 색!
그 위험천만한 거부 불가의 유혹인 ‘색’은 눌러도 눌러도, 밟아도 밟아도 울끈불끈 일어나는 불멸의 에너지일 뿐이다.

하지만 에너지는 소멸되기 전까지는 동(動) 하는 법, 또한 텅 빈(空 또는 empty) 것은 반드시 채워지는 법, 이를 가리켜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라고도 하지만…
영화 <색즉시공>의 인물들은 색을 비워낼 틈도 없이 멈추지 않는 ‘성(性)의 에너자이저’ 처럼 청춘의 몸살을 앓는다.
사실 단 한번도 색에 눈뜨지 못하고, 색에 결코 동하지 않으며, 색 한번 제대로 밝혀보지 못한 젊음은 너무도 불행하지 않은가.
잘 쓰면 삶의 윤활유이자 인류보존의 열쇠인 색! 색! 색! 영화 <색즉시공> 에서는 그것의 탄생과 성장과 소멸, 어떻게 해야 잘 쓰는 것 인지 그 방법(how to) 까지 지혜롭게 가르쳐준다. 색즉시공, 이만하면 한국영화 사상 가장 섹시한 영화 아닐까?


영화 홈페이지에 있더군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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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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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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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 공즉시색〉
色(물질, 즉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이 곧 空이고, 空이 바로 色이라는 이 말은 반야의 혜광으로 비추어 본, 우주 萬有의 직설적인 표현입니다.

즉, 性品(自性, 佛性)을 깨치고 나서, 간혜(乾慧: 헤아려서 아는 지혜)가 아닌 自性의 지혜광명(반야)으로 비춰 본 우주 삼라만상의 모습인 것입니다.

반야심경의 이 귀절은 깨달음의 극히 심오한 경지에서 나오는 말씀으로서, 이 뜻을 바로 알아차리면 見性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 뜻은 깨침이 아닌, 오직 생각으로써 다 알고자 하면 그것은 우선 무리입니다.

진리(眞如)의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眞空 妙有>입니다.

眞空이란 진여의 體性(바탕, 본질)을 표현한 말로써, 즉 진여의 본래 바탕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空이라는 말입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다(本來無一物), 大空寂, 寂滅宮 등등도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妙有란 진여의 作用을 일컫는 것으로써, 즉 텅 빈 진리의 바탕에서 무궁한 造化가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 奧妙한 작용은 다함이 없다고 해서 <항사묘용(恒沙妙用)>이라고도 말합니다.
즉 다시 말하면,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자리(眞空)에서 신통하기 이를데 없는 무궁무진한 造化(妙有)가 일어난다고 하는 뜻입니다.

이 현상을 <우주>와 <나>, 두 가지로 설명하여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첫째는 우주의 모습입니다.

우주에는 수많은 현상이 어떤 외부의 힘도 없이 저절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구의 예만 들더라도 스스로 自轉하고 공전하며 하루의 낮과 밤을 이루고, 일년 사계절을 순환할 뿐만 아니라, 風雲雨露의 작용으로 만물이 각자 形形色色 의 現像界로 나투어 있습니다.

온갖 물질로 제각기 벌여져 있는 이 우주 現像界의 動力은 무엇입니까?
우주의 수많은 별들도 서로서로 인력에 의해 움직인다고 하는데, 그 거대한 현상의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眞空입니다. 텅 빈 眞如의 바탕에서 그 무한한 작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음은 '나'의 모습입니다.

나는 한시도 쉬지않고 모든 감정을 느끼고 천만 가지의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가려우면 저절로 손이 가고, 슬프면 눈물이 나며, 졸리우면 눈이 감기고, 목이 마르면 물을 찾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모든 것을 느끼고, 또한 모든 행위를 하게하는 것은 무엇 입니까? 눈입니까. 귀입니까. 또는 몸뚱이 전체입니까.

그것은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이 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어디에 실체가 있습니까. 내 마음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데, 그것이 대체 '어디에' 존재합니까.

마음의 본질은 眞空입니다. 그런데,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이 <마음>에서 천만억의 행위를 내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주에 있어서나 나에게 있어서나, 신비하기 이를데 없는 무궁한 조화의 원천은 바로 <空>이라고 하는 것 - 이것이 바로 <眞空 妙有의 현상>, 즉 <절대 眞空에서는 무한한 妙用을 나투는> 진리의 참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모든 現像界의 본질은 空이며, 이 텅 빈 바탕에서 모든 것이 제 각각 形形色色으로 나투어 있음을 두고, <色이 곧 空>이며 <空이 또한 色> 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색즉시공이라 함은, 앞서 설명한 우주에 있어서 그 예가 되고, <수상행식도 또한 이와 같다(受想行識 亦復如是)> 즉, 다시 말해, 受가 空이며 空이 受이고, 想이 空이며 空이 想이고... 라 함은 내 마음에 있어서 그 예가 될 것입니다.

오온이 모두 본래 공하다(五蘊皆空)는 말씀은 반야심경의 핵심입니다. 이것만 알면 나머지는 더 볼 것도 없습니다.

텅 빈 내 마음의 본래 자리(自性)는 우주의 空寂한 자리(體性)와 서로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自性을 깨치면 우주 삼라만상과 내가 둘이 아님을 단박에 알아버리는 것입니다.
이 텅 빈 자리(自性. 진여의 體性)에서 저절로 나오는 지혜가 바로 다름아닌 반야(般若)입니다.

깨침이 없이 머리로써만 헤아리면 백년이 가고 천년이 가도 色과 空은 둘이지 하나가 아니며, 나와 우주 만물이 서로 남이지 한 덩어리가 아닙니다. 이와같은 깨치지 못한 경계에서 스스로 끝없는 번뇌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중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有가 즉 無이고 無가 바로 有인 절대의 경지에서 한없는 자유와 해탈을 누리고자 하면 무엇보다 먼저 내 마음을 의심하여 깨쳐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아는 수행인의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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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j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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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불교의 경전인 《반야바라밀다심경》에 나오는 말.



- 허공중의 에너지 인연으로 물체 드러내 -
- 색의 본 바탕은 생멸하지 않는 공의 세계 -

반야심경의 너무도 잘 알려진 구절이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색이 즉 공이고 공이 즉 색임을 설명하고 색과 공이 다르지 않음을 보이고자 한다. 굳이 색즉시공의 주어를 색이라고 본다면 색이 곧 공이라는 말은 우리 눈 앞에는 색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나타난다 하더라도 이는 사대(사물의 제 요소)가 화합하여 인연따라 잠시 나타난다는 것으로서 자성으로서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연기무자성공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하겠다. 굳이 공즉시색의 주어를 공이라고 본다면 공이 곧 색이라는 말은 공이 허무단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색의 세계가 이 공으로 부터 현현하니 색의 무한한 가능성을 공이 내포하고 있다는 것으로서 진공묘유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하겠다.

진공묘유에서 설명하였듯이 색은 마치 잔잔한 바다에 바람이라는 인연이 닿아 생겨난 파도와 같은 것이다. 지금 당장은 파도라는 물 덩어리가 표면 위에 솟아 있지만 그 파도의 본성은 오직 바닷물일 뿐이니 바람이라는 인연이 다하면 바다라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다. 더우기 그 파도 자체가 바다이다. 그러므로 우리 눈 앞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 본성은 공한 것이기 때문에 색즉시공이 된다. 자성이 없는 것이 연기에 의해 잠시 나타나는 것이므로 공이라고 하는 것이다.

현대 물리학이 기술하는 물질관이 정확하게 이 파도와 바닷물의 비유와 같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에너지는 물질과 같다. 이는 유명한 E=mc2 이라는 공식으로 표현된다. 물체의 질량은 (색 혹은 파도는) 에너지로 (색으로서의 가능태로) 바뀔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이 에너지는 허공에(공 혹은 바다에) 퍼져 있게 된다. 이 에너지가 어떤 좁은 공간으로 결집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물체이다.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물체가 (색이나 파도는) 어떤 상황이 되면 (색이나 파도의 인연이 다하면)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에너지로 변하게 된다 (공 혹은 바다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것이 허공이다. 또 이 에너지가 어떤 상황이 되면 (사대의 인연이 화합하면) 물체(색 혹은 파도)가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물체란 에너지가 결집된 것 이상이 아니어서 색의 바탕은 공이지만, 색을 떠나서 공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허공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충만한 것이어서, 그 본성은 단멸공이 아니라 무한히 현현하는 색의 가능태이므로 색을 떠나서 공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색을 떠나서 공이 존재하지 못하고 공을 떠나서 색이 존재하지 못하니, 이를 색체가 곧 공이요 공체가 곧 색이라 한다(色體卽空 空體卽色).

이를 다시 말하면 색성공(色性空)이다. 색성공이나 색체즉공, 색즉시공의 의미는 색이 멸하고 나서 공이 생겨난다는 것이 아니라, 색의 성품 혹은 색의 본 바탕이 공이라는 것이다. 파도가 곧 바다요 물체가 곧 에너지가 충만한 허공인 것과 같다. 그러므로 색과 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를 유마경에서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이라고 이른다.

대품반야(大品般若) 봉발품(奉鉢品)에서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공 가운데에는 색도 없고 수상행식도 없으며 색을 여의고 공이 없고 수상행식을 여의고 공이 없다.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며, 수상행식이 공이고 공이 수상행식이다. …모든 존재의 참 성품은 생멸하지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다.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생멸을 보지 않고 더러움과 깨끗함을 보지 않으며 행한다. 왜냐하면 이름이란 인연의 화합으로 된 것이어서 단지 분별과 생각으로 거짓되게 이름을 붙인 때문이며, 이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일체의 이름을 보지 않고, 보지 않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사량 분별에 의한 일체의 이원론을 넘어서서 불이의 관점으로 세계를 관하는 불교적 세계관의 장쾌한 모습을 보게 되며, 이는 또한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가 하는 실천의 문제와 연결된다는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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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답변
ji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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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色) 즉, 보이는 모든 물건 또는 인간세상의 물욕을 말하죠..

이 물건이나 세상의 물욕은 공(空) 즉, 빈것 또는 없다



눈에 보이는 물건이나 물욕은 허무한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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