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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잠의 여신

정 명 숙 / 시인

"I've never seen you looking so tired. What happened?" 지난 주 어느 날 근무 중에 한 직장 동료가 내게 물었다. 오후 4시만 되면 눈꺼풀이 중력과 싸운다. 다행히 집에 있는 날은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가장 행복한 마음으로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과연 세상에 오후 4시의 파워냅(power nap.짧지만 깊은 쪽잠으로 깨어나면 새 힘이 불끈 솟아나는 단잠)의 호사를 누릴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과거 유럽에서는 오후 4시가 되면 가게 문을 닫고 티타임을 갖고 파워냅을 했다고 한다. 내 경우에도 근무 중에 감기는 눈꺼풀을 뜨고 있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신이 애처롭지만, 대신 혀에서 녹는 맛있는 페이스트리와 진한 블랙커피 한 잔으로 위로 삼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통 자정에서 새벽 한 시까지 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들어도 새벽 6시만 되면 용수철처럼 침대 밖으로 튕겨 나왔다. 죽으면 영원히 잘 수 있는데 왜 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묻어 버리는가 하며 치열한 오기를 부려왔다. 그런데 요즘 부쩍 밤 10시30분 정도만 되어도 몸과 뇌의 회로가 셧다운된다. 셧다운(shut down)이란 표현이 이렇게 적절할 수가 없다. 하루의 에너지가 서서히 고갈되어 가는 것이 아니고 한순간 몸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몸과 뇌가 스위치를 내린 것이다. 보통은 머리가 베개와 조우하면 열을 세는 동안 꿈나라에 들어간다. 쉽게 숙면에 이른다. 잠은 신비의 요술 봉으로 엉킨 초록을 풀어 나간다.

'수면 테라피'의 저자 미야자키 소이치로는 모든 병은 올바른 수면으로 예방할 수 있으며 쾌적한 수면을 습관화하면 병에 걸리거나 컨디션이 나빠지는 일이 없이 언제나 건강하고 생기발랄한 몸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즉 수면은 몸과 마음뿐 아니라 인생에 대한 투자다. 사람은 깨어 있는 동안에 뇌와 몸을 사용한다. 하루 종일 뇌와 몸이 활동을 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피로물질이 쌓여 졸음을 유발하는데 이는 수면을 원하는 몸의 신호다.

시계가 없고 시간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 많이 달랐던 옛날부터 사람은 해가 뜨면 일어나 움직이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어 뇌와 몸을 쉬게 해 주는 리듬을 형성해 왔다. 이 리듬은 빛과 관련이 있어 아침에 일어나 햇볕을 충분히 쬐면 밤에 수면을 촉진하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쾌적한 수면 사이클을 유지할 수 있다. 몸은 알아서 낮 동안 신진대사에 사용하던 에너지를 밤에는 몸을 회복시키는 에너지로 전환하여 면역기능이 강화되고 항산화 작용, 해독 작용이 이루어진다. 반대로 이 수면 사이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수면의 양과 질이 떨어지면 깨어 있는 동안에도 피로물질이 축적되어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고 스트레스가 쌓여 만병을 불러온다.



건강의 기본은 올바른 수면에 있다. 잠이 보약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수면의 중요성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과학자.심리학자들은 수면의 역학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있다. 질적인 숙면이 육체와 정신의 건강, 일의 생산성, 인지능력 그리고 심리학적 웰빙과 장수에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최근 버클리 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잠이 부족할 경우 기억에 문제가 생기고 알츠하이머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독물질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에 쌓이는 것이 수면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에서 중요한 건 우리의 정신을 맑게 해주고 알츠하이머를 예방하는데 수면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잠보다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이 많다. 치열한 경쟁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휴식을 취할 시간은 오직 수면뿐인데 요즘은 모두 스마트 폰에 중독되어 수면을 방해 받는다. 건강은 일과 예술, 돈과 명예보다 먼저다. 어젯밤 블랙홀에 빨려 들었던 나는 밤새 이슬을 흠뻑 먹은 나팔꽃이 되어 눈부신 햇살을 기다린다. 숙면으로 가뿐해진 나는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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