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학교](2)오늘 배울 과목은 ‘순록’입니다···순록 타는 할머니 선생님, 매달 야영장 돌며 천막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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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7.01. 오후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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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사하공화국 세비안큐얼 유목학교의 나에즈다 선생님(왼쪽)이 천막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가장 나이 어린 에드바르(오른쪽)는 졸음이 오는지 선생님 몰래 하품을 했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아주 먼 옛날, 순록치기들이 모여사는 마을에 한 여자아이가 살았습니다. 한밤중 큰 곰이 나타나 깊은 숲 속 동굴로 여자아이를 데리고 가버렸습니다. 순록치기들이 온 눈밭을 헤치며 찾았지만, 여자아이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라진 여자아이는 곰과 몇 년을 살다 곰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아이를 낳았다. 온몸에 털이 난 괴물이었다. 괴물은 힘이 세고 성질도 사나웠다. 덩치도 사람보다 훨씬 더 컸다. 시베리아에 널리 퍼져있는 ‘설인 추추나’ 이야기다.

순록마을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통나무집을 나선다. 털모자에 두꺼운 장화를 신었다. 4월, 시베리아의 공기는 여전히 차갑다. 한낮 기온이 영상을 넘지 못한다. 나이 든 선생님의 손짓에 아이들이 눈밭 위를 종종걸음으로 달려온다. 낙엽송 가지로 기둥을 세우고 두꺼운 천을 덮어씌운 작은 천막이 이곳 아이들의 학교다. 통나무집에서 천막 교실까지 눈밭 위 20m가 등굣길이다.

11살 코랴와 9살 베레니카, 7살 에드바르. 나이도 학년도 다른 세 아이가 천막 교실에 앉았다. 남매인 코랴는 4학년, 베레니카는 3학년이다. 나에즈다 선생님(64) 자리는 나무탁자 맞은편이다. 아이들이 오기 전부터 오늘 공부할 부분을 점검하며 준비를 하던 선생님은 옛날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했다. 그저 나가 놀고 싶은 아이들을 붙들어놓기 위해서다. 선생님 한 명에 학생 셋. 배울 것은 다 배운다. 러시아어와 수학, 에벤족 말과 역사가 주요 과목이다. 이곳 ‘유목학교’에서 배우는 수업도 일반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똑같이 인정받는다.

9번 야영장의 통나무집

사하공화국. 러시아 극동연방관구에 속한 자치공화국이다. 우리가 흔히 시베리아라고 부르는 지역, 무려 308만㎢에 걸친 광대한 땅을 가진 사하는 러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에서 가장 넓은 행정구역’이다. 투르크계 유목민의 땅이다가 17세기 러시아에 복속됐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놓이면서 금과 다이아몬드와 석탄이 많은 사하는 광업지대가 됐다. 주민의 45%는 야쿠트인, 41%는 러시아인, 7%는 우크라이나인이다.



나에즈다 선생님과 세 아이들은 소수민족인 에벤족 사람이다. 에벤족 순록치기 아이들이 유목학교에서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 4월 작은 마을 세비안큐얼 부근의 야영장을 찾았다. 사하공화국 수도인 야쿠츠크에서 북동쪽의 야영장까지 자동차로 꼬박 20시간이 걸렸다. 400㎞ 남짓한 거리인데 길이 워낙 험했다. 세비안큐얼로 가려면 시베리아 동부를 가로지르는 레나강과 북쪽 동시베리아해로 흘러 들어가는 인디기르카강의 지류인 네라강을 넘어야 한다.

겨우내 얼어붙은 강물은 아직 녹지 않았다. 빙판 위를 차로 달렸다. 시속 50㎞ 이상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5월에 접어들어 강이 완전히 녹으면 배로 강을 건너거나 비행기, 헬기를 타야 한다고 들었다. 강을 둘러싼 베른호얀스크 산맥 쪽으로는 차가 다닐 길이 없기 때문이다.

출발 다섯 시간 만에 레나강을 넘어 바타마이 마을에 도착했다. 러시아 군용 트럭 질(ZIL)로 바꿔탔다. 네라강을 건너려면 바퀴가 커다란 이런 차를 타야 한다. 어지간한 차로는 얼음 사이에 바퀴가 끼어 움직일 수가 없다고 했다. 새파란 하늘과 하얗게 얼어붙은 강이 맞닿은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군데군데 얼음을 깨고 올라온 물은 햇빛을 받아 푸른색으로 반짝거렸다. 강 양편으로는 눈덮인 산들이 구불구불 길게 뻗었다.

눈덮인 산도 얼어붙은 강도 끝없이 계속되는 것만 같다. 차는 자꾸만 덜컹거린다. 얼음 틈 사이로 차바퀴가 가라앉았다가 겨우 다시 빠져나오길 여러차례. 야영장은 산등성이 넓은 설원 위에 펼쳐져 있었다. 낯선 손님들의 등장에 개들이 마구 짖었다. 순록치기 가족들이 사는 통나무집과 천막을 빼면 온통 눈이다. 통나무집과 천막들 사이로 키큰 낙엽송들이 삐죽삐죽 서있다. 사하 인구 100만명 중 에벤족은 1만명 정도다. 세비안큐얼은 이들 에벤족이 모여사는 마을이다. 마을 어른 700명 중 50여명은 지금도 순록치는 일로 먹고 산다. 그들 조상이 1000년 전부터 해왔던 일이다.

야쿠츠크에서 세비안큐얼까지는 20시간이 걸린다. 차 안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한다. 세비안큐얼 마을 학교 교장선생님 이반과 트럭 운전기사 미샤, 세르게이(왼쪽부터)가 차 안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다. 트럭 문 바깥으로 얼어붙은 네라강과 눈덮인 베르호얀스크 산맥이 보인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순록치기들은 마을에서 살 수 없다. 산 속 눈밭 아래 순록이 먹는 이끼와 버섯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세비안큐얼의 순록치기들은 마을에서 차로 2~3시간 거리에 있는 야영장 9곳에 퍼져 산다. 야영장엔 1번부터 12번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다. 원래 열 두 곳이었는데 10년 새 3곳이 없어졌다. 코랴 남매와 에드바르가 부모들과 사는 곳은 9번 야영장이다. 순록치기들은 야영장에서 순록과 함께 한겨울 혹독한 추위를 견딘다. 5월부터는 1~2주마다 순록 먹이를 찾아 이동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마을에 내려가 지내는 한겨울 석달을 빼고는 야영장에서 가족과 머물며 옮겨다닌다. 어릴 때부터 순록과 함께 해야만 순록치기로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순록 타는 할머니 선생님

에벤족에게 아이들 교육은 큰 고민거리였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려면 마을에서 지내야 한다. 순록치기들은 아이들이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고, 전통이 끊어질까 불안해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유목학교다. 아이들이 마을로 가는 대신 선생님들이 순록치기들과 함께 살며 가르치는 것이다. 1~4학년까지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 지내며 야영장 천막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다. 중등교육과정에 해당하는 5학년이 시작되면 그때부터는 가족과 떨어져 다른 아이들과 함께 마을 학교를 다닌다.



사하의 유목학교는 모두 10여곳이다. 에벤족과 에벤키족들이 모여사는 지역에 퍼져있다. 두 민족은 같은 퉁구스계 사촌이다. 에벤키족도 순록 치는 유목민들이다. 세비안큐얼의 9개 야영장 중 코랴 또래의 아이가 있는 곳은 3군데인데 선생님은 나에즈다 1명 뿐이다. 나에즈다는 야영장들을 한 달씩 돌며 수업을 한다. 노마드 마을의 노마드 선생님인 셈이다. 선생님이 없는 동안에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당분간 교사 역할을 해야 할 코랴의 어머니도 얼마전 홈스쿨링 교육을 받았다.

유목학교 수업은 오전 9시에 시작해 낮 12시쯤 끝난다. 칠판과 책걸상은 없지만, 선생님이 가르치는 내용은 보통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어나 체육처럼 나에즈다가 가르치기 어려운 과목만 마을 학교에서 전담한다.

러시아어 수업 시간. 글자가 크고 그림이 많은 어린이용 교과서를 탁자 가운데 펼쳐놓고 선생님과 아이들이 머리를 맞댄다. 선생님이 먼저 글을 읽으면, 아이들이 따라 읽는다. 선생님이 책 가운데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면 아이들이 러시아말로 그림 내용을 설명한다. “까마귀가 물을 마시고 있어요” “까마귀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어요” 러시아말을 에벤말로, 에벤말을 다시 러시아말로 바꿔보기도 한다.

러시아 사하공화국 세비안큐얼 마을 인근 9번 순록 야영장의 아이들이 순록 울타리 위에 올라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베레니카, 코랴, 에드바르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어린 에드바르는 코랴나 베레니카처럼 술술 대답하기가 힘들다. 나에즈다는 나이도 학년도 다른 아이들을 한자리에 앉혀놓고 가르치는게 가장 어렵다고 했다. 에드바르가 더듬더듬 대답을 끝냈다. 나에즈다가 잘했다고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무탁자 하나 사이에 두고 선생님과 학생이 마주보며 수업하는 천막 교실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나에즈다는 14년 전에 은퇴를 했지만 뒤를 이은 선생님이 병이 나는 바람에 지난해 복귀했다. 아이들의 천막 교실이 선생님에게는 먹고 자는 집이다. 야영장 어른들이 해다주는 장작으로 천막 안 난로를 피워 추운 밤을 버틴다. 봄에도 밤 기온은 영하 20도까지 내려간다.

날이 풀리면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활이 시작된다. 예순이 넘은 나에즈다도 다른 사람들처럼 순록을 탄다. 천막은 걷어서 순록 썰매에 싣고 먹이를 찾아 2~3㎞씩 움직인다. 나에즈다는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코랴 같은 꼬마들도 하는데 내가 못하겠느냐”며 “평생 순록을 타왔다”고 말했다. 추위도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한겨울 날씨에 비하면 영하 20도는 봄날씨라는 것이다.

9번 야영장에는 통나무집 두 채가 있다. 그레고리(42)와 아나스타샤(33) 부부가 코랴와 베레니카 그리고 지난해 태어난 막내딸과 함께 통나무집 한 채를 쓴다. 올해 14살인 큰아들 다니엘은 유목학교 과정을 마치고 마을에서 학교를 다닌다. 9번 야영장 대표 에드가르(36)는 에드바르의 아버지다. 어머니를 모시고 외아들과 함께 다른 통나무집에서 산다. 야영장에서 가장 젊은 이고르(24)와 라티크(23)는 천막집에서 지낸다. 세 집이 모두 합해 2000마리 순록을 기른다. 그 중 국가 소유가 1200마리다. 마릿수와 무게, 암·수 등에 따라 매달 국가에서 보조금이 나온다. 나머지 800마리는 세 집에서 각자 기르는 것들이다. 팔거나 잡아먹거나 썰매를 끌게 한다.

그레고리와 아나스타샤 부부 일가족이 통나무집에 모였다. 놀러온 에드바르도 코랴와 베레니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레고리 등 뒤로 노트북 컴퓨터가 보인다. 노트북이나 전등을 켜는데 필요한 전기는 하루 3시간 발전기를 돌려 얻는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그레고리네 가족이 통나무집 앞에 섰다. 베레니카는 엄마가 챙겨준 에벤족 전통의상으로 단장했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겨울에는 야영장에서 30분 거리인 산 속에다 순록을 풀어놓으면 알아서 이끼며 버섯이며 먹이를 찾아 먹는다. 2000마리 중 매일 아침 70마리 정도를 야영장으로 데려왔다가 해지기 전에 다시 산에 풀어놓는다. 낮 동안 썰매 끄는데 쓰기 위해서다.

그레고리와 코랴 부자의 약속

천막 교실을 나와도 아이들의 수업은 계속된다. 코랴와 베레니카, 에드바르에게는 야영장이 곧 학교다. 부모와 함께 순록을 보며 자라는 생활 전체가 이 아이들의 공부시간이다. 매일 순록과 어울려 놀며 순록치기가 알아야 할 것들을 자연스럽게 깨친다.

야영장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그레고리가 순록 한 마리를 줄에 묶어 끌고 왔다. 순록을 잡아 고기를 나눈다고 했다. 야영장 사람들이 돌아가며 한 달에 한 마리씩 자기 순록을 잡는데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이날로 골랐다고 했다. 그레고리는 바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능숙한 솜씨로 순록 뒷머리를 찔렀다. 동물이 버둥거리자 한번 더 같은 곳을 찔렀다. 푹하고 쓰러지더니 2분 정도 뒤에는 완전히 숨을 멈췄다.

그레고리와 에드가르가 다리부터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는 순록 배에서 내장 부위를 차례로 꺼냈다. 아이들은 한쪽에 서서 어른들이 순록 잡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순록치기가 되려면 당연히 순록 잡는 법도 알아야 한다. 그걸 보라고 유목학교 수업도 오후로 미뤘다. 코랴와 에드바르가 쓰러진 짐승 곁에 다가와 손가락으로 몸통을 쿡쿡 찔렀다. 무서워하는 눈치는 전혀 없었다. 아이들은 순록의 삶만큼이나 죽음에도 익숙했다.

순록치기의 아이들에게는 야영장 전체가 학교다. 아나스타샤가 딸 베레니카를 순록 등에 태우고 길을 이끌고 있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유목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활을 쏘며 놀고 있다. 아이 아버지들이 나무를 깎아 활을 선물했다. 가운데 선 에드바르는 화살이 생각처럼 날아가지 않아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순록은 버릴 데가 없는 동물이다. 내장은 ‘훙엘’이라고 부르는 순대로 만들어 먹는다. 다리뼈를 푹 고으면 하얀 푸딩처럼 굳는다. ‘홀로디아스’라는 음식이다. 간은 생으로도 먹고 얼려서도 먹는다. 부드러운 혀는 가장 맛있는 부위다. 그레고리는 간과 혀를 다른 부위와 함께 손님들 몫으로 선물했다. 고기와 뼈뿐 아니다. 가죽으로 옷을 짓고, 신발을 만든다. 천막 바닥에도 깐다. 낙엽송 잔가지를 여러겹 겹쳐서 쌓은 다음 순록 가죽을 덮으면 훌륭한 매트리스가 된다. 뿔은 약재로 쓴다. 옛날에는 피도 약용으로 마시곤 했다고 한다. 발굽 여러개를 모아 순록 가죽 끈으로 엮으면 전통 악기가 된다. 끈을 쥐고 흔들면 캐스터네츠 같은 소리가 난다.

에벤족 아이가 10살쯤 되면 더 본격적인 순록치기 공부가 시작된다. 코랴는 재작년부터 어른들 사냥을 따라다니고 있다. 집에서 총쏘는 연습도 했다. 그레고리는 2년 정도 더 총 연습을 하게 한 다음 직접 사냥도 시켜볼 거라고 했다.

코랴는 올 여름 자기 순록을 처음 갖게 된다. 순록치기가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배웠다는 뜻이다. 그레고리는 “코랴가 자기 순록을 가지고 싶다고 계속 졸랐다”면서 “지난해 태어난 순록 한 마리를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순록을 받으면 자기가 직접 이름을 붙일 수 있고, 마음대로 탈 수도 있다. 코랴는 순록에 무슨 이름을 붙일까 벌써부터 생각이 많다.

에벤의 고등학생은 곰을 잡는다

들뜬 코랴를 보며, 세비안큐얼로 오는 길에 같은 차를 탔던 세르게이(19)가 떠올랐다. 지난해 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미 어엿한 순록치기였다. 직접 이름 붙인 순록만 여러 마리라고 했다.

지난해 6월15일. 세르게이는 사촌형 세묜(30)과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순록치기들은 오후 9시부터 오전 9시까지 12시간 동안 순록 지키는 일을 한다. 늑대나 곰이 나타나면 순록을 해치기 전에 쫓아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 3시30분쯤 멀리서 짐승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소리 나는 쪽으로 움직였다. 세묜이 앞장서고 세르게이가 뒤따랐다. 곰이었다.

세비안큐얼 순록야영장의 밤. 하늘 위 별이 반짝이고 있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덩치 크고 사나운 수컷인데 나와 세묜을 합친 것보다 더 커보였다”고 세르게이가 말했다. 습격자는 세묜을 덮쳤다. 생각할 틈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렸다간 세묜의 숨이 끊기고 말 것이었다. 세르게이는 총을 들고 똑바로 목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곰은 쓰러졌고, 세묜은 풀려났다. 곰 발톱에 긁혀 팔과 다리에 크게 상처가 났지만 목숨은 건졌다. 겨울 외투와 질긴 바지 덕이었다. 세르게이의 이야기는 지역 신문에 실렸다. 소문을 들은 사하 정부가 그를 불러 상을 줬다. 세르게이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 상을 받으러 야쿠츠크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총솜씨가 대단하다는 칭찬에 “친구들 중에도 나만큼 총 쏘는 사람이 많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야영장에서 이틀밤을 보내고 세비안큐얼 마을로 내려왔다. 이 마을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에벤어를 능숙하게 쓴다. 흔한 일이 아니다. 에벤, 에벤키, 축치, 유카길 등 사하의 소수민족 대부분이 조상들 말을 잊었다. 야쿠트인과 러시아인들의 말이 공용어가 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레나강과 네라강이 지키는 마을

코랴의 어머니 아나스타샤는 “어쩌면 사하 전체에서도 세비안큐얼만큼 에벤말이 굳건히 살아있는 곳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세비안큐얼에서 200㎞ 떨어진 한디가라는 도시에서 왔다. 역시 에벤족이 많이 사는 곳이다. 에벤족 아이들을 위한 유목학교도 있다. 하지만 노인들만 몇 마디 기억할 뿐 주민 대다수가 에벤말을 모른다.

세비안큐얼 아이들이 스키를 타고 등교하고 있다. 체육 시간에 스키를 배우는 날이라 집에서부터 스키를 신고 나섰다고 했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세비안큐얼 마을 어느 집 앞에 유모차들이 차례로 늘어서 있다. 바퀴 대신 썰매가 달렸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마을 학교 교장선생님인 이반(50)에게 어떻게 에벤말을 지킬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반이 껄껄 웃으면서 답했다. “간단하다. 도시가 워낙 멀기 때문이다.” 외부인들이 오가기 어려워 에벤 사람들끼리만 모여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이곳까지 여정을 생각하니 금방 이해가 갔다. 이반에게 “그러면 결국 레나강과 네라강이 에벤말을 지켜준 셈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반이 “말이 된다”면서 웃었다. 하지만 사하에는 세비안큐얼보다 더 접근하기 힘든 소수민족 마을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유독 이곳 사람들만이 토착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전통을 지키려는 특별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이반의 학교에서는 에벤어가 필수과목이다. 1980년부터는 ‘순록’ 과목을 만들어 생태와 습관을 가르친다. 순록이 무슨 먹이를 좋아하는지, 조심해야 할 병은 무엇인지, 병이 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을 교육한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과목이다. 세비안큐얼의 아이들은 부모가 유목을 하든 하지 않든 대부분 순록을 잘 안다. 어려서부터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록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몇몇이라도 있을 수 있다. 이반은 “우리 학교의 순록 과목은 바로 그런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반은 세비안큐얼 마을 학교 교장선생님이다. 야쿠츠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학생들에게 에벤어와 지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됐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나에즈다처럼 이반도 이곳 세비안큐얼이 고향이다. 지금 교장으로 있는 마을 학교를 다녔고, 20대 초반에는 야영장에서 순록을 쳤다. 그뒤 대학 공부를 하러 잠깐 야쿠츠크로 떠났지만, 졸업하고 곧장 고향으로 돌아와 에벤말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됐다. 이반은 야쿠츠크에 남았다면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고향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직접 설상차를 몰고 손님들을 마을 명물인 세비안호수로 안내했다. 여기까지 와서 세비안을 보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세비안은 사하에서 가장 깊은 호수다. 마을 이름도 이 호수에서 따왔다. 이반의 고향 사랑은 여전했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반은 “순록이 없으면 에벤도 없다”고 말했다. 나에즈다도 마찬가지였다. 순록을 ‘태양의 것’이라 부르고, 새끼 순록은 ‘태양의 아이들’이라 불렀던 에벤족의 믿음을 이반과 나에즈다에게서 확인할 수 있었다. 9번 야영장 유목학교 학생은 3명 뿐이고 다른 두 곳을 합쳐도 10명이 안된다. 그 아이들을 위해 이반은 매년 유목학교 프로그램을 짠다. 나에즈다는 천막 생활을 감수하며 야영장 아이들을 찾아간다.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다.

9번 순록 야영장의 젊은 순록치기들인 이고르와 라티크가 순록 썰매를 끌고 야영장 바깥으로 나가고 있다. 얼음을 깨서 가져오기 위해서다. 야영장 사람들은 얼음을 녹여 식수로 쓴다. 얼음 녹인 물로 몸도 씻는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나에즈다는 “세대에서 세대로”라는 표현을 입버릇처럼 썼다. 젊은 순록치기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고르와 라티크는 9번 야영장의 ‘유이’한 20대 순록치기들이다. 라티크는 세비안큐얼에서 나고 자랐다. 그 역시 야영장 유목학교에서 나에즈다와 함께 공부했다. 이고르는 야쿠츠크 태생이다. 세비안큐얼은 열 살이 채 되기 전 할아버지를 따라 놀러온 게 전부다. 이고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세비안큐얼로 왔고, 어렸을 때 딱 한 번 본 라티크를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은 지금 한 천막에서 살고 함께 사냥을 함께 다닌다. 여름밤 불침번도 같이 선다. 순록들 사이에 모닥불 피워놓고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킬킬거리는 게 큰 재미다.

이고르와 라티크는 ‘세대에서 세대로’의 표본들이다. 수십 년 전 이들의 할아버지들이 두 사람처럼 한 조로 움직이며 순록을 키웠다. 10여년 만에 다시 만난 둘이 뭉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인연도 작용했다.

물론 젊은 순록치기로 산다는 건 쉽지 않다. 에벤은 나이에 따른 위계가 강한 사회다. 야영장 막내인 두 사람에게는 신경쓸 일이 많다. 순록을 야영장으로 데려왔다가 산에 풀어놓는 것, 야영장 바깥으로 썰매를 끌고 나가 얼음을 깨어 가지고 오는 것처럼 힘쓰는 일도 다른 어른들보다 많이 해야 한다. 한창 젊은 나이라 도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할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순록치기로 함께 살고 싶다. 9번 야영장 순록을 3000마리까지 늘리는게 가장 큰 꿈이다.

이고르(왼쪽)와 라티크가 두꺼운 얼음 층 아래 들어가 생활용수로 쓸 얼음을 깨서 꺼내고 있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도시로 간 아이들

세비안큐얼에서 일주일만에 야쿠츠크로 돌아와 보니, 거리 곳곳에 쌓여있던 눈이 어느새 다 녹았다. 시내 중심에서 40분 정도를 걸어 38번공립학교를 방문했다. 여기 학생 481명 중 21명은 에벤키족이다. 예전에는 다른 소수민족 아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에벤키족 아이들은 따로 시간을 내서 에벤키어를 배운다. 야쿠츠크 전체에서 에벤키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이곳뿐이다. 에벤키족 출신인 타냐 선생님(32)이 전담이다. 다른 소수민족 아이들도 원하기만 하면 조상들의 말을 배울 수 있다. 타냐는 “소수민족 아이 누구든 환영한다”면서 “에벤족 아이가 들어오면 내가 에벤어도 가르칠 것”이라고 말했다. 에벤어와 에벤키어는 많이 비슷하다. 학교측은 유카길이나 축치, 돌간 등 다른 소수민족 학생이 입학하면 따로 그 아이들에게 말을 가르칠 교사를 채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타냐를 따라 2층 구석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털 달린 가죽옷을 걸친 에벤키 아이들 10여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에벤키족 전통 복장이다. 여학생들은 알록달록 구슬로 장식한 머리띠까지 썼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그간 공부한 것들을 보여준다며 차례로 나와 춤을 추고,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불렀다. 아이센(9)이 읊은 에벤키어 시는 제목이 ‘순록’이었다. 순록의 까만 눈과 빠른 다리, 따뜻한 털을 묘사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아오리카(10)와 알리나(10)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전통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는 내용이다. 아오리카는 야쿠츠크가 고향이다. 소방관 아버지와 기자 어머니는 오래전 올레뇨크 에벤키 마을에서 도시로 이주해왔다. 아오리카의 부모는 에벤키말을 한마디도 모른다. 할머니도 잘 못한다. 아오리카가 집에서 에벤키말을 가장 잘한다. 아이센과 알리나의 집도 마찬가지다.

사하공화국 수도 야쿠츠크의 38번공립학교에서는 소수민족 아이들에게 토착어를 가르친다. 전통 복장을 입은 에벤키족 아이들이 손을 맞잡고 전통 춤을 추고 있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아오리카와 아이센, 알리나는 에벤키어 수업이 영어나 프랑스어 수업보다 재미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아이들도 몇 살 더 먹으면 사회에서 에벤키어를 쓸 일이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타냐는 “고학년 아이들 사이에서 대학 가는데 아무 필요 없는 에벤키말을 왜 배워야 하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자녀들을 굳이 이 학교로 보낸 부모들은 “아이들은 옛말을 잊은 우리와 달랐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들도 일상에서 에벤키말의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한다.

일루모와 파라카

에벤어가 여전히 살아있는 세비안큐얼에서도 전통은 조금씩 흐릿해져가고 있다. 마을에서 만난 타니아나 할머니(64)의 할아버지는 샤먼이었다. 옛날 순록치기들은 타티아나의 할아버지에게 대소사를 의논했다. 할아버지는 짐승뼈를 태워 점을 쳤다. 20년 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샤먼도 사라졌다. 순록치기들은 더이상 짐승뼈를 태우지 않는다.

옷차림과 사는 방식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순록 가죽으로 만든 전통 복장과 신발 대신 고어텍스 옷과 방한화를 신는다. 옛날 순록치기들은 원뿔 모양으로 나무기둥을 세우고 순록 가죽을 씌워 천막을 만들었다. 에벤말로 이런 전통 천막을 ‘일루모’라고 불렀다. 이제 사람들은 순록 가죽 대신 합성섬유 천을 덮어 천막을 만든다. 일루모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그저 ‘파라카’라고만 부른다. ‘천막’이라는 뜻의 러시아말이다.

세비안큐얼 마을에서 만난 타티아나 할머니의 할아버지는 샤먼이었다. 할머니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더니 커다란 자루 하나를 꺼내왔다. 할아버지가 샤먼으로 살았을 때, 순록치기들이 쓰던 물건들이 한가득 쏟아져나왔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세비안큐얼의 유목학교와 순록 전통도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 지난 10년 새 야영장 3곳이 사라지면서 순록치기 숫자도 20%가 줄었다. 일은 고되고 벌이는 적다. 국가 소유 순록 1200마리를 기르는 몫으로 들어오는 보조금은 어른 한 사람당 매달 2만~3만루블(약 35만~52만원) 정도다. 최근 몇 년 들어서는 기후까지 순록치기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기후변화는 이곳 시베리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에즈다는 “점점 봄이 빨라지고 있다”고 했다. 예년이면 3월 말이나 돼야 날씨가 풀렸는데 이제는 한달은 빠르게 봄기운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순록은 추운 데서 사는 동물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살 곳이 줄어들고, 전염병이 돌 가능성도 커진다. 2016년 시베리아 반대편 야말반도에서 탄저병이 크게 돌았다. 러시아 당국은 이 지역 순록 25만마리를 도살했다. 야말반도 네네츠족이 기르는 전체 순록의 25%에 달하는 숫자였다. 전문가들은 부실한 예방 접종과 함께 기후변화를 주원인으로 꼽았다. 여름 들어 영상 35도 안팎의 더운 날씨가 한달 넘게 이어면서 순록의 저항력이 크게 약해졌다는 것이다. 나에즈다도 야말의 비극을 알고 있었다. 그는 “여기는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이다. 여기까지 더워지면 순록과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느냐”고 물었다.

야영장의 그레고리와 에드가르는 아이들이 순록 일을 이어주길 바라지만 강요할 수는 없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코랴와 베레니카와 에드바르가 다른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면 세비안큐얼은 어떻게 될까. 에드가르는 “나와 내 조상들은 순록일을 해서 먹고 살았다. 순록 문화가 사라지고 아이들이 모두 도시로 떠난다면 나이든 사람만 살게 될 것이다. 평생 자연에서 순록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도시에서 살 수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유목민에게 학교란

사하 유목학교의 역사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정권은 시베리아에 학교를 세우고 유목민 아이들을 가르치게 했다. 하지만 교육 내용과 목표는 지금의 유목학교와 전혀 달랐다. 스탈린은 소수민족을 러시아화하려 했고, 교육을 그 도구로 삼았다. 시베리아 유목민 전통과 언어, 문화 교육을 최소화했다. 사하의 유목민들은 1990년대 들어 새로운 유목학교를 세우기 시작했다. 나에즈다가 코랴와 베레니카, 에드바르를 가르치듯 그들 고유의 언어와 전통을 가르쳤다. 소련이 무너지고 중앙집권적 교육이 흔들리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그러나 유목민들의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변화였다. 러시아 교육학자 사길라나 지로코바는 에벤키족 유목학교의 역사를 주제로 한 논문에서 “새로운 유목학교를 만들어 낸 것은 정부가 아니라 소수민족 자신들이었다”고 적었다.

세비안큐얼에서 야쿠츠크로 돌아가는 길. 차에서 내린 트럭 운전기사가 네라강에 손을 씻고 있다. 강물은 그대로 마셔도 괜찮을 만큼 깨끗하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지금 사하의 유목학교는 몇 안 되는 모범사례로 꼽힌다. 세계 대부분의 유목민들은 전통과 현대적 교육의 딜레마 앞에서 답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육은 유목민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기회를 여는 문이 될 수 있다. 현대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교육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유목 전통을 끊어버릴 위험 또한 동반한다.

서아프리카에서 소와 양, 염소를 치는 풀라니족을 비롯한 나이지리아의 유목인구는 940만명. 학령기 인구도 330만명이나 되지만 학교에 등록된 아이들은 58만명에 불과하다. 실제로 학교에 출석하는 학생은 그보다 더 적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1989년 유목교육국가위원회(NCNE)를 출범시키는 등 유목민 아이들을 교육의 장으로 끌어들이려 애써왔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풀라니족 어른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주장에 “교육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한 뒤 양을 잘 먹을 줄만 알지, 기를 줄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렵다”고 반응했다.

나이지리아 유목교육국가위원회의 북동지역 담당국장 마커스 브왈라는 2016년 현지 기자들에게 “풀라니 유목민들이 여기저리고 옮겨 다니는 전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들 후손은 앞으로도 학교에 다닐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정주 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현대 교육과 유목민 전통을 조화시키기는 쉽지 않다.

모로코의 베르베르 유목민은 이런 고민을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다. 최근 알자지라는 아틀라스 산맥을 누비며 살았던 이 유목민족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전통을 포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르베르 남성 다우드는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모하메드라는 또다른 유목민 아버지는 “천막 생활을 하던 우리가 이제는 한 곳에 머무르는 삶을 살고 있다”면서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지었다”고 말했다. 알자지라는 “이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면서 “변화가 계속된다면 이 어른들과 아이들은 모로코의 마지막 유목민으로 남게될 것”이라고 적었다.

세비안큐얼에서 야쿠츠크로 돌아가는 길, 출산을 앞둔 순록들을 만났다. 어미 순록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새끼 낳을 곳을 찾는다. 세비안큐얼 | 이석우 기자


사하 유목학교는 앞으로도 모범사례로 남을 수 있을까. 그레고리와 아나스타샤 부부는 “우리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에즈다는 조금 더 낙관적이다. 그는 “에벤의 몸속에 흐르는 피를 믿는다”고 했다.

세비안큐얼에서 야쿠츠크로 돌아오는 길, 눈 쌓인 언덕 위를 다니는 순록 수십 마리를 만났다. 출산을 앞둔 암컷들이었다. 어미 순록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새끼 낳을 곳을 찾아낸다고 했다. “아이들이 도시로 떠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와 순록들과 함께 살게 될 것”이라던 나에즈다의 말이 떠올랐다. 본능적으로 새끼 낳을 곳을 찾는 순록들처럼, 에벤의 아이들도 그들 조상과 같은 삶을 살게 되기를 어른들은 조용히 기원하고 있었다.

■특별취재팀

장회정(토요판팀), 남지원·노도현(정책사회부), 박효재·심진용(국제부), 이석우·정지윤·강윤중·권도현(사진부), 배동미(디지털영상팀) 기자

■취재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세비안큐얼(러시아)|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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