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탐구] '어디서든 배운다' 36년간 적은 경영노트…'100년 포스코' 이끌 청사진도 그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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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0.17. 오전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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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포스코 체질 개선 이끈 재무통
2015년 가치경영센터장 맡아
비핵심 계열사·부동산 과감히 매각
경쟁력 되살리고 7兆 재무개선 효과

입사할 때부터 이미 회장
동기모임서 자발적으로 회장 맡아
"꼭 회사 회장 할 것" 자주 얘기해
"자기 암시 덕에 여기까지 온 듯"

신성장동력은 전기차 배터리
2030년까지 리튬 등 소재 분야
점유율 20% 매출 15조 목표
"대북사업서도 적극적 역할 할 것"


[ 김보형 기자 ]

“유전스(기한부 수입신용장)가 뭔가요?”

2014년 3월 포스코그룹 종합상사인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대우) 기획재무본부장에 취임한 최정우 부사장(현 포스코 회장)은 궁금한 게 많았다. 서류에 낯선 무역용어가 보일 때마다 질문을 던졌다. 까마득한 후배인 과장, 대리급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소주잔을 나누며 소통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자신이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다. 매출이 60조원에 달하는 국내 6위 대기업 포스코의 수장인 최정우 회장(61)의 좌우명이다. 일반적으로 모기업 임원이 계열사로 이동하면 낙담하거나 퇴사를 염두에 두고 업무를 게을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 회장은 달랐다. 포스코건설과 포스코대우, 포스코켐텍 등 계열사에 근무할 때마다 오히려 “새로운 일을 배울 기회”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회사 후배들에게 “선호하는 조직과 자리만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돼서는 안 된다”며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만 리더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50년 역사상 첫 재무통 CEO

지난 7월 취임한 최 회장은 50년 포스코 역사상 첫 재무통 최고경영자(CEO)다. 2015년 그룹 컨트롤타워인 가치경영센터장을 맡아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는 철강업황 부진 속에 무리한 인수합병(M&A) 후유증까지 겹쳐 포스코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이래 최악의 실적을 낸 시기였다. 그는 철강 본원의 경쟁력 회복과 재무건전성 강화를 목표로 강도 높은 경영쇄신에 나섰다. 건설과 종합상사 등 계열사에 근무한 경험이 구조조정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그는 포뉴텍, 포스코LED 등 비핵심 계열사와 유휴 부동산을 과감하게 매각했다. 71개까지 늘어났던 국내 계열사는 38개로, 181개이던 해외 계열사는 124개로 줄였다. 7조원가량의 재무 개선 효과도 거뒀다.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확대 및 현지 철강사와의 협력 강화 등을 통해 포스코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혀온 해외 법인의 체질을 개선했다. 2015년 4억2000만달러 적자를 낸 해외 생산법인은 지난해 3억1000만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포스코 관계자는 “최 회장은 재무 전문가인 동시에 건설과 무역, 2차전지 등 비(非)철강사업 경험이 풍부한 경영 전략가”라고 평가했다.

경영노트 만든 준비된 CEO

최 회장은 올 2월 2차전지(배터리) 핵심 소재인 음극재를 생산하는 포스코켐텍 사장에 선임돼 본사가 있는 포항으로 내려갔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던 포스코보다 규모는 작지만 회사 전반을 총괄하는 자리였다. 그는 36년간 포스코에 몸 담으면서 사내 각 분야에서 개선했으면 하는 점과 회사를 둘러싸고 있는 우려에 대한 해결책, 다른 회사에서 배웠으면 하는 점 등을 차곡차곡 노트에 정리했다. 이대로 직장생활을 마감한다면 후배들에게 전해줘도 좋고, 더 큰 기회가 온다면 쓰임새가 클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권오준 회장이 사임을 발표한 지난 4월18일 밤. 1983년 입사 첫날 때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는 회사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 노트를 다시 꺼내들었다. 누가 새 회장이 되더라도 포스코를 잘 이끌어야 하고, 어려울 때 힘을 보태는 데 이 노트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포스코의 시대적 소명과 비전부터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경영쇄신 방안부터 CEO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조직문화와 사업계획, 대북사업, 사회공헌 등 분야별로 전략안을 만들었다. 권 회장의 사임 발표 후 2개월여가 지난 뒤 최 회장의 ‘경영 아이디어 노트’는 한층 더 두껍고 촘촘해졌다. 회장 선출권을 쥔 사외이사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이 두 권의 경영노트였다.

최 회장은 신입사원 때부터 포스코를 이끌어 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1983년 함께 입사한 동기생 75명이 꾸린 동기회 회장을 맡았다. 최 회장은 당시 동기들에게 “동기 회장을 맡았으니 나중에 꼭 회사 회장을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최 회장은 “허황돼 보일 수 있지만 (회장이라는 꿈을) 자주 입에 올림으로써 자기 암시를 했고, 그 꿈을 향해 묵묵히 걸어온 게 회장에 오른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했다.

철강·소재·인프라 45조원 투자

최 회장은 ‘철강 그 이상의 100년 기업’을 목표로 미래 먹거리 발굴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는 내년부터 5년간 철강과 2차전지 소재, 에너지·인프라 등 주력 사업에 45조원을 투자하고 2만 명의 정규직을 새로 뽑기로 했다. 투자·채용 모두 1968년 창립 이후 최대 규모다. 최 회장은 광양제철소 제3고로(高爐·용광로) 스마트화와 기가스틸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제품 공장 신·증설 등 본업인 철강 부문에 26조원을 쏟아붓기로 했다. 신성장동력인 배터리 소재 사업과 자원 개발 등 에너지·인프라 부문에도 각각 10조원과 9조원을 투자한다.

최 회장은 신성장 전략에 대해 “양극재와 음극재, 리튬 등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2030년까지 시장 점유율 20%, 매출 15조원 이상을 달성해 글로벌 톱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지난 8월 2억8000만달러(약 3000억원)를 들여 리튬을 추출할 수 있는 아르헨티나 염호를 인수했다.

최 회장은 남북한 경제협력 강화에도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지난달엔 남북 정상회담 특별방문단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포스코는 남북 경협사업 확대에 대비해 포스코대우와 포스코건설, 포스코켐텍 등이 참여한 ‘대북사업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포스코 대북사업 TF는 철광석 마그네사이트 등 주요 원자재 수입과 철도·도로 등 인프라 사업 참여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최정우 회장 약력

△1957년 경남 고성 출생
△1976년 부산 동래고 졸업
△1983년 부산대 경제학과 졸업
△1983년 포항종합제철 입사
△2006년 포스코 재무실장
△2008년 포스코건설 경영전략실장(상무)
△2014년 대우인터내셔널 기획재무본부장(부사장)
△2015년 포스코 가치경영실장(부사장)
△2017년 포스코 최고재무책임자(CFO·사장)
△2018년 2월 포스코켐텍 사장
△2018년 7월 포스코 회장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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