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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32. 버스 업계의 녹색 괴물, 플릭스부스

독일 여행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운송수단은 기차입니다만 최근에는 고속버스도 무섭게 성장했습니다. 기차보다 느릴 수밖에 없지만 더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시장점유율을 크게 높였죠. 2013년부터 독일의 관련법이 개정되어 고속버스 사업자가 우후죽순 생겼는데요. 이들이 서로 경쟁하려니 최저 1유로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정책까지 밀어붙이며 치킨게임을 하면서 버스 이용자가 크게 늘었습니다. 그리고 출혈 경쟁 때문인지, 몇년 지나지 않은 지금 단 한 곳의 강자가 버스 시장을 다 먹어버렸습니다.

바로 플릭스부스(Flixbus)입니다. 아마 플릭스버스라고 적는 자료가 더 많을 거에요. 저는 여기가 독일 회사이기 때문에 독일어식으로 플릭스부스라는 표기를 고집하고 있지만,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독일이라는 틀에 가둘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버려서요.


플릭스부스는 2015년께 독일 버스 시장 2위 업체였습니다. 1위 업체인 마인페른부스(Meinfernbus)와 합병하면서 시장의 강자가 되었습니다. 2위 업체가 1위를 먹고 절대적인 1위가 된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원래 플릭스부스는 파란색과 오렌지색을 상징으로 했구요. 초록 색상과 오렌지색 화살표의 조합은 마인페른부스의 상징이었어요. 그런데 합병 후에는 플릭스부스라는 이름을 달고, 마인페른부스의 상징을 사용합니다.


합병 후에도 한동안은 마인페른부스와 플릭스부스가 따로 운행했어요. 저는 그게 독과점법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한 회사로 운행하면 점유율 70%가 넘어 독과점 사업자가 되니까 모회사와 자회사 식으로 둘이 나누어 노선을 배분해 점유율을 조정했다고 들었어요. 마치 지금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한 회사이지만 브랜드는 따로 가지고 가는 것처럼요.

이후 플릭스부스는 포스트부스(Postbus)와 베를린리니엔부스(베를린라인버스; Berlin Linien Bus)까지 인수하며 시장점유율 90%를 돌파합니다. 이건 엄청난 사건이었어요. 포스트부스는 독일 우체국과 자동차 운전자 협회가 만든 회사였고, 베를린리니엔부스는 독일철도청의 자회사였습니다. 독일 우체국은 독일에서 시가총액 20위권에 드는 초대형 기업입니다(단순한 우체국이 아니에요). 독일철도청은 운송업계의 독보적인 최강자죠. 그들의 회사조차도 버티지 못하고 플릭스부스에 넘어가버린 겁니다. 수익이 나지 않으니 계속 붙들고 있을 수 없었어요. 말하자면, 벤처기업이 대기업까지 다 집어삼킨 셈입니다.


심지어 플릭스부스는 메가버스 등 다른 유럽 국가의 버스회사까지 인수합니다. 또 동유럽의 버스회사인 블라거스(Blaguss)와 협력 관계를 맺어, 블라거스의 노선을 플릭스부스 이름으로 운행하게 합니다. 일종의 하청업체로 만든 겁니다. 이런 식으로 유럽 전역으로 노선을 넓혀 이제 유럽에서 더 이상 대적할 상대가 없는 거대한 버스회사가 되었어요. 그야말로 버스 업계의 녹색 괴물이라 해도 될 정도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독일에서 점유율 90%를 넘겼는데도 독과점 사업자로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포스트부스를 인수한 뒤에만 하더라도 포스트부스의 이름도 그대로 쓴다고 했었는데, 어느새인가 마인페른부스와 포스트부스는 완전히 사라지고 모든 노선을 플릭스부스로 다니고 있어요. 하지만 제재는 없다고 하네요. 이렇게 플릭스부스를 키워서 유럽의 운송 시장을 잡아먹으라고 독일 정부가 방관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돌고 있습니다.

이제 독일에서 남아있는 경쟁사는 투어링(Touring)과 다인부스(Dein Bus) 정도입니다. 독일철도청의 IC 버스는 성격이 다르므로 논외로 하겠습니다. 투어링은 유럽의 버스회사 연합체인 유로라인 멤버이고, 2013년 이전까지는 독일에서 가장 큰 버스회사였습니다만, 이제 점유율 5%도 되지 않는 군소업체로 몰락했습니다. 그나마 인프라가 있어서 관광버스 등 다른 사업으로 유지는 되는 것 같습니다. 가령, 그 유명한 로맨틱 가도 버스가 투어링에서 운행하는 겁니다.


덕분에 여행자는 많이 편해지기는 했어요. 이제 버스 스케줄이나 요금을 확인하려고 이 회사 저 회사 홈페이지를 전전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플릭스부스 홈페이지에서만 확인하면 되니까요. 게다가 국가별로 다른 업체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니까요.


단, 플릭스부스가 시장의 절대 강자가 되면서 요금은 슬금슬금 오르고 있습니다. 최저 1유로 같은 파격적인 요금은 자취를 감추었구요. 그래도 여전히 기차보다는 저렴하니까 장점은 있습니다. 플릭스부스 홈페이지 이용방법은 포스트에 따로 정리한 것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바로가기]

이 녹색 괴물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성장이 소비자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우선 가격이 많이 비싸지 않고 노선은 엄청나게 늘었을 때 우리 같은 여행자들은 알뜰하게 잘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