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베르디… 푸치니… ‘오페라의 고향’에서 거장의 숨결을 듣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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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 음악전문기자와 함께하는 이탈리아 북부 기행
‘이탈리아 여름음악축제 그란투어’
7월 13일∼21일 8박9일 일정
베로나 야외오페라 축제 등 관람 알프스의 자연과 세계적 관광명소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

푸치니가 ‘라보엠’ 등 중기 대표작을 쓴 토레델라고의 호숫가에 서있는 푸치니 동상.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푸치니가 ‘라보엠’ 등 중기 대표작을 쓴 토레델라고의 호숫가에 서있는 푸치니 동상.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낮 동안 달궈진 대지로부터 한껏 습기를 빨아들인 하늘은 결국 비를 뿌리고 말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로나의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 앞. 야외 오페라 ‘나부코’ 개막 예정 시간인 오후 8시 반을 단 몇 분 남겨놓은 시간이었다. 입장을 기다리던 줄도 순식간에 산산이 흩어졌다. ‘여기까지 와서 헛걸음을 하나….’

그러나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습처럼 다가온 소나기는 그만큼이나 깔끔하게 10여 분 만에 말끔히 물러갔다. 멀어져가는 먹구름을 뒤쫓아 청신한 저녁 공기와 이탈리아 들판의 상쾌한 풀냄새가 다가왔다. 공연은 한 시간 이상 늦어져 별이 총총히 보일 때가 되어서야 시작됐다. 베르디 ‘나부코’ 서곡의 장중한 화음이 귓가에 울렸다. 지난해 6월 19일, 베로나 야외 오페라 시즌 개막공연이었다.

기원후 1세기에 건립된 2만2000여 석의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은 서곡이 끝나자 그 모습 그대로 구약시대 바빌론 왕국으로 탈바꿈했다. 오페라 ‘나부코’는 구약성경 열왕기의 바빌론 네부카드네자르 왕을 소재로 한 역사드라마다. 왕권을 탈환하기 위한 왕족들의 음모와 배신, 사랑과 증오의 파노라마가 두 밀레니엄 전의 유적 위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베로나 야외 오페라축제 관람은 2005년에 이어 10년 만, 작품 수로는 세 번째였다. 그래도 이 공간의 생생한 음향은 늘 경탄을 자아낸다. 초고난도의 기교와 오랜 등장 시간 때문에 ‘소프라노의 피를 말리는’ 배역으로 알려진 아비가엘레 공주 역 마르티나 제라핀의 고음 포르티시모뿐 아니라 나부코 왕 역 루카 살시의 내뱉는듯한 작은 독백까지 귀에 쏙쏙 들려왔다. 2008년 이후 이 극장은 관현악 반주부에만 믹싱콘솔로 ‘약간’의 음향 보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 아무런 ‘전기음향’ 없이 관람한 ‘라보엠’과 ‘아이다’에서도 음향에 아무 불만이 없었다.

3막, 바빌론으로 끌려온 유대인들이 고향을 그리는 합창 ‘가라, 내 마음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의 친숙한 선율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익숙한 선율이다. 이미 자정을 넘은 시간. 나지막한 피아니시모로 마지막 화음이 마무리지어졌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브라비(Bravi).” 환호성이 1분, 그 이상… 그치지 않았다. 지휘자가 다시 지휘봉을 들었다. 저음현의 끙 하는 듯한 전주, 이 합창곡 부분 전체를 앙코르 연주하는 것이었다! 전주가 시작되었는데도 다시 커다란 환호와 갈채가 쏟아졌다.

베로나 야외 오페라축제는 1913년 테너 조반니 체나텔로가 베르디 ‘아이다’를 무대에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이 거대 공간의 음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 알음알음으로 알려진 데다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 배경으로 설정한 베로나에 영국 중산층의 교양여행 ‘그랜드 투어’ 참가자들이 몰려와 이들을 위한 공연물도 필요했다. 개막공연에는 당대 최고 오페라 작곡가인 푸치니와 마스카니도 자리를 함께했고, 이내 이 축제는 베로나의 명물이 되었다.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이탈리아 데뷔 무대도 이곳이었고,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마리오 델 모나코 등의 큰 별들이 이 무대를 장식했다.

푸치니 명작의 산실 옆에 호반 무대가

루카의 푸치니 생가 박물관 앞에 있는 푸치니 기념상.
루카의 푸치니 생가 박물관 앞에 있는 푸치니 기념상.

오페라는 고향과 탄생 시기가 뚜렷한 예술 장르다. 16세기 말, 르네상스 운동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북부 피렌체의 지식인 모임 ‘카메라타’에서 그리스 고전극을 부활시키자는 논의가 일어났고, 이에 따라 연극과 합창, 독창이 어우러진 ‘작품들(Opera)’이 탄생했다. 그 후 4세기가 넘도록 이탈리아는 이 장르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독일인 헨델과 오스트리아인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각광받기도 했지만 19세기에는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 푸치니, 베르디 같은 이탈리아의 별들이 잇따라 탄생해 ‘오페라 제국’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당연히 이탈리아 곳곳이 오페라 대가들의 자취와 음악사를 장식한 명문 오페라극장, 그리고 오페라의 줄거리가 된 실제 무대들로 가득하다.

베로나 오페라축제를 관람하기 사흘 앞서 토스카나 주 토레델라고의 ‘푸치니 빌라’를 찾았다. 푸치니는 작곡가로서의 명성이 높아져가던 26세 때 이곳에 집을 짓고 30년 동안 살면서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같은 중기의 인기작들을 완성했다. 바다에 가까운 석호(潟湖)와 어울린 풍경이 푸치니 특유의 화음과 같은 몽상적인 분위기를 선사한다. 푸치니가 살던 집은 오늘날 푸치니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호숫가에는 잘생긴 얼굴과 무심한 듯한 표정에 늘 우수를 머금고 있었던 푸치니의 동상이 오페라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푸치니 빌라에서 호수를 마주 보고 왼쪽을 바라보면 호숫가에 거대한 시설물이 보인다. 토레델라고 푸치니 페스티벌 극장이다. 푸치니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였던 마스카니의 주도로 푸치니 사후 6년이 지난 1930년 이곳에서 처음 ‘라보엠’ 공연이 열렸다.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공연은 2차대전이 끝난 뒤인 1949년부터 ‘푸치니 페스티벌’로 정착되었다. 호숫가에 무대와 3200석의 객석을 세웠다. 객석에서 정면을 응시하면 무대 너머로 아름다운 호수의 출렁임이 바라보인다. 아쉽게도 지난해 이곳을 찾았을 때는 시즌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호수의 저녁 바람과 함께 한 멋진 공연 분위기를 느끼지는 못했다.

명작의 무대와 대작곡가의 자취를 함께


베로나 원형 경기장을 가득 메운 청중이 베르디 ‘나부코’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베로나 원형 경기장을 가득 메운 청중이 베르디 ‘나부코’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이탈리아는 한반도처럼 반도국가다. 유난히 햇살이 찬란하고 특유의 풍광과 식문화가 있는 남부 지역을 살짝 포기한다면, 의외로 길지 않은 동선으로 오페라 거장들의 자취와 유명 극장, 축제를 찾는 여행을 계획할 수 있다.

푸치니 빌라가 있는 토레델라고에서 자동차로 불과 30분이면 푸치니의 고향인 루카에 도착한다. 중세시대에는 ‘루카 공국’으로 인근의 피사나 피렌체와 위상을 겨루었던 역사 깊은 고장이다. 도시를 둘러싼 육중한 성곽과 방어용 해자(垓字)의 자취가 방문자를 압도한다.

푸치니는 여기서 4대를 교회 성가대장 겸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한 명문 음악가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자라서 음악의 길을 이어받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청년기에는 말썽꾼이었다. 교회 파이프오르간의 파이프를 고물상에 팔아 담배를 사 피우기도 했다. 청년기의 온갖 별난 행동들은 그의 대표작 ‘라보엠’에도 투영되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한 골목들을 걷다보면 그동안 몰랐던 ‘장난꾸러기’ 소년 푸치니의 목소리가 들릴 듯하다.

여기서 차로 두 시간을 북상하면 푸치니의 위대한 선배 베르디가 태어난 작은 마을 론콜레와 그가 성장한 인근의 소읍 부세토에 닿는다. 소농(小農)의 아들이었던 베르디는 음악수업을 꿈꾸지 못할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후원자 바레치의 도움으로 계속해서 큰 꿈을 꿀 수 있었다. 그의 흉상이 있는 론콜레의 베르디 생가에도 늘 음악 순례객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두 대가를 비롯한 오페라 역사상의 명장이 큰 꿈을 본격적으로 펼쳐낸 무대는 아무래도 롬바르디아 주의 주도인 밀라노다. 1866년 이탈리아 통일 후 이 신생국가의 산업경제적 중심이 된 곳이다. 이 도시의 라 스칼라 극장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런던 로열 오페라 등을 넘어 세계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오페라의 전당이다. 1778년 세워졌으며 21세기 대대적인 개보수 이후 2004년 재개관했다. 세계 최고 기량이 증명된 가수와 지휘자, 연출가가 아니고서는 넘볼 수 없는 무대이기도 하다. 극장 전면의 아케이드인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는 당대 최고 오페라 흥행회사이자 출판사인 리코르디가 위치해 푸치니와 동시대 명장들이 늘 커피 한 잔 놓고 담소하던 오페라 역사의 현장이었다.

베네치아, 코모호수, 알프스까지 한 코스에

동아일보 문화사업본부는 2015년에 이어 올해에도 이탈리아 북부의 오페라 축제와 명승지, 작곡가들의 자취를 찾아가는 ‘이탈리아 여름음악축제 그란투어’를 마련했다. 7월 13일(수) 출발해 21일(목)까지 8박 9일의 일정으로 베로나 야외 오페라축제에서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베르디의 거작 ‘아이다’를 관람하고, 토레델라고 푸치니 페스티벌에서는 바로 그 일대에서 창작한 푸치니의 대표작 ‘라보엠’을 관람한다. 세계 오페라문화의 대표 공간인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는 차이콥스키의 명작발레 ‘백조의 호수’가 기다린다.

이탈리아 부호들의 휴양지로 스위스인들까지 햇살을 쫓아 찾아오는 명승지 코모 호수, 르네상스의 산실이자 오페라의 탄생지인 피렌체, 자타공인 세계 최고 여행지인 물의 도시 베네치아, 중세 도시 쟁투기의 치열한 역사를 간직한 시에나, 우뚝한 알프스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돌로미티 지역의 코르티나담페초에서도 역사와 멋이 함께 어우러진 시간을 갖는다. 푸치니의 고향 루카, 베르디의 고향 론콜레는 ‘당연히’ 찾아가는 성지 코스. tourdonga.com 02-361-1414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q매거진#오페라#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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