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terview] 원자력 안전 평생 바친 과학자 이재기 방사선안전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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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1.16. 오후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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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원전 100기에 둘러싸인 한국…방사선과의 `불편한 동거`는 숙명
딱한번 데모로 유치장신세…당시 인기없던 `안전업무` 맡아


이재기 방사선안전문화연구소장이 방사선을 둘러싼 오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소장은 방사선은 우리 주변의 흙과 비는 물론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미 판도라의 상자는 열린 겁니다. 그 상자에 남아 있는 희망을 사용할지, 그것마저 버릴지의 문제죠."

2018년 방사능 포비아(공포)가 다시 한국을 덮쳤다.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부르짖고, 세계적인 수준의 국내 원자력 산업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밥그릇 챙기기란 눈총을 받는 신세다. 최근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 '라돈'이 침대에서 발견되면서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문명의 새로운 장을 열었지만 방사선 피폭 위험으로 인해 '야누스의 얼굴'에 비유되는 원자력.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두 얼굴의 기술이지만 한쪽 면만 부각되는 세태를 누구보다 염려하는 사람이 있다. 평생을 방사선 안전 연구에 몰두해 온 학자인 이재기 대한방사선의학회 방사선안전문화연구소장(68·한양대 원자력공학과 명예교수)이다. 방사선에 덧씌워진 각종 오해를 바로잡고 싶다는 그에게서 방사선 관련 상식의 어디까지가 '팩트'고, 어디까지가 '괴담'인지 들어봤다.

―방사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이 오해하는 이유가 우리가 평소에도 방사선을 꽤 받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고가 터져 방사선에 피폭된다고 하면 화들짝 놀란다. 주로 오해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생긴다. 방사선은 지금 이 시간에도 날아오고 있고, 보통 방 안에는 방사선이 1㎥ 공간에 20~30㏃(베크렐) 정도 있다. 이에 반해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한국에 추가로 날아온 건 ㎥당 0.001~0.01㏃이었다.

―방사선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 같다.

▷대중의 부정확한 인식이 걱정스러운 건 작은 오해가 모여 한 국가를 위기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나라 망한다"고 말하며 다닌 일본인도 있었다. 위험 관점에서 큰 문제가 아닌데 이런 식으로 괴담이 확산되면 사회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이런 게 다 오해 때문이다.

―위험 관점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는데, 오염된 건 사실 아닌가.

▷물론 오염된다. 실제 후쿠시마 사고 직후 인근 8개 해역에서 잡힌 생선은 수입을 통제했고, 2011년 일본산 수산물에서 방사능이 실제 검출된 사례도 있었다. 냉동대구였는데 1㎏당 100㏃ 남짓인가 검출됐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건 우리가 오늘 아침에 먹은 음식에도 방사능이 있다는 거다. 콩에는 1㎏당 500㏃ 정도가 들어 있고, 시금치도 200㏃ 정도로 많다. 평균적으로 칼륨 방사능이 100㏃ 안팎이라고 보면 된다.

―검출량이 일상적인 수준이었다는 건가.

▷그렇다. 사고로 오염이 된 건 맞지만 실제 검출된 방사선량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정도였다. 그 이후에도 검출돼 봤자 ㎏당 10~30㏃ 수준이었다. 그러나 국민은 일본산뿐만 아니라 국산 수산물까지도 안 먹을 정도로 불안에 떨었고, 정부도 일본산 수입을 지나칠 정도로 억제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정도 문제는 아니다.

―북태평양에서 잡힌 고등어, 명태, 대구 300년간 먹지 말라는 경고도 있었다.

▷다 공포를 조장하는 괴담이다. 한국 인접 바다가 오염됐다는 염려도 있었는데, 태평양 해류가 후쿠시마에서 동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아메리카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면 거의 3년 정도 걸린다. 그동안 충분히 희석됐고 이후 우리나라로 돌아왔을 텐데 증거도 전혀 안 나타났다. 아직도 주변에서 일본산 수산물 안 먹고, 도쿄 여행 가는데 안전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걱정할 필요 없다.

―대중이 과민 반응한다는 건가.

▷솔직히 과민 반응이다. 2011년 서울 노원구 월계동 도로 오염 사건도 그렇다. 이때도 도로 아스팔트가 세슘에 오염됐던 건 분명하다. 그러나 맨 위 표면층이 오염됐고, 그 부분만 긁어내면 충분한 일이었다. 그런데 주민들이 불안에 떨다 보니 하룻밤 사이에 아스팔트를 흙바닥까지 다 파버렸다. 아마 그때 폐기물 처리비용만 수백억 원에 육박했을 거다.

― 동아시아 지역에 특히 원전이 몰려 있다는데.

▷지금 문재인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하지만 만약 성공한다 해도 몇십 년 동안은 원전을 가동해야 한다. 일본도 조금씩 원전을 다시 돌리기 시작하지 않나. 중국은 이미 38기가 돌아가고 있다. 현재 건설 중인 게 20기고, 2030년까지 100기를 짓는 게 목표다. 이런 발전소가 우리나라와 불과 800~1000㎞ 정도 떨어진 중국 동해안에 몰려 있다. 우리나라와 후쿠시마 사이 거리인 1100㎞와 비슷한 수준이다.

―중국 원전에 문제가 생겼을 때의 위험은.

▷국민보건이 위협받을 정도는 아니다. 1000㎞ 날아오다 보면 희석되고 중간에 많이 가라앉는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 1000㎞ 정도 떨어진 스웨덴이나 서부 독일로 날아온 방사선량이 0.2m㏜(밀리시버트)였다. 우리나라의 연간 자연방사선 피폭량이 4m㏜라는 걸 감안하면 의미 있는 수치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국민 인식 구조라면 온 나라가 공포로 난리통이 될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생수 사재기가 일어났지 않나. 일본에서 자연방사선의 1만분의 1 수준이 날아왔는데도 그런 반응이었는데 중국이나 한국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사회 혼란이 심각할 것이다.

―어떤 혼란을 예상하는가.

▷식품은 동나고, 외국 바이어들도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안 살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타격을 입을 텐데, 상당 부분 오해나 과대 평가에서 비롯된 것이라 걱정이다.

―그래서 정부가 탈원전을 하자는 것 아닌가.

▷그런데 어차피 우리만 포기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중국을 포기시킬 수 없고, 일본을 포기시킬 수 없다. 지금 동아시아는 미국 동부, 서유럽과 함께 원전 3대 밀집 지역이다. 우리가 이 밀집 지역 안에 사는 건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다. 탈원전을 두고 '판도라의 상자'를 치운다고들 하던데,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린 거다. 동아시아에 이미 원전 100기가 있다. 우리나라만 원전 없앤다고? 그렇게 치우면 내가 보기엔 상자에 남아 있는 희망마저 버리는 것이다.

―오해를 해소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방사선에 대한 대국민 인식 개선을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해야 한다. 정부에서 금연 정책은 엄청 몰아붙이는데, 그 정도로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 알다시피 일반인들이 받는 방사선 대부분은 X선, CT 등 의료 방사선인데,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나중에는 의료 방사선도 없애자 할지 모르겠다. 지금도 CT 안 찍겠다는 환자들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만 유독 걱정이 많나.

▷다른 나라도 일반인들이 방사선을 꺼리기는 한데, 우리나라가 두드러진 부분도 있다. 경주 폐기물 처리장 반대시위, 안면도 핵폐기물 반대시위 등 엄청난 소요가 일어났었는데 외국에서 주민들이 그렇게 집단 대응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국민성보다도 사회적으로 불신이 크다는 게 문제다. 정부나 대기업에 대한 불신이 극복이 잘 안 되다 보니까.

―전문가에 대한 불신도 크다.

▷그렇다.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다. 그동안 사업자는 문제를 은폐하는 일이 많았고, 학계도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으려 방관했기 때문에 신뢰를 떨어뜨린 것이다.

―라돈 침대, 라돈 생리대 사건은 어떻게 보는가.

▷라돈 생리대는 소량이라 문제 안 되는데, 라돈 침대는 사이즈가 컸다. 자기 집에서 자면서 1년에 5m㏜의 라돈에 노출됐다는 건 정말 높은 수치다.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연방사선을 1년에 4m㏜, 의료방사선을 1.5m㏜ 정도 받는다. 평균적인 피폭량은 연간 약 4~5m㏜다. 이를 감안하면 연간 평균적으로 받는 수치를 수년간 더 받은 거다. 강원도 평창 같은 데 가면 주택들의 실내 라돈 농도가 높아서 라돈 관심 지역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지역 주택들의 라돈 선량과도 비슷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별일 아닌 것 같은데, 그 지역에 있는 건 자연에서 나오는 거고 침대에 있는 건 인위적으로 상품을 팔아먹으려고 (방사성 물질을) 넣은 거니 관리 측면에서 엄연히 다르다.

―라돈 침대는 과민 반응이 아니라는 건가.

▷충격적일 정도로 많은 편이었다. 나도 사실 대진침대를 썼다. 2007년에 산 '그린헬스1' 모델이었는데, 딸을 시집보내면서 혼수로 장만했다. 두 개 사서 하나는 딸 집에 두고, 하나는 우리가 썼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처음에는 업체가 모나자이트(방사성 광물) 원료를 2010년부터 넣었기 때문에 2007년 모델은 해당이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해서 라돈아이로 측정해보니 선량이 높게 나오더라.

이재기 방사선안전문화연구소장이 토양이나 암석 등 환경에서 얻은 시료에서 방사선량을 측정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선의 위치는 방사선의 핵종을, 선의 높이는 방사능을 나타낸다. [한주형 기자]
―원안위가 처음에는 위험하지 않다고 했는데.

▷처음에 측정한 값은 선량이 작게 나왔다. 표본 선택의 문제였다. 여러 가지를 측정해보고 발표했어야 되는데 한두 개 해보고 언론에서 잰 것보다 낮게 나오니까 마치 보도가 잘못된 것처럼 발표해버렸다. 나중에 다른 모델까지 넓히고 이러다 보니까 수치가 예상보다 높게 나와서 모두 놀랐다.

―라돈 관리상 구멍이 있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결국 음이온 사건인 건데. 모나자이트에서 나오는 토륨은 반감기가 56초라 보통 땅속에 있으면 스며 나오기 전에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당국도 라돈을 관리할 때 토륨에서 나오는 방사선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음이온 제품 안에 들어가면서 안방에서 나오니까 문제가 된 거다.

―징조는 없었나.

▷7년 전쯤 있긴 했다. 온열매트 사건이라고. 그 제품도 홍보를 음이온으로 했다. 온열매트는 그래도 세라믹처럼 압착을 해서 라돈이 덜 빠져나왔는데 대진침대는 천에다가 가루를 바르듯 코팅한 것이라 자유롭게 빠져나왔다.

―라돈아이가 라돈 수치를 과대평가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라돈은 Rn―222고 토륨은 Rn―220으로 같은 라돈이지만 핵종이 다른데 라돈아이는 이 둘을 서로 구분하지 못한다. 섞어서 측정하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둘 다 라돈인 건 사실이다. 수치가 높게 나오면 라돈이 높다는 것만은 분명하니까. 이 장비 덕분에 대진침대 사건도 비교적 조기에 발견하고 공론화시킬 수 있었으니 공도 분명히 있다. 이 사건이 터지면서 업체에서 라돈 위험을 부풀려서 라돈아이를 많이 팔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어쨌든 문제를 조금이라도 빨리 발견해 해결하도록 한 건 사실이니 표창을 줘야지.

―의료 방사선은 꼭 필요한가.

▷CT 같은 의료 방사선은 한 번에 원전 종사자가 받는 선량 몇 년치나 된다. 그러나 의사가 필요하다고 권할 때는 선량이 높든 낮든 꼭 필요한 것이다. CT를 안 찍어서 질병을 발견하지 못할 때의 위험보다는 CT를 찍는 게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 선생님들이 환자에게 고선량의 CT 촬영이 필요한지 한 번 더 생각하고 하는 게 필요하겠지만, 일단 환자는 의학적 지시에 따라야 한다. 과거에는 CT를 한 번 찍으면 병원 수입이 올라가 남용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지금은 의료보험이 커버를 해준다.

―어쩌다가 방사선 안전 연구의 길에 들어섰나.

▷스토리가 있다. 1975년 서울 원자력연구소(현 원자력연구원)에 처음 취업했을 때는 나도 원자로 자체를 연구하는 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내 신원조회가 문제 됐다. 대학교 2학년 때 박정희 대통령 삼선개헌 반대 데모에 한 번 참여했다가 청량리경찰서에 하루 잡혀 있다가 나온 적이 있다. 그 일 때문에 내 신원조회에는 '1969년 서울대 공과대학 재학 당시 정부 시책에 반기를 들고 반정부 시위를 벌인 주동자로서 비밀 취급이 불가함'이라고 기재돼 있었다. 연구소에 취업해 한두 달이 지났는데 실장이 불러서 가봤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대학 다닐 때 데모했어요?" 묻는 거다. 민감한 부서 근무는 안 된다고 해서 전문실에서 밀려났고, 그나마 덜 민감한 영역이 어디인가 쭉 보더니 방사선안전관리실이라는 곳에 가라고 하더라. 화가 나서 사표를 쓰려고 했는데 당시 실장이 방사선 안전 분야는 아직 초창기라 할 일이 많을 것이라며 말렸다.

―결국 전문가가 됐다.

▷실제로 하다 보니 점점 재미가 붙어서 주저앉게 됐다. 결과적으로 잘된 거지. 새옹지마다. 비인기 분야니까 쉽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위원도 맡게 되고 인생살이가 다 그렇더라.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 위원에 한국인 최초로 선임됐다.

▷12년을 위원으로 있었다. 방사선 안전과 관련해서는 ICRP의 권고가 전 세계 바이블처럼 인용이 되는데 항상 건너편에서 구경만 하다가 '이너 서클'에 들어가니 개인적으로도 많이 도움이 됐고, 외국 제도가 돌아가는 추이라든가 소식도 국내에 빨리 전파할 수 있었다.

―지금은 국내 인력풀이 많은 편인가.

▷과거에 비하면 많이 늘었다.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인력 550명 정도 되는 조직인데 그중에 한 200명 가까이는 된다. 25년 전에는 우리 실이랑 옆 실을 포함해 30명 정도밖에 없었다.

―방사선을 관리한다 해도 가급적 아예 안 받는 게 가장 좋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0'일 수는 없지 않나. 자동차를 끌면 차가 내뿜는 매연 때문에 불특정 개인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동차를 몰지 말고 없애야 하느냐, 그건 아니다.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어느 수준까지는 위험을 감수하는 그런 공통된 기준을 필요로 한다. 원자력도 그것이 갖는 가치에 비해 위험이 충분히 낮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 있다는 선을 갖고 규제해야 한다. 가령 원전 인근 주민들이 받는 피폭량은 '이해동의가 없는 피폭'이니 연간 0.25mSv가 넘어가지 못하도록 규제하는데, 원전 종사자는 1년에 20mSv까지 허용한다. 왜 그런가. 원전 종사자는 '이해동의가 있는 피폭'이니 더 높은 선량을 감수하는 것이다.

―관리 기준이 다른 건가.

▷그렇다. 일반 사람들은 이렇게 '동의' 여부에 따라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모른다. 동의가 없었다면 당연히 거절할 권리가 있고, 더 타이트한 규제를 받아야지. 한수원이 발전소를 지어서 우리 동네에 주는 방사선, 주택에서 나오는 방사선, 땅에서 나오는 방사선 다 다르고 원인에 따라 관리정책을 차등화한다.

―주택에서 피폭되는 것도 문제 아닌가.

▷자기 집에서 10~20mSv까지도 받는 사람이 있는데 이걸 언제까지 모른 척할 건가. 이건 안 되는 거다. 관리 주체인 환경부가 그동안 전국 주택들을 많이 조사했지만 공식적으로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라돈 관심 지역으로 발표했다가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못하게 난리가 나니까. 원전 종사자도 실제로는 0.7~2.3mSV 정도밖에 안 받는데 침대에서 5~8mSv가 나오고, 집에서 10~20mSv가 나오고 하는 건 우려스럽다.

―건축자재 문제인가.

▷주된 원인은 건물 지반이지만 우라늄 함량이 높은 건축재는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 사실 2011년 생활방사선 안전관련법을 처음 입안할 때 라돈 챕터가 있었는데 통째로 날아갔다. 주택 라돈은 환경부 소관이라고 원안위 소관 법률에서 빠진 거다. 라돈 침대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때 법률에 넣어 적극 관리했다면 조기에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 라돈을 관리하는 법이 없는 건가.

▷그렇다. 외국에는 방사선 관리를 위한 방사선방호법이 있는데, 우리는 법이 따로 없고 원자력안전법 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마저도 '원자력 이용 과정에서 수반되는 방사선으로부터 사람의 생명과 자산을 지킨다'고 돼 있어 침대에서 나오는 라돈이라든지 땅, 주택에서 나오는 우주방사선 같은 건 '원자력 이용 과정'에 해당되지 않아 법망에서 빠져 있다. 그러니 손 놓고 있다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고 시민들이 직접 방사선 측정기 사서 돌아다니면서 월계동 도로니 마트 벽지에서 오염을 발견한 거다.

―그럼 어떤 식의 규제 개선이 필요한가.

▷지금은 간호사가 같은 병원 안 영상진단 부서에서 핵의학 병동으로만 넘어가도 관리부처가 달라진다. 병원 X선을 찍는 의료 종사자들 피폭은 질병관리본부에서 관리하고, 원자력 작업 종사자들 피폭은 원안위 산하 원자력안전재단에서 관리하고, 항공 승무원 피폭은 국토교통부, 수산물이나 농산물 오염은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에서 관리한다. 말도 안 되는데, 모두가 모순인 줄 알면서도 개선이 안 된다. 국회가 이런 현실을 직시해서 방사선방호법을 만들어야 한다. 기본적인 컨트롤타워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렇게 인식 개선에 힘쓰는 이유가 있나.

▷원자력에 반대하는 분들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데 왜 원자력 존속을 주장하는 분들은 안주하는지 안타까울 때가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어떤 게 위험하다는 주장과 안전하다는 주장이 충돌할 때 안전하다는 이야기는 귀에 잘 안 들어간다. 위험하다는 말만 들리지. 기울어진 운동장이기에 위험을 경고하는 쪽에서 1만큼 노력하면, 안심시키는 쪽에서는 10만큼 노력해도 될까 말까다. 그런데 1도 안 하면 되겠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많이들 규제기관을 불신하는데 그 배경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요새는 많이 공정해졌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신뢰하고 협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령 원안위에서 아무리 안전하다고 외쳐도 언론이나 개인, 환경단체가 위험하다고 하면 그쪽으로 여론이 쏠리는데, 결국 피해는 국민 몫이다. 실제 피해보다 사회적 파급으로 만들어진 피해가 더 클 수 있다. 지금 인식 수준으로는 원전 사고라도 나면 사회가 엉망진창이 되고 대책본부가 통제력을 상실할 것이다. 위기일수록 당국 가이드를 믿고 따라줄 필요도 있다.

▶▶ 이재기 교수는

1950년 경남 산청군 생비량면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1972년 서울대 원자력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부터 1993년까지 한국원자력연구소 선임연구원, 책임연구원, 방사선관리실장 등을 역임했고 1993년부터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주 연구 분야는 방사선 방호, 보건물리, 방사선 계측 및 방사선 차폐 부문이다. 2005년 우리나라 최초로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위원으로 선임되는 등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이 분야 최고 전문가다. 2016년부터는 방사선안전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아 방사선 안전과 관련된 대중 교육에 힘쓰고 있다.

[김윤진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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