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레저]‘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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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께 제사 올리던 신성한 땅..몽골항쟁때는 39년 고려의 왕도..저멀리 북녘땅이 손에 잡힐듯 가까이…
강화도는 몽골의 침입이 있었던 1232년부터 39년간 고려의 도읍지 역할을 했다. 고려 궁궐터인 강화도 '고려궁지'에 붉은 단풍이 외로이 서 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고려궁지 사진=조용철 기자
【 강화(인천)=조용철 기자】 인천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통해 '평화관광'이 가능한 지역이다. 특히 강화도와 교동도는 손에 잡힐 듯 북한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탁 트인 바다 너머 북녘을 바라보고 남과 북이 하나되는 화해의 시대를 느낄 수 있다. 분단되기 전 강화도는 북한과 교류가 활발하던 곳이었다. 예성강을 통해 교역선이 오갔고 동네사람들은 나룻배를 이용해 남북을 자유로이 오갔다. 지금도 강화에는 남과 북이 교류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고려 건국 1100년, 남북 화해의 시대 맞아

올해는 고려 건국 1100년을 맞는 해다. 고려 고종 19년(1232년)에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왕도를 개경에서 강화로 옮겼다. 이때 옮겨진 도읍터가 고려궁지로 원종 11년 환도할 때까지 39년간 사용됐다. 13세기 몽골과의 전쟁기간 동안 39년간 강화에 있던 고려의 도읍을 강도(江都)라고 불렀다. 강화는 몽골과의 전쟁을 피해 잠시 머문 피난처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개경을 모델로 건설된 고려의 정식 도읍이었다. 하지만 강화는 아직도 고려의 도읍지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도읍이 자리한 기간이 짧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고려의 수도라는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유적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화는 남한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려 왕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맞서 항전했던 40여년의 세월이 궁궐터에 스며 있다. 고려궁지는 규모는 비록 작지만 송도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어졌고 궁궐 뒷산 이름도 송악이라고 불렀다.

고려궁지는 개경을 그대로 본떠 지었다. 다만 현재의 고려궁지엔 고려시대 건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다른 곳처럼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6·25전쟁을 거치면서 파괴돼 사라진 것이 아니다. 고려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몽골이 강화의 궁궐을 파괴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조선 동헌 건물과 외규장각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외규장각이 들어앉은 언덕에 오르면 저 멀리 산그림자부터 읍성까지 전반적인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화평화전망대 사진=조용철 기자
고려궁지 외규장각 사진=조용철 기자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그곳, 강화 평화전망대

강화도와 교동도는 분단이 되기 전 북한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곳이다. 개성인삼이 강화도에 와서 강화인삼이 됐고, 개성의 방직 기술자들이 강화에 방직공장을 세우는 등 강화도에는 아직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990년대 현대식 섬유공장이 생기면서 잊혀져왔던 강화의 방직산업은 '2018 올해의 관광도시 강화'의 해를 맞아 화려한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강화군에서 운영하는 강화 소창체험관을 코스로 한 상품이 속속 생겨나고 우리나라 최초의 방직공장인 조양방직을 개조한 카페도 지난 7월 문을 열었다.

강화도에서 교동도로 넘어갈 때 민간인 통제구역을 알리는 검문소에서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강화도와 연결된 교동대교를 건너 조금 달리면 교동 제비집이 나온다. 교동도에는 제비가 많다. 여기서 모티브를 얻어 '교동제비집'이 지어졌다. 아담한 2층 규모의 관광안내소지만 최첨단 기술이 도입됐다. 여행객이 주인공이 되어 직접 교동신문을 만들고, 교동에서 연백까지 가상의 평화다리를 만드는 데 참여할 수도 있다. 2층은 카페테리아와 전시공간이다.

대룡시장 사진=조용철 기자
교동제비집 사진=조용철 기자

교동도는 주민 대부분이 황해도 연백군에서 전쟁을 피해 정착한 실향민들이다. 이들이 곧 통일될 것으로 믿고 고향 사람들과 연백시장을 재현해 생계를 꾸리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대룡시장이 됐다. 대표 관광지로는 1960~70년대 풍경을 배경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룡시장과 실향의 아픔을 바다 너머로 그리는 망향대를 꼽을 수 있다. 대룡시장에서는 연백에서 온 이발사가 운영하는 이발관과 오래된 약방, 흑백사진관, 다방과 함께 곳곳에 재미난 포스터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올해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 날, 교동도 사람들은 북녘을 바라보며 고향인 연백군을 발로 밟는 날을 꿈꿨다고 한다. 아담한 교동스튜디오에 들어서면 수십벌의 교복과 교련복이 나란히 걸려 있다. 댕기머리 하고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시간은 30~40년 전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룡시장을 뒤로한 채 찾아간 강화평화전망대. 강화평화전망대에선 육안으로 북한을 볼 수 있다. 바로 앞에 황해도 개풍군 유정동과 탄동 마을이 보이고 빼어난 산세로 '경기 5악'이라고 불리는 송악산이 아스라이 보인다. 강화평화전망대는 2008년 평화통일을 기원하고 고향을 두고온 실향민들의 위해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조성됐다. 3층 실내전망대에서는 북한 주민들이 농사 짓는 모습과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일 만큼 2.3㎞ 거리에 위치한 북한의 모습을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전망대에 서면 북한 개풍군 해창리와 삼달리가 한눈에 펼쳐져 있다.

yccho@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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