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수주의란 무엇인가
2001년 조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된 후, 자주 접하게 된 시사용어 중 하나가 바로 네오콘Neocon이다. 이 단어는 신보수주의를 주창하는 미국의 정치인과 학자들을 가리키지만, 단순한 정치적, 외교적 개념은 아니다. 이는 미국의 패권주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문화 제국주의 등 일련의 전지구적 현상을 가로지르는 중심축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행동을 통제하는 이데올로기다.
1980년 공화당 출신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고 냉전 체제가 점점 해체되어가면서, 미국의 보수 세력은 지구에서 유일한 ‘슈퍼 파워’로서의 미국을 지향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세력화하기 시작한 신보수주의는 한편으로는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시장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세계화를 적극 추진하면서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내 체제 유지를 위해 ‘바른생활 USA’ 건설에 나선다. 즉 전통적 도덕과 책임 그리고 의무를 우선하는 중산층 와스프WASP의 윤리적 틀에 맞춰진 기존의 위계질서와 성역할 분담 등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렇게 개인의 책임이 강조되는 분위기에서는 빈곤이나 인종차별 등 사회구조적 모순과 불평등이 사회 문제가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된다. 이 과정에서 대중문화는 사고, 취향, 정서 등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정치적 영역으로 변모해, 사회의 변화를 이끌기도 하고 변화와 맞물리기도 하며 변화에 저항하기도 했다.
대중문화, 신보수주의의 첨병으로
미국은 자유와 평화와 평등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을 지배하는 실질적 이념은 애국심을 강조하는 국가주의와 근본주의 성향에 가까운 기독교주의이고 그 주체는 바로 와스프다. 특히 공화당이 미국의 정치 경제를 장악한 1980년대의 상황에서 문화 예술 분야는 진보 세력이 그나마 기득권 세력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역 중 하나였다. 그중 대중문화는 대학생, 흑인, 지식인, 청소년, 젊은이, 소수 집단, 피지배 집단 등에게 광범위한 호응을 얻으며 일상의 최전선에서 투쟁을 벌여나갔다.
이 책은 대중문화를 통한 진보 세력의 영향력에 대한 신보수주의의 대응 방식을 보여준다. 환상에 불과한 아메리칸 드림을 현실로 포장하는 스포츠인의 성공스토리, 미국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한편 전통적이고 보수적 삶을 이상적 형태로 고정시키는 할리우드 영화, 고유한 스타일을 잃어버린 채 상업화되는 대중음악, 가족의 가치를 전파하는 텔레비전, 시장의 논리에 재편되어가는 미술……. 기존의 체제에 저항하는 문화마저 시장의 상품으로 만들어 본래의 의미를 탈색하는 신보수주의의 전략은 시장을 통한 ‘관리’와 함께 정부나 기업의 재정 지원을 문화 예술계에 대한 회유의 미끼 또는 무기로 사용하기도 한다. 즉 노골적인 공격과 언론을 통한 선전뿐 아니라 회유와 협박 등을 병행하며 그들이 이상적이라 여기는 미국을 만들어가려 하는 것이다.
문화 생태계가 와해되고 있다
신보수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젖줄이 되어 세계화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어냈다. 이 구조물은 곧 미국의 패권주의로 탈바꿈해 전지구적 영향력을 확보하기에 이르렀고, 사실상 ‘미국화’의 거대한 물결은 지구 구석구석에 존재하던 다양한 문화를 일방적으로 통합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패권주의는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국가의 산업 생태계에 재앙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문화적 역량의 쇠퇴를 동반할 것이다. 2006년 1월, 간신히 그렇지만 꿋꿋하게 버텨오던 한국 문화의 보루 스크린쿼터제가 급기야 한국 정부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 그 예다.
그러나 문화 생태계가 와해되면 문화 다양성도 파괴될 것이다. 미국의 제조업과 농업, 오락 산업과 방송 자본, 그리고 할리우드의 이익을 위해 자국의 문화 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한국 정부의 행위를 지켜보며 당혹스러움과 함께 다시 미국을 보게 된다.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 침략, 문화 통합 현상의 중심에 미국의 자본이 있다. 그리고 그 일방주의의 사상적 기반인 신보수주의는 분명 우리가 이해해야 하고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