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푸’는 나를 깨웠고…페미니즘·퀴어 흐름은 거셌다 [키워드로 보는 2018 문화계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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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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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 - 책시장 이끈 ‘곰돌이 푸’와 ‘떡볶이’

베스트셀러들 공통 메시지는

“타인보다 나를 먼저 챙기자”

‘떡볶이’ 새 유통방식 주목도


책을 열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장면 장면이 컬러로 펼쳐진다. 텍스트는 한 페이지당 몇 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볼록 튀어나온 배가 트레이드마크인 ‘곰돌이 푸’가 건네는 말 한마디와 그에 관한 짧은 해설이 전부다. 푸와 친구들 모습은 어릴 적 추억을 한껏 자극하지만, 과연 ‘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고개를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책과 캐릭터 상품의 경계에 놓인 듯한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알에이치코리아)는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곰돌이 푸>는 최근 교보문고, 예스24 등 주요 서점들 2018년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저자명에 ‘곰돌이 푸 원작’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이 책은 지난 3월 출간 후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귀여운 캐릭터를 앞세운 책의 특성상 주로 2030세대 여성이 책을 구매했지만, 의외로 남성에게도 사랑받았다.

교보문고는 “50대, 60대 남성을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베스트 10위권에 올라 캐릭터 도서의 한계를 딛고 모든 고객층의 사랑을 받았다”며 ‘전 세대 공감 도서’로 꼽았다.

<곰돌이 푸>의 성공에는 ‘나’를 중시하고 ‘위로’를 갈구하는 대중의 욕구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남을 위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세요’ 편에서 곰돌이 푸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회를 위해 힘을 보태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라고 말한다. 타인이나 사회를 신경 쓰기 전에 먼저 ‘나’를 챙기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올해 소비시장은 물론 사회 전반 트렌드로 굳어진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정서도 짙게 깔려 있다. 책은 곰돌이 푸의 입을 빌려 “작은 행복이 쌓여 큰 행복이 돼요”라고 말한다.

이 책을 기획한 출판사는 곧바로 후속작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를 내놓았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미키 마우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들도 선보였다. 다른 출판사들도 디즈니 만화 캐릭터나 둘리 등 추억 속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책들을 출간했거나 기획 중이다.

‘나’에 대한 강조는 올해 베스트셀러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메시지다. 지난 6월 출간된 <죽고 싶어도 떡볶이는 먹고 싶어>(흔)는 기분부전장애를 앓는 20대 여성이 정신과 전문의와 나눈 12주간의 대화를 엮었다. 이 책은 가장 오랜 기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독립출판물로 나왔다가, 반응이 좋자 1인 출판사에서 정식 출간되는 등 기존과 다른 유통 방식으로도 주목을 끌었다. <떡볶이>의 핵심은 “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의심 없이 편안하게, 그뿐이다”로 요약할 수 있다. ‘나’를 우선하는 흐름은 잘 팔린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가나출판),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마음의숲)에서도 나타났다.

■ 문학 - 소설 소재로 뜬 ‘페미니즘’과 ‘퀴어’

사회 약자·소수 공개적 발화

고은 등 ‘미투 논란’ 휩싸이고

문학계 큰 별들 우리곁 떠나


조남주(왼쪽), 김봉곤


올해 한국 문학의 커다란 흐름은 ‘페미니즘’과 ‘퀴어’로 집약된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문화예술계 성폭력 폭로, 올 초 미투 운동으로 이어진 흐름 속에서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이 공개적으로 발화하기 시작했다. 올해 한국 소설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2016년 발표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2009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 9년 만에 100만부를 돌파하며 ‘페미니즘 열풍’을 견인했다.

조남주는 올해 상반기 사회 각계각층의 여성 이야기를 다룬 <그녀의 이름을>을 내놓았고, 구병모의 <네 이웃의 식탁>, 박민정의 <미스 플라이트>, 정세랑의 <옥상에서 만나요> 등이 여성서사를 앞세우며 평단과 독자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페미니즘 리부트’의 열풍과 함께 어느 때보다 다양한 ‘퀴어 소설’이 등장했다. 그동안 기성 작가들이 타자를 이해하기 위한 윤리적 태도나 기존 사회의 폭력에 저항하는 방편으로 퀴어서사를 선보였다면, 올해엔 퀴어 당사자가 자기 서사로서 생생한 목소리를 드러냈다.

지난 7월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를 펴낸 김봉곤은 최초의 ‘커밍아웃한 게이 소설가’로 화려하게 등장했으며, 이어 박상영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로 퀴어 당사자성에 기반한 소설을 선보였다.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 기준영의 <우리가 통과한 밤> 역시 여성들 간의 사랑을 그려냈다.

페미니즘과 퀴어 문학의 증가로 이를 분석하는 평론도 활발해졌다.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은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근대문학의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한국 현대문학사의 주요한 장면들을 다시 쓰는 작업을 했다. 또한 문학평론가 김건형은 한국 문학의 퀴어서사를 분석한 ‘2018, 퀴어전사’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미투 운동’에서 문학계도 자유롭지 않았다. 원로 시인 고은의 성추행 의혹이 제기됐다. 최영미 시인이 지난해 겨울 발표한 시 ‘괴물’이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고은 시인 성추행 의혹이 터져나왔다. 고은 시인은 최영미 시인과 언론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밖에 소설가 하일지도 성추행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다.

올 한 해는 한국 문학의 큰 별들이 많이 졌다. <광장>으로 분단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던 소설가 최인훈이 지난 7월 별세했고, 평론집 <밤이 선생이다> 등으로 대중적 사랑을 받은 황현산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도 8월 세상을 떠났다. 10월엔 허수경 시인이 먼 독일에서 세상과 이별했고, 같은 달 25일 원로 문학평론가 김윤식도 우리 곁을 떠났다.

■ 문화유산 - ‘남북한 공동~’의 화두 부활

씨름 공동 등재로 ‘작은 통일’

비격진천뢰·가야 별자리 덮개

흥미로운 발굴과 연구 쏟아져


“축하합니다.” 11월26일 모리셔스 정부 간 위원회에서 씨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남북 공동등재가 확정되자 독일의 스테판 크라비엘리키 주유네스코 대표부 대사가 한국 대표단을 찾아와 한국어로 축하메시지를 전했다. 독일 통일의 경험을 갖고 있는 크라비엘리키는 “이런 노력과 움직임이 통일의 초석을 쌓는 것”이라는 덕담을 해주었다. 씨름의 남북 공동등재는 ‘문화유산에 군사분계선이 있을 수 없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씨름 남북 공동등재가 웅변하듯 2018년 문화유산계의 핫뉴스는 역시 ‘남북한 공동~’이라는 수식어의 부활이라 할 수 있다. 남북한 문화교류는 2016년 벽두부터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남한의 개성공단 무기한 중단 등으로 완전히 맥이 끊겼다. 그러나 올해 4월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 문화교류의 통로를 이어주는 상징사업인 개성 만월대 공동조사가 2년9개월여 만인 10월22일부터 50일간 재개됐다. 박성진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사는 “남측 조사원 20여명이 개성공단에 머물면서 북측 작업자 60여명과 공동조사를 벌였다”고 전했다. 박 학예사는 “이미 지난 10년간 남북한 현장 고고·역사학자들 간에는 두터운 신뢰가 쌓여 있다”면서 “지속 가능한 만월대 공동조사와 관련해 남북한 사이에서 이의는 없다”고 했다.

흥미로운 발굴 및 연구 결과도 쏟아져 나왔다. 지난 4월 전북 익산 쌍릉의 대왕릉에서 확인한 인골 분석 결과 ‘50~70대 남성 노년층, 연대 서기 7세기 중반’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이로써 대왕릉의 피장자가 서동설화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북 무장현 관아에서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공포에 빠뜨린 비격진천뢰가 11발이나 출토됐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가야문화권 조사·정비·복원 사업도 전국 각지에서 펼쳐졌다. 그중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릉(말이산 13호분)의 무덤방에서 생명을 뜻하는 남두육성 등을 그린 별자리 덮개돌이 나왔다. 봄철 남쪽 하늘을 바라본 가야인의 천문의식을 짐작할 수 있는 발굴 성과였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한 ‘대고려전-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 또한 주목거리였다.

김유진·이영경·이기환 선임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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