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보여준 징벌 서사의 정당화

위근우 | 칼럼니스트

‘미숙한 장사꾼’ 돕는 컨설팅보다 군기잡기에 더 가까워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하 <골목식당>)의 장르는 징벌이다. 최근 ‘포방터 시장 편’ 홍탁집 모자 에피소드에서 백종원은 주방 일을 어머니에게 떠맡기고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 아들을 혼내는 데 주력했다. 평소 주방 일을 어느 정도 돕는다지만 실제로는 냉장고 어디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도 모르는 그에 대해 백종원은 “가식으로 똘똘 뭉쳤다” “더 망신당해야 한다”고 거침없이 쏘아붙였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며 과거 중국에서 했다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까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백종원의 말대로 그 식당의 문제는 음식보다는 사장의 나태함과 무관심이며, 계속해서 변명과 거짓말로 일관하는 그를 개조 혹은 갱생시키기 위해선 일종의 무장해제가 필요했을 것이다. 역시 재료 관리나 위생, 메뉴 구성에 있어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변명하거나 고집을 부리던 <골목식당>의 과거 출연자들도 종종 겪었던 일이다. 죽어가는 골목 상권이 있다. 백종원이 출동한다. 기본이 안된 자영업자가 있다. 심지어 고집도 있다. 겸손히 배울 자세가 될 때까지 백종원이 해당 자영업자의 영혼까지 탈탈 털어 무력화한다. 출연자가 넙죽 엎드리고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솔루션이 시작된다. 이것이 <골목식당>의 일관된 패턴이다. 이 과정은 백종원이 제시하는 검증된 레시피만큼이나 실용적이다. 홍탁집 사장은 백종원의 말대로 더 창피를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한 지상파 예능이 누군가의 망신을 생중계하고 모두가 손가락질할 기회를 주는 대국민 사죄쇼로 진행되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골목식당>은 이런 징벌적인 서사 및 쾌감에 대한 당위적 근거를 마련하는 대신 백종원이라는 존재의 권위로 알리바이를 대체한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백종원(오른쪽)이 나태한 음식점 사장을 질타하는 모습. 이 프로그램은 죽어가는 골목상권을 찾은 백종원이 고집 센 자영업자를 굴복시킨 뒤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방송 갈무리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백종원(오른쪽)이 나태한 음식점 사장을 질타하는 모습. 이 프로그램은 죽어가는 골목상권을 찾은 백종원이 고집 센 자영업자를 굴복시킨 뒤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방송 갈무리

얼마 전 대통령이 참석한 공정경제 전략회의에 초대된 것을 비롯해 최근 백종원은 한국 자영업 시장의 문제에 대한 해답 같은 존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직접 요식업에 진출했다가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면 날마다 눈물도 쏟았으며 커다란 실패도 맛보고, 그렇게 실패 속에서 성장해 자신의 식당과 프랜차이즈 사업까지 성공했다. tvN <집밥 백선생>에서 보여준, 돼지고기를 직접 발골할 줄 아는 성공한 요식업자 백종원의 모습은 한국이 오래도록 사랑해온 전통적인 입지전적 인물상과 딱 들어맞는다. 어떤 메뉴, 어떤 식재료에 있어서든 평가와 솔루션을 척척 내놓는 그를 보며 시청자들은(황교익을 제외하면) 미더움과 경외감을 갖는다. ‘방송 천재’인 백종원은 자신이 얻은 상징 자본을 <골목식당> 안에서 적절히 사용한다. 뜨는 상권만 믿거나 인스타그램에 예쁘게 올릴 구성만 고민할 뿐인 이들은 백종원 입장에선 기초도 안된 철딱서니 없는 존재들이다. 특히 남성 출연자들은 자신의 요리에 대한 타협 없는 태도(대전 청년구단 막걸리)를 보이거나, 가르침을 받아도 그대로 안 하거나(뚝섬 햄버그스테이크), 불필요한 기 싸움을 하며(대전 청년구단 초밥), 비판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도 불사한다(뚝섬 장어).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고 조언을 들을 준비가 안된 남성들에게 백종원은 특화된 존재다. 이미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은 은근슬쩍 서열 놀이를 하던 김구라의 참견을 제지하며 선생과 제자 관계를 확실히 정립한 바 있다. 고집 부리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수컷은 더 강하고 훨씬 치밀한 수컷만이 길들일 수 있다. 백종원은 말하자면 진화한 형태의 알파메일, 우두머리 수컷이다.

백, 준비 안된 사장엔 특화된 존재
골목 상권 살리려는 ‘쓴소리’ 필요

한정된 시간 안에 문제해결 처지
설득 대신 권위가 해법으로 제시

그렇다고 지상파가 ‘충고’ 이유로
‘대국민 사죄쇼’ 만들라는 뜻 아냐

엉망인 식당을 정상화하고 상권을 살리기 위해선 이 알파메일의 권위에 고분고분 따르는 게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푸드 칼럼니스트 이해림은 ‘백종원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란 칼럼에서 “성실한 희생자들 사이에 숨어있는 ‘망할 만했던’ 사장님들을 누구도 끌어내어 혼내지 않았다. (…) 그런데 그 힘든 일을 백종원이 했다”고 그의 결단력을 인정했고, 소설가 장강명은 ‘<백종원의 푸드트럭>을 보다가’라는 글에서 “우리는 부조리에 저항하는 정신만큼이나 생존의 감각과 현실의 기술이 동시에 필요하다”며 백종원이 갖춘 “상인의 현실 감각”을 상찬했다. 이들 관점에 정서적으로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백종원이 권위로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식이 이명박 스타일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와 대동소이한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물론 백종원과 이명박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전자에 모욕적인 일이다. 이명박은 실용주의를 참칭한 사기꾼일 뿐이다. 다만 <골목식당>에서 보여주는 백종원의 모습은 자신의 경험에 절대적 지위를 부여하고 복종을 요구하는 가부장적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백종원의 솔루션은 컨설팅보다는 훈육에 가깝다. 그의 권위는 엄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구현된다. 늦잠을 자고 공부를 게을리하고 게임을 하느라 바쁜 아이를 혼내는 아버지. 자식 잘되라고 엄하게 대하는 아버지. 그리고 모두들 아버지 말대로 하는 게 맞다고 말해주는 그런 아버지. 전문가로서의 권위는 <골목식당>의 훈육 서사를 통해 가부장적 권위로 전환된다.

물론 알파메일로서의 백종원을 가부장적인 ‘꼰대’라 말할 수는 없다. 그가 훈육하는 아버지 모델로 접근해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느 시점부터 <골목식당>은 노골적일 정도로 백종원의 솔루션을 징벌 서사로 구성한다. 미숙한 장사꾼이 성공하기 위해선 쓴소리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과, 미숙한 장사꾼은 욕먹어도 싼 사람이라는 건 전혀 다른 개념이다. <골목식당>이 징벌 서사인 건 후자의 방식으로 프로그램의 갈등 구조와 재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서 백종원은 지루한 설득 대신 자신의 권위로 밀어붙이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골목식당>은 그러한 불가피함을 설명하기보다는 출연자들의 고집과 미숙함처럼 비호감인 부분을 강조하고, 누군가 혼나고 모욕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지워버린다. 백종원이 옳은 지적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약자가 강자에게 혼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거나 누군가를 미숙하고 좀 비호감이란 이유로 미워하는 것은 어떻게 봐도 병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의 비난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들을 혼내는 것이 백종원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무리의 알파메일, 그리고 아버지의 법. 가부장적 권위는 강력한 가부장의 존재가 아닌 그의 관점을 다른 구성원들이 내면화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골목식당>의 시청자들은 자신들과 훨씬 가까울 일반인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혼나는 기분을 느끼기보다는 백종원의 입장에 서서 징벌 서사의 쾌감을 정당화한다. 가부장적 서사는 새로운 방식으로 회귀한다.

[위근우의 리플레이]‘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보여준 징벌 서사의 정당화

포방터 시장 홍탁집 에피소드에서 백종원은 장사에 마음 붙이지 못하는 아들 때문에 눈물 흘리는 어머니에게 자신을 “사우디에서 돌아온 삼촌” 정도로 생각해달라고 했다. 어머니의 마음을 단번에 든든하게 해준 그의 화법은 여전히 놀랍지만, 누군가를 갱생시키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아버지의 권한을 대행하는 형태라는 것은 흥미로운 우연이다. 포화를 넘어서 무너져가는 자영업 시장을 비롯해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확실한 시대에 결국 사람들이 기대고 싶은 건 성공한 알파메일의 서사다. 우리 가족을 책임져줄 아버지의 서사.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백 대표 같은 분이 손오공이 되어 분신을 만드셔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것 자체를 퇴행적이라 쉽게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경험적 지혜를 존중하는 것과 추종할 만한 권위를 찾아 기대는 것, 성공을 위한 노력을 요구하는 것과 성공하지 못한 이들을 노력하지 않았다고 구박하는 것, 미숙함에 대해서 혼날 수도 있다는 것과 미숙한 건 혼나 마땅하다는 것 사이엔 명확한 구분선이 없으며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실천적 위치를 확인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언제든 강한 우두머리 수컷에 대한 동경은 약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 치열함은 요식업자에게만 요구할 미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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