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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도 액션도 이젠 우리의 것”…겨울 극장가 뒤흔드는 ‘강한 언니들’

‘국가부도의 날’ 김혜수

불공정에 맞서는 이상적인 리더 역할

‘도어락’ 공효진

필사적으로 범인 쫓는 추격자로

‘언니’ 이시영

시원한 액션 내뿜는 ‘여성판 아저씨’

‘모털 엔진’ 주·조연

남성 전유물이었던 ‘의리 감수성’ 뿜뿜




삭풍이 몰아치는 12월, 스크린에는 ‘강한 언니’들이 일으키는 더 센 바람이 불고 있다. 그간 사건의 보조자, 피해자,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그려졌던 여성 캐릭터들이 전통적인 남성 주인공을 대체하며 스크린을 장악했다. 한동안 ‘20대 꽃미남’과 ‘40대 꽃중년’이 영화계를 휩쓸며 조폭영화와 범죄누와르 영화를 양산했던 것과 견주면 엄청난 변화다.

사실 이런 변화의 흐름은 올해 초부터 시작됐다. <리틀 포레스트>의 김태리,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손예진, <허스토리>의 김희애, <버닝>의 전종서, <마녀>의 김다미 등이 이미 상반기 영화계를 ‘여인천하’로 만들었다. 하반기 들어 여성 캐릭터는 더 강단 있는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다. 리더 또는 사건의 해결자로 나선 여성들이 겨울 영화판을 뒤흔들고 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CJENM)제공 지난달 28일 개봉 후 280여만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국가 부도의 날>은 사실상 ‘김혜수 영화’다. 1997년 아이엠에프(IMF)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김혜수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 역할을 맡았다. 영화 속 한시현은 똑똑하고 유능한 데다 책임감 넘치고 정의롭기까지 한 ‘이상적인 리더’다. 그는 냉철한 분석력을 바탕으로 경제위기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통화정책팀은 한시현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다. 김혜수가 브리핑을 준비할 때, 남성 팀원이 구두와 외투를 준비하며 존경을 드러내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한시현은 한국은행 총재와 청와대 경제수석이 우왕좌왕할 때 “재정국 차관, 금융실장 등 경제 관련 책임자부터 소집해 비상회의를 열라”고 충고하며 남성을 압도한다. 그럼에도 ‘남녀차별’과 ‘유리천장’이 더 심했던 90년대를 배경으로 하기에 ‘은행원’, ‘계집년’ 등으로 폄훼당한다. 하지만 한시현은 당당하다. 여자라고 막말을 일삼는 시중은행 책임자에게 “야, 아직도 분위기 파악이 안 돼?”라고 소리치거나 아이엠에프의 가혹한 선결 조건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재정국 차관에게 “넌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니?”라고 묻는 장면에서는 통쾌함마저 느껴진다. 최국희 감독은 “시나리오를 읽으며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주류가 아닌 여성 캐릭터가 홀로 맞다고 주장하며 움직이는 부분이 매력적이었다”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지금보다 어려운 때였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배경 속에서 여성 중심 서사가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영화 <도어락>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도어락>은 공효진 원톱 영화다. 홀로 사는 여성이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직접 ‘범인’의 실체를 좇는 내용이다. 영화 속 공효진이 맡은 역할은 은행 창구에서 일하며 혼자 오피스텔에 사는 평범한 비정규직 여성이다. 초반부 경민 캐릭터는 오히려 소심하고 겁이 많다. 하지만 공권력이 여성의 안전에 무감하고 피해자가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경민은 필사적으로 범인을 추적한다. 영화 <도어락>이 다른 작품과 차별화되는 점은 바로 여기다. 비슷한 설정의 <목격자>나 <숨바꼭질> 등의 스릴러에서 여성은 사건의 피해자로 소비될 뿐, 사건 해결의 주인공은 아니다. 이권 감독은 “주인공 경민이 피해자이자 사건의 추적자로서의 역할도 함께 담당해야 하기에 고민이 많았다. 결말 부문에 남성과 격투를 벌여 제압하는 신이 현실적이냐는 걱정을 했다”며 “하지만 마무리에서 나름의 카타르시스를 안길 수 있다고 믿었다. 원작인 <슬립 타이트>가 범인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것과 반대로 <도어락>은 철저히 피해자이자 추격자인 여성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영화 <언니>의 한 장면.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오는 26일 개봉 예정인 영화 <언니>는 ‘여성판 아저씨’로 불린다. 납치된 동생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주인공 인애 역할로 평소 복싱으로 몸을 단련해온 배우 이시영이 열연한다. 사실 ‘위기에 빠진 가족이나 지인을 구한다’는 설정은 지금까지 액션영화가 닳도록 반복해 온 클리셰다. ‘나쁜 납치범’으로부터 ‘가족’(혹은 지인)을 구출하기 위해서라면 과도한 폭력을 수반하더라도 정당하다는 서사가 중심에 선다. 원빈의 <아저씨>나 최근 개봉한 마동석의 <성난 황소>, 리암 니슨의 <테이큰> 역시 이러한 ‘구원자 서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하지만 <언니>는 ‘여성=피해자, 남성=구원자’라는 공식을 과감히 전복한다. 임경택 감독은 “당연히 ‘여자판 아저씨’라는 말이 나올 법 하다. 악을 깨부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하는 액션을 날 것의 느낌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씨지(CG)없이 여성이 펼치는 ‘기승전액션’의 쾌감을 기대해도 좋다”고 밝혀 기대감을 높였다.

영화 <모털 엔진>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외화에서도 ‘센 언니’의 활약은 눈부시다. <반지의 제왕> 피터 잭슨이 제작자로 나선 <모털 엔진>이 그 예다. 영화 속에서 인류가 멸망한 미래를 배경으로 다른 도시를 황폐화 시키는 ‘견인 도시’ 런던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 헤스터(헤라 힐마)와 한국계 조연 안나(지혜)는 화려한 액션을 바탕으로 강인한 여성 서사의 중심에 선다. 유약한 남자주인공 톰(로버트 시한)에 견줘 엄마의 복수를 위해 런던에 맞서 싸우는 헤스터, 그리고 그를 돕는 현상수배범 안나는 카리스마가 넘친다. 비행기를 몰고, 장총을 자유자재로 쏘아대고, 칼잡이 못지 않은 검술솜씨까지 뽐낸다. 여기에 그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의리’와 ‘희생’의 감수성이 덧입혀진다.

정지욱 평론가는 “그간 남성을 중심으로 한 비슷한 장르의 영화가 반복되다보니 이에 대한 피로감과 반작용으로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앞세운 참신한 기획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미투나 탈코르셋 등 여성주의적인 사회 현상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김봉석 평론가는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여성 캐릭터가 갖는 한계나 왜곡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중의 관심과 요구에 따라 여성 캐릭터 중심의 영화가 계속해서 기획되느냐가 결정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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