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는 독살 당하지 않았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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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4.12. 오후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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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본 책 ‘생명의 시인 윤동주’ 번역

윤동주 마지막 사진 발굴 PD가 저자

민족시인 넘어선 보편적 휴머니즘 부각




생명의 시인 윤동주
다고 기치로 지음, 이은정 옮김/한울·2만6000원


여기 사진 한 장이 있다. 교복을 입고 학사모를 쓴 윤동주가 또래 청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시에서나 삶에서나 부끄러움이 많았던 윤동주가 그답지 않게 ‘센터’ 자리를 차지한 것이 이채롭다. 1943년 초여름, 일본 교토 근교 우지강의 아마가세 현수교에서 포즈를 취한 도시샤대 영문과 학생 아홉명은 윤동주의 귀국을 앞두고 송별회 겸 소풍을 온 것이었다. 윤동주는 그 직후라 할 7월14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해방을 불과 반년 앞둔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음을 맞는다.

이 사진을 발굴한 이는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 프로듀서였던 다고 기치로. 그는 1995년 윤동주 50주기에 맞추어 <한국방송>과 공동으로 기획한 다큐멘터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일본 통치하의 청춘과 죽음’ 제작 과정에서 사진 속 윤동주의 급우를 만나 사진을 제공받고 윤동주에 얽힌 회고담을 들었다.

그의 책 <생명의 시인 윤동주>는 1995년 다큐멘터리 제작 당시 취재한 내용을 중심으로 윤동주의 마지막 날들을 재구성한다. 도시샤대 유학 시절과 후쿠오카 형무소 생활, 윤동주가 읽은 일본어 책들, 중학생 때 그와 교분을 맺었다는 일본 시인의 증언 등 수집할 수 있는 자료를 최대한 활용해 만년의 윤동주를 되살리고자 한다.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과 영화 <동주> 등에서 ‘정설’로 취급해 온, 생체 실험에 의한 살해 주장을 반박하는 점이 특히 관심을 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 불과 한두 달 전인 1943년 초여름, 도시샤대 동급생들과 교토 근교 이와세 강으로 소풍을 나가서 찍은 윤동주의 마지막 사진. 사진 한가운데 교복과 교모 차림인 윤동주의 오른쪽 여성 모리타 하루가 반세기 남짓 이 사진을 보관하고 있다가 취재진에 공개했다. 한울 제공


윤동주는 일본에서 매우 인기가 높다. 시집 번역본도 여럿이며, 그의 시를 읽는 시민 모임이 일본 전역에서 활발히 운영 중이다. 그런데, 싸잡아 말하긴 어렵겠지만, 일본에서 받아들이는 윤동주는 ‘민족 시인’이라기보다는 고난 속의 희망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휴머니즘의 시인에 가깝다.

윤동주의 대표작이라 할 ‘서시’ 중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의 번역을 둘러싼 논란은 ‘윤동주 해석 전쟁’의 일단을 보여준다. 일본에서 정본으로 통하는 이부키 고의 1984년 번역본에서 이 구절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로 옮겨졌는데, 재일동포 시인 김시종은 그것이 시의 원래 뜻을 왜곡한 것이라 비판하며 2012년 이와나미문고에서 새 번역본을 내놓기도 했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예외 없이 죽어가는 존재라는 점에서 둘 사이에 근본적 차이는 없다 하겠지만, ‘생명’을 부각시키는 쪽이 보편적 휴머니즘의 손을 들어준다면 ‘죽음’을 챙기는 이들은 조선 민족이 놓인 억압과 고통을 강조한다 하겠다.

그런 점에서 <생명의 시인 윤동주>는 윤동주의 삶과 문학에 대한 매우 ‘일본적인’ 접근을 보인다. 지은이는 ‘서시’의 “죽어가는”을 영어 성경과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스의 시 ‘생쥐에게’(To a Mouse)에 나오는 “mortal”과 같은 뜻으로 해석한다. “죽을 운명인” “필멸의”라는 뜻을 지닌 이 말은 불멸의(immortal) 존재인 절대자 및 구원받은 자와 대비되어 현세의 인간을 가리킨다. 일제의 압제에 시달리는 조선 민족만이 아니라 필멸의 운명을 공통적으로 지닌 인류 전체를 뜻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민족의 어두운 현실을 상징하는 ‘병원’이었던 육필 시집 원고 제목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바꾸었을 때 윤동주의 내면에서 ‘민족에서 보편으로’라고 할 근본적 변모가 일어났다는 해석이다.

지은이는 이와 함께, 윤동주가 갇혔던 무렵 일본 전역의 형무소 내 식량 사정이 매우 나빠졌고 그 결과 사망자 수가 급증했으며, 송몽규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인체실험 사망설도 근거가 희박하다는 주장을 실증적으로 펼쳐 보인다. 그 때문에 1995년 다큐멘터리에서도 명확한 사인을 밝히는 데에는 실패했다는데, 투약 및 주사에 관한 증언과 자료가 엄연한 만큼 윤동주의 사인 규명은 여전한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윤동주를 “삶의 양식”이자 “인생의 참으로 소중한 보물”로 여긴다는 지은이는 일본인 특유의 실증 정신으로 윤동주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고 그릇된 정보를 바로잡고자 한다. 윤동주에 관한 그의 해석에 동의하든 안 하든, 도시샤대 시절을 중심으로 한 윤동주 말년의 일화들을 새롭게 접하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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