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국채 상환 취소로 일부 운용사 수십억 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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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1.02. 오후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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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bp 내외로 움직이는 채권금리, 당일 1~3bp 올랐다가 다음날 3bp 이상 급락

2017년 11월 14일 정부가 당초 공지했던 1조원 규모의 국고채 조기상환(바이백)을 하루 앞두고 전면 취소하면서 국채 금리가 급등락해 일부 증권사가 적지 않은 손실을 봤던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손실 규모가 수십억원대에 이르는 곳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당시 현장의 채권 매니저들이 느낀 충격은 작지 않았다. 정부가 국고채 매입 약속을 깨면서 국고채 3~10년물 금리가 당일 1~3bp(1bp=0.01%p) 상승했다가 다음날(15일) 일제히 3bp 이상 급락했기 때문이다. 당일에는 매입 취소 소식에 일부 증권사 중개팀이 손절매하면서 금리가 상승(국채 가격 하락)했고, 다음날에는 정부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금리가 급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정부와 금융투자협회 등은 "바이백 취소 때문에 요동쳤던 금리가 금세 진정됐기 때문에 급히 매매한 투자자가 아니라면 별 손실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정부 신뢰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바이백 취소 사태는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유튜브와 인터넷 게시글을 통해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청와대 압력에 바이백을 취소하게 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2017년 국세수입은 전년대비 22조8000억원 늘어난 265조4000억원으로, 2017년 예산안 편성 당시 예측보다 23조1000억원 더 들어왔다.

돈(초과세수)을 많이 번 만큼 빚을 갚는 것(적자국채 바이백)이 당연하지만, 청와대를 의식한 김동연 전 부총리 등 고위층이 이 원칙을 묵살했다는 게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이다. 2017년은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이고, 2017년 숫자가 나쁘게 나와야 2018년 국정 운영이 유리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201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높게 가져가려고 했고, 이 와중에 적자국채를 줄이는 바이백이 무산됐다는 설명이다.

◇바이백 취소로 국채금리 급등락…단타족 큰 손해 추정

2017년 11월 14일 정부가 갑작스레 바이백을 취소하자 당일 국고채 금리는 일제히 1~3bp 상승했다. 당시 바이백 취소 공지문은 장 종료를 10분 앞두고 한국은행 사이트에 올라왔는데, 이 때문에 바이백에 응하려고 채권을 사모았던 증권사 중개팀이 급히 손절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날인 15일에도 여진이 이어졌다. 국고채 3년과 5년물, 10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각각 3.4bp(1bp=0.01%p)와 3.7bp, 3.9bp 하락(채권가격 상승)한 2.177%와 2.380%, 2.571%에 마감했다. 당시 일 평균 금리 변동폭이 0.03bp 내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바이백으로 인한 시장 충격이 적지 않았던 셈이다. 우량등급인 회사채 AA- 3년물은 당시 1bp 내외에서 움직였다. 국고채와 우량 회사채가 엇비슷하게 움직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약 2bp 하락 분은 바이백 취소로 인한 후폭풍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신재민 전 사무관이 공개한 당시 카카오톡 채팅방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국고채 발행잔액은 640조원이다. 2bp의 변동폭이 바이백 취소 때문이라고 가정하면, 15일 기준으로 시장이 입은 충격분은 1280억원에 이른다.

기재부나 금융투자협회 등은 당시 시장 충격이 일회성이었다고 강조한다. 금투협 채권팀의 이한구 박사는 "바이백 취소로 일시적으로 영향을 받긴 했겠지만 사실 큰 이슈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 "더구나 2017년 초만 해도 시장 환경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었으나 실제로는 국채, 회사채 모두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등 시장이 좋았다"고 했다. 이어 "국고채를 주로 매매하는 연기금이나 보험사, 운용사는 장기 투자를 하기 때문에 대체로 해프닝으로 인식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일부 증권사는 손실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백을 하나의 재료로 활용하려고 했던 단기투자 성향의 팀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14일 당일 손절매한 증권사 중개팀이나 미국 금리 인상 스케쥴에 맞춰 금리 상승에 베팅했던 일부 채권 전문 운용사는 15일 기준으로 수십억원대 평가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증권사의 채권 담당 애널리스트는 "이례적으로 취소됐고, 당연히 손해를 본 투자자는 있다"면서 "하지만 투자 포지션이 공개되지는 않기 때문에 누가 어느 정도로 손해봤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손실을 확정한 투자자를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채권시장은 브렉시트부터 정치인의 금리 관련 발언 등으로 출렁임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곳이라 딱히 문제제기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금융안정 애써야 할 정부가 이런 짓을"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평가손실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땅으로 떨어졌다는 점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 채권운용사 매니저는 "국가에서 스케줄을 잡았고, 민간과 이미 협의가 끝난 일을 하루만에 취소하는 것은 있어선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금융안정에 힘써야 할 곳에서 금융 신뢰에 상처를 낸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매니저도 "정부마저 믿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고채 바이백은 11월 15일 한 차례만 취소됐고, 같은 달 22일에는 예정됐던 1조원 바이백이 계획대로 진행됐다. 12월에도 5000억원의 국고채 바이백이 실시됐다. 나머지 국고채 바이백이 정상 진행된 이유는 국채금리 급락으로 정부가 놀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 전 사무관이 쓴 글에 따르면, 김 부총리는 "난 분명히 조기상환 취소하라고 한적 없다. 내가 시장 흔드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 시장에 공표했다는 거 알았으면 난 절대 못하게 했을 거다. 내가 그날 좀 세게 말해서 알아서들 조정했던 것 같은데 앞으로 그럴 필요 없어요"라고 말했다.

[안재만 기자 hoonpa@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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