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인간 헤밍웨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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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8   |  발행일 2018-12-28 제42면   |  수정 2018-12-28
‘헤밍웨이 인 하바나’ (밥 야리 감독·2016·미국·캐나다)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인간 헤밍웨이를 만나다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인간 헤밍웨이를 만나다

한 해의 끝, 돌아보면 후회할 일이 많다. 새해가 되면 또 새로운 다짐을 할 것이다. 산다는 것은 후회와 다짐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작가 헤밍웨이는 말년에 쿠바에서 살았다. 1939년부터 1960년까지 쿠바의 공산화로 인해 미국으로 추방되기 전까지다. ‘헤밍웨이 인 하바나’는 유명작가가 되어 부와 명예를 누리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은 말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편지 한 통의 인연으로 헤밍웨이의 초대를 받은 기자 마이어스는 쿠바로 날아간다. 바다낚시를 하며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는 헤밍웨이. 마이어스는 그를 파파라 부르며 따른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내면은 이미 황폐해져 있다. 한없이 다정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돌변, 폭언을 퍼붓는가 하면 자살충동에 시달리곤 한다. 그럼에도 마이어스는 그에게서 부성을 느끼며, 소중한 삶의 지혜와 교훈을 얻고 돌아온다. 영화는 여기까지를 다루며, 아름다운 쿠바의 풍광과 함께 실제 헤밍웨이가 살았던 저택의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 그가 즐겨 찾았던 카페와 혁명 전 혼란스러웠던 쿠바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미국에 돌아와 정신 치료를 받던 헤밍웨이는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우울증, 알코올 중독, 부상으로 인한 육체의 고통 등이 이유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자살, 정신질환을 앓던 가족력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쿠바에서 추방당한 것도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것도 그가 가진 고통의 하나였던 것 같다. 최고의 작가 헤밍웨이에게 문학은 무엇이었을까? 첫 부인과 행복했던 때를 회상하며 아름다웠던 그 시절에 대한 글을 쓰겠노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자신이 저질렀던 불륜에 대한 죄책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때가 가장 순수하고 인간적인 시절이었다고 한다.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그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그는 끝내 그 시절에 대한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는다.

헤밍웨이의 문장은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유명하다. 잡다한 수식어 없이 쉽고 간결한 문장이다. 노벨문학상을 받게 한 ‘노인과 바다’도 동화로 착각할 만큼 쉽고 단순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사냥·낚시 등과 같은 남성적인 스포츠를 즐기며 남자다움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성적이고 소심한 면이 많았다고 한다. 문장은 간결하나 그의 내면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셈이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널리 알려진 이 문장은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미국에 돌아와 정신 치료를 받다가 끝내 자살로 삶을 마감한 헤밍웨이. 그의 정신은 무너져 내렸지만 문학 속에서만은 살아 남았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처럼 인생이라는 사납고 거친 바다에서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싸웠던 것만은 분명하다. 긴 싸움 끝에 남은 것은 ‘물고기의 뼈’뿐이라 할지라도. 가장 쉽고 단순한 문장들 속에 인생의 심오한 진리를 담은 작가임이 새삼스레 느껴진다.

영화 ‘킹스맨’에서 인용한 헤밍웨이의 명언이 있다. “남보다 뛰어나다고 고귀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자신보다 우수한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고귀한 것이다.” 헤밍웨이는 과거의 자신을 넘어서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것 같다. 과거의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 반드시 글이어야만 했을까? 불같은 성격의 그가 늙고 무력해져가는 자신의 노년을 못 견뎌했던 것은 아닐까? 천재들의 삶이 평범한 우리와 다름도 어쩔 수 없으리라. 불꽃처럼 살다가 스러진 그의 열정과 모험 정신이 그립다. “인생이 갖는 소중한 가치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한다는 거야”라는 말에 담긴 헤밍웨이의 진심을 느낀다. 영화 속 마이어스는 그 말을 자기 삶의 신조로 삼았다. 관찰자 마이어스를 통해 보여준 ‘헤밍웨이 인 하바나’는 인간 헤밍웨이에 대한 궁금증과 이해의 폭을 넓힌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과거의 자신보다 우수한 것이 고귀한 것’이라는 헤밍웨이의 말을 기억하며, 과거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점이 있다면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자.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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