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생각보다 쉽고 맛있게…집에서도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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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1.04. 오후 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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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마라

유선주 객원기자 마라요리 도전기

마라 마니아들, 가정에서 직접 조리

실직한 중국 푸순 노동자의 음식, 마라반

바이두·메이스텐샤 등 중국 누리집 뒤져

쉽고 간단한데 맛은 최고



유선주 객원기자가 만든 마라반. 구입한 식재료와 완성된 마라반.


지난해 12월29일 토요일 낮 12시. 동네 내과의원 대기실에 앉아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리를 죽이고 화면만 틀어놓은 텔레비전에 멍하니 시선을 두다가 자막에 깜짝 놀랐다.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등장했고 ‘강릉 마라탕 보존회’라고 했다. 고개를 쭉 빼고 다시 보았다. ‘강릉 아리랑 보존회’였다. 난시 때문인지, 마라탕이 먹고 싶어서 그랬는지 아리랑을 마라탕으로 읽었다. 눈을 흐릿하게 떠보시라. 이응이 미음으로, 리을이 티읕으로 보이기도 한다. 병원은 마스크를 쓴 독감 환자로 붐볐고, 내 용무는 독감이 아니라 장염이었다. 다행이기도 하고 불행이기도 하다. 집에서 만드는 마라요리 체험 기사를 쓰기로 한 참이었다. 알다시피, 중국 쓰촨요리의 특성인 ‘마라’(麻辣)는 얼얼하게 매운맛이다.

향신료는 음식에 맵거나 향기로운 맛을 더하는 조미료라는 뜻이다. 순화하면 양념이다. 한국에서 ‘갖은양념’이라고 하면 파와 마늘, 생강, 깨, 참기름, 후추, 고춧가루, 간장 등을 말한다. 다른 나라의 양념이 궁금해서 도서관에 들렀다. <세계의 음식문화>라는 책을 읽다가 브라질 요리 ‘페이조아다’ 항목에서 멈췄다. ‘간, 돼지고기, 양송이, 양파, 각종 육가공품, 고춧가루, 갖은양념에 라면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끓입니다.’ 헛것을 본 게 아니다. 47쪽이다. 갖은양념에 라면 국물? 마라탕이나 마라샹궈(麻辣香?)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소스가 있다. 라면 수프만큼, 혹은 더 강렬하게 재료 맛을 지배한다.

마라탕을 좋아하는 이들은 전문 가게를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을 즐긴다. 채소와 건두부, 당면, 고기나 해물을 손질해서 끓이고 소스를 넣으면 완성이다. 인터넷 공간의 후기를 보면 라면만큼 간단하다.

마라의 고향, 쓰촨의 훠궈 가게가 기본양념을 만드는 법을 찾아봤다. 유채기름에 쇠기름 덩어리를 더하고 파, 생강, 마늘을 볶아 향을 낸다. 여기에 피센두반장(?縣豆瓣醬)과 고추를 넣어 한 시간 반을 볶고, 10여가지 향신료와 빙탕(?糖 얼음설탕)을 넣어 20분을 더 볶아서 식힌다. 이것을 덜어내어 부글부글 끓는 훠궈의 매운 국물을 만든다. 인터넷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시판하는 소스는 이런 복잡한 과정을 표준화한 제품이다.

귀찮음을 감수하고 집에서 마라 요리를 만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마라에 한 번 맛을 들인 사람들은 시시때때로 알싸하면서 매콤하고, 고소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간절하다. 마성의 마라 양념을 단조롭던 내 식단에 들여올 궁리를 했다. 도전할 메뉴는 마라반(麻辣拌)이다. 재료를 데쳐서 마라양념과 식초, 설탕을 더해 버무린 요리다. 마라탕 가게에서 먹어보고 탕과 볶음보다 더 자주 먹게 됐다. 식어도 맛있고 반찬으로도 어울린다. 마라탕과 마라샹궈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블로그는 많은데 마라반은 한글 레시피가 마땅치 않았다. 중국어 웹 바이두와 음식 포털 누리집 ‘메이스텐샤’(美食天下), 요리 레시피 공유 누리집 ‘시아추팡’(下?房)에서 만드는 법 여러 건을 찾아봤다.

매콤한 양에 반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유선주 객원기자가 기르는 고양이가 냄새를 맡고 있다.


공통으로 보이는 양념은 마라장, 라오간마(老干?) 소스, 마라유, 즈마장(芝麻?) 라오천추(老陳醋), 간장, 해선간장, 설탕 등이다. 아예 마라반 소스를 따로 팔기도 했는데, 직구를 하면 언제 도착할 지 기약이 없다. 그래서 시판 마라샹궈 소스와 위의 양념 몇 가지를 조합해 식당에서 먹은 마라반을 흉내 내 보기로 했다. 뭔가 그럴싸한 실험 같지만, 실은 마라샹궈 소스의 봉투를 뜯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소스가 담긴 비닐이 터졌나 싶을 정도로 진하게 퍼져 나오는 마라탕 가게 냄새! 중국 식재료를 파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함께 주문한 양념들을 하나씩 맛보았다. 쇼핑몰은 검색만 하면 주르륵 뜬다. 행복중국식품점, 스페셜티푸드마켓, 본타몰 등에서 재료를 구입했다.

식품 포장지에 인쇄된 여성은 보통 미소 짓고 있지만, 고추기름 병의 중년 여성의 얼굴에 웃음기는 없다. 타오화비. ‘중국의 밥도둑’, ‘국민 양념장’으로 불리는 고추기름 양념으로 연 매출 100조를 넘기는 라오간마의 회장이다. 뽑기 운이 좋지 않았는지 뚜껑이 지독하게 열리지 않았다. 회장님은 완강했다. 고추기름 병을 쥐고 침대에 누워 숨을 고르고 있으니, 집고양이가 냉큼 따라 올라온다. 간신히 뚜껑을 열고 되직한 다진 고추와 땅콩 알갱이, 고추기름을 섞어 먹어봤다. 칼칼한 고추에 들큼한 감칠맛이 강한 편이라 많이 넣지 않는 게 좋겠다. 마라샹궈 소스 한 봉지에 티스푼 하나 정도 양을 섞었다.

라오천추는 산시성의 발효식초다. 색이 검고 간장과 비슷한 큼큼한 짠 냄새가 풍긴다. 가게에서 먹은 마라반은 은은하게 시큼한 맛이 감돌았다. 잡맛 없이 새콤한 양조식초와 좀 다르다 싶었는데, 라오천추를 넣었나 싶다. 밥숟가락으로 세 숟가락 분량을 더했다. 추천하고 싶은 것이 화자오(花椒)기름이다. 마유(麻油)나 화초유(花椒油)로 찾으면 된다. 귤과 모과가 섞인 듯한 상쾌한 향이 난다. 마라요리의 얼얼한 맛도 화자오 알맹이가 낸다.

마라반의 중국 레시피는 땅콩과 참깨를 섞은 즈마장을 넣는 쪽과 잘게 부순 땅콩을 뿌리는 쪽이 있다. 먹어 본 게 즈마장을 섞은 쪽이라 한 숟가락을 소스에 넣었다. 다진 마늘과 설탕 약간으로 소스는 완성. 당면인 콴펀(?粉)은 찬물에 반나절 넘게 불렸다. 마른 미역을 닮은 푸주(腐竹)는 콩물을 끓일 때 맨 위에 응고되는 막을 걷어 말린 것이다. 먹어보니 단맛이 빠진 오징어채처럼 찝찔하고 질깃하다가 콩 냄새가 훅 올라온다. 물에 4시간 불렸다. 얇은 소고기, 청경채, 쑥갓, 팽이버섯, 생선 완자, 국수, 다시마, 표고버섯, 연근, 감자를 준비했다. 중국에서 만드는 마라반에 반드시 들어가는 식재료가 얇게 썬 감자다. 고기는 빠져도 감자는 넣는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 단단한 재료인 연근과 감자를 맨 먼저 끓는 물에 넣고, 푸주, 건두부, 청경채, 쑥갓, 팽이버섯처럼 살짝 데치기만 하는 종류를 마지막에 넣었다. 데친 재료를 건져서 물기를 빼고 만들어둔 소스를 섞어 비빈다. 볼품이 없긴 하지만, 원래 마라반이 그렇다. 마라 하면 쓰촨성 청두를 떠올리는데 마라반은 랴오닝성 푸순이 원조란다. 푸순의 많은 노동자가 실직을 했던 1990년대 중반, 그들은 학교 근처에 길거리 음식 가게를 열었고 마라탕보다 적은 양념을 사용하는 경제적인 조리법인 무침으로 마라반을 팔았다고 한다. 오돌오돌 씹히는 팽이버섯, 쫀득한 당면, 향긋한 쑥갓이 화끈하고 고소하고 새콤하고 알싸한 양념을 머금었다. 2018년 12월31일 월요일. 오늘도 병원에 가지만 후회는 없다.



글·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적당히 비슷한’ 마라반 소스 레시피

재료

시판 마라샹궈 소스 1봉지, 즈마장 1큰술, 라오간마 고추기름 반 티스푼, 라오천추 3큰술(이 분량에서 더 넣으면 쓴맛이 난다. 더 새콤하게 만들고 싶을 땐 라오천추를 줄이고 양조식초로 바꾼다.) 설탕 1큰술, 다진 마늘 1 티스푼, 화자오 기름 반 티스푼

만들기

1 마라샹궈 소스에 고추기름과 다진 고추, 땅콩을 섞은 것을 넣는다.

2 라오천주와 화자오 기름, 즈마장을 마저 넣어 소스를 완성한다. 위 분량으로 세 접시 정도의 마라반을 무칠 수 있다. 라오간마 고추기름과 화자오 기름은 꼭 넣지 않아도 얼추 맛이 난다. 감칠맛을 더하거나 얼얼한 맛을 더하고 싶을 때 넣는다.

마라반은 청경채, 감자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익힌 후 마라반 소스로 버무리면 된다.

글·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마라 얼얼하고 매운맛. 중국을 대표하는 맛 중의 하나. 마라탕이 대표적인 음식. 마라탕은 중국 쓰촨성이 고향인 음식으로, 충칭과 청두가 유명하다. 중국 베이징 대학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마라탕이 최근 2~3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얼얼하게 매운 ‘마라’는 라면, 치킨, 편의점 간편식으로 확장하는 중이다. 마라탕의 얼얼한 맛을 내는 향신료는 화자오(花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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