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미묘한 시선으로 여성 삶 포착한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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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맨부커상 수상한
앨리스 먼로 유일한 장편
`소녀와 여자들의 삶` 출간


소설은 소설일 뿐이란 경계심을 풀고 조금 관대해진다면, 소설은 과거일 수도 있고 미래일 수도 있다. 문학이 삶의 거울이자 저울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캐나다 소설가 앨리스 먼로(사진)의 소설은 20세기 여성의 삶을 비추는 과거이자 21세기 여성의 삶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미래일 수 있다.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앨리스 먼로의 유일한 장편소설 '소녀와 여자들의 삶'(문학동네 펴냄)이 한국에 출간됐다.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란 한림원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노벨상에 앞서 200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거머쥔 먼로는 이 책에서 여성적 삶을 복잡하고 미묘한 시선으로 포착해낸다.

첫 페이지를 펼치면 주인공 델 조던의 눈동자를 스쳐간 여성적 삶에 관한 불안의 다큐멘터리가 농밀하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플래츠 로드라는 외곽에서 사는 델은 두 여성상을 마주한다. 미혼모이면서 폭력적 성향을 보이는 매들린과 백과사전을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델의 엄마가 한쪽에 자리한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엄격히 구분하는 델의 대고모들이 반대편에 앉아 있다. 평범과 비범 사이에서 소설은 줄타기를 하는데, 델은 1인칭 시점으로 그 사이를 지나간다. 델의 입을 빌려 작가 먼로는 묵직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특히 델의 모친이 델에게 '장중하고 희망에 찬 목소리'로 던지는 한마디에는 어떤 '찔림'이 있다.

"내 생각엔 처녀들, 여자들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건 우리 손에 달려 있어. 집에서 기르는 짐승만큼이나 우리 삶이라는 게 없었다고."(318쪽)

먼로의 자전적 이야기임을 눈치채게 만드는 대목도 소설의 인력을 구성한다. "내가 내 삶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소설을 쓰는 것"이란 델의 고백은 대문호의 다짐을 연상케 한다. 시골 마을에서 작가를 꿈꾸다 '우리 시대의 안톤 체호프'란 명성을 얻기까지 문장과 여백 사이에서 고투했을 먼로의 마음이 느껴진다.

마치 21세기의 현실인 양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배경인 플래츠 로드가 현대 한국 사회와 상이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온다. 소설가 손보미는 "이제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소녀와 여자들 삶을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이상한 슬픔과 매혹"이라고 평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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