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희 기업은행장 "상주 촌놈이 행장까지 오른건 집요한 일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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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2.09.01. 오전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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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한경과 맛있는 만남

스펙·간판보다 '열정'을 평가…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기회

승진·이동 한번에 '원샷 인사'

질질 끌면 주변 술집만 좋아해…피 묻혀서라도 청탁은 없앨 것

中企 대출금리 한자릿대로

경기 안좋아 어려움 겪는 기업, 금리 낮춰주면 신뢰 생기죠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촌놈이 서울에 와서’라는 말을 자주 한다. ‘촌놈’이라는 단어에서 자기 분수를 알고 있다는 겸손함과 은행장까지 올랐다는 자기 만족감이 동시에 배어 나온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그가 수많은 뱅커들의 꿈인 은행장에까지 오른 비결은 치열한 노력이었다. 스스로 찾거나 주어진 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낸 덕분에 과분하게 은행장에까지 올랐다고 말한다.

조 행장은 “기업은행에서는 주인 의식과 열정만 있으면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앞만 보고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기회를 주는 인사를 하는 것도 ‘또 다른 조준희’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모든 사람이 은행장으로 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균등한 기회 제공과 공정한 업무 평가가 은행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게 그의 은행 경영 철학이다.


기업은행에 입사한 지 30년 만인 2010년 12월 행장에 취임한 조 행장은 인사에 관한 한 태종 이방원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인사청탁하고 여기저기 선물하면서 고객들에게 신경쓸 시간이 있겠습니까. 조직의 미래가 어찌 되겠어요. 그걸 바로잡기 위해 피를 묻혀도 흥건하게 묻히려고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쓴 취임사에 이런 의지를 담고 실천한 것입니다.”

학력, 스펙, 간판보다 열정과 노력을 평가하는 인사 시스템을 도입하자 지점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뉴욕 지점에 나가는 사례가 나왔고 운전기사 출신이 지점장에 오르기도 했다. 한두 달씩 단계적으로 시행하던 인사를 ‘원샷’에 단행했다. 보수적인 은행 인사 관행에 비춰볼 때 혁명에 가깝다.

이 같은 인사 혁명은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는 게 그의 평가다. (강한 의지를 담아) 행장이 하지 말라고 하니 실제로 인사청탁이 없어질 정도로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은행에 위대한 DNA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며 직원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해가 떨어지면 제법 선선한 바람이 느껴지던 27일 서울 종로에 있는 ‘안동국시’에서 그를 만났다.

◆방산지점의 희한한 놈

음식은 깔끔하고 담백했다. 문어 숙회의 질감에는 탄력이 있었고 기름이 잘 빠진 듯한 수육은 맛깔스러웠다.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면서 은행 초년병 시절을 시작으로 얘기 보따리를 풀어갔다.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기업은행에 입행했을 때가 1980년이었다. 청계5가에 있는 방산지점(현 청계5가점)이 첫 근무지였다.

자신의 끈기와 노력을 보여줄 기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조 행장이 직접 찾은 것이다. 당시 독일부흥은행(KFW)에서 받은 자금을 고객 기업에 제공하기 위해서는 서류를 완벽히 작성해야 했다. 문제는 서류를 작성할 역량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조 행장은 “입행 당시 대부계로 발령받았지만 주판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지폐 100장을 한꺼번에 헤아리는 것조차 버거웠다”며 “독일 차관 자금을 받아오는 것이 지점장의 숙제인 것을 안 뒤 ‘내가 저 일을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980년대 독일 차관 자금의 금리는 시중 대출금리보다 절반 이하로 낮았다. 독일 차관 자금을 활용할 수 있는 지점은 낮은 금리를 무기로 충성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는 “그때부터 을지로에 있는 본점 외화자금과를 구두 바닥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서류 작성법을 배웠다”며 “주중에 틈만 나면 본점에 가서 선배들을 괴롭혔고 주말엔 당직을 도맡아 하며 평가서를 한 장씩 작성해 나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렇게 3개월을 고생한 뒤 독일 차관 자금 대출 1, 2호를 조 행장이 직접 따냈다. 그 즈음부터 본점에서 ‘방산지점에 희한한 놈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방산지점에서 일한 지 1년6개월 만에 본사로 발령났다. 부서는 인사부였다.

◆길어진 인사로 덕본 곳은 술집뿐

자연스럽게 조 행장의 인사 실험 얘기로 이어졌다. ‘원샷 인사’를 언제부터 생각했느냐고 물었다. 원샷 인사란 임직원의 승진과 이동을 한꺼번에 실시하는 것이다. 기업은행은 지난 1월 전 직원 1만400여명의 20%에 가까운 1910명을, 7월에는 전체 직원의 13% 수준인 1600명을 한 번에 발령내는 인사를 단행했다. 조 행장의 과감한 시도는 성공적으로 평가받았고 원샷 인사는 고유명사가 됐다.

그는 “인사부에 발령받은 뒤 어린 마음에 은행은 인사하다 볼일 다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늘상 인사 시즌은 두 달여간 이어졌다. 그동안에는 업무가 이뤄지지 않았다. 자신의 보직이 바뀔지, 새로운 상사가 올지 등이 궁금해 여기저기 인사 정보를 물으러 다니는 사람뿐이었다.

내용도 불만스러웠다. 영업점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해외 점포 발령은 본점 직원들의 전유물이었다. 은행 직원의 50%가 여직원이었지만 여자 임원은 없었다. 조 행장은 “실제 더딘 인사로 덕본 곳은 승진 혹은 탈락한 은행원들이 자주 간 술집밖에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은행 최초로 여성 임원을 임명하고 현장 경험이 많은 영업점 본부장을 본사 핵심 부행장으로 승진시킨 것도 초년병 시절 인사부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얘기다.

◆왜 하루가 24시간뿐인가

조 행장은 자신이 행내에서 노력한 만큼 인정받은 것처럼 후배들의 진가를 알아주는 행장이라는 평가를 듣길 원한다. 스스로 운도 있었지만 항상 위기감을 갖고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는 은행권에서는 유일무이하게 도쿄지점에서 세 차례, 총 10년6개월간 해외 근무를 했다. 해외 근무 평가가 좋아 종합기획부장, 종합금융본부장, 경영지원본부장 등 요직을 거쳤다.

"기업인 눈빛만 봐도 그 회사 상황 파악 가능"

조 행장이 속된 말로 잘 나갈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그는 “상사가 지시할 때 안 된다고 대답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안 된다고 해야 할 때는 항상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행장에 오른 뒤에도 그런 사람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은행원의 삶이 항상 평탄했던 건만은 아니다.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1990년 조 행장이 도쿄사무소의 지점 승격 인가를 준비할 때다. 본점에서는 1991년 2월8일로 개점 날짜를 못박아둔 상태였다. 3개월 만에 인가를 위한 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눈앞이 캄캄했던 조 행장의 자존심에 불을 붙인 이는 일본 대장성의 젊은 사무관이었다. 인가 협의를 위해 만난 대장성 사무관은 “일본 대장성 사무관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고 그를 내쳤다. 완벽하지 못한 서류와 서툰 일본어가 문제였다.

그날부터 일본어 사전과 옥편, 다른 은행의 인허가 서류를 파기 시작했다. 그는 “그땐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게 원망스러울 정도로 일에 몰두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일에 미쳤던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조 행장의 몰입과 집착 덕분에 예정대로 지점 승격 인가를 받았다.

◆금리 인하, 산수 아닌 수학으로 생각해야

행내에서 인사 체질을 바꾸는 데 주력했다면 고객들에게는 확실한 서비스와 금리 인하로 승부를 걸었다. 그래서 취임 초 “임기 내 중소기업 대출금리를 한 자릿대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곧바로 중기 대출금리를 최대 2%포인트 인하했다. 올 1월 중소기업 대출금리 인하 특별 조치를 통해 최대 2%포인트의 금리를 또 내렸다.

상장사인데 수익성 하락과 연체율 증가가 우려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조 행장은 “우리가 기업금융을 50년 했다”며 “기업인의 눈빛만 봐도 숨소리만 들어도 이 기업이 살아날지 아닐지 어지간히 알 수 있다”고 답했다.

실적에 대한 질문에는 “산수가 아닌 수학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이 경기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금리를 낮춰주면 신뢰가 생기고 은행 입장에서 영업 기회가 늘어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짧게 보면 이익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은행 수익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다는 것이다.

국수 그릇을 비운 그는 마지막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조용히 말했다. “기업은행도 저도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지만 언제나 함께 성장했기에 정말 행복했습니다. 언제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습니까. 365일 24시간이 위기지만 지구는 계속 돌아가죠. 생은 일일마감이고 그래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조준희 행장의 단골집 안동국시

안동의 전통 음식 전문점…가격 5년간 그대로

5년간 가격과 양이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전통 안동국시집. 서울 종로2가에 있는 YBM어학원 골목으로 들어가 30m가량 걸어가면 왼편 2층 건물에 있다. 이곳은 엄밀히 말하면 3호점이다. 1호점은 광화문 인근에, 2호점은 미국대사관 뒤편에 있다. 조준희 기업은행장과 인터뷰한 곳은 3호점이다. 간판과 인테리어가 화려하지 않지만 맛집으로 소문나 명사들이 많이 찾는다. 메뉴는 모두 경북 안동의 전통 음식들이다. 한우 사골 육수가 제맛인 안동국시와 얼큰한 맛의 안동국밥이 각각 7000원이다. 그밖에 묵밥, 황태정식 등 모든 식사류가 같은 가격이다.

양념류에 쓰이는 식재료도 대부분 국산이다. 콩국시에 들어가는 콩가루와 묵에 쓰이는 메밀, 참기름은 경북 예천에서 공수해온 것들이다. 퇴근길 소주 한잔 하기에 제격인 안주가 많다. 빈대떡은 사장이 직접 경동시장에 있는 고향 사람을 통해 국내산 녹두만을 구입해 만든다고 한다. 안주류 가격은 8000원부터 3만원까지다. 영업시간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토요일에는 오후 8시까지 문을 열고 일요일과 공휴일엔 쉰다. (02)2277-6131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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