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술, 새로운 영화를 만나다
최신판 『술꾼의 품격』에는 한국 술꾼들의 선호도가 급증한 두 가지 술과 그 술을 유의미하게 다룬 영화를 추가하였다. 아일러위스키와 크래프트 비어를 영화 , 와 함께 탐험한다. 책 앞부분에 이 책에 등장하는 술을 포함하여 술 전체를 개괄하는 를 새로 싣고 일목요연하게 그림으로 그렸다. 그리고 달라진 술 문화, 주류업계의 변화 등을 반영해 많은 부분을 새롭게 고쳤다. 오래 묵을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새로 찾아 넣고, 새로운 것은 새로운 대로 고쳐 『술꾼의 품격』을 더욱 풍성하게 단장하였다.
그토록 마시고도 이토록 몰랐다니!
인간은 이롭다, 해롭다를 떠나 술을 좇아왔고, 좇고 있다. 올더스 헉슬리는 “알코올은 가난하고 문맹인 이들을 문학과 심포니 콘서트가 열리는 곳으로 데려간다.”고 했다. 우리는? 자칭, 타칭 술꾼들은 과연 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증류된 독주를 왜 ’스피릿‘이라고 부를까? 잭 대니얼스, 조니 워커, 바카디 같은 너무도 귀에 익은 이름들. 그 이름의 실제 주인들은 어떤 시대를, 어떻게 살았을까? 압생트는 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환각 물질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썼을까? 마티니라는 칵테일은 007 영화가 나오면서 제조 방법이 변했다는데, 어떻게 변했을까? 럼의 대표 상표인 바카디는 고향인 쿠바의 카스트로 정부와 어떻게 전쟁을 벌여왔을까? 한국에서 죽어라고 마셔대는 폭탄주의 기원은? 이 모든 궁금증을 『술꾼들의 품격』에서 만날 수 있다.
애주가의 필독서
술이 인류 역사의 한가운데로 들어오면서, 술은 예술가의 창작혼을 불태우는 땔감이 되기도 하고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또 식생활에서 언어까지 다양한 층위의 인간 문화와 섞이면서 이 세상의 술들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성격, 태도, 습관 따위를 드러내는 상징이자 기호가 됐다.
저자는 가장 늦게 태어나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화라는 매체가 이 기호를 빌리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느냐며 술과 영화의 살을 흥미롭게 섞었다. 영화의 주제는 위스키, 럼, 백주, 테킬라, 보드카, 압생트, 칼바도스, 라거 맥주, 에일 맥주, 폭탄주, 한국 고유의 기타재제주와 어우러져 더욱 명료해진다. 각 영화의 주인공 ‘술’에 대한 기본 상식을 담은 코너로 술꾼의 품격을 더한다.
애인처럼 친구처럼, 강렬한 매혹과 마법 같은 위로를 선사해주는 술과 영화 이야기. 임범의 『술꾼의 품격』은 애주가의 필독서로 더할 나위 없다.
[책속으로 이어서]
오래전에 집에서 형과 함께 〈노킹 온 헤븐스 도어〉(토머스 얀 감독, 1997년)라는 독일영화를 비디오점에서 빌려 봤다. 2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젊은 남자 둘이 한 병실에 입원하게 됐다.
한 남자가 말한다. “내 머릿속에 주먹만 한 종양이 있대. 며칠 못 산대.” 다른 남자가 말한다. “나는 골수암 말기래.”
짠하다. 병실 벽에 걸려 있던 십자가도 짠했는지, 갑자기 냉장고 위로 툭 떨어지고 냉장고 문이 열린다. 그 안에 선물처럼 술병이 하나 들어 있다. 테킬라가! 둘은 술병을 들고 병원 구내식당으로 간다. 식당 냉장고를 뒤져 레몬과 소금을 찾아낸다. 테킬라를 마신다. 이때 형과 나는 비디오를 중지시켰다. 아쉽게도 집엔 테킬라와 레몬이 없었다. 대신 소주와 귤과 소금을 가져와선 텔레비전 앞에 놓고 다시 비디오를 틀었다. -관능을 마시면 사고도 능동적으로 친다 [테킬라와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이 영화는 술을 자못 진지하게 다룬다. 술을 빚는 노동 과정과, 주신에 대한 제사가 나올 뿐, 진탕 술 마시는 장면은 없다. 나아가 술은 투쟁의 무기가 된다. 여주인공과 가마꾼이 부부가 된 뒤, 바로 9년 뒤로 건너뛰어 일본군의 침략과 마주한다. 일본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본군에 저항한 이들을 붙잡아 산 채로 껍질을 벗긴다. 그렇게 끔찍하게 죽어간 이가, 여주인공의 양조장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이다.
주인공 부부와 양조장 일꾼들은 망설임 없이 복수에 나선다. 술독을 묶어서 폭탄을 만들어(말 그대로 폭탄주이다) 일본군 트럭을 공격한다. 가마꾼과 그 아들만 빼고 다 죽는다. 확실히 이 영화엔 단절이 있다. 원시공동체처럼 사는 행복한 마을에, 더없이 적대적인 외부세력이 침입해온다. 그러자마자 두 집단은 그대로 충돌해 터져버린다. 그리고 끝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건 비극이 아니라 지옥이라고.
- 타오르는 햇빛으로 빚어내다 [백주와 붉은 수수밭]
영화에 나오는 술, 압생트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름에 들러붙어 있는 장식들, 이미지들이 좀 많은가. 우선 애호가들의 이름부터 대보자. 랭보, 보들레르, 반 고흐, 모딜리아니, 로트레크, 헤밍웨이, 오스카 와일드…. 하나같이 다 수사가 되다시피 한 이름들이다. 그들은 왜 압생트를 마셨을까.
19세기 들어 부르주아지가 귀족을 대체한 뒤, 예술가들은 부르주아지들과 어울려 시류에 영합하며 돈벌이를 하거나, 아니면 가난 속에 고립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이런 ‘상징적 지위 실추’의 상황에 직면해 보들레르 이하 일군의 예술가들은 일부러 자기 외모나 행동을 차별화했고, 술에 취해 사는 건 그 한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랭보는 압생트를, 외모로 차별성을 알리는 한 방식인 ‘옷’에 비유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술, 혹은 술에 취해 사는 건 그 당시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었다는 뜻일 거다. 그렇다면 예술이 가장 많은 도발과 실험을 일삼던 그 시대에 압생트는, 예술가의 ‘가장 우아하고 하늘하늘한’ 자존심이었다는 말이 된다. 금기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 우아하고 하늘하늘한 예술가의 자존심 [압생트와 토탈 이클립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