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문 대통령 기자회견, 팩트 체크 해보니 ‘낙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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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기자회견, 팩트 체크 해보니 ‘낙제점’

신문사 논설위원들이 아침 ‘사설 회의’할 때 하는 얘기들을 솔직히 말씀드리겠다. 신문이란 미담을 쓰는, 달달한 얘기를 하기보다, 쓴 소리를 많이 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잘 하는 일은 잘 한다고 하자, 칭찬에 인색하지 말자, 이런 얘기를 많이 한다. 예를 들어 청와대가 ‘건국 100주년’ 얘기를 더 이상 꺼내지 않기로 했을 때, 여러 논설위원들이 쓸데없는 이념 논쟁을 하지 않겠다고 한 조치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그렇지만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와 신년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쓴 소리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단 가차 없는 팩트만 갖고 말씀 드리겠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부의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됐다." 그러나 이건 사실과 다르다. OECD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보다 빈부 격차가 심한 나라는 선진국 중진국 중에도 수십 나라가 넘는다. 미국 영국 스페인 캐나다 같은 나라다.

문 대통령은 고집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렇게 말했다. "올해도 국민의 삶 속에서 정부의 경제 정책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확실히 체감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문 대통령은 작년 신년사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삶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 몸으로, 피부로 느끼게 하는 것, 체감, 문 대통령은 체감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고용은 줄었고, 분배는 악화됐다. 통계청이 엊그제 발표한 ‘2018년 고용 동향’을 보면, 지난해 취업자 수 증가 폭은 세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이후 가장 낮았다. 실업자 수는 1997년 IMF 환란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 하락의 첫 번째 원인이 경제 정책이라고 나타났다. 문화일보 사설이 지적하는 것처럼, "삼성전자에서 동네 가게에 이르기까지" 모두 어렵다. 최저임금 인상에 주휴수당까지 시행령으로 강제하면서 소상공인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기업은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런 말도 했다. "전반적으로 가계소득이 높아졌다." 이것 역시 사실과 다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작년 3분기 월평균 가계소득이 하위 20% 계층은 7%, 하위 20~40% 계층은 0.5% 감소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이런 말을 했다. "상용직이 늘어났다." "고용지표가 양적인 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고용이 양적인 면은 미흡했지만 질적인 면은 나아진 것처럼 말했다.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계약기간 1년 이상 근로자를 뜻하는 상용직은 지난해 34만명 늘었는데, 이것은 2006년 이후 증가폭이 가장 낮아진 수치다. 주 36시간 이상 취업자는 72만 명이 줄었고, 주 36시간 미만 고용은 80만 명 늘었다.

문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청년 고용률은 사상 최고다." 과연 그럴까. 청년 고용률은 2000년에서 2007년까지 43~45% 수준이었는데, 2017년 42.1%로 떨어졌다가 작년에 42.7%로 조금 올랐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이것을 ‘사상 최고’라고 했다.

이제 쓴 약을 먹여라. 선거운동 기간 중에 달콤한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 쓴 약을 먹일 때다. 당의정을 써서 어설피 속일 생각 마라. 병(病)을 낫게 하려면 쓴 약을 달여 먹이거나 매우 아픈 침을 깊게 놓아야 한다. 선출직 공직자는 늘 이율배반에 시달린다. 유권자 몸을 건강하게 살리려면 유권자가 싫어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그런데 정책을 펼치려면 당선돼야 한다. 당선 되려면 쓴 약 대신 솜사탕을 약속할 수밖에 없다. 작년 재작년 그걸 해왔다. 사람 만나기가 겁났을 것이다. 민원이 쌓여 있고 얼결에 해주마고 다짐도 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이것의 본질을 깨달아야 한다. 공약집을 불 태워버려야 한다. 지지율이 5%로 내려앉더라도 그렇다.

대중은 거울을 안 본다. 대중은 제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대중은 선택을 한다. 그러나 대중은 선택의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다. 한 번도 책임 진 적이 없다. 대중이 갖고 있는 생각을 한쪽 방향으로 모을 수 있다고 부추기는 사람은 포퓰리스트다. 정치인은 99% 포퓰리스트다. 정치인한테 포퓰리스트하고 욕하는 건 겨울청둥오리한테 넌 철새야 하고 꾸짖는 거나 같다. 철새 정치인이 문제가 아니라 철새 대중이 문제다. 대중은 집단 반성을 안 한다.

국제 사회는 절대로 스스로 선량해지지 않는다. 국제 사회가 모여 뭔가 합의를 이루려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그것은 국지적인 국가사회주의 광기를 조금 식힐 필요가 있을 때, 국내 정치의 괴로움을 잠시 잊고 싶은 지도자들에게 레저를 겸한 해외여행이 필요할 때, 아니 단순히 관저 요리사의 집밥이 지겹고 상대국 대통령궁의 풀코스 정찬이 그리울 때, 급속히 합의를 이룬다.

NHK는 일요일 아침토론을 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보여주는 지도와 그래픽을 화면에 띄운다. 시진핑 김정은 아베 트럼프 넷만 보여주고, 문재인 대통령은 얼굴은 없다. 그게 현실이다. 문 대통령은 아직도 ‘탄핵 정국’에 갇혀 있다. 정의로운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의로운 자는 감사할 줄 모른다. 그들은 스스로 옳다. 그들은 자기들만 약자 편이라고 우긴다.

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가장 화제는 경기방송 김예령 기자가 던진 질문이었다. "현실 경제가 굉장히 얼어붙어 있습니다. 국민들이 많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굉장합니다. 대통령께서 계속해서 이와 관련해서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강조를 하고 계셨는데요. 그럼에도 대통령께서 현 정책에 대해서 기조를 바꾸시지 않고 변화를 갖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싶고요.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며 질문을 시작한 김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통해서 성장을 지속시키겠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여론이 굉장히 냉랭하다." 선배로서, 개인적으로 김 기자에게 밥 사주고 싶다. 정말 할 말을 하는 기자였다.

문 대통령은 이에 이렇게 답했다.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왜 필요한지, 우리 사회의 양극화·불평등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오늘 제가 기자회견문 (발표) 30분 내내 말씀드린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어 "그에 대해서 필요한 보완들은 얼마든지 해야 하겠지만, 오히려 정책기조는 계속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은 이미 충분히 드렸다"고 했다. "새로운 답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 얼굴은 굳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이런 돌직구 질문에 여유를 가질 줄을 모른다. 문 대통령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다. 이럴 때 김 기자를 칭찬할 줄 알아야 한다. "좋은 질문이다. 아픈 데를 찔렀다. 아픈 데를 찔렀다는 것은, 대통령이 내가 가장 신경 써서 답변해야할 대목이란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 기자에게 고맙다", 이렇게 나와야 그게 대통령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30분 동안 대답했는데 뭘 들었느냐, 하는 식으로 퉁을 주려했다. 그게 문 대통령의 한계다. 동전은 양면이 있는데, 뒷면을 말하지 않고 앞면만 말하는 사람 같다.

문 대통령은 김태우 수사관, 신재민 사무관, 두 사람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김태우 수사관에 대해서는 "자신이 한 행위를 놓고 시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고, 신재민 사무관에 대해서는 "자기가 보는 좁은 세계 속의 일을 갖고 문제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매몰차게 끊어내는 말을 했다. 김태우, 신재민, 두 사람 모두 공무원이다. 두 사람은 청와대에서 벌어진 일, 청와대에서 시작된 일을 갖고 비상 호루라기를 불었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청와대의 주인인, 청와대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일단 국민들께 사과부터 해야 옳다. 그리고 공무원 최고 책임자로서 두 사람을 다독이는 말을 해야 옳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그렇게 할 줄을 모른다. 그게 우리 대통령의 한계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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