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책은 사회의 최전선…딱딱하고 불편한 얘기 계속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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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1.12. 오전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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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 스토리

책쓰는 ‘재택’ 경제학자 우석훈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로

직장갑질 없앨 근본적 대안 제시

“민주주의 안 하는 회사는 망할 것

청와대·공기업, 대기업이 선도해야”

사회문제 제기하는 책 줄곧 써

‘88만원 세대’ 등 36권 달해

“사회 복잡할수록 사회과학 중요

시대에 처지지 않는 한 책 쓸 것”

“젊은 학자들 먹고살기 힘들어

기존의 것 엎을 패기 필요한데

토론회 패널도 다 늙은 사람들

지적으로 사회가 건강하지 않은 것”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지금까지 모두 36권의 책을 냈다. 지난 7일 우 박사가 서울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예나 지금이나 학교나 연구소 등에 적을 두지 않고 연구활동을 지속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월급이나 연구비 없이는 ‘연구 자립’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비추면 경제학자인 우석훈 박사는 독특한 존재다. 그는 집에서 아이 둘을 돌보면서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외부의 ‘자리’ 제안도 마다하고 책 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런 그를 일컬어 사람들은 ‘사회과학 전업작가’라고 부른다. 전공은 경제학 등 사회과학이지만, 재주가 많아 소설과 에세이도 여러 권 쓰고 영화기획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올해 개봉될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가 공식적으로 이름을 건 첫 기획작이지만, 2015년에 나온 <사도>(감독 이준익)의 숨은 기획자도 그였다. 우 박사는 최근 직장 민주주의에 관한 책(<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을 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자칭 ‘C급 경제학자’다. 이론을 만들거나(A급) 수정하는(B급) 사람이 아니라 이론을 적용해서 행동하는(C급) 경제학자라는 뜻이다. 그는 학교나 연구소에 적을 두고 있지 않다. 우석훈(51·호칭 생략)의 연구소 겸 집필소는 집이다. 우석훈은 매년 2~4권의 책을 쓴다. 지난해에는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와 <국가의 사기>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등 3권을 펴냈고, 2017년에는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와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를 썼다.

‘지성의 산실’인 그의 집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기로 한 부인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집 근처인 서울 평창동의 한 카페를 인터뷰 장소로 제안했다. 고양이용품 외에는 새로 사는 물건이 거의 없다는 그는 예상대로 주황색 방한복을 입고 나타났다. 그의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우석훈의 임시연습장’ http://retired.tistory.com), 겨울철 인터뷰 사진 등에서 눈에 익은 옷이다. 겉옷 안에는 인터뷰용 양복 차림이었지만, 신발은 흰색 운동화였다. 그는 오래전부터 어딜 가든 무슨 옷에든 편안한 흰색 운동화를 신는다. 슈트에 운동화 차림은 규격과 자유로움 사이의 조화 또는 타협이라는 우석훈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책은 한 사회의 최전선이다. 우리 사회가 부딪히고 있는 문제를 책으로 계속 제기하겠다.” 사회과학 저자로 활동하고 있는 우석훈 박사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사직서 안 내고 할 말 하는 게 민주주의

―직장 민주주의에 관한 책(<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에 대한 반응이 어떤가.

“잘 안 팔린다. 출판 경기가 안 좋은 것도 있지만, 사회가 전체적으로 연성화된 탓도 있는 것 같다. 책도 소프트해지는 추세인데 사회과학을 다루는 책은 하드한 장르다. 그러나 강연과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 등 차츰 사회적 논의는 시작되는 것 같다.”

―근래 이슈가 된 직장 갑질 문제 등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것 같다.

“갑질이 시원한 단어이긴 한데 본질적인 용어는 아니다. 자칫하면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보게 만든다. 직장 갑질 다음 단계가 뭐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갑질을 한 사람을 끌어내려서 감옥을 보낼 거냐 말 거냐는 얘기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그 사람이 감옥 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석훈은 책에서 직장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팀장 연수원’ 같은 교육기관을 만들어 직장 간부인 팀장들에 대한 교육을 할 것을 제안했다. 또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가족친화 인증’처럼, 일정 기준을 통과하는 기업들에 ‘직장 민주주의 인증’을 해주는 제도 도입을 건의했다.

―제도 도입이 쉽게 되겠나.

“요즈음 유행하는 용어가 워라밸(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이다. 워크 즉, 직장은 나쁘고 라이프 즉, 직장 밖의 삶은 좋다면서 밖에서 기쁨을 찾겠다는 거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그게 맞는데 사회적으로 그게 괜찮나. 아니다. 그것은 결국 워크를 지옥으로 계속 두자는 것이다. 선진국은 그렇게 안 했다. 회사를 지옥으로 방치하는 것은 정치의 실패를 말한다. 이건 합의도 쉽고 논의만 하면 빨리 해결할 수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이 높아졌기에 기업 민주주의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건 돈이 엄청나게 드는 것도 아니지 않나.”

―당장 가능한 것은 뭔가.

“팀장 교육이 가장 손쉽고 빠르다. 기업 인증제는 체계화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저런 직장 민주주의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하는 것은 지금이라도 가능하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나 공기업이 앞장서서 못할 이유가 없다. 얼마 전 기획재정부 전직 공무원의 폭로가 있었는데 직장 민주주의가 되면 그런 사람이 사직서를 내지 않고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다. 내부에서 충분히 토론하고 대화하고, 그게 안 되면 언론에 얘기하는 거다. 그런 정부, 그런 공기업이 되어야 하지 않나.”

―대기업들은 기업 이미지 차원에서라도 선도적으로 도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주말에 함께 등산 안 가는 기업이라는 게 20대 예비취업자한테는 이미지를 좋게 만들고, 소비자들한테는 신뢰를 줄 거다. 기업들이 가족친화 인증도 얻으려고 하는데, 알고 나면 이걸 안 할 리가 없다.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기업은 아직 없지만, 삼성 계열사 중 한곳에서 강연 요청은 들어왔다. 강연을 듣겠다는 것 자체가 큰 변화다. 공기업 가운데서는 국민연금공단에서 첫 강연(노조 초청)을 했다. 저도 대학 때부터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는데, 앞으로 이것은 밥을 먹여주느냐 정도가 아니라 안 하는 기업은 굶어 죽게 생겼다. 모든 회사가 다 민주주의를 안 하고 있을 때는 문제가 안 되는데 몇군데가 시작하면 하지 않는 회사는 도태된다.”

우석훈은 2005년 <아픈 아이들의 세대>를 내면서 저자로 등장했다. 미세먼지 문제가 우리나라에서 거의 제기되지 않았을 때다. 2007년에는 당시 한국 사회를 강타하며 ‘88만원 세대’를 일반명사로 자리잡게 한 <88만원 세대>를 박권일과 함께 썼다. 이 책은 25만부 이상이 팔렸다. 그가 지금까지 쓴 책은 모두 36권이다. <아날로그 사랑법> <모피아> 등 에세이와 소설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회과학 책이다. 이 때문에 ‘사회과학 전업 작가’라는 호칭이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가 제기한 주제는 미세먼지, 20대 청년 문제, 직장 민주주의 등 시대를 앞서간 게 많다.

우석훈 박사가 쓴 책의 일부. 그는 지금까지 36권의 책을 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그동안 우리 시대가 부딪치거나 닥칠 문제를 계속 제기해왔다.

“딱딱한 내용이라도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사회를 잘 만들어갈까,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학문이 뭐냐. 쉽고 박수받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을 얼마나 불편하게 만들었으면 당대 사람들이 ‘미안하지만 너는 죽어줘야겠다’고 했겠나. 마르크스도 자본주의 지지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책들이 시장에서는 잘 안 팔리는 경향이 있는데.

“안 팔리면 안 하면 그만 아니냐고 하겠지만, 사회과학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나 사회가 어디 있나.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병원 가까운 데 있는 게 중요하듯이 사회가 복잡해지면 철학과 사회과학이 제일 필요하고 중요하다. 철학이 사회의 기본체질을 강화시키는 거라면, 사회과학은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학문이다. 철학과 사회과학을 멀리하는 선진국은 없다. 우리나라가 인구가 적어서 사회과학이 설 자리가 적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식이라면 인구 천만명이 안 되는 벨기에와 스웨덴, 노르웨이는 사회과학 책이 아예 없어야 한다. 현실은 반대다. 복지국가 틀을 제시한 군나르 뮈르달은 스웨덴의 경제학자이다. 이들 나라에서 좋은 사회과학 책이 많이 나온다. 한국은 그런 나라들보다 더 큰데도 사회과학이 죽는다는 것은 병적인 현상이지 자연스러운 트렌드가 아니다.”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공식적인 자리에는 항상 정장에 흰색 운동화를 신는다. 규격과 자유로움 사이에서 선택한 그 나름의 타협이자 조화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젊은 학자들이 등장 못 하는 까닭

―책을 고집하는 이유가 뭔가.

“책은 아방가르드 즉, 사회의 최전선이다. 방송에는 검증돼서 익숙한 것들만 나온다. 외국에서는 잡지가 책보다 약간 먼저 가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잡지도 다 죽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책밖에 없다. 시대에 뒤떨어진 얘기를 한다면 그만 써야겠지만, 시대와 같이 가거나 조금 빠른 문제 제기를 한다면 아직 남아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한다.”

―책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생활을 할 만한가.

“저는 일찍 시작해서 버틸 만하고, 독자들에게 고맙게도 아직은 인세가 생활비 평균보다는 약간 많다. 그런데 진짜 괜찮다고 하는 사회과학 관련 책들이 시장에서 버티지를 못하니 새로운 저자가 데뷔하기 힘들다. 젊은 학자들이 한국의 대표 사회과학 저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기가 어렵다. 대학교수가 아닌 사회과학자는 정말 먹고살기가 어렵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야 새로운 시각과 패기가 생기는데, 이건 정말 문제다. 이어령 선생이 ‘(당대의 대가였던) 염상섭도 틀렸고 다 틀렸어’라며 앞세대 사람을 비판하면서 평론가로 등장한 때가 그의 나이 20대 초반이었다. 서로 비판하고 기존의 것을 엎어버리는 사이클이 작동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 신년 방송 특집토론회에 나온 패널들도 다 늙은 사람들이더라. 지적인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않은 거다.”

파리 제10대학에서 생태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우석훈은 1996년 현대그룹(현대환경연구원)에 입사했다. 귀국 직후 시간강사 생활을 잠시 하다가 “너무 피폐해져서 대학이든 어디든 가장 빨리 오라는 데에 갔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현대에서 나와 에너지관리공단으로 직장을 옮겼다가 김대중 정부 때 국무총리실에 파견 근무를 했다. 유엔 기후변화협약 정부 대표단으로 국제협상에 참여했다. 2012년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를 도왔다. 2014년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으로 일했고, 2016년 총선 때는 민주당 총선공약단 부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경제상황이 어렵다. 그래서인지 성장에 방점을 찍으면서 경제에 올인하려는 듯한 분위기도 느껴진다.

“경제는 더 나빠질 것 같다. 경제 운용 패턴이 과거 정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모든 정권은 출범 초기에는 노태우 때의 보통사람 시대니 김영삼 때의 세계화 경제니 이번 정권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이니 하면서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정책을 편다. 그러다가 반환점을 돌면 초조해하면서 토건을 한다. 이 정부도 소리소문 없이 토건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 예산이 60조원 정도 되는 것 같다.”

―최저임금 정책에서도 다소 후퇴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나. 정말 속도가 빨랐나.

“최저임금 인상은 일본 아베 정권에서 성과를 거두는 등 세계적으로 보면 보수정권에서도 많이 추진했다. 시간이 걸려야 효과를 알 수가 있다. 다만 특정 업종이 최저임금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도록 보완책을 잘 설계했어야 했다. 최저임금 정책은 아직도 진행 과정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결정권을 국회로 옮겼으면 좋겠다. 논의 과정을 완전 사회화하면서 보완책을 바로 입법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독일이 그렇게 한다.”

―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

“첫번째는 수소차에 대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기술적 타당성이 전혀 없는 부분에 8조원을 쏟아붓겠다는데 이렇게 되면 태양광 투자가 줄어드는 등 산업정책에 왜곡이 일어난다. 수소차에 대한 정책을 보고, 이공계 쪽에서는 ‘로비 의혹’까지 제기하는 등 강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토건 부분은 꼭 필요한 것과 어쩔 수 없는 것은 하더라도 지금 책정한 예산의 반은 복지나 문화, 지식 쪽으로 돌려야 한다. 이를테면 철도 계획 하나만 빼도 전국 대학의 모든 강사들의 강의료를 다 지원할 수 있다. 몇십년째 큰집으로 옮기자며 허리띠 잔뜩 졸라맨 채 식구들에게 먹을 거나 즐길 거 등에 돈을 못 쓰게 하는 가장과 같다.”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집에서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하며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도 한다. 그는 영어유치원이나 학습지 등 사교육을 거부한 채 아이들을 놀게 하는 교육방식을 택하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마친 그가 근처 어린이집에 가서 두 아들과 함께 귀가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아이들에게 학습지 교육도 안 해

우석훈은 집에서 공부하고 글을 쓰는 한편, 매일매일 아이 둘을 챙겨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보호자, 집에 오면 함께 놀아주는 친구 역할도 한다. 현장 아이디어가 많은 우석훈은 공공기관장 등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다 거절했다고 한다.

―책에 집중하려고 공직을 포기했나.

“순서가 그렇지는 않다. 공직에 갈 생각도 있었는데 둘째가 아프고 해서 판단을 내려야 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하길래 식구들을 팽개치고 아픈 애를 두고 나다녀야 하나 싶더라. 예전에는 내가 하면 더 잘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나이가 오십쯤 되니까 내가 해도 잘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누가 해도 거기서 거기라면 굳이 내가 해야 할 필요가 없지 않냐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또 처음 학자가 됐을 때는 경제와 관련해서 역사에 내 이름 한줄만 들어가면 좋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그것도 <88만원 세대>로 어느 정도 이룬 거 같다. 그러니 이제는 사회에 진짜로 의미있는 기여를 하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높은 자리를 좇아다니다가 이다음에 죽을 때가 되면 너 뭐 하고 살았던 거냐고 스스로 후회할 것 같았다. 다른 것을 포기하고 나니까 책 쓰는 것이야말로 정말 명예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겠더라.”

―자기가 배우고 익힌 것을 현실에서 실현하고픈 욕구가 학자들한테 있지 않나.

“저는 해볼 만큼 다 해봤다. 정책도 만들어보고, 총괄하는 지위에 있어보기도 했다. 그래서 더 해보고 싶은 게 사실 별로 없었다. 물론 잘해 보고 싶은 것은 아직 많이 있다. 사진을 더 잘 찍고 싶고, 체계적이고 어려운 요리에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다. 하하.”

새 책 주제는 10대 남자아이
“20대 문제의 출발점은 10대
중3 똑똑해지지 않으면 다 망해”


문 정부 경제정책에도 쓴소리
“과거 정부들처럼 토건으로 전환
수소차에 8조원 투입 이해 안 돼”


두 아이 사교육 전혀 안 시켜
“어릴 때 많이 놀리는 게 참교육
사회 지도자로 키우고 싶다면
조기유학·특목고 보내면 안 돼”


그의 자녀 교육 방식은 아이들을 학습시키고 훈육하는 게 아니라 공부는 가능한 한 멀리하게 하면서 많이 뛰어놀도록 하는 것이다. 올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큰애는 영어유치원은 말할 것도 없고 학습 위주의 일반 유치원에도 간 적이 없다. 세살 어린 동생과 함께 놀이 위주로 진행하는 동네 어린이집에 다닌다. 우석훈의 아이들은 둘 다 한글이나 산수, 한문 학습지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한글만 스스로 조금 깨친 정도이다. 지난해 9월 ‘에스비에스(SBS) 스페셜―사교육의 딜레마’ 편에 출연했던 우석훈은 한 유명 입시 컨설턴트한테 “부모가 똑똑해도 아이들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부모 생각에 맞춰 아이들을 작은 규모의 안락한 데서 키운다”고 ‘야단’을 맞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사교육 반대 철학과 소신을 지키고 있다.

―아이들이 뒤처질까봐 염려는 안 되나.

“그런 걱정은 안 했는데 큰애 초등학교를 사립으로 보낼까 공립으로 보낼까를 놓고는 잠시 고민했다. 통학버스 때문에 사립학교를 생각해봤는데 제가 더 고생하더라도 공립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말하자면, 그건 유럽식 스탠더드의 엘리트 교육을 시켜주고 싶어서다. 뭐 특별한 건 아니다. 우리처럼 어릴 때부터 암기교육을 시키는 게 아니라 초등학교까지는 그냥 놀리는 거다. 학습 공부는 중고교 때가 되면 다시 고민하려고 한다.”

―잘 놀리는 게 유럽식 엘리트 교육이라는 건가.

“그렇다. 유럽의 비싼 학교는 지금도 <15소년 표류기>처럼 아이들을 배 태워 그리스까지 여행시킨다. 그런 것을 통해 서로 단결하고 협동하는 훈련은 시키는데 암기를 시키지는 않더라. 어학 교육도 필요할 때 하면 짧은 시간에 익힐 수 있는데 왜 어렸을 때부터 스트레스 받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 시간에 다른 거 하면서 노는 게 낫다. 예능방송을 보면 우리나라에 온 외국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 대부분은 한국에 와서 1년 정도 만에 우리말을 다 익혔더라. 우리도 마찬가지다. 외국어는 나중에 커서 필요할 때 익히면 된다. 요새는 초등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치니까 거기에서 너무 소외감을 안 느낄 정도로만 하면 충분하다. 어릴 때 외국어 배우는 것보다 세상을 보고 배우는 게 훨씬 낫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영어유치원이나 학원 보낼 돈으로 여기저기 자주 놀러다닌다.”

우석훈 박사는 영화기획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올해 개봉할 <나랏말싸미>는 그가 기획한 첫 영화다. 사진은 2012년 영화사인 타이거픽쳐스의 서울 퇴계로 사무실에서 우 박사가 기타를 치고 있는 모습. 그는 기타 외에 해금 연주도 수준급이다. 우석훈 박사 제공
중학생 때 소설을 읽지 못하면…

우석훈의 이런 생각은 오래됐다. 큰아이가 2살 때(2013년) 그는 자신의 블로그(우석훈의 임시연습장)에 “아들은 영어학원은 물론이고 어떤 학원도 보낼 생각은 없다. 정 뭔가 교육을 시켜야 한다면 그냥 내가 시킬 생각이다. 그래서 대학을 갈 수 없다면? 지금 생각으로는 안 되면 마는 거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죽어라고 대학을 가야 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적었다.

―아직도 아들이 대학을 못 가도 좋다는 생각인가.

“자기가 자기 인생 사는 건데 대학도 싫다면 그만이다. 부모의 행복이 자녀의 기쁨이 아니지 않나. 반대도 마찬가지다. 자기 삶을 사는 것을 빨리 찾을수록 그 애한테도 좋다. 엄마 아빠를 위해 사는 것은 아무리 성공해도 불행하다.”

그는 전략적인 차원에서라도 아이들을 조기 유학이나 특목고에 보내지 말라고 부모들에게 조언한다.

“자기 자식을 사회 지도자로 키우려면 제일 먼저 하지 말아야 할 게 조기 유학이다. 그렇게 하면 국회의원이나 장관은커녕 하다못해 시의원도 되지 못한다. 영국의 보수들은 자식을 키울 때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절대로 고립시키지 않는다. 노동자 옆에서 자기 자식이 럭비나 축구 등의 스포츠를 하도록 키운다. 부모 후광으로 조기 유학을 갔다 온 아이들은 자기 인생의 절정기 때 사회 지도자가 될 수 없게 된다. 또 지금 10대나 그 아래의 아이들 세대에서는 국회의원이 특목고에서도 나오지 않을 거다. 일반고교에서 같이 고생하면서 컸던 애들 중에서 나올 것이다. 프랑스의 사르코지도 엘리트들이 다니는 에콜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 가는 유니버시티(파리 10대학) 출신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사르코지를 기점으로 주류가 바뀔 거라고 얘기한다. 우리도 그럴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사회과학자답게 그의 관심은 요즈음 10대들에게 많이 가 있다. 10대 문제는 올해 쓰고 싶은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가 10대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큰아이 때문이다. 지난해 말 7살 난 큰아이가 드디어 게임기를 사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학원 뺑뺑이를 돌지 않아 시간이 많은 아이의 손에 게임기나 휴대폰이 들어가면 대부분 어떤 경로를 밟을지를 아는 마당에 선뜻 사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또래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을 안 사 주고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다.

―블로그(우석훈의 임시연습장)에 “모두가 포기한 중3 남학생이 똑똑해지지 않으면 우리는 다 망한다”라고 썼더라.

“농업에 대한 책, 젠더 경제학에 대한 책을 쓰려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두가지 모두에서 10대 남자들이 가장 뜨거운 분석 대상이다. 젠더 문제에서 남자들이 여성을 혐오하는 것은 거의 한국에만 있는 현상이다. 다른 나라는 보통 외국인 노동자한테 혐오가 가는데 우리는 여성에게 간다. 그 출발점을 보니 중2~3학년이더라. 20대가 되면 이미 ‘완성형’이다. 사교육 문제를 다룬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면 전교 3등까지만 나오고, 그 밑으로는 관심도 없는지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실제 현실에서는 특목고에 가지 못하는 평범한 10대들은 대부분 게임으로 빠진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이들을 완전히 방치해놓고 있다. 20대의 문제를 풀려면 10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0대들에 대한 학교 교육 실패의 예로 중학생 때 소설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을 들기도 했던데.

“중학교 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못 읽으면 평생 못 본다. 어른이 되면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감성이 메말라서이기도 하다. 중학생 때는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자기가 아는 것과 재미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책 한권을 다 읽는다. 전세계의 중학생들이 다 그렇게 하는데 우리만 못 한다면 일상의 디자인이 잘못된 거다. 중학교 때 소설을 충분히 읽지 못한 채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다.”

1980년대 후반의 대학생이 대부분 그랬듯이 그 역시 ‘운동권’이었다. 대학(연세대 경제학과) 2학년 때인 1987년 6월 연세대 정문 앞에서 시위 도중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질 때 우석훈도 현장에서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었다. 3학년 때부터는 사회변혁을 꿈꾸는 민중운동에 뛰어들어, 버스기사 등을 상대로 밤에 노동법을 가르쳤다. 1990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것도 운동의 연장선이었다. 6년 만에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뒤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활동과 녹색당에 가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지금도 그는 좀 더 정의로운 사회, 좋은 국가를 만들고픈 꿈과 이상을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우석훈 박사는 지난 7일 서울 평창동 한 카페에서 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학자는 책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12년 대선 때 우석훈 박사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했다. 사진은 2012년 12월17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정권교체와 새로운 정치를 위한 범국민선언’에서 당시 문 후보와 함께한 우석훈 박사(앞줄 왼쪽 둘째).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어깨싸움 대신에 나부터 행복해지기”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삶에 대한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젊은 시절 좌우명은 ‘굵고 짧게’였지만, 지금은 ‘가늘고 길게’다. ‘가늘고 길게’의 의미는 “막 살거나 전향을 해서 거꾸로 사는 삶이 아니라 속도를 좀 늦추고 성과를 덜 기대하는 삶”(임시연습장)의 표현이다. 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대신에 ‘할 만큼 하고 안 되면 거기에서 멈추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집착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는 삶이다. 요즈음 그는 지인들에게도 늘 “살살 살라”고 말한다.

“나는 모두가 행복해야 진짜 행복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모두 행복해져서 나도 행복해지는 날이 죽기 전에 올지 어떨지 모르겠다. … 일하는 시간 내내 불행하다가 완전히 일을 놓고 나서야 행복해지는 것,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일단 내가 먼저 좀 행복해야겠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행복을 기다려줄 수 있을 것 같다.”(<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페이스북에 “이제는 어깨싸움에서 빠져나왔다”는 표현을 여러번 썼더라. 자리를 놓고 사람들과 경쟁 또는 권력다툼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그런 게 재미가 없다. 솔직히 먹고살기 힘들다면 지금도 그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일찍부터 그럴 필요가 없었다.(대기업 다니던 시절 번 돈이 꽤 됐다.) 굽신거려가면서까지 무엇을 하지는 않겠다고 마음먹고 나니까 다 내려놓게 되고, 그러니 시간 여유도 많아졌다. 긴 시간을 뭘 하고 지내나 생각하게 됐는데 보람있는 것과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을 하고, 티가 안 나는 일이라도 하자고 결심했다.”

오후 4시30분에 맞춰 아이들을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향하면서 우석훈은 말했다. “학자로서 제자들을 기르지 못하는 점이 제일 아쉽다. 그러나 결국 학자는 책으로 남는다. 이탈리아의 실패한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나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철학자 애덤 스미스도 책으로 기억되는 거다.”

아, 우석훈은 C급 경제학자가 아니라 A급 경제학자를 꿈꾸고 있구나. 학교도 ‘자리’도 멀리한 경제학자, 일상의 재미와 행복을 누리는 글쟁이,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교육철학을 지키는 아버지가 앞으로 내놓을 지적 생산물이 기대됐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낙천낙선 운동을 벌이는 우석훈 박사. 왼쪽부터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소설가 서해성씨, 우 박사, 선대인 당시 세금혁명당 대표. 사진 <오마이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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