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우디 앨런의 엠마 보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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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4.21. 오전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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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의 맨해튼 리얼리티
영화 '블루 재스민' 포스터
‘블루 재스민’은 2000년대 만들어진 우디 앨런의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다. 성공적인 결혼을 통해 뉴욕 상류층 삶을 살게 된 재스민은 그러나 남편의 몰락 후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다. 결국 샌프란시스코 변두리에 사는 이복 여동생의 집에 얹혀살게 되지만 잘나가던 시절의 자신을 잊지 못해 기행을 반복한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상류층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 화려했던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기대에 부풀지만 마지막 순간 그녀의 과거가 폭로되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영화 끝에서 재스민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채 과거를 떠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몹시 화가 났다. 그가 여주인공을 너무나도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분노는 의혹으로 이어졌다. 혹시 저 집요한 가학성이 우디 앨런의 본모습이 아닐까? 나는 그간 감탄하며 보았던 그의 영화들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황은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들을 너무 많이 남겨 놓았던 것이다. 이혼 위기에 빠진 커플을 다룬 1992년 영화 ‘부부 일기(Husbands and Wives)’에 실제 자신의 아내를 출연시킨 뒤 정말로 그녀와 이혼했다. 79년 영화 ‘맨하탄’에서 어린 여자와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던 그는 현실에서 막 미성년을 벗어난 의붓딸 순이 프레빈과 97년 결혼을 했다. 게다가 언제나 그는 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우디 앨런 본인의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가 상상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그의 영화 속 등장인물들도 상상과 현실을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이 사람은 뭘까 싶어 섬뜩해진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로 혼란스러운 것은 본인이 아닐까? 물론 그 혼란은 전적으로 본인의 탓이다. 그는 이상한 호기심으로 인해, 혹은 막을 수 없는 충동이나 야망으로 인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혹시, ‘블루 재스민’은 다름 아닌 우디 앨런 본인의 이야기가 아닐까?

마담 보바리
영화에서 재스민이 몰락에 이르는 과정은 우디 앨런이 순이 프레빈과의 스캔들로 자신의 커리어를 파괴했던 것과 비슷하게 자기 파괴적인 데가 있다. 재스민은 남편의 외도에 분노하여 그의 죄를 FBI에 밀고했고, 그 결과 남편은 자살에 이르렀다. 그렇게 그녀는 뉴욕 상류층의 삶을 순식간에 잃었다. 우디 앨런 또한 스캔들로 뉴욕의 문화계 명사 자리를 잃었다. 물론 그의 경우, 아내였던 미아 패로는 재스민의 남편처럼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고 전적인 피해자이다. 하지만 우디 앨런과 재스민 둘 다 자신이 저지른 어떤 일로 인해서 순식간에 파멸에 이른 것은 유사한 데가 있다. 그 후 둘은 모두 자신의 원래 삶을 되찾기 위해 애를 쓰는데-재스민은 새로운 결혼을 통해, 우디 앨런은 새로운 영화들을 통해서-결국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일들이 발목을 잡아 재기에 실패한다.

생각할수록 두 사람은 닮았다. 순수하게 매력과 재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는 점에서. 뉴욕 사교계를 동경하고, 마침내 그곳에 입성하여 꿈꾸던 삶을 살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는 순식간에 추락해버렸다는 점에서 말이다. 망하고 나서도 화려했던 옛날을 도무지 잊지 못하는 재스민의 허영심을 집요하도록 파고드는 우디 앨런의 가학적인 시선은 결국 자신을 향한 것은 아닐까? 허영심으로 가득 찬 엠마 보바리를 파멸로 몰아넣은 플로베르가 “엠마는 다름 아닌 나”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말이다.

1856년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를 발표했을 때 독자들은 그의 부도덕한 이야기에 분노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포르노적인 묘사였지만, 진짜로 사람들을 화나게 한 것은 그의 서술 태도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들과 독자들, 심지어 서술자 자신을 향한 무자비한 공격성이 마담 보바리에는 존재한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순도 높은 가학성이 그 이야기를 최초의 현대소설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소위 현대적 세련됨의 핵심에는 엄청난 가학성이 존재한다.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파괴적인 힘 말이다. 그에 관해 우디 앨런만한 전문가도 드물 것이다. 그리고 그 가학성의 무대로서 뉴욕만큼 적절한 장소도 없는 듯하다.

김사과 소설가 sogreenapple1@gmail.com

김사과 장편소설 『미나』 『풀이 눕는다』, 단편집 『02』 『더 나쁜 쪽으로』 등이 있다. 2016년부터 미국 맨해튼에서 글 쓰며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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