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하일지 일문일답 "나는 페미니스트,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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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3.15. 오후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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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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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도중 ‘미투 운동’에 참여한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유명 소설가 하일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본명 임종주·63)가 15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미 ‘미투 운동’으로 공론화된 사안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을 ‘2차 피해를 준다’면서 나쁜 사람으로 모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이미 뉴욕타임스에 여성 문제와 관련한 글을 기고한 적이 있는 페미니스트이며, 나의 부분만 보고 망신을 주는 문화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전날 문예창작과 1학년 전공필수 강의 ‘소설이란 무엇인가’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53)의 성폭행 혐의를 고소한 전직 정무비서 김지은씨(33)가 “질투심 때문”에 폭로에 나서게 됐다고 말하는 등 피해자의 사생활을 거론하며 음해성 발언으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덕여대 재학생 커뮤니티 게시판에 지난 14일 올라온 게시물에 따르면 하 교수는 해당 강의에서 “만약 안희정이 아니라 중국집 배달부와의 진실공방이었으면 사람들이 관심 안 가졌을 것”이라며 “작가는 글을 진실되게 써야 하며 꾸미지 말아야 한다”라고 강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 교수는 ‘왜 김씨가 실명을 밝히면서까지 폭로했다고 생각하냐’는 학생의 질문에 “결혼해준다고 했으면 안 그랬을 것”이라며 “질투심 때문”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또한 소설 <동백꽃>을 수업 자료로 활용해 설명하던 중에는 “처녀(점순)가 순진한 총각(화자인 ‘나’)을 X먹으려고 하는 내용”이라며 “점순이가 남자애를 성폭행한거야. 얘도 ‘미투’해야겠네”라고 말했다.

문예창작과 학생회는 15일 성명을 내고 “하 교수는 성희롱과 다름없는 발언을 가해 학생들에게 정신적 상해를 입혔고 미투 운동의 의도를 비하하는 조롱을 일삼았다”고 비판하며 하 교수에게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하 교수는 15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큰 문제가 될 줄 몰랐다”면서 “(내) 허가 없이 (강의) 텍스트를 준거 자료로 삼아 비난의 화살을 쏟아 붓는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일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연합뉴스


다음은 하 교수와의 일문일답.

-학생회가 밝힌 강의 내용을 한 것이 사실인가.

“나도 기억은 잘 못하겠는데 유사한 워딩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평소 교실이라는 데에서는 비교적 절제하고 말을 하는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데, 강의가 잘 될 때는 말이 잘나가기도 하고 아닐 때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별 것도 아닌 문젠데 커졌다.”

-강의에서 하 교수가 안 전 지사를 고소한 김씨에 대해 ‘원해서 한 일을 정치적인 의도로 거짓 폭로한 것’이라고 발언했다고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있다.

“어제(14일) ‘소설은 인간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그런 말이 나왔다. <마담 보바리>, <동백꽃> 등을 같이 읽으면서 소설가는 인간을 탐구하고, 인간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강의를 했다. 그러다가 미투 운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성들의 일련의 발언을 듣다보면 마치 욕망이 없는 것처럼, 미성년자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소설가는 인간의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말하다가 말을 삐끗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학생들이 그렇게 곡해를 해서 들었으면 내가 교육자로서 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또 ‘정치적인 의도’라는 말은 한 적이 없다. 그저 인간의 본질의 문제에서 생각해보자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가 거짓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냐는 이야기였다. 소설가는 인간의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다. 통념에 따라 누구는 나쁜 사람이고 누구는 좋은 사람이라고 흑백 논리에 빠지면 소설가가 될 수 없다는 요지였다. 학생들 중에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데 핵심은 그게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건드린 것은 사실이고, 그것을 가급적 피해갔으면 좋았을 텐데 실수를 한 부분이 있다.”

-강의 도중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난 그게 그렇게 밖으로 흘러나가서 큰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내 생각은 이렇다. 우리는 사회에 던져진 문제에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 자기 의견을 말하면 ‘2차 피해를 준다’고 하면서 금기사항을 어긴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 사람(김씨)이 (미투 운동을 통해 성폭력 피해를) 공론화를 시켰으면 거기에 대해서 (누구나) 말할 수 있다. 2차 피해라는 이름으로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모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미투 운동을 조롱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미투 운동에서 약자가 강자에게 (문제 제기) 하는 것 충분히 이해를 하지만, 언론이 충분한 팩트 체크 없이 권력을 휘두르게 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어 (말이) 격하게 나온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또 최근에 한 학생이 나한테 추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하는데, 나는 여기에 대해서도 증거 자료를 통해 그것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 공식적으로 반론 제기하려고 한다.”

-학생들이 공식 성명서를 내고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크게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공론화한 학생은 우리 과 학생이 아닌가본데 나는 내 강의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강의를) 녹음을 했든 뭐가 됐든 허가도 없이 문제시 하는 텍스트를 만들어 준거로 삼고 비난의 화살을 쏟아 붓는데, 여기에 대해서 나는 사과해야 한다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어제 누가 내게 (문제제기 글을) 복사 해서 보내줬는데 읽어보니까, 내 의도는 살피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식으로 자기 관점으로 (내 발언을) 요약을 해서 공개를 하고 망신을 주었더라. 이렇게 하는 것은 인민 재판, 문화 혁명이랑 뭐가 다른가. (내가)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뉴욕타임스에 여성 문제에 대해 글을 쓴 바 있는 페미니스트다. 뉴욕타임스에 글을 썼을때 사람들이 나보고 진정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부분을 가지고 이렇게 망신을 주는 문화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강의가 그렇게 밖에서 비난받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종의 인민 재판 같다. 미투는 ‘절대 선’이고 불가침의 영역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 과연 지성적인가 그런 생각이 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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