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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신발 신어 놀림 받는 여동생 위해 구두 만들다 명품 '페라가모' 세운 9살 소년

1898년에 태어난 구두 천재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본인의 이름을 따 패션 명품 브랜드를 설립했다. 그는 2만여 개에 달하는 신발 모델과 350여 개 구두 관련 특허를 남겼다.

인사이트(좌) 살바토레 페라가모, (우) 1978년 출시된 '바라' 모델 / 살바토레 페라가모


배운 것도 없이 9살에 생애 첫 구두 만든 살바토레 페라가모


[인사이트] 윤혜연 기자 = 가난한 농부의 아들은 돈이 없어 찢어진 신발 신어 놀림 받는 여동생이 불쌍해 구두집, 수선집을 돌면서 자투리 가죽을 모아 구두를 만들었다.


주인공인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당시 9살이었다.


구두를 비롯해 핸드백, 가죽 소품, 액세서리 등을 제작해 판매하는 이탈리안 명품 패션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


설립자인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1898년 이탈리아 남부에서 14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났다. 


인사이트살바토레 페라가모


1907년 9살이 된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교회에 신고 갈 신발이 없는 여동생을 위해 직접 구두를 제작해 선물했다.


페라가모가 생애 처음으로 만든 구두의 수준은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계기로 그는 11살부터 작은 구두점의 수습공으로 일하게 됐다.


2년 후에는 자신의 집 한쪽에 여성용 맞춤 구두 가게를 개점할 정도로 성장했다.


인사이트(좌) 1951년 영화 속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신발, (우) 살바토레 페라가모 / 살바토레 페라가모 


영화사와 유명 연예인 위해 신발 만들어 명성 얻은 살바토레 페라가모


이후 페라가모는 형제들과 미국으로 건너가 구두 제조·수리점을 오픈했다. 우연한 계기로 영화사에 독특한 디자인의 소품용 구두를 납품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페라가모의 신발은 독특함과 견고함, 취향을 고려한 디테일이 살아있었고, 점차 유명인들에게도 소문났다.


가령 페라가모의 플랫슈즈는 오드리 햅번이 대표작 영화 '로마의 휴일'과 '사브리나' 등에서 신고 나와 히트상품으로 등극했다.


또 마릴린 먼로는 페라가모의 구두를 영화 촬영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10년간 신고 다닐 정도로 아껴 주목받았다.


인사이트살바토레 페라가모


'발이 편한 신발' 위해 인체해부학 공부


끊이지 않는 '러브콜'을 받은 페라가모는 단순 구두 제작에 그치지 않고 '발이 편한 신발'에 대해 연구했다.


"아름다움은 모방할 수 있지만 편안함은 모방할 수 없다."


페라가모는 이를 강조하며 야간대학까지 진학해 인체해부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신발 디자인에 인체해부학을 적용한 최초의 디자이너였다.


인사이트살바토레 페라가모 박물관


그는 사람들이 움직일 때 변하는 발의 하중에 대해 연구한 끝에 신발 중앙에 철심을 박아 더욱 견고하게 체중을 지탱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발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공간을 마련하고 걸을 때 발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을 방지해 발이 최대한 편안하도록 만들었다.


1920년대 대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자 그는 1927년 다시 이탈리아 피렌체로 돌아갔다. 이곳에서 '살바토레 페라가모 컴퍼니'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브랜드를 운영했다.


인사이트(좌) 1938년에 개발된 세계 최초 웨지힐, (우)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플랫슈즈 / 살바토레 페라가모


1939년 세계대전으로 인한 물자 수급 시련, 새로운 모델 발명으로 극복


이후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구두 제작 주재료인 금속재를 구하기 힘들어졌다. 새로운 소재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코르크를 이용해 웨지힐을 발명하는 등 그만의 창의력과 지식으로 시련을 이기고 재도약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낚싯줄, 나무, 합성수지, 유리, 나일론 줄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혁신적인 모델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놓았다.


인사이트(좌) 살바토레 페라가모와 아내 완다의 결혼식, (우) 완다와 6자녀 / 살바토레 페라가모


평생 2만 개에 달하는 신발 모델을 창조하고 350여 개가 넘는 신발 관련 특허를 취득한 살바토레 페라가모.


세기의 구두 천재는 1960년 그의 부인과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오늘날까지도 아버지의 장인 정신을 잇고자 구두생산 대부분을 수작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구두·가방 등 가죽 제품 외에 시계, 선글라스, 향수 등 다양한 제품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