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일러두기

자게질을 하던 중 제목에 명시한 저 세 가지를 제가 알던 것과 달리, 뭔가 미묘하게 변형된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를 보게 되었습니다.
검색해보니 이런 경우가 전혀 드물지 않고, 인벤 내에서 인증 받은 글임에도 무결하게 서술한 경우를 찾을 수 없었으며, 심지어 인벤보다 작은 어떤 커뮤니티의 공식 기사에서도 오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의미 변질로 인해 가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개인적으로 답답증을 느낍니다.

사실 대다수에게 왜곡된 단어의 의미가 통용되고 있다면 이미 그 단어 자체가 재창조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언어는 계속 변화하는 것이고, 새로운 세대가 기존의 의미를 완전히 전도시킨다면, 그게 더 이상 왜곡된 의미가 아닌 본 의미가 되는 것이 순리니까요.

그러나 원래의 의미를 알고 넘어가는 것과 그냥 무비판적으로 변화를 수용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어의 변천에는 저항이 반드시 존재하고요.
이에 저는 서툰 글솜씨로나마 여러 오해를 조금이라도 불식하고 본래 뜻을 정명케 하고자 합니다. 그 다음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겠습니다.


요즘 리노 잭슨 하이랜더(Highlander)덱이 화제가 되고 있지요. 도대체 저 하이랜더라는 이름이 뜬금 없이 왜 붙었을까요? 하스스톤만 해온 사람은 알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즉 하스스톤 이전에 이미 저런 류의 덱에 대한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물론 이 경우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영화 하이랜더의 대사(There can be only one)에서 비롯된 거지만요.

이미 아시는 분도 많겠지만, 하스스톤에서 사용되는 용어는 99% 매직 더 개더링에서 따온 것입니다. 
매직 더 개더링과 이에 영향을 받은 타 TCG를 해온 사람들이 아무래도 경험자다 보니 하스스톤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고, 이들이 여러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에게 익숙한 기존 TCG 용어를 차용해 이를 정착시키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잘 수입되지 않은 용어도 방대합니다. 여기서는 최대한 지양하겠지만 설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부 생소한 용어를 추가적으로 제시하게 되는 점 양해 바랍니다.



1. 어그로

이중에 와우를 해보신 분이 상당할 것으로 압니다. 이분들은 어그로 미터기 애드온 깔고 어그로 관리 많이들 해보셨겠지요.
이 MMORPG의 어그로 개념과 그 체계는 와우가 모사한 에버퀘스트 시절부터 제대로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는데요, 우리말로는 위협 수준 내지 도발 능력을 의미합니다. 와우에서는 탱커들이 도발 기술로 '위협 수준'을 높혀 탱킹하거나, 딜/힐러들이 소실/웅크리기/소멸/죽은척하기/눈속임 등으로 위협 수준을 낮추고/없애고/넘겨주는 식으로 파티 플레이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국내에도 이런 어그로 개념이 각인되면서 일반 커뮤니티에서도 어그로라는 말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사어로 관종, 트롤 등이 있지요.

이런 현실 때문에, 하스스톤에서의 어그로도 저런 의미를 따온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끼워 맞추면 나름대로 의미가 잘 통합니다. 어그로덱은 도발이 있거나 하수인들의 '어그로'가 높아서 어그로덱이라고 하는 식이죠.

그러나 이건 하스스톤으로 TCG 장르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어그로라는 말만 보고 자기들이 아는 선에서 끼워 맞춰서 그것을 정론인 양 소설을 쓰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연속적으로 전파한 결과물입니다. 소설은 원래 은근히 현실성이 있을 때 잘 썼다고 하지요? 저는 잘 쓴 소설이라 하겠습니다.

어그로(aggro)를 여러 사전에서 찾아 보면 aggravation 또는 aggression의 속어/약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오해해서 정답으로 여기고 있는 의미는 전자입니다.
aggravation은 악화, 심화, 가중시키는 것, 불난 집에 부채질.
그리고 '도발, 화, 속상함, 약올리기'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스스톤, TCG에서의 어그로는 저게 아닙니다.
끼워맞추기 없이, 그냥 순수하게 직관적으로 '공격성'을 의미하는 aggression이 맞는 의미라는 것이죠.

결국 그냥 다른 덱보다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덱'을 뜻한다는 겁니다.


어그로를 제대로 알려면 그 대척점에 있는 컨트롤(control)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컨트롤 또한 다른 게임의 그 컨트롤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것도 끼워맞추면 일견 그럴 듯해보이나, 사실 이건 '조작 숙련도'나 그 비슷한 것과는 관계가 없고 그냥 근본적인 의미인 지배, 통제 등을 생각하면 됩니다.

이러면 또 오해할 수 있는 게, 사제가 정신 지배(Mind 'Control')를 사용하니까 컨트롤덱이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보드 컨트롤(board control)' 또는 '필드 컨트롤(field control)'이라는 말을 다들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이를 좀 더 쉽고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하스스톤에서는 상대의 하수인 개체 수나 질을 (광역기와 제압기로) '통제'하여, 원문 그대로 '전장을 장악'하는 것이죠. 사족을 달자면 통제라는 말은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좀 더 익숙하실 테지요. 일병은 냉동/연등 통제! 같은 식으로요.

정리하면, 어그로는 선공권을 가지고 상대의 명치(서양에선 명치 말고 face를 칩니다)를 박살내기 위해 힘이 다 떨어지기 전에 몰아 붙이고, 

컨트롤은 이런 어그로의 의도와 행동을 최대한 방해하고 통제하면서 후반까지 버티고, 이후 무겁지만 강력한 카드(소위 '뒷심')로 게임을 뒤집어 버리는 것이 주안점이 됩니다.

TCG는 어그로와 컨트롤, 이 둘의 원개념을 덱 이론의 기초로 하고, 여기서 필요에 의해 좀 더 세부적인 덱 분류가 파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콤보(Combo, 승리의 열쇠가 되는 2장 이상의 특수한 카드 조합을 빠르게 완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함) 같은 좀 특수한 케이스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지극히 단순화된 하스스톤 여건상 단순한 상호 시너지를 내는 카드는 많지만, 콤보덱이라고 분류해도 될 수준으로 덱이 정립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보통은 예능 수준이고, 간혹 잘 굴러가는 덱이 나타날 경우엔 바로 메타를 지배해버리는 사기성을 선보인 끝에 너프로 봉인되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이것도 Freeze Mage, 그러니까 냉법 같은 덱을 콤보덱의 상징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 그러나 무한염구 같은 OTK(One Turn Kill. 사실 이것도 엄격하게 따지면 첫 번째 턴에 끝내는 것만을 뜻했지만 하스스톤에선 그게 상대가 밀가루 안 내주면 불가능한 일이니 그냥 한 번에 전체 생명력에 가깝게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기준이 많이 느슨해졌습니다.)라면 모를까 현재 정립된 냉법은 일부 콤보 성향이 있으나 아무래도 컨트롤덱에 더 가깝고 앞서 설명한 컨트롤덱의 요건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차라리 이보다는 기름 도적이 더 콤보덱에 가깝습니다. 

하스스톤에서 대표적인 콤보덱으로는 구 개들을 풀어라, 구 전쟁노래 사령관을 중심으로 하는 덱. 그리고 구 주문 도적 등이 있습니다. 일부 피해 주문 콤보덱(말리고스 등)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하스스톤의 특징인 '돌진'의 포텐셜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또한 자게에서 미드레인지와 컨트롤의 차이를 묻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요.

일단 미드레인지(Midrange)는 문자 그대로 mid-range, '중간 범위'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의 중간일까요? 답은 저 위에 적혀 있지요.
미드레인지는 상대에 따라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일 수 있는 유연성이 있습니다. 어그로와 컨트롤의 중간에 서서 장점을 취합하려고 파생된 효율적인 덱이죠.

그런데 대중성을 위해 많은 복잡한 부분을 쳐내고 크게 단순화된 하스스톤에서 미드레인지는 컨트롤과 매우 유사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굳이 구분하는 것은 엄연히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겠지요?

미드레인지는 턴마다 '꾸준히' 그에 맞는 하수인 등을 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하수인들은 대개 상대적으로 효율적이고 기대되는 카드 교환비가 우수합니다.

이에 비해 컨트롤은 후반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보기 위해 광역기나 제압기, 회복기 등 상대 행동이 없다면 의미 없는 수동적인 카드에 대부분의 여력을 투자하고, 승리 자체는 일부의 후반 하수인에게 전담시킵니다.



2. 위니

위니(weenie)는 어원이 명확하지 않고 소시지 얘기가 나옵니다만 일단 TCG에서는 비용(cost. 마나 대신 '코스트'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요?)이 매우 작은 생물, 그러니까 하스스톤에서는 그러한 하수인(minion. '미니언'이라고 한다고 롤충이 아닙니다...)을 의미합니다. 보통 '1~2코 하수인'을 지칭하지요. 물론 위습 같은 0코도 있긴 하지만요.

그리고 이를 주축으로 하는 덱이 위니덱입니다.

어그로덱 중에서는 번(burn) 카드, 그러니까 하스스톤으로 치면 피해 주문 카드를 중심으로 하는 번덱, 또는 굳이 하스스톤스럽게 꾸리자면 돌진 카드만 잔뜩 활용하는 돌진덱도 꾸릴 수 있겠지요. 위니덱은 이런 덱들과 달리 자잘한 하수인과 그 하수인의 강화에 좀 더 중점을 둡니다. 이렇듯 위니덱은 그저 어그로덱의 일개 분파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위니덱이라고 하기 난감한 경우도 그냥 그렇게 지칭하는 경우가 국내에서 흔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는 하스스톤 오리지널 당시 정통 위니 흑마가 확장팩을 여럿 거치면서 점점 위니에 어울리지 않게 무거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익숙한 그 원류대로 불러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엄격하게 따지면 주(Zoo)라고 해야지 위니덱이 아닙니다. 둘은 비슷해 보이나 엄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zoo(동물원)는 매직 더 개더링에서 색에 상관 없이 효율 좋고 값싼 생물들만 가지고 덱을 꾸려봤는데 마침 덱을 짜고 나서 보니 얘들이 동물들이라서 붙게 된 이름입니다. 여기서 방점은 깔맞춤(하스스톤으로 치면 종족?)보다는 효율이 좋은 하수인 위주로 덱을 구성한다는 것에 찍어야 합니다. 
다만 하스스톤에서는 그냥 하수인이 잔뜩 들어가고 순수 어그로덱에 비교했을 때 명치질보다는 일단 효율적인 하수인 교환을 중시하는 덱으로 의미가 이미 많이 변질된 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위니덱은 말 그대로 1~2코 하수인인 위니가 중점이 되어야 합니다.

하스스톤에서는 베타 때부터 해온 분들만 아는 마나그라인드 시절에, 진짜 1~2코 하수인이 덱 구성의 절반을 가뿐히 넘는 소위 '1코 흑마'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보다는 아니어도 소위 '레이나드 흑마'로 알려진 덱 또한 위니덱이라고 하는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낙스의 네루비안 알을 첨가한 '레알나드'까지도 충분히 봐줄 수 있고요.
그러나 검바의 Midrange Zoo 혹은 Demon Zoo, 그러니까 '미드악흑'부터는 이미 위니의 궤를 넘어섰습니다. 이는 이들의 덱을 검색해서 마나 커브를 보면 알 수 있지요. 이들은 이름대로 zoo를 계승하지만 weenie를 계승한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일부 위니만 보고 그렇게 칭하자면 위니덱이 수두룩해지고, 그러면 굳이 덱을 따로 구분할 이유가 없겠지요.

정리하자면 하스스톤에서 자잘한 위니 하수인더러 '위니'라고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이것을 '덱'으로 설명할 때, 즉 '위니덱'을 논할 때는 그리 잘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빅덱(Big Deck)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걸맞는 덱을 생각해보면 베타 시절에는 고코 전설들로 떡칠을 하는 경우가 꽤 흔했고, 그 한참 이후에도 억울하면 결제해라!라며 지갑으로 상대를 후려치는 극단적인 형태의 램프(Ramp. 마나 자체를 늘리는 것으로 이 역시 매직 더 개더링의 카드 이름에서 유래) 드루이드도 존재는 합니다.

그러나 현재 메타를 형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주류덱은 이미 빅덱이라고 하기에는 위니덱 건보다도 더욱 애매하고 어폐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게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냥 막연히 위니-빅덱 이렇게 구분하는데, 고코 몇 장 있다고 빅덱이라고 하기엔 앞서 설명한 미드악흑도 박사 붐, 말가니스, 바다 거인 등을 쓰는 경우가 있고 템포 법사도 안토니, 박사 붐, 로닌 등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까지 빅덱 취급은 하기 어렵지요? 만약 그러면 분류법 자체가 개족보가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하스스톤에서 위니덱과 빅덱, 이 두 표현을 기피하는 편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잘못 쓰이는 경우가 생기는데, 굳이 이 표현을 안 써도 앞서 언급한 다른 적절한 용어로 현재의 주류덱들을 설명할 수 있고 이미 그러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하스스톤을 베타 때부터 해온 분들은 비트다운(beatdown), '비트'덱에 대해서도 기억하실 겁니다.
비트 성기사, 유러피안 비트 도적 같은 식으로 말이죠. 성기사의 경우는 검바부터 '황건적'이라는 재밌는 별명으로 대체된 것 같네요.

비트다운덱은 때려 눕히는(beat-down) 생물, 그러니까 하수인 중심의 어그로덱을 뜻합니다. 상대의 생명점을 직접 태우는(burn) 카드가 중심이 되는 번덱과 대조적인 의미의 덱이죠.

그리고 위니는 원래 이 비트다운의 하위 분류였습니다. 단지 이후에 편의 차원에서 위니보다 약간 무거운 정도의 어그로덱을 비트다운으로 부르게 되고 그게 굳어졌을 뿐이죠. 그리고 하수인 위주로 지극히 단순화된 하스스톤에서는 굳이 비트 성기사, 위니 성기사라고 할 것 없이 오컴의 면도날로 쳐내고 그냥 어그로 성기사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3. 템포

간단명료하게, 템포(tempo)는 이탈리아어로 '속도'를 의미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속도는 빠를 수도 있고, 느릴 수도 있습니다.

같은 말도 템포 플레이네, 템포를 맞춰가네, 템포가 밀리네 같은 식으로 표현하면 뭔가 전문적으로 보이면서 장황하게 부연할 필요 없이 아주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하기도 좋고. 그래서 저도 하스스톤 커뮤니티에서 매우 자주 유용하게 써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거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뱀발로 템포와 비슷한 마법의 단어 '메타'가 있지요.

정말 구체적으로 '템포'가 뭔지, 한정된 자원 내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상대보다 많은, 혹은 강한 카드를 내면서 궁극적으로 카드 이득을 계속 유지하고 상대의 선택지를 줄여나갈지 하나 하나 예시를 들고 세부적인 구성 요소를 논하여 템포학개론으로 엮자면 이 글 전체보다 길어질 것 같습니다. 
당장 템포를 설명하기 위한 필수 개념인 카드 이득(Card Advantage)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논하는 것만으로도 스크롤에 압박을 심하게 가하게 되겠지요. 사실 제가 그렇게 한다 해도 저 같은 사람보다는 훨씬 뛰어난 이쪽 방면의 권위자 분들이 많기도 하고, 저 같은 게 무오류로 장문을 쓸 자신이 없으니 이렇듯 짧은 글만 올리게 되었습니다. 매직 더 개더링의 역사가 역사다 보니 서양에서는 칼럼을 넘어서 논문급으로 집필한 분도 있고요(어그로-컨트롤 개념은 물론).

그래서 여기서는 문제가 된다고 여겨지는 부분만, 즉 덱의 한 형태로서의 템포, '템포덱'에만 국한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현재 템포덱이라고 하면 막연히 그냥 빠른 템포로 명치 패는 덱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 어그로덱은 다 템포덱일까요?
또한 각 턴마다 1, 2, 3, 4 이렇게 이상적인 순서대로 딱딱 맞게 하수인을 내서 템포에서 안 밀리는 덱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템포 법사는 오히려 타 미드레인지에 비해 1234 낸다고 능사가 아니며 하수인 대비 주문 비중이 높습니다.
내 하수인은 살리고 상대 하수인만 다 죽여서 템포를 유지하는 덱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안 그러는 덱이 더 드뭅니다.

왜 템포덱이라는 표현을 어그로나 미드레인지 같은 걸 냅두고 구태여 사용할까요? 그것은 그만의 차별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템포덱이라고 지칭되기 위해서는 다른 덱에 비해서 템포를 빠르게 높일 수 있거나, 템포를 느리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템포가 빠른 덱으로 어그로가 있습니다. 고작 이런 뜻이라면 어그로라는 표현을 냅두고 굳이 구분할 의미가 없겠죠. 템포덱은 분명 '빠른' 요소가 있습니다만, 어그로와는 다릅니다.
이미 상술한 내용입니다만, 어그로는 그냥 최대한 빨리 몰아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드레인지는 꾸준함이 중요하고요. 하지만 템포덱은 힘을 유지하되 특정한 한 턴 내에서만큼은 그 턴에 가능하도록 할당된 상대의 행동보다 더 많은, 혹은 더 강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큽니다. 이 말은 당연히 덱 구성이 대체적으로 비용에 비해 효율적이면서도 저렴하거나 이를 돕는 카드로 이루어졌다는 뜻이고, 이런 카드를 통해 일시적으로나마 마나에 비해 강하게 전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하스스톤을 오리지널부터 쭉 오래 하신 분들이라면 '템포 도적'를 기억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도적은 기습 같은 0코 카드가 많아 한 턴 내에 많은 카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연계'라는 특성 탓에 여건이 갖춰지면 한 턴 내에서 좀 더 강력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가짐과의 연계는 말할 것도 없지요. 이것이 바로 템포를 가속하는 것입니다.

또 도적은 자신의 템포만 상관하지 않습니다. 비용 대비 효율적인 제거는 물론이고 혼절시키기 같은 카드로 상대의 하수인을 핸드로 돌려 보냄으로써 상대의 템포를 잠시 감속시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행동에 소모된 비용으로 인해 내 템포 가속이 약간 저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개념이 다 그렇듯 템포 또한 상대적인 개념이고, 결국 상대를 앞서는 방법론이 바로 '템포'인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무작정 내 눈덩이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상대의 눈덩이를 중간에 걷어차고, 그렇게 격차를 벌리며 시간을 번 사이에 내 눈덩이를 안정적으로 굴리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이겠죠? 오히려 이것이 템포를 가장 특징적으로 정의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직업이 이런 템포성이 강한(템포덱에 어울리는) 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빙덫이나 노루의 약 같은 것 말이죠. 
다만 굳이 템포덱이 분류되는 이유는, 선뜻 어그로나 미드레인지로 칭하기에는 켕길 만한 유의미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들어맞진 않지만 이런 템포성이 상대적으로 강한 직업이 따로 있고, 그런 직업의 덱에 익숙하던 이름을 붙인 것이죠.


앞서 설명한 도적은 이렇듯 템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직업입니다. 또한 이와 버금 가는 직업이 바로 마법사인데요, 여러분들이 익히 아실 '템포 법사'가 유명합니다.

그런데 불꽃꼬리 전사가 추가되기 이전, 즉 검바 이전의 원시적인 템포 법사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경우 어그로~미드레인지 법사가 사용하던 하수인을 같이 쓰면서도 얼회, 얼방, 얼창, 불작 등 현재의 냉법이 사용하는 카드를 같이 쓰기도 하고, 심지어 키린 토 마법사를 활용하기도 하는 등 여러 형태가 존재했었습니다.
이렇듯 템포 법사는 검바에서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비용을 줄여줘서 순간적으로 템포를 가속하게 돕는 수습생이나 키린 토, 상대 하수인의 공격을 막아 상대의 템포를 잠시 감속시키는 빙결 카드나 환영 복제, 그리고 이런 템포성 카드들과 궁합이 좋은 마나 지룡 같은 하수인 등을 모두 활용하는 형태의 덱이 이미 그 전에 태동했었고 이를 불꽃꼬리 전사가 등장하면서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덱을 정제시켜서 이름을 그대로 이은 것 뿐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직업의 덱은 대개 템포성 카드가 위 직업들처럼 특징적으로 많거나 그게 주가 되는 것도 아니니 굳이 템포덱으로 분류할 필요성이 현저히 낮습니다. 그냥 내내 상술했던 기존의 덱으로 분류하면 그만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무슨 템포 사제 이러는 것을 싫어하는 편입니다.

즉 템포덱이 아닌 보통의 덱으로도 소위 '템포 플레이(tempo based play)'를 충분히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보통의 어그로~미드덱을 굳이 템포덱이라고 분류하고 지칭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템포덱이 아닌 덱이 더 적게 되니까요. 그러나 하스스톤에서는 피상적으로 좇아 이미 템포덱의 의미가 많이 변질된 감이 없지 않습니다. 



4. 맺음말

지금까지 제가 '오해'라고 칭했던 것들은 모두 하스스톤이 대중성을 위해 극도로 단순화된 게임인 것에서 기인합니다. 덱의 개성이 용어를 빌려 온 매직 더 개더링과 달리 뚜렷하지 않다 보니, 하스스톤에서는 분류 간의 경계선이 상대적으로 희미하고 혼동되기 쉬운 것이지요. 
이 '혼동'이 완전히 정착되고, 하스스톤 안에서 의미 자체가 새롭게 재정립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아마 그 과도기 안에 서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제가 말하는 오해나 왜곡 타령이 도리어 잘못된 것이 되고, 저의 불만도 풍화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여기지만요.

여기까지 정독해주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고, 문법 등의 여러 오류 지적 또한 감사히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