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PC방살인·몰카·조두순…靑국민청원 팩트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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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1.27. 오전 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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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백지수 기자, 이상원 인턴기자, 최경민 기자, 김하늬 기자, 최태범 기자, 안동현 인턴기자, 구유나 기자] [편집자주] 촛불혁명의 연장, 부조리를 드러내는 착한 분노의 산실. 청와대 국민청원을 향한 찬사다. 그 이면에는 사실관계가 틀린 주장에 여론이란 날개를 달아 확산시키는 갈등의 공장이란 평가도 있다. 국민청원의 순기능은 키우고 역기능은 해소할 방안은 무엇일까.

[[국민청원 신드롬](종합)]

/사진=뉴시스



나는 청원한다, 이것은 '착한 분노'다



[국민청원 신드롬]①정당한 분노 순기능..개선 필요성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착한 분노'의 공론장이 되면서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국민청원은 사실상 내용에 제한이 없어 온갖 청원이 등록되지만 특히 안전·인권·폭력처벌 관련 청원이 눈에 띈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 집계 결과, 이런 분야 청원일수록 답변기준인 20만명 동의를 급속도로 돌파하는 등 여론을 이끄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불안과 분노가 이 현상의 밑바닥에 있다고 진단한다. 분노의 표현이 공격적 결과만 낳는 것이 아니다. 여론을 환기시켜 제도개선을 이끌어내는 순기능이다. 이른바 착한 분노다. 이와 함께 긍정·부정적 평가를 한몸에 받는 국민청원이 공익에 더욱 부합하려면 여론 왜곡 방지 등을 위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문재인정부 청와대의 '대표상품' 국민청원은 가동 1년4개월간 그야말로 폭발적 흥행을 일궜다. 26일 현재 34만7000건이 등록됐다. 답변대기중을 포함, 20만명 동의를 넘긴 게 68개에 이른다. 한 달 평균 4개꼴로 20만명의 동의를 받아낸 셈이다.

슬리핑차일드 체크(잠든아이확인법), 음주운전처벌강화(윤창호법), 외상센터 지원(이국종법)은 국민청원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 힘으로 실제 법이 개정됐거나 논의중이다. 국민청원의 결정적인 순기능이자 '청원 신드롬'의 배경이다. 문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꾸준히 하락하는 중에도 국민청원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핵심은 국민의 불안과 분노다. 흉악범죄 피해, 억울한 사연에 '나만 분노한 게 아니었다'는 공감을 확인하면 이내 여론의 물결이 됐다. 청원 68개 가운데 동의자가 많은 순으로 1~14위가 특정사건이나 개인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내용이다. 폭행 등 범죄 예방과 엄벌을 요구한다. 안전에 대한 불안감도 뒤섞여 있다.

청원자가 정하는 국민청원 분류상 인권·성평등이 68개중 20개로 가장 많다. 안전·환경 분야가 8개로 뒤를 이었다. '기타'나 '미래' 분류 중에도 청소년강력범죄 처벌, 인천 여중생 가해자 처벌, 조두순 감형반대 등 사실상 안전과 인권 분야가 적잖다.

특히 강서 PC방 살인사건 엄벌 청원은 유일하게 100만명 동의를 넘었고 역대최다인 120만명에 가깝게 호응했다. 흉악범죄를 심신미약으로 가볍게 처벌해선 안 된다는 분노의 결과다. 일부에서 조직된 힘의 특정 청원 밀어올리기도 의심하지만 조직력으로 한계가 있는 수준이다. '착한 분노'는 사회 전반에 범죄에 대한 엄벌주의·무관용주의가 확산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작은 부패라도 엄벌할 것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국민청원은 끊임없이 개선 요구를 받는다. 최근 35만명 이상 동의를 받은 이수역 폭행사건 처벌 청원은 국민청원의 그림자를 뚜렷이 드러냈다는 평가다. 혐오성 발언이 사건의 발단이란 점도 뒤늦게 드러났다.

청원의 공개여부를 지금보다 꼼꼼히 따지는 식의 대책이 제기된다. 문턱을 높이는 게 부적절하다면 그와 동시에 답변 기준은 완화할 수도 있다. 착한 분노가 정당하다면, 이를 사회통합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방법도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어떤 문제의 여론환기라는 순기능과 정치적 카타르시스가 있다"면서도 "어처구니 없는 청원도 있고 이런 방식이 맞는지 고민해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국민청원 운영을 담당하는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개선 방향에 대해 "여러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고 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는 실명제 도입 등 진입장벽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는 부정적인 걸로 보인다.
국민청원에 답변하는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청와대 동영상 캡처
김성휘 백지수 이상원 기자


"나도 당할수 있다" 국민청원, 불안한 국민의 SOS



[국민청원 신드롬]②강력사건 청원 빗발…"그것도 다 민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추천 20만명을 넘겨 답변 대기 중인 청원들. 대부분이 강력 사건 및 범죄에 대한 징벌 관련이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그것도 다 민의가 아니겠습니까."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분노 표출의 장이 되고 있는 국민청원과 관련 질문을 하면 흔히 돌아오는 답이다. "어떤 의견이든 국민들이 뜻을 표출할 곳이 필요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론과 맞닿아 있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내년 초 국민청원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지만 이런 기본 정신은 꾸준히 지켜나갈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입버릇처럼 해왔던 "들어라도 줘야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 편해진다"는 말을 실현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청와대 청원에 대한 비판은 최근들어 분노가 지나치게 증폭되고 있다는 점에 기반한다.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에 시달리는 시민들이 자신들의 불만을 표출할 공간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답답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을 콘셉트로 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열렸고, 이곳으로 불안에 시달리는 민의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온 것이다.

실제 최근 추천수 20만명을 넘은 청원 중에는 강력 사건의 희생자 가족이나, 친지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만큼 시민들이 가장 원초적인 불안감을 사회로부터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민청원 중에는 △사랑하는 23살 예쁜 딸이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왔다 △억울하게 떠나신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달라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 피의자는 사형을 선고받아 한다 △5년 전 여성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의 재조사를 요구한다 등이 추천인 20만명을 넘어 답변요건을 갖췄다.

이밖에도 △성범죄피해자의 집주소와 주민번호 등을 가해자에게 보내는 법원을 막아달라 △리벤지포르노 범을 강력 처벌해 달라 △소년법 폐지 또는 개정을 해달라 △미성년자 성폭행범 처벌을 더 강화해달라 △조두순의 출소를 반대한다 등 '징벌'에 초점을 맞춘 청원들 역시 많은 공감을 받았다.

"내 불안을 알아달라"는 소수의 요청에, 사회에서 불안감에 시달리는 다수의 민의가 응답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일부 특별한 강력 사건 피해 사례에 대해 공감하는 시민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도 된다. '언제든 강력 사건의 피해가 나에게, 혹은 내 가족·친지들에게 들이닥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다만 이같은 청원들의 경우 경찰 조사 중이거나,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경향이 있어 청와대 입장에서는 '미지근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강제추행 혐의 구속,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청원에 대해 청와대는 "2심 재판 중으로 청와대 언급은 삼권분립에 맞지 않다"고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청원에 동의를 했던 20만명이 넘는 시민들은 청와대의 불확실한 답에 또 다시 분노를 느끼고, 불안감이 재생산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특정 개인에 대한 혐오에 기반한 청원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역시 문제다. 과거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스피드스케이팅 김보름 선수 자격박탈 청원'에는 60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몰렸다. 청와대 측의 자제 요청에도 특정인에 대한 사형 청원 역시 꾸준히 올라오는 중이다.

문 대통령이 앞세운 '경청'의 가치를 계승하고, 지나친 불안의 재생산을 막아내는 게 국민청원 개편의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는 분노가 극단적인 혐오와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제시한 청와대에 권한이 없는 사안에 대해 답을 안 하는 방법, 청원 내용의 공개 기준 마련 등의 방법 역시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는 중이다.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국민청원을 꾸준히 보완해왔는데, 그 취지에 맞는 순기능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의의 가감없는 표출이 인신공격 등 부작용으로 이어지는 것을 개선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밝히면서도, 사회에 불만 섞인 민의가 청와대로 쏠리고 있는 상황에 대해 "막을 수가 없다. 어떻게 제한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최경민 기자


이수역 사건, '환승' 잘못? 국민청원 역기능



[국민청원 신드롬]③분노 배출구, 행정부 권한 밖 요구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분노의 배출구처럼 쓰이면서, 본래 취지와 다르게 사회 갈등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수역 폭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하루 만에 31만명이 '남성을 처벌해달라'며 동의한 이 청원은 경찰 수사 결과 발표 직후 연루된 여성과 남성간 폭언·폭행이 모두 드러나면서 '성대결'로 변질됐다. 온라인에선 '여성·남성 혐오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이수역을 출발할 땐 쌍방폭행 사건이던 것이 국민청원이라는 환승역을 거치며 의미부여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관련된 청원이 330여개 올라와 있는데 대부분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여성 또는 남성을 각각 처벌해달라는 내용이다.

현재 국민청원은 마치 인종, 성별, 지역 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거나 음식점 민원,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익명게시판처럼 쓰인다. 물론 이런 모든 청원이 답변기준을 넘길만큼 호응을 얻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내용에 거의 제한이 없는 국민청원의 울타리에서 법은 '꼰대'고 다수의 청원 공감은 '정의'로 비칠 수도 있다.

올해 초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김보름과 박지우 선수에 대해 국제대회 출전정지 및 국가대표 박탈 청원(50건)이나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의 IOC조직위원직 박탈청원(78건)도 있었다. 특정인을 거론하며 사형을 선고해달라는 극단적인 요구까지 있었다.

제주도의 예맨 난민 문제가 불거지자 난민 방출 청원이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하고, 방탄소년단(BTS)이나 엑소(EXO)와 같은 아이돌 팬클럽의 상대 팬덤 비난창구가 됐다. 최대 불법 만화 공유 사이트 '마루마루'가 폐쇄되자 다시 열어달라는 청원도 서슴없이 올라온다.

헌법 제26조가 명시한 국민의 청원(請願)권은 국민이 법에 따라 손해의 구제, 법률·명령·규칙의 개정 및 개폐, 공무원 파면 등을 청구하는 행위이지만 국민청원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청원'의 정의마저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국민청원의 파장을 비난하기보다는 그 배경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청원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문제는 지방자치단체나 해당 부처를 통해 해결돼야 하지만 기관들에 불신이 있어 청와대로 몰리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국민청원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매우 많다는 현상을 보여주는 일종의 지표"라며 "그저 장난으로 지나치기만 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행정부의 권한 밖에 있는 입법권이나 사법권의 행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많다"고 지적했다. 국민청원게시판에 '답변 불가' 또는 '답변 거부'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하늬 기자


'진짜' 청원 이렇게 할 수 있다



[국민청원신드롬]④국회 청원, 정부 국민신문고 등

'국민이 법률에 정한 절차에 따라 손해의 구제, 법률·명령·규칙의 개정 및 개폐, 공무원의 파면 따위의 일을 국회·관공서·지방 의회 따위에 청구하는 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청원(請願)'의 사전적 정의다. 국가에 원하는 바를 요구하기만 하는 '민원'보다 좀 더 나아가 법률에 준하는 절차다. 이번 정부 들어 청와대가 직접 국민들의 '청원'을 받고 있지만 청원의 사전적 의미만 보면 '진짜 청원'을 들어줄 기관은 청와대보다는 국회나 정부 기관 등 관공서, 지방 의회 등이라고 볼 수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없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 청원을 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청원 기관이 '민의의 전당'이라 불리는 국회다. 국회법(제123~126조)에서도 국회에 대한 국민의 청원권과 청원 절차, 국회의 청원 심사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 국회에 청원하려면 무엇보다 현역 국회의원 1명 이상의 청원소개의원서를 받아야 한다. 일단 청원이 접수되면 법률안에 준해 심사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구속력도 있다. 국회 청원들은 상임위원회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올라야 채택될 수 있다.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본회의까지 부의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정부가 정부 행정에 대해 직접 국민들 목소리를 듣기 위해 운영하는 '국민신문고(http://www.epeople.go.kr)'도 있다. 행정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청원 창구보다는 민원 창구에 더 가깝다. 정부의 모든 부처와 부처 산하 공공기관에 민원을 넣거나 손해 구제를 청구하고 법률 등의 개정 촉구를 비롯한 정책 제안도 할 수 있다. 행정 처분에 대해 불만이 있을 때 법률에 준하는 행정심판을 요구할 수 있는 창구도 국민신문고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생각함(http://idea.epeople.go.kr)도 있다. 국민신문고에서 파생돼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 수렴을 위해 만들어졌다. 국민신문고와 국민생각함을 이용하려면 홈페이지에 가입해 로그인하면 된다.

그럼에도 각 청원·민원 창구 이용률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비하면 현저히 저조하다. 대표적으로 국회 청원의 경우 청와대 국민청원이 만들어진 지난해 8월17일부터 26일 현재까지 접수 건수가 72건에 불과하다. 이 중 처리된 건수는 생리대안정성조사 청원과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청원 등 3건인데 모두 본회의에 불부의됐다. 이미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청원에 제기된 문제 해결에 나섰다는 이유에서였다.

청원 절차가 상대적으로 복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청원에서 국회의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이 국민의 청원권을 제한한다며 위헌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2006년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청원권 행사에 의원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어 청원권을 사실상 박탈해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한다"는 반대 의견도 있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밀려 '찬밥' 신세지만 전문가들은 기존 청원·민원 제도 효용에 더 주목한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국민이 몰리지만 청원 절차가 가볍게 된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청와대 국민청원제도로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은 촛불혁명 이후 제도적 차원에서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느낀 시민들이 감정에 호소하며 일종의 정치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려고 하는 것"이라며 "이런 방식이 맞는지 청와대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백지수 기자



국민청원, 靑집중-분권약화도 극복해야



[국민청원 신드롬]⑤중앙·지방 행정기관별 민원 해결능력↑ 필요

청와대 국민청원의 역기능 중 하나는 대통령과 청와대에 지나치게 많은 민원이 집중된다는 점이다. 자연히 '대통령이, 청와대가 뭔가 결정해주겠지'라는 기다림이 국민은 물론 정부 각 부처에 퍼질 수 있다.
26일 여야와 정부 일각에선 과거 보수정권에서 청와대의 각종 비리를 경험하며 분노를 표출했던 국민들이 속앓이를 해소하기 위해 다시 청와대에 기대는 역설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다. 각 부처들도 주도적으로 정책을 입안하기 보다는 청와대 서포터 수준에 머물기 쉽다. 국민 시선이 청와대로 쏠리면 지방분권 실현은 더욱 요원해진다.

이런 역기능을 막으려면 보다 선진화된 청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청와대 한 곳이 아니라 중앙·지방 각 행정기관별로 청원이 접수·처리되는 절차가 강화돼야 한다. 각 기관이 스스로 청원을 수용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성숙한 분권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

국민들은 헌법 26조에 따라 모든 국가기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보통 ‘민원’이라고 불린다. 각 행정기관들은 민원해결을 위한 별도의 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민원이 제대로 해결되는 사례가 드문 게 지금의 현실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기대감이 높은 이유는 기존의 민원제도가 실효를 거두지 못한 탓이다.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청와대에 민원을 넣으면 그래도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희망이 더해지면서 국민들의 민원은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에 제기된 청원들 중 청와대가 실제로 해결한 문제는 거의 없다. 청원 대부분이 법·제도개선과 관련된 문제들로 국회의 입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입법을 약속하더라도 실제 법이 통과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특히 청와대 청원은 언론에 보도될 만한 휘발성 강한 이슈가 아니면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이로 인해 국민청원이 ‘불만 배출구’로 변질되거나 제2·3의 피해자를 만드는 부작용도 있다.

또 ‘어그로(주제에서 벗어난 내용이나 불쾌한 내용으로 관심을 끄는)’ 청원이 난무하거나 비슷한 청원이 중복으로 올라오기도 한다. 청원 기능의 개편·폐지 요구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리는 웃지못할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의 청와대 청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에 편승한 임시적인 측면이 강하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유명무실해질 수 있고 정권이 바뀌면 폐지될 수도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민의 억울한 소리를 직접 듣는 것은 중요하다. 실질적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것이 ‘참여 민주주의’ 실현과 지방분권의 출발점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최태범 기자


'국민청원 선진국' 美·독일 어쩌나 봤더니



[국민청원 신드롬]⑥美, 150명 넘겨야 청원공개 '방지턱'


청와대 국민청원은 낮은 문턱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내용, 등록에 제한이 거의 없어 참여가 활발해졌고 여론 형성에 기여했다. 이런 특징은 '양날의 검'이다. "연예인 사형" "아이돌그룹 해체" 등 무분별한 청원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여론도 높아졌다. 우리보다 앞서 온라인 청원제도를 도입한 미국의 사례가 주목된다.

美 서명 150명 넘겨야 온라인 청원 공개= 미국 백악관은 2011년부터 '위더피플(We the people)'이라는 온라인 청원사이트를 운영했다. 30일간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백악관의 응답 의무가 발생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청원을 방지하는 여러 방지턱이 있다.

'위더피플'은 청원을 남겨도 곧바로 게시물이 공개되지 않는다. 대신 청원자는 자신의 메일로 청원에 서명이 가능한 링크를 받는다. 이 링크를 주변인에게 보내거나 자신의 SNS에 올려 서명을 받을 수 있다. 청원은 비공개 상태에서 150명의 서명을 받아야만 '위더피플'에 공개된다. 150명의 청원을 넘기더라도 '위더피플'의 게시 원칙에 저촉되는 청원은 삭제될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청원은 글을 남기는 즉시 게시판에 글이 공개된다.

독일 연방하원은 2005년부터 e-청원이라는 온라인 청원제도를 운용해오고 있다. 청원은 비공개로도 진행할 수 있다. 청원위원회가 온라인 청원의 내용 전반을 관리한다. 위원회는 청원 내용이 공공목적을 가진 경우에만 e-청원으로 인정한다. 과거 유사한 청원이 있었거나 제안이 명백하게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위원회가 청원을 거부할 수 있다. 청원위원회는 국회 상임위와 같이 각 원내정당에서 의석 비율에 따라 구성한다.

청원 공개방식 개선하고 답변 거부 요건 신설해야=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16일 '미국의 '위더피플' 사례를 통해 살펴본 청와대 국민청원의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청원 공개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정한 기준을 충족시킨 다음 게시물을 공개하라는 것이다.

이어 답변 거부 요건을 신설해서 삼권분립 등에 반하는 청원내용은 답변을 거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청와대는 20만 기준이 안돼도 국민이 원하는 내용이면 답변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법원이나 재판 관련 등 삼권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 청원의 경우 대응과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구체적으로 답변 거부 요건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독일의 e-청원 홈페이지

이상원 인턴 기자



PC방살인과 누드모델..68개 국민청원 그래픽뉴스



[국민청원 신드롬]⑦
문재인정부 청와대의 '대표상품' 국민청원은 가동 1년4개월간 그야말로 폭발적 흥행을 일궜다. 26일 현재 34만7000건이 등록됐다. 답변대기중을 포함, 20만명 동의를 넘긴 게 68개에 이른다.

청원 68개 가운데 동의자가 많은 순으로 1~14위가 특정사건이나 개인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내용이다. 폭행 등 범죄의 예방과 엄벌을 요구한다. 안전에 대한 불안감도 뒤섞여 있다.

청원자가 정하는 국민청원 분류상 인권·성평등이 68개중 20개로 가장 많다. 안전·환경 분야가 8개로 뒤를 이었다. '기타'나 '미래' 분류 중에도 청소년강력범죄 처벌, 인천 여중생 가해자 처벌, 조두순 감형반대 등 사실상 안전과 인권 분야가 적잖다.

슬리핑차일드 체크(잠든아이확인법), 음주운전처벌강화(윤창호법), 외상센터 지원(이국종법)은 국민청원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강서 PC방 살인사건 엄벌 청원은 유일하게 100만명 동의를 넘었고 역대최다인 120만명에 가깝게 호응했다. 반면 최근 35만명 이상 동의를 받은 이수역 폭행사건 처벌 청원은 국민청원의 그림자를 뚜렷이 드러냈다는 평가다.

김성휘 이상원 기자


靑의 모델, 오바마의 ‘위 더 피플’ 지금은



[국민청원 신드롬]⑧트럼프 취임 후 ‘사실상 정지’
미국 백악관 '위 더 피플' 사이트에는 평화조약 체결을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와있다. 이 청원은 11만 이상의 동의를 받아, 백악관의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모태는 2011년 9월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개설한 '위 더 피플 (We the People)'로 알려져 있다. ‘위 더 피플’은 정보의 투명성과 시민의 정치 참여 확대를 강조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 정신과 부합한다. 미국 전역 수많은 안건들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백악관으로 올라왔다.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에 대해 백악관은 직접 대답해야 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동이 사회의 여론을 결집하고 실제적인 법과 제도를 바꾸는 성과를 냈다.
오바마의 ‘위 더 피플’, 성과만큼 한계도 뚜렷=2016년 12월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백악관이 보존 중인 청원 4799건을 분석했다. 그 중 오바마 정부는 총 277건의 청원에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집계됐다.

백악관은 2013년 1월에 제기된 ‘핸드폰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전화기를 다른 통신사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에 따라 정책을 수립했다. ‘동성애자 전환 치료를 금지하라’는 청원에 백악관은 제도를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또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 요기 베라에게 ‘대통령 자유메달’을 수여하라는 청원도 현실화됐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의 ‘위 더 피플’은 미국 사회의 핵심적이고 첨예한 현안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미국 정부의 기밀을 폭로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을 사면하라는 청원에 대한 대답은 2년 동안 연기됐고, 오바마 정부는 끝내 답을 하지 않았다. 2012년 미국 뉴타운에서 벌어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사건 이후 제기된 총기규제에 관한 청원에도 오바마 백악관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정부 출범 후 죽었다 살아나= 2017년 1월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위 더 피플’은 좌초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위 더 피플’을 백악관 내에 존속시켰지만, 같은 해 12월까지 제기된 17개의 청원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트럼프 행정부는 12월에 갑자기 ‘위 더 피플’ 홈페이지를 폐쇄한다고 통보했다. 홈페이지를 재개정한다는 명목이었지만, 트럼프 백악관이 오바마 정부의 ‘위 더 피플’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관측이 많았다. 12월 사이트가 폐쇄되기 전 사이트에는 ‘트럼프 대통령은 소득신고서를 공개해라’(110만명 동의), ‘사업과 자산을 백지신탁해라’(35만7000명 동의), ‘대통령직에서 사임해라’(13만8000명 동의)와 같은 청원들이 득세하고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2월 ‘위 더 피플’ 사이트를 재개했다. 트럼프를 비판하는 청원에도 답을 달았다. 하지만 백악관의 소관이 아니라는 소극적 입장이 전부였다. 그 후로도 현재까지 많은 청원이 제기돼 답변을 기다리고 있지만 트럼프 백악관은 또 다시 답변을 중단한 상태다. ‘한반도에 평화조약을 체결하라’는 청원은 올해 3월에 올라와 11만명의 동의를 얻었지만, 백악관은 이에 답을 달지 않았다.

◇인터넷 청원 원조는 스코틀랜드=인터넷을 통해 결집된 민의에 정치 제도권이 책임을 갖고 응답하는 시스템의 출발지는 스코틀랜드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1999년부터 전자청원제도(e-petition)를 선도적으로 도입해 적극 운영하고 있다.

독일 의회는 심사를 거친 청원 내용을 일정기간 사이트에 게시한다. 그동안 지지 서명과 찬반 토론이 이뤄져 민심의 확장을 용이하게 하는 취지다.

프랑스 의회의 경우 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위원회가 정부에 대한 청원 이송을 결정할 수 있게 했고, 정부로부터의 답변을 청원인에게 전달하도록 하고 있다.

안동현 인턴 기자


'화내도 괜찮아'…내말 들어주는 靑



[국민청원 신드롬]⑨억울함 알리고 제도개선 순기능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대의제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가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정치시스템이지만 한계도 있다.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싶은 시민들의 욕구가 모여드는 곳이 청와대 국민청원이다. 지난해 8월 이후 현재까지 34만개 이상의 청원이 접수됐다. 20대 국회의 입법청원이 159건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가히 폭발적 참여다.

◇억울한 사연 알려=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억울한 일을 당해 국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제도 변화를 촉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담긴다. 여기서 이슈가 되면 전국민이 감시자가 돼 청와대 답변과 향후 처리과정을 지켜본다. 과거정부에서 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지난달 18일 한 남성이 "너무 억울하다"며 산부인과 의료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었다고 밝혔다. 병원 측의 차트 조작 등을 주장한 그는 "첫째 딸은 아직도 엄마가 동생을 낳아서 병원에서 치료하고 있는 줄 안다"며 "제발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춘천 혼수 살인사건' 피해자의 어머니도 지난달 31일 “혼수·예단 문제는 거론된 적도 없는데 가해자 말에 의존한 오보로 가족과 딸이 또 한번의 억울함과 슬픔을 겪고 있다"며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지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두 청원은 아직 청와대 답변을 기다리고 있지만 여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제도개선 필요성 발굴=국민청원은 '입법청원' 기능도 한다. 음주운전 처벌 강화를 요구한 이른바 '윤창호법' 제정 청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답변한 뒤 국회에서 입법 논의 중이다. 민사소송에서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보호해 달라는 '민사집행법' 개정 청원은 법무부에서 개선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차량에 내리지 못한 아이가 없는지 확인하는 '슬리핑차일드 체크 시스템' 청원은 보건복지부의 법 개정 추진을 이끌어냈다.

국회에도 입법 청원제도가 있지만 절차가 복잡하다. 국회의원 1인 이상의 소개를 받아야 청원이 가능하고 제출해야 할 서류도 많다. 진입장벽이 높은 국회 대신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국민들의 정치 효능감을 높이고 있다.

따라서 '민의의 전당' 국회의 여론수렴 기능도 강화해야 한다. 단 구체적으로 입법조치를 요구하는 국회 입법청원과, 온갖 목소리를 다 표현할 수 있는 청와대 청원을 단순비교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의원에게 직접 청원하는 '의원 면담법'= 국회도 진입장벽을 낮추고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한 제도를 마련 중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의원 면담법'을 지난해 11월 발의했다. 현행법상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의 민원은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청원은 '청원법'에 따라 처리한다. 그러나 국회의원과 직접 만나 소통하는 공식적인 창구는 부족했다.

박 의원의 법안이 통과되면 선거권자 30명 이상이 면담 신청서를 작성해 국회의원에 보내면 해당 의원은 수락이나 거절 의사를 밝혀야 한다. 국회의원은 면담 사유가 불명확하거나 직무수행을 방해하려는 목적이 명백할 때를 제외하고는 면담신청을 거절할 수 없다. 헌법에 보장돼있으나 잠들어 있던 권리인 청원권을 깨우는 효과가 기대된다.

김남희 인턴 기자



文대통령, 국민청원에 "어떤 의견도 바람직"



[국민청원 신드롬]⑩정치 지론..플랫폼 업그레이드
청와대 국민청원은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해온 문재인 대통령의 지론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국민이 대의민주주의에 만족을 못하는 시대에, 정부와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민의를 국정에 정확히 반영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문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했을 때부터 대의민주주의의 약점을 피플파워로 보완하는 것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왔다.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시절 '온-오프라인 정당' 체제를 구축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개방된 시민참여 정당만이 국민의 생활을 살필 수 있는 수권정당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5년 10월 자신이 주도해 '국민예산마켓'을 마련했고 2017년 4월 대선국면에서는 '문재인1번가'를 열었다.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큰 그림은 같았다. 국민이 제안하고 다수가 추천한 예산과 정책을 채택해 실제 정치과정에 반영을 한다는 구조였다. 문재인 정부의 1호 공약 사업이었던 '도지재생 뉴딜사업'도 '문재인1번가'에서 채택됐던 정책이다.

촛불혁명 이후 대선에서 승리한 문 대통령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 것으로 보인다. 당대표․대선후보를 거쳐 대통령이 되면서 구현 가능한 플랫폼도 업그레이드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생각은 지난해 8월 정부 출범 100일 기념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 보고에서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집단지성과 함께 나아가는 게 성공하는 길"이라며 "그동안 국민은 주권자로서 정치를 구경만 하다가 선거 때 한표를 행사해왔다. 그렇기에 우리 정치가 낙후됐다고 국민들이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이 간접민주주의로 만족을 못한다"며 "국민들로부터 정책제안을 받아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함께 만드는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해선 직접 가이드라인을 내리기도 했다. 다소 엉뚱하고 청와대가 답을 할 수 없는 청원이라도 자유롭게 청원 글을 올릴 수 있는 시스템, 20만명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정부의 책임자가 청와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라이브 방송에 나와 답을 내놓은 방식 등은 모두 이런 문 대통령의 의중에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어떤 의견이든 국민들이 의견을 표출할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어떤 의견이든 참여 인원이 기준을 넘은 청원들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각 부처에서 성의 있게 답변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 "참여 인원이 수십만명에 달하는 청원도 있고, 현행 법제로는 수용이 불가능해 곤혹스러운 경우도 있다"며 "그러나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청원이라도 장기적으로 법제를 개선할 때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민 기자


"온라인 청원은 대세"…美 트럼프도 못 막았다



[국민청원 신드롬] 자극적인 청원이나 실속없는 답변은 문제
미국 시민단체 코드핑크 회원들이 지난 5월 7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사진=뉴시스

2000년대 들어 미국, 독일, 영국 등 북미와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정부 주도의 온라인 청원 플랫폼이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다. 청원의 한계와 문제점이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지난해 1월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경제, 사회, 외교 등 전 분야에 걸쳐 '오바마 지우기'에 나섰다.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을 폐지하거나 손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바꾸지 못한 것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출범시킨 온라인 정부 청원 사이트 '위더피플'(We the People)이다.

2011년 9월 문을 연 위더피플은 시민 청원을 접수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30일 내 10만 명 이상이 서명한 청원에는 백악관 관계자가 직접 답변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2016년 12월까지 2900만 명이 48만여 건의 청원을 등록했다. 답변 기준을 만족한 청원은 268건이며, 이 중 85%인 227건에 정부 답변이 이뤄졌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 후 1년여간 청원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위더피플에 시스템 재정비를 위해 약 한 달간 사이트를 폐쇄하겠다는 공지가 올라오면서 "폐쇄 수순이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 위더피플을 재개장했고 이전 청원을 포함해 서명 10만 건을 넘은 청원에 차례로 답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111만4870명의 지지를 얻은 '트럼프 대통령의 납세 내역 공개' 청원에도 답변했다. 물론 답변은 "대통령 개인의 결정에 따르는 사항으로 (청원 대상을 연방 행정부 권한 내로 한정한) '위더피플 참여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

미 의회 감시 시민기구인 선라이트재단의 존 분덜리히 사무총장은 워싱턴포스트(WP)에 "(위더피플) 사이트는 완벽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자원"이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사이트를 재개장한 건 객관적으로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백악관 청원 사이트 '위더피플' 홈페이지.


다만 온라인 정부 청원의 문제점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자극적인 내용의 청원에 이끌린다는 지적이다. 미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위더피플에 등록된 4800여개 청원 중 대중문화 관련 내용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대표적으로 저스틴 비버의 국외 추방을 요구하는 청원에 27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정부 답변도 기대에 못 미칠 때가 많다. 위더피플의 경우 청원이 정책으로 이어진 경우는 동성애 전환 치료 금지, '언락'(단말기별 통신사 지정 해제) 허용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에드워드 스노든 전 국가안보국(NSA) 직원 사면을 촉구하는 청원은 등록된 지 2년 만에 '불가' 답변을 받았다. 2015년 유럽의회는 관련 보고서를 통해 시민들이 온라인 청원을 통해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지 못할 경우 불만과 정치 불신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손쉬운 해결방법은 무의미한 청원이 난립하지 않도록 '문턱'(threshold)을 높이는 것이다. 위더피플도 출범 초기에는 정부 답변을 위한 최소 서명 인원이 5000명이었으나 10만명으로 20배 늘렸다. 청원 등록 후 30일 동안 150개 서명을 모아야 내용이 일반에 공개되는 '이중 문턱'이 있는 것도 특이점이다.

유럽에서는 온라인 청원을 민주시민의식 고취 수단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1999년 정부 최초로 온라인 청원 시스템을 도입한 스코틀랜드 의회는 별도의 위원회를 두고 청원을 의논하며 때에 따라서는 청원인을 초청해 의견을 청취한다. 독일 분데스탁(Bundestag·연방하원) 하위 기구인 청원위원회도 청원의 종류를 '일반 청원'과 '공공 청원'으로 나눠 후자의 경우 5만 서명을 넘으면 대표 청원인 의견을 청취한다. 모든 과정은 온라인 중계되기 때문에 누구나 시청할 수 있다.

구유나 기자

▶'이수역 폭행사건'의 본질은
▶'혜경궁 김씨'는 누구? ▶바람 피운 남편이...

김성휘 기자 sunnykim@mt.co.kr, 백지수 기자 100jsb@mt.co.kr, 이상원 인턴기자 sangwon0729@gmail.com,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김하늬 기자 honey@mt.co.kr, 최태범 기자 bum_t@mt.co.kr, 안동현 인턴기자 pikapika00@naver.com, 구유나 기자 yu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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