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딩크’ 박항서팀의 단단한 조직력···‘태극전사의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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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팀 만나도 무너지지 않는 조직력·정신력 보여줘
수비축구 비판에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실리축구”
20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막툼 경기장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요르단과 베트남과의 16강전에서박항서 감독이 연장 후반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연합뉴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막툼 경기장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요르단과 베트남과의 16강전에서승부차기에서 승리한 베트남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연합뉴스

[서울경제] “해피버스데이 투 유”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대비해 카타르 도하에서 전지훈련을 치른 베트남 축구 대표팀이 지난 4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당시 공항에 영접 나온 베트남 교민들은 일제히 박 감독을 향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날은 박항서 감독의 호적상 생일이었다. 박 감독은 공항에 마중 나온 국내 취재진과 만났지만 애써 인터뷰를 사양하고 대표팀 버스에 몸을 싣고 숙소로 향했다. 지난해 초 AFC U-23 챔피언십에서 역대 첫 준우승을 지도한 박 감독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베트남 U-23 대표팀을 역대 처음으로 4강까지 진출시키며 또 한 번의 마법을 부렸다. 베트남 대표팀이 승승장구하면서 박 감독은 베트남의 주산물인 쌀과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작성한 거스 히딩크 감독의 이름을 따서 ‘쌀딩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베트남은 박 감독의 지휘 아래 10년 만에 스즈키컵 우승을 따냈고, 아시안컵 예선도 통과해 12년 만에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도 얻었다.

베트남 축구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끈 박 감독은 절대 자만하지 않았다. 작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도 “우리의 목표는 조별리그 통과”라며 말을 아꼈고, 이번 아시안컵에 나서면서도 그때와 똑같이 “조별리그 통과가 목표”라는 겸손함을 유지했다. 박 감독은 아부다비에 도착한 뒤 연합뉴스 기자와 나눈 메신저 대화에서 이번 대회를 앞둔 조심스러운 속내를 전했다. 공항에서 인터뷰하지 않았던 미안한 마음을 전한 박 감독은 “우리 경기 너무 신경 쓰지 마소. 망신당할까 봐 (걱정이) 태산. 훈련장에서 봅시다”라며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스즈키컵 우승으로 베트남이 동남아시아 축구 정상에 올랐지만, 박 감독은 동북·중앙아시아는 물론 중동과도 아직 실력 차가 크다는 점을 인식하며 조심스럽게 아시안컵 준비에 나섰다. 더구나 베트남은 이란, 이라크, 예멘과 함께 ‘죽음의 조’로 불리는 D조에 속하면서 조별리그 탈락이 유력했다. 예상대로 베트남은 이라크에 2-3으로 패한 뒤 이란에 0-2로 무릎을 꿇고 2연패를 당했다. 2경기를 내리 패하자 우호적이던 베트남 언론들도 박 감독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멘을 2-0으로 꺾은 베트남은 조 3위를 차지한 뒤 6개 조 3위 팀 가운데 성적이 좋은 4개 팀에 주는 16강행 티켓을 극적으로 품에 안아 2007년 대회 이후 12년 만에 조별리그 통과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특히 베트남은 레바논과 승점, 골 득실, 다득점까지 같았지만, 경고를 적게 받은 덕분에 페어플레이 점수에서 앞서 16강으로 향하는 막차에 올라탔다.

이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베트남은 20일 펼쳐진 요르단과 16강전에서 선제골을 얻어맞았지만, 기어이 동점 골을 터트린 뒤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기면서 8강 진출의 기적을 연출했다. 베트남은 수비 때는 5-4-1 전술로 든든하게 벽을 세우고, 공격에서는 빠른 측면 돌파로 상대 수비를 허무는 전술을 썼다. 선수들은 조별리그에서 강호 이란과 이라크를 맞아 90분 내내 지치지 않는 체력을 앞세워 포기하지 않고 뛰어다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4강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의 코치였던 박 감독의 ‘강팀을 상대해본 경험’이 고스란히 묻어난 전술이었다.

박 감독은 16강전에 끝난 뒤 ‘수비 축구를 펼친다’는 외신 기사에 대해 “우리는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축구를 하고 있다. 그것을 수비 축구라고 지적을 했지만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실리 축구를 한다”고 항변했다. 그의 말 대로 베트남은 상대 팀들의 전력이 높아 수비에 치중했지만, 중동식 ‘침대 축구’가 아닌 ‘선 수비 후 역습’의 전형을 보여주며 8강까지 승승장구했다. 조별리그 3경기부터 16강전까지 치른 4경기 동안 일관된 ‘박항서식 실리 축구’였다. 운이 좋아 8강에 진출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행운이라는 것은 그냥 오는 게 아니다. 구성원 모두가 각자 맡은 일을 잘 해낼 때 나오는 결과”라며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정선은 인턴기자 jse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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