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전수민의 소도마을 신농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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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1.16. 오후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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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처럼 생긴 달을 바라보면서 어두운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저 멀리서 택시 한 대가 다가왔다. 반가웠다. 손에는 이미 버스카드가 쥐어져 있고 시간도 넉넉하고 너무 춥지 않았는데도, 버스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할 리 없는데도 말이다. 마침 ‘너무 어둡고 혼자였으니까’라고 재빨리 덧붙여 생각했지만 적절한 이유가 되기엔 조금 부족했다. 천천히 다시 생각해 보니 어둠보다 본능적으로 빛을 더 좋아해서, 뭣보다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나서 반가웠던 게 아닐까 싶었다.

“사람들은 너무 겁을 많이 먹는 것 같아요. 어떤 변화에 대해서요. 세상이 항상 그렇게 나쁜 것 같진 않은 것 같은데도요.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나빠도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바꾸기가 힘든가 봐요. 그래서 결국은 포기하고 자신한테 지는 거죠.”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주인공 트레버가 한 말이다.

이 영화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세상을 바꾼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트레버는 사회 시간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이를 실행해 옮겨 보라’는 숙제를 받게 된다. 트레버는 고민 끝에 ‘도움 주기 운동’을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도움은 정말 의미 있고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그런 도움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도움을 받고 나서 도움을 준 사람에게 그 도움을 대갚음하는 것이 아니고, 주변에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잘 살펴보고 3명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다시 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 각각의 세 사람도 또 다른 세 사람에게 그런 특별한 도움을 준다. 즉 3명이 각 3명에게 도움을 주면 총 9명이, 그 9명이 또 각 3명에게 도움을 주면 총 27명이 도움을 받는 식으로 말이다. 만약 그런 ‘도움 주기 운동’이 계속된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삶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속에서 트레버는 자신이 도움을 줄 상대로 마을에 있는 노숙자 아저씨와 자신의 엄마, 그리고 사회 선생님을 선택한다. 그리고 의미 있는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한다. 그리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그 세 사람의 삶이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선행은 서서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퍼진다.

“사람들을 잘 살펴봐야만 돼요. 사람들을 지켜보고 보살펴야 돼요. 스스로는 못하니까요. 자전거를 고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바로 사람을 고치는 일이에요.”

이 영화를 보고 받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덕분에 나도 10년 전부터 내가 할 수 있는 ‘도움 주기 운동’을 하고 상대방이 “정말 고맙습니다. 어떻게 다 갚지요?”라고 하면, “저에게 해주실 일은 없습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세요”라고 기꺼이 말하게 됐다.

일상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척 다양하다. 사소하게는 사회생활을 하며 나랑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을 뒤에서 험담하지 않는 것도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미소 짓거나 친절하게 대하는 일 역시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힘이 약한 사람들의 편을 들어줄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내가 나서서 도와주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일을 알리는 것 또한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에게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고 믿고 있다. 세상이 쉽게 나아지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에게 기대한다. 세상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한 사람의 ‘도움 주기 운동’은 더 의미 있을 것이니까 말이다.

일월연화도-태평성대, 한지에 채색(Korea Painting on Han-ji), 2015


■오늘의 그림은?

‘일월연화도(日月蓮花圖)는 해와 달이 있는 한국의 연꽃 풍경화다.

해와 달은 하나의 화폭 안에 공존하거나, 해가 달을 품거나 달이 해를 품는 형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음양의 조화를 이룬 심상의 풍경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해와 달은 ‘음양’으로, ‘음양’은 우주적 생명의 소극적·적극적 원리다. 보통 ‘음’은 대지·달·어둠·정적·여성 등을 상징하고, ‘양’은 하늘·태양·빛·용기·남성을 상징한다. 화면은 비현실적이나 어디엔가 있을 법한 풍경이 주류를 이루며, 소재는 구체적인 대상이라 할지라도 사실성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그려진다.

연화도는 연꽃을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데, 한 줄기의 연꽃을 그리면 청렴결백하기를 바라는 것이고, 연꽃이 무더기로 자라나 있는 그림은 시작을 축하하고 번창하기를 축원하는 것이며, 연밥이 들어 있는 송이를 포함한 연꽃을 그리면 귀한 아들을 빨리 낳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된다.

연꽃이 어떠한 소재와 짝을 짓느냐에 따라서도 그 의미가 변하는데 연꽃과 물고기가 그려지면 해마다 넉넉하고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기를 바라는 뜻이고, 제비가 연꽃 위를 나는 그림에는 천하가 태평해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소망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전수민은?

전수민은 어디선가 본 것 같지만 그 어디에도 없는 풍경을 그린다. 전통한지와 우리 재료 특히 옻칠을 이용해 우리 정서와 미지의 세계를 표현하는 한국 화가다. 한국은 물론 미국 워싱턴 D.C. 한국 문화원, 프랑스 아리랑 갤러리, 이탈리아 베네치아 레지던스, 중국 생활미학 전시관 등의 초대전을 비롯한 17회의 개인전 그리고 일본 나가사키 현 미술관, 프랑스 숄레 등의 단체전 90여 회, 각종 해외 아트 페어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아직 듣지 못한 풍경>(2012), <일월산수도>(2013), <일월산수도-피어나다>(2014), <일월연화도>(2015) (2016), <일월부신도>(2017), <일월초충도>(2018), <일월모란도>(2018)등이 있다.

현재 화천소도마을 대안학교 ‘신농학당’의 교장으로도 근무하고 있다. 또한 그림 수필집 <이토록 환해서 그리운>(2016)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2017)을 출간했다.

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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