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apest in ‘글루미 선데이 Gloomy Sunday’ 둘보다 셋일 때 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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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 사회는 물론이고 군사적으로도 15세기 당시 헝가리는 동유럽의 강자였다. 수도 부다페스트에는 수많은 건축물과 고딕식 궁전이 지어졌고 부다페스트 ‘도나우 강의 진주’ ‘동유럽의 파리’로 불리는 기초를 닦았다. 하지만 번영을 누리던 헝가리는 마차시(Matyas) 1세 이후 급속히 쇠락했고, 이후 20세기까지 외세의 직간접적인 지배를 받았다.



▶부다페스트 & 글루미 선데이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이 도시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야경이다. 세계 3대 야경으로 손꼽히는 부다페스트의 중심은 단연 도시를 관통하는 도나우강이다. 유럽에서 볼가강 다음으로 긴 이 도나우강은 원래 부다페스트를 부다와 페스트로 양분한 벽이었다. 강 동쪽은 언덕이란 뜻의 ‘부다’로 귀족과 부자들의 동네, 서쪽은 평지라는 뜻의 ‘페스트’로 주로 평민들이 살았다. 부다 지역 사람들은 강을 건너는 다른 수단이 필요하지도, 강을 건널 생각도 없었다. 강의 존재가 계급과 부를 나누고 지키는 방벽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귀족과 부자들은 상인과 평민들이 자신들의 지역으로 쉽게 넘어오는 것을 용납치 않았다. 그것은 신분과 계급 즉 기득권의 붕괴를 뜻하기 때문이었다.

강 하나를 사이로 부다와 페스트는 다른 도시, 다른 문화였다. 그렇게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고 헝가리의 수도와 중심 역할은 14세기부터 부다의 몫이었다. 관청, 왕궁, 사원들이 모두 부다 지역에 세워졌다. 철저하게 양분되었던 부다와 페스트가 하나로 연결되고 통합된 것은 19세기 때다. 가장 위대한 헝가리인으로 칭송 받는 이슈트반 세체니 백작의 공이다. 그는 영국의 건축가 클라크 아담에게 설계를 의뢰해 1849년 세체니 다리를 건설했다. 이 380m 길이의 다리 하나로 부다와 페스트는 지역, 계층, 신분을 넘어 하나가 되었다. 즉 부다페스트가 된 것이다. 세체니 다리는 교통 수단, 길의 역할을 뛰어넘어 헝가리와 도시의 부흥을 가져온 마법의 열쇠가 되었다.

세체니 백작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사비로 다리를 건설한 후 부다페스트와 도시 바츠를 잇는 헝가리 최초 증기 기관차를 운행했고 국립 학술원도 개원하는 등 열강의 침략과 영토 강탈로 실의에 빠져있던 19세기 헝가리인들에게 희망을 안겨 준 영웅이었다.

헝가리 국민들은 세체니를 국민적 영웅으로 존경한다. 단순히 다리 하나 놓아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사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귀족이고 부자였던 세체니는 강을 건너 페스트 지역에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5년 동안 이 다리를 건설한 것은 진정한 사회 공동체, 발전하는 도시 그리고 더욱 단단해지는 헝가리를 위한 것이었다. 몇 번의 전쟁과 파괴, 그리고 재건 작업을 거쳐 세체니 다리는 부다페스트의 도나우강에 놓인 9개 다리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세체니 다리는 특별하다. 물론 부다페스트 도나우강의 첫 번째 다리라는 상징도 있지만 이 다리는 건축물 자체로도 완벽한 비례를 갖춘 현수교에다 사자 장식물 등 아름다운 경관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빛나는 야경 때문에 부다페스트를 찾는 관광객의 필수 관람 코스가 되었다.

무엇보다 세체니 다리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아름다운 여성 일로나, 자상하고 배려심 많은 레스토랑 사장 자보, 천재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이 세 명의 사랑과 질투, 파멸을 다룬 이 영화는 슬픈 이야기도 돋보이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털썩 떨어뜨리는 음악이 단연 압권이다. 한때 ‘자살을 부르는 저주의 노래’라는 소문으로 금지곡이 되기도 했던 ‘글루미 선데이’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40년대 부다페스트의 암울함을 그대로 전달한다.

▶“너를 잃느니 반쪽이라도 가지겠어”

199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작지만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자보. 한 무리의 독일인 손님이 찾아온다. 독일인 사업가 빅터 한스(벤 베커)의 80세 축하 모임이다. 빅터는 자신의 생일 잔치를 위해 이 레스토랑을 찾았다. 빅터는 찬찬히 레스토랑을 살펴본다. 그의 눈은 추억에 젖는다. 빅터는 밴드를 불러 돈을 쥐어 주며 연주를 부탁한다. “그 유명한 노래, 그 곡을 연주해 주게.” 음악이 흐른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에서 울려 퍼지는 처연하고도 슬픈 노래. 빅터는 피아노 위에 놓인 흑백 사진을 응시한다. 사진은 아름다운 여인 일로나의 60년 전 얼굴이다. 하염없이 사진을 바라보던 빅터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바닥에 쓰러진다. 모두 놀라 어쩔 줄 모르고 있다. 그때 누군가의 외침이 들린다.

“이 곡, 글루미 선데이는, 저주받은 곡이에요. 사랑을 위해 쓰인 곡이지만, 그녀에게는 그랬어요.”

60년 전인 1939년 자보 레스토랑. 성실하고 다정한 자보(조아킴 크롤)는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그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은 작지만 아름다운 곳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이곳에는 아름다운 여인 일로나(에리카 마로잔)가 있다. 연인 사이인 자보와 일로나는 행복하다. 그렇지만 레스토랑 밖은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나치는 헝가리를 점령하고 사람들은 ‘큰 전쟁’이 날 것이라며 불안해한다.

레스토랑에 한 남성이 찾아온다. 그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스테파노 디오니시). 선하고 깊은 눈, 예민한 감성의 그의 연주를 듣고 자보와 일로나는 그에게 피아노를 맡긴다. 안드라스는 일로나에 한눈에 반했다. 일로나 역시 안드라스를 보고 마음이 흔들린다. 자보는 일로나와 안드라스의 속마음을 짐작하지만 대범하게도 안드라스를 고용한다. 안드라스의 마력과 같은 피아노 연주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레스토랑에는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와 지친 마음을 달랜다. 자보, 일로나, 안드라스의 관계는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팽팽한 선이다.

일로나의 생일. 안드라스는 일로나에게 악보를 선물로 준다. “일로나, 아직 다 완성하진 못했지만 당신께 드릴 것은 이 멜로디밖에 없어요. ‘글루미 선데이’예요.” 그리고 그 곡을 연주하는 안드라스. 마음을 파고드는 곡, 일로나는 안드라스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날 저녁, 독일인 청년 빅터 한스가 레스토랑에 찾아온다. 그 역시 일로나를 보고 한눈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다. 내일이면 독일로 돌아가야 하는 한스는 큰 용기를 내 일로나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저만치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자보와 안드라스. 일로나는 한스의 고백과 청혼을 거절한다. 힘없이 뒤돌아가는 한스. 그리고 일로나는 안드라스와 밤을 보내기 위해 떠난다. 홀로 남은 자보. 그는 천천히 세체니 다리에 올라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자보는 고민한다. 아무리 대범하고 일로나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안드라스와 일로나가 같이 밤을 지낸다는 것을 생각하면 괴롭다. 그 순간, 누군가 휘청거리며 걸어온다. 한스다. 상념에 빠진 한스는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 자보는 그에게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한스는 듣지 않는다. 저 멀리 가 버리는 한스. 잠시 후 자보는 다리를 걷는다. 그때 자보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리 위에 놓인 한스의 물건. 한스가 물에 몸을 던진 것이다. 자보는 물에 빠진 한스를 구한다. 그 시간, 안드라스와 일로나는 사랑을 나눈다.

자보와 안드라스, 일로나는 마주 앉아 있다. 자보는 두 사람에게 말한다.

“내가 일로나와 지낸 세월이 벌써 4년이야. 그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깨달은 것이 있어. 사람은 두 가지를 동시에 좋아할 수 있어. 마음을 위한 것, 육체를 위한 것. 나를 채워주는 것, 내가 갈망하는 것이야. 나에게 일로나가 그래. 그래서 그녀를 완전히 잃느니 반쪽이라도 가지겠어. 난 신경 쓰지 마. 내가 늘 말했지. 결정은 언제나 자유라고. 난 계속 걸을 거야.”

이때부터 세 사람은 특별한 사랑을 시작한다.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식사하고, 같이 햇빛도 즐기고 강변도 걷는다. 하루는 자보와, 또 다른 날은 안드라스와 일로나가 사랑을 나눈다. 불안한 행복이다. 자보와 안드라스는 가끔 술에 취해 푸념을 늘어놓는다. “일로나, 당신은 두 남성을 가졌잖아. 우리는 반쪽씩 가졌고. 나와 안드라스가 다투는 게 누구 때문인데.” “고통스러운 것도.” “맞아, 안드라스. 그래 고통.” “맞아요. 자보, 안드라스. 그런데 하나 분명한 것은 누구든 뛰어내리면 우리 셋 다 함께 가는 거예요. 우린 하나예요. 하나가 죽으면 모두 다 죽어요.” 이렇게 고통스러우면서도 두 사람은 일로나를 떠날 수 없다.

안드라스에게 음반 제작자가 찾아온다. 그는 레스토랑에서 안드라스가 연주하는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음반을 내자고 제안한다. ‘글루미 선데이’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레스토랑은 더욱 번성한다. 하지만 불안한 시국으로 인해 우울에 빠진 사람들이 한두 명씩 이 곡을 듣고 자살한다. 안드라스는 이 소식을 듣고 괴로워한다. 자보와 일로나는 실의와 죄책감에 빠진 안드라스를 위로하지만 안드라스는 깊은 우울에 빠진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간다. 헝가리는 완전히 나치 독일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60년을 기다린 슬픈 복수

자보의 레스토랑에 독일군 장교들이 들어온다. 그중에 한스가 있다. 그는 독일군 대령이 되었다. 자보는 한스를 반갑게 맞이한다. 자살을 시도해 강물에 빠진 그를 구해 준 자보는 사실 한스에게는 생명의 은인이다. 그러나 미소를 짓고 있는 한스의 얼굴이 냉랭하다. 그의 눈은 일로나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자보는 유대인이다. 나치는 유대인을 상대로 대대적인 인종 청소 작업을 하고 있다. 자보의 목숨이 한스 손에 달린 것이다. 일로나는 자보를 위해 한스의 사무실을 찾아간다. 사무실 밖에는 안드라스가 있다. 일로나는 자보의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한스에게 청한다. 한스는 본심을 숨기지 않는다.

“일로나, 내가 자보를 보호해 주면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어?” 안드라스는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일로나를 오해한다.

그날 저녁, 한스는 레스토랑에서 거들먹거리며 만찬을 즐긴다. 그리고 안드라스를 불러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하라고 명령한다. 안드라스는 거부한다. 위험에 처한 안드라스를 보호하기 위해 일로나는 피아노 옆에 서서 ‘글루미 선데이’에 노랫말을 붙여 부른다. 이를 듣고 안드라스는 일로나를 위해 연주를 시작한다.

‘우울한 일요일, 시간은 흐르고 내 곁을 늘 지켜 준 그림자는 수없이 많네. 작은 흰 꽃들은 결코 당신을 깨우지 못하고, 슬픔의 마차가 당신을 데려간 곳에 천사들은 당신을 보낼 생각도 안 하네. 내가 당신 곁으로 간다면 천사들은 화낼까요. 우울한 일요일.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내 마음은 함께 있네. 이제 모두 끝내기로 마음을 먹지요. 곧 꽃들이 놓이고 슬피 기도하는 이들이 모이면 울지 말라고들 전해 주세요. 내가 기쁘게 떠났다는 걸 알려주세요. 죽음은 꿈이 아니지요. 죽어서 당신을 만질 수 있으니까요. 내 마지막 숨결로 그대를 축복하네. 우울한 일요일, 나는 꿈꾸고 있었을 뿐이지요. 이제 깨어나 내 맘 깊은 곳으로부터 당신을 찾네. 그대가 내 꿈 때문에 아파하지 않길 바라요. 내 마음은 얼마나 내가 당신을 원했는지 말하고 있으니까요.’

슬픈 정적에 휩싸인 레스토랑. 그 순간 총성이 울리며 안드라스는 자살을 한다. 비명을 지르는 일로나와 자보. 자보와 일로나는 충격에 빠진다.

한스는 자보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고 일로나에게는 마치 자보를 보호할 것처럼 말하고, 자보에게는 다른 유대인의 목숨을 살려 주겠다고 말한다. 기만이었다. 한스는 자보에게 유대인을 살려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한다.

“자보, 한 명에 1000달러씩이야. 아주 싼값이야. 27살의 사람이 70살까지 산다면 43년을 버는 셈이야. 다시 말하면 516개월의 삶이지.”

“사람 목숨으로 그런 계산을 할 줄 몰랐네.”

“하고 싶은 대로 해. 관심 있는 사람은 내 별장으로 오라고 해. 오후 6시 전엔 안 돼. 한 번에 셋 이상도 안 돼. 노란 별도 꼭 가려야 해. 아, 자넨 걱정할 것 없어. 안전할 거야.”

자보는 삶의 의미와 의지를 상실했다. 그는 한스의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정체를 파악했다. 자보는 절망한다.

“일루나, 이제야 글루미 선데이의 의미를 알 것 같아.”

“안드라스가 항상 찾던 거?”

“사람은 자신만의 존엄이 있는 거야. 상처를 받고 모욕을 당해도 한 줌의 존엄으로 우리는 최대한 버티는 것이지. 하지만 버틸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세상을 떠나는 게 나을지도 몰라. 존엄을 지키면서.”

“떠나지 말아요. 행복을 위해 싸워야죠.”

한스는 종전 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유대인의 지도층 인사를 살려 주었다는 명분을 갖춘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비밀을 알고 있는 자보를 수용소로 보낸다. 일로나는 한스를 찾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일로나는 한스 앞에서 옷을 벗는다. 그러나 한스는 끝까지 일로나를 이용만 한다.

일로나는 자보의 짐을 정리하다 편지를 발견한다. 그 옆에는 안드라스가 자살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심장을 멈추게 하는 독약 병이 있다. 일로나는 편지를 읽는다.

“사랑하는 일로나, ‘글루미 선데이’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어. 무력하게 최후를 기다리지 않겠어. 안드라스 뒤를 따르겠어. 제대로 싸우는 법을 배우기엔 너무 늦었어. 우리의 꿈이 깨졌다고 슬퍼하진 말아요. 견뎌내야 해, 이 모든 건 다 지나갈 테니까.” 일로나는 쓰러진다.

시간이 다시 흘러 1999년 레스토랑 주방. 늙은 여인 옆으로 다가오는 레스토랑 지배인. “다 끝났습니다. 어머니, 생일 축하해요.” 조용히 잔을 드는 일로나와 그녀의 아들이다.

▶둘보다 셋일 때 더 행복했던 그들

영화는 독일의 롤프 슈벨 감독이 1999년에 만들었다. 그는 ‘죽음을 부르는 노래’ ‘자살자의 찬가’로 불리는 ‘글루미 선데이’를 토대로 1988년 닉 바르코가 발표한 소설 『슬픈 일요일의 노래』를 결합해 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연주곡 ‘글루미 선데이’는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레조 세레스가 1935년에 만들었다. 이후 이 곡은 수많은 소문을 만들어 냈다. ‘발표 8주 만에 헝가리에서만 187명이 자살했다’ ‘유럽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자살했다’ ‘1936년 파리의 극장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이 곡을 연주하면서 차례로 자살했다’ 등등. 또한 이 곡을 만든 레조 세레스가 사랑하는 연인 헬렌에게 버림받고 이 곡을 만들었고, 헬렌도 자살했으며, 이 곡을 만든 레조 세레스 역시 자살했다는 이야기까지 퍼지면서 ‘글루미 선데이’는 마치 자살을 위한 노래로 여겨졌다. 원래 이 곡은 연주 곡이고 제목 역시 ‘세계의 끝’이었으나 작사가 야보르 라슬로에 의해 ‘슬픈 일요일’이란 뜻의 가사와 제목이 만들어졌다. 가사가 붙은 노래는 헝가리 가수 칼마르 팔이 처음 불렀고, 이 곡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41년 미국의 빌리 홀리데이가 영어로 발표하면서부터다. 그 뒤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다. 이 기이한 소문 중에서 작곡가 세레스가 1968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 제2차 세계 대전 시 전쟁 중인 군인들의 사기를 위해 BBC에서 방송을 금지한 것 정도만 사실이다. 노래 한 곡에 너무 많은 죽음이 연결된 것은 발표 당시 헝가리를 포함한 유럽의 암울한 분위기, 아름답지만 처연하면서도 서러운 곡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슬픈 전설’이 붙은 셈이다.

영화는 한 여성과 그녀를 둘러싼 세 남성의 사랑과 비운을 담고 있다. 특히 충격적인 엔딩으로 인해 그 슬픔이 배가된다. 한 여성을 동시에 사랑하는 두 남성, 그녀에게 버림받은 또 다른 한 남성, 유대인과 나치, 힘없이 나라를 빼앗긴 헝가리 국민과 역시 힘이 없어 권력에 연인을 빼앗기고 목숨을 잃는 두 남성의 이야기가 동시 진행된다.

영화의 명대사인 “당신을 잃을 바에는 반쪽이라도 갖겠다”는 말처럼 영화에 등장하는 사랑은 온전하지 않다. 자보와 일로나, 일로나와 안드라스의 사랑도 사실은 비정상적이다. 한 여성을 두 남성이 동시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똑같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단순히 사랑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을 떠나 인간의 수많은 욕망 중에서 ‘잃는다’보다는 ‘연결되어 있다’는 관계성과 상통한다. 그 가느다란 관계의 선마저 거부당한 한스는 처절하게 복수한다. 안드라스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그를 죽음으로 내몰고 자보의 선의를 이용해 자보를 치욕의 밑바닥으로 떨어뜨려 죽게 한다. 한스 역시 강제로 일로나의 육체를 취하지만 일말의 죄책감도 없다.

오히려 자신의 80세 생일 파티를 위해 자신이 저지른 악행이 지워지지 않은 레스토랑을 찾는다. 자신은 모든 행동이 선이고 정의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안드라스가 자살용으로 지니고 있었으나 써보지 못한 채 자보에게 넘어갔던, 자보 역시 사용치 않아 일로나가 보관하고 있던 독약으로 죽는다. 복수의 엔딩, 그것은 정말로 행복한 결말일까. 안드라스, 자보가 그토록 찾고 싶었던 ‘글루미 선데이’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영화는 던진다.

▶부다와 페스트를 통합한 다리 하나

기원전 로마는 헝가리를 ‘판노니아’라 불렀다. 그나마도 도나우강 서쪽만 로마의 통치령이 미쳤다. 강 건너 동쪽은 게르만족과 아시아 계통의 종족이 있었다. 그 뒤 이 지역의 패권자는 훈족이었다. 그들은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로마, 신성 로마 제국의 힘을 막아냈다. 800년경, 샤를마뉴 대제는 이 지역을 직접 통치하길 원했다. 그는 유목 민족인 마자르족에게 협상 카드를 내밀고 훈족을 대신하라고 했다. 892년 신성 로마 제국 아르눌프 황제 시기에 마자르인은 헝가리를 거의 차지했다. 그들은 아르파드를 군주로 선출하고 부족을 넘어 나라의 형태도 갖추었다. 하지만 이들의 주업은 약탈이었다. 그러나 아르파드의 손자인 게조와 그의 아들 이슈트반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면서 헝가리는 범유럽권, 그리스도국에 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헝가리에 최대의 재앙이 닥친 것은 1240년경이다. 당시 몽골 제국은 세계를 휩쓸었다. 특히 헝가리는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몽골족의 칼날과 말발굽에 헝가리 전 인구의 절반이 사망했다. 헝가리는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부서졌다. 겨우 시스템을 정비하고 국민들의 생업이 가능해졌을쯤 이번에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침략을 받았다. 16세기 헝가리는 세 개 지역으로 쪼개졌다. 서쪽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를, 동쪽은 투르크의 자치 지배를 받았고, 중앙은 투르크가 직접 통치했다. 이후 헝가리 전역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들은 무자비하게 헝가리를 통치했다.

로마, 신성 로마 제국, 몽골, 오스만, 합스부르크로 이어지는 수백 년 피지배의 설움과 핍박에 헝가리 국민들은 굽히지 않고 독립 의지를 불태웠다. 로요슈 코슈트를 중심으로 헝가리 독립 운동이 결실을 보았다. 헝가리는 러시아의 지원으로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에 독립을 요구했지만 합스부르크-헝가리 제국으로 타협을 보았다. 하지만 발전의 첫 삽을 뜨기도 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헝가리는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폴란드, 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 등에게 영토를 조금씩 빼앗겼다.

그리고 독일의 지배와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졌다. 헝가리는 독일의 편에 섰다. 이는 소련에 대항하여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위한 극단적인 자구책이었다. 하지만 독일의 패망으로 세계 대전이 끝나고 헝가리는 결국 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1949년 친소 정권인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패전국 헝가리에는 소련군이 주둔했다.

물론 1956년 공산주의에 저항하는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졌지만 소련군의 무력 진압에 헝가리의 민주화 열기는 강제로 꺼졌다. 그 뒤 구소련 체제의 붕괴 이후 헝가리에는 민주 정부가 들어섰다. 물론 헝가리의 전성시대도 있었다. 15세기 마차시 1세는 헝가리의 번영을 이루었다. 정치, 경제, 사회는 물론이고 군사적으로도 당시 헝가리는 동유럽의 강자였다. 그때 부다페스트에는 수많은 건축물과 고딕식 궁전들이 지어졌고 헝가리는, ‘도나우강의 진주’ ‘동유럽의 파리’로 불리는 기초를 닦은 것이다. 하지만 마차시 1세 이후 헝가리는 급속히 쇠락했고 이후 20세기까지 외세의 직간접적인 지배를 받았다.

이렇게 수백 년 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던 헝가리에는 ‘한의 정서’가 남아 있다. 그것이 20세기 초반 암울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자살이 빈번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그 시기에 ‘글루미 선데이’가 등장하면서 ‘자살=글루미 선데이’의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시대가 노래를 죽음으로 가는 관문으로 만든 것은 비단 세계사에서 헝가리만의 역사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글루미 선데이’의 비극적 선율이 기억되고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것은 ‘인간은 죽는다’라는 당연한 진리를 이 노래가 기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안드라스, 자보, 일로나가 궁극적으로 찾고자 했던 ‘글루미 선데이’의 진정한 의미는 어쩌면 ‘겸허’일 것이다.

[글 정유진(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포토파크, Daum영화, 위키피디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4호 (19.01.2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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