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탐방기 3] 허창무 주주통신원

성곽의 각자성석

삼선동 성곽길을 따라가다 보면 가톨릭 대학 담장 성돌 몇 군데에 각자성석(刻字城石)이 눈에 띈다. 그중에 「永同 始」(영동시)라는 각자는 충청북도 영동군의 공사시발점을 표시한 것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현재의 공사실명제로서 공사 종료 후에도 그 구간에서 부실이 발생하면 해당 군현에서 그 보수를 책임진다는 표지다. 축성기법으로 보아 세종 때의 각자성석이다. 사실상 낙산구간의 축성의 흔적은 대부분 세종 때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태조 때 대부분 토성으로 쌓았던 것이 무너져서 세종 때 다시 석성으로 교체했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태조 때의 각자성석은 天(천)부터 弔(조)까지 천자문 순서에 따라 600척씩 구간을 구분한 각자성석이 대부분이었으나, 세종 때는 군현의 이름을 새긴 각자성석이 대부분이었다.

장수마을

언덕을 오르기 전 장수마을이 나온다. 붉은 시멘트기와지붕이며 평면의 슬래브 지붕이며 벽돌로 쌓은 벽이 퇴락하여 을씨년스럽다. 저런 집들은 한국동란 후 농촌에서 무작정 상경하여 성곽 주변의 국공유지에 지은 무허가집들이다. 피난민들은 성벽을 허물어 집을 짓기도 하고, 성벽이 그 무허가집의 뒷담구실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토지를 불하받아 합법성을 갖춘 집들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수리를 하지 않아 누추하기는 매한가지다. 이제 와서 재개발을 하려다보니 건설회사는 높은 건물을 지어야 채산성이 있으므로 성곽이야 가리던 말든 층수를 높여 지으려고 한다. 한양도성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는 서울시는 그런 처사를 방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주민참여형 재생사업」이다. 정비예정구역지정을 해제하고, 한양도성 경관과 마을의 풍경이 조화되도록 건축 디자인, 노후 불량주택 개량지원, 주거안정화 등을 뼈대로 하는 사업이 되었다.

큰 건설회사에 맡기지 않고 주민들 스스로 설계에서부터 준공에 이르기까지 직접 참여하는 재개발사업이다. 설계사며 목공, 석공과 벽돌공, 미장이, 도배장이 등 모든 소요인력을 마을 안에서 차출하여 건물 하나하나를 리모델링한다는 것이다. 그 마을 안에는 어린이집, 이발소, 목욕탕, 동네슈퍼, 작은 박물관도 만들 예정이다. 말하자면 인정이 교류하는 생활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 마을이 과연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 서울시는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사업이 성공하면 이와 비슷한 사정에 있는 다른 동네도 본받아 실시할 것이다.

들국화와 북한산

가을이면 성곽길에는 가을 들꽃들이 수없이 피어있다. 심은 것도 있고 야생화도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구절초, 쑥부쟁이, 산국 등 소담한 국화과의 들꽃들이다.

가을을 가을답게 느끼게 하는 꽃들. 그것들을 그윽이 바라보면 평화와 안식의 감회에 젖는다. 구절초는 음력 9월 9일 중구(重九)에 채취하여 한약재로 쓰면 부인병에 특효라는 들꽃이다. 처음에는 보라색으로 피다가 점차 흰 꽃으로 변하는 그 청초함이 산들바람에 애잔하게 흔들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르막길에는 막 단풍이 드는 복자기가 제철을 만나 기염을 토한다. 햇빛을 받아 투명한 단풍잎은 표백된 적색이 얼마나 황홀한 함성을 지르는 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가을이 더 깊어지면 길가에 심은 화살나무의 적갈색 단풍이며, 흐드러지게 달린 좀작살나무의 핑크빛 열매가 사람들의 정다운 시선을 끈다.

낙산은 언덕과 같은 낮은 동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100m쯤은 가팔라서 숨이 찬다. 정상에 올라 북한산을 뒤돌아본다. 청명한 하늘에는 흰 구름이 한가로운데, 부르면 손짓할 것 같은 봉우리들이 선연하다. 왼쪽에서부터 문수봉, 보현봉, 형제봉이 일정한 간격으로 손잡고 있고, 오른편 저 멀리로는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 등 삼각산이 흰 이마를 드러내고, 형제처럼 살갑게 키를 겨룬다. 이런 날에는 까닭 없이 허허롭고 추억에 젖어 이흥렬의 「바우고개」라든가 김동진의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을 목청껏 부르고 싶어진다.

성벽의 구조

정상에 오르면 성곽의 흐름이 용틀임 같다. 성벽의 구조를 설명해야겠다. 먼저 성벽의 몸체를 이루는 것은 체성(體城)이다. 체성 위에 낮게 쌓은 담장을 여장(女墻)이라 한다. 이것을 성가퀴 또는 성첩이라고도 하는데, 아군이 몸을 낮춰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 여장의 한 단위를 타라고 한다. 1타에는 활과 총으로 적을 공격할 구멍이 뚫려있는데, 먼 곳의 적을 공격하기 위한 원총안(遠銃眼)과 가까운 적을 공격하기 위한 근총안(近銃眼)이 있다. 근총안은 타의 가운데에 하나가 아래쪽을 향해 급경사로 뚫려있고, 수평으로 뚫린 원총안은 타의 양쪽 가에 각각 1개씩 2개다. 마지막으로 여장 위에 지붕처럼 올려놓은 넓적한 돌이 옥개석(屋蓋石)이다. 이것은 사다리를 여장에 걸치고 올라오는 적군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다.

총무당

낙산 정상 암문 앞에서 한성대학교 교정 은행나무 밑에 있는 큰 기와집 지붕이 보이는데, 그것이 「총무당」건물의 지붕이다. 그것은 「청헌당」「덕의당」과 함께 구한말 3군부 사령부를 구성했던 건물 가운데 하나다. 원래 있던 자리는 세종로 현재 정부종합청사자리였는데, 일제강점기 때인가, 1960대 정부종합청사를 지을 때인가,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청헌당」은 육군사관학교 교정으로 이전하고 「덕의당」은 아예 없어져버렸다.

성곽은 가톨릭대학교 교정을 떠나고, 삼선동과도 멀어진다.

글 허창무 주주통신원/ 사진 이동구 에디터

허창무  sdm3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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