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청새치

2015.04.12 23:2004.12

 

 

 

바람이 꽃잎처럼 따듯하다.”

 

슬은 말을 끊었다. 바위 밑에서 파도가 물보라를 일으켰다. 밀려갔다가 돌아오고, 밀려갔다가 돌아오고. 늘 첫 행을 읊을 때면 얼굴이 간질간질했다. 미친 사람 같았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탁한 청록색이 흔들거렸다. 바다를 보노라면 학교의 커튼이 생각나곤 했다. 얼추 비슷한 두 가지의 청자 빛깔. 대신 바닷물과 같은 깊이가 커튼에게는 없었다.

 

해질녘도 지나고

어린 밤만 손바닥으로 저문 산을 쓸어낼 때면

오늘의 밤은 묵직한 온기로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준다.

어느 산에는 알싸한 생강 꽃이 피고

꽃처럼 어린 소년과 소녀와

집집마다 들어앉은 봄들이 있다는데.”

 

슬은 고등학생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그는 늦게까지 학교 건물의 가장 어두운 귀퉁이에 처박혀 있다가 나오곤 했다. 누군가는 서늘하다 하겠지만 혼자 걸어가는 빈 복도는 나름 매력적이었다. 적당히 조용하고 적당히 일탈적인 그 느낌.

꼭 방과 후에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딱 해가 지고 난 직후가 최고긴 했지만. 저녁때는 고개만 돌리면 교실들의 속살이 하얗게 눈에 들어왔다. 학생이 없는 반, 어지럽게 쌓인 책들과 인쇄용지처럼 번쩍이는 형광등. 잘은 몰라도 정말로 흰 종이와 대어 놓고 보면 복사지처럼 약간 푸르스름한 색을 띠고 있을 것 같았다.

 

귓가에 바람 소리가 번지고

창에선 부르듯이, 부르는 듯이

먼 바다와 골짜기의 냄새

서글픈 듯이 차가운 달

외따로 흔들리던 벚나무와

그만큼 흐드러지던 비구름의 이야기를

알지는 못하지만.”

 

깊은 물속에서 시꺼먼 그림자 하나가 일렁였다. 슬은 눅진하니 짠 공기를 들이켰다.

 

다시금 바람은 흙냄새와 함께 돌아온다.”

 

그림자가 무지갯빛을 띠기 시작했다. 위는 사람의 머리, 아래는 물고기의 꼬리. 슬은 바위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수줍은 동백 동백꽃에

취하고 싶을 만큼 취하게 하려는지.”

 

물이 튀면서 바다 속에서 여자가 고개를 들고 올라왔다. 앞머리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낭송만 더 제대로 해 주면 좋겠어.”

꼭 이런 식으로 불러야 해?”

 

슬의 얼굴은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긴 했지만 그새 누가 왔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숨어서 녹음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여자가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기며 쥐어짰다.

 

충분히 오랫동안 부르지 않으면 안 들려.”

그래도.”

싫으면 안 올게.”

아냐, 계속 하면 되지.”

 

여자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손을 내밀었다. 슬이 손을 잡았다. 차갑고 축축했다. 여자는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그를 확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물 위로 떨어지면서 슬은 여자의 머리 위에 있는 작은 꽃봉오리를 보았다.


여자의 이름은 해화였다. 바다 해, 꽃 화. 실은 정말 그런 한자 의미가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냥 슬이 어설프게 대충 붙여 본 설명이었다. 해화 본인은 자기 이름이 어떤 뜻인지 모르겠다고 했으니까.


인간에게 알려진 최초의 인어는 바닷가에서 한 번 그물에 걸렸던 여자였다. 그 모습이 아름답고 하는 행동이 사람과 같아 어부들이 더불어 웃고 즐기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인어에 대한 언급이 서양 동화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있다는 걸 슬은 뒤늦게 알았다. 관련 내용이 있는 한국의 고서적은 어우야담이라고 했던가 했다. 물론 일본의 인어는 머리만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인어와는 다른 편이었다. 인어 고기를 먹으면 불로불사한다, 인어 기름이 따듯하다, 추가적인 말이 많고도 많았지만 슬은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우야담 얘기에 따르면 눈동자는 노랗고, 등에는 옅은 문양이 있고, 눈물은 희다고 했다. 우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눈물이 과연 흰지는 몰라도 다른 건 맞는 얘기였다. 바다에 떠다니던 흰 티셔츠를 입고 다녀서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본인 스스로 등에 무슨 무늬가 있기는 있다고도 했고. 다만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머리 위에 있는 기묘한 꽃봉오리였다.

 

인어는 식물이야?”

무슨 소리야?”

머리 위에 있는 꽃 때문에 궁금해서.”

, 이거.”

 

일전에 한 번 물어봤던 적이 있었다. 해화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손으로 정수리를 덮었다. 붉은 봉오리가 가려졌다.

 

인어가 죽으면 머리 위에서 꽃이 피어. 죽은 인어는 바닥으로 가라앉고 꽃은 인어 전체를 삼켜 버리지.”

사람들이 그런 종류의 꽃은 아직 바다에서 발견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이 모든 바다에 다 가 본 건 아니잖아?”

 

그러면서 해화는 웃었다. 그 날 그들은 인어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어들이 죽으러 가는 특정한 장소가 있다고 해화는 설명했다. 사람을 거기로 데려갈 수는 없다고도 했다. 물고기들조차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한, 인어들만의 비밀 장소니까.

꽃망울은 평소엔 머리카락에 숨겨져 있다가 가끔씩만 언뜻 언뜻 모습을 비췄다. 붉은 벚꽃 같은 모양새였다. 터지기 딱 직전인.

슬은 물에 얼굴부터 떨어졌다. 아팠다. 물거품이 일면서 시야가 완전히 가려졌다. 손이 그의 입에 닿았다. 해화의 목소리가 났다.

 

빨리 삼켜.”

 

슬은 들어오는 작은 알약 같은 것을 그대로 삼켰다. 목구멍이 아팠다. 거품이 사라지자 그는 물속에서 눈을 깜박였다. 해화가 눈앞에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슬은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켰다. 전혀 이상이 없었다.

일부 별주부전의 변형 판에는 자라가 토끼에게 준 알약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다. 해화는 그에게 늘 주는 동그란 것이 바로 그 알약이라고 설명하곤 했다. 아무리 들어도 언제나 물에서 숨을 쉰다는 건 낯설게 느껴졌다.

슬의 눈앞에서는 해화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물풀처럼. 슬은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딱히 무슨 생각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디로 갈래?”

 

해화가 물었다.

 

아무 데나.”

 

해화는 슬의 어깨를 감싸 잡았다. 꼬리가 물장구를 쳤다.

 

진짜로 아무 데나 간다, 이의 제기 없기!”

 

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해화를 처음으로 본 건 반 년 전이었다. 뭍에서 슬은 운이 없는 편이었다. 그의 성은 이 씨였고, 그 탓에 초등학교 때는 이름 자체로 놀림을 받는 일이 일상이었다. 대부분 그를 여자 취급하는 놀림이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초등학교 삼학년쯤에 있었던 사건이었다. 오학년생들이 그를 여자 화장실에 밀어 넣고 나오지 못하게 한 일. 당황한 그는 그냥 화장실 한 칸에 들어가 아예 문을 잠그고 있었고 그가 나오지 않자 밖에 있던 아이들은 선생님을 불렀다. 끌려 나오는 중에 거의 전교생 앞에서 망신을 당했던 건 물론이었다.

그 날부터였을 것이었다. 대체 무슨 돈으로 구해 오는 건지 가끔 아이들은 그의 옷을 빼앗고 성인 여자 옷을 대신 입혔다. 혼자서는 도저히 대여섯 명씩 되는 상대를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구경꾼들은 옷을 입히는 과정, 더하여 달걀이나 밀가루를 끼얹는 것까지 휴대폰으로 찍었고 반죽이 된 그에게 복종을 요구했다.

아이들의 세계에는 애초에 브레이크라는 게 없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입장에서 극한 방향으로 치닫는 경우도 많았다. 슬이 겪은 모든 일이 어른들에게 걸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들 걸리면 문제가 되리란 걸 알았던 것은 물론이요 슬 본인도 남들에게 말할 엄두를 내지 않아서였다. 주된 이유는 수치심이었다. 남들에게 자기가 그런 꼴을 당한다는 걸 정말로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은 놀이가 끝나고 나면 그를 낡은 동네의 수돗가로 끌고 가, 슬이 손으로 물을 받아 씻고 다시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모습을 일일이 감시했다. 제대로 증거 인멸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보내 주지도 않았다. 가만히 있으라고 한 뒤에 저들이 물을 바가지 째 끼얹는 경우도 있었다.

 

무슨 생각 해?”

, 그냥. 바다가 예쁘구나 하는 거?”

 

슬은 대충 둘러댔다. 해화에게 자기 과거 얘기를 구구절절 풀고 싶지는 않았다. 최소한 그 과거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었다. 해화는 고개를 기울였다.

 

어제하고 비슷하잖아.”

매일 봐도 그래.”

역시 시인은 다른가?”

 

슬은 그냥 그렇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바다는 황량했다. 근해 바다가 대개 그렇다고 했다. 좀 더 멀리 가야 물고기가 떼 지어 이동하는 것과 바닥에 가득한 말미잘이니 해초니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물살을 가르고 앞서 가던 해화가 수면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슬은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수면의 햇빛은 깨진 그릇 조각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해화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 건 순전히 우연 덕이었다. 슬은 그 날을, 어째서인지 유난히도 별다른 일이 없었던 일요일로 기억했다. 바다로 걸어 들어간 이유에 대해서는 떠오르는 게 별로 없었다. 어째서 그렇게 우울했는지에 대해서도 더 이상 남아 있는 기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확실한 건 그가, 자신이 짠물 속에서도 눈을 똑바로 뜰 수 있다는 걸 알기 전의 일이라는 거였다. 일반인보다 수압을 더 잘 견딜 수 있다는 것도, 저체온증에 쉽게 걸리지 않는 체질이라는 것도 그가 몰랐던 정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고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뭍으로 나왔다가 다시 바다를 선택한 고래. 생활에서 어떤 것이 가장 힘들었기에 고래는 바다로 돌아갔을까. 사람도 다시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까. 슬이 돌고래의 노래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물은 다리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가슴 위로 순식간에 차올랐다. 바다는 검었다. 파도는 끊임없이 목을 쳤다. 일렁이는 물결에 팔다리는 뿌리를 잃은 해초들처럼 흔들거렸다.

한 발만 더 가면 물에 정수리까지 잠길 것 같았다. 슬은 걸음을 내딛으려 했다. 무언가 물컹한 것이 밟혔다. 슬이 발을 채 치우기도 전에 물속에서 머리카락 뭉텅이가 올라왔다. 다음 순간 그의 눈앞에는 여자의 머리가 나타나 있었다. 여자의 노란 눈이 그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 피부는 시체처럼 창백했다. 발목을 휘감는 느낌이 나더니 사람 머리가 도로 물속으로 사라졌다. 슬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모래톱으로 직진했다. 수영이라도 했다가 밑에서 끌어내릴까 봐 할 수 있는 최대 속력으로 수중 달리기를 해 가면서.

밖으로 나온 뒤에 바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그는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를 재확인해 보려고 했다. 사람 머리. 시체는 아닐 거였다. 최소한 뉴스에 나온 게 없었다. 그렇다고 살아있는 사람이 그런 식으로 나타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물귀신이 아니고서야.

등줄기를 따라 털이 곤두서는 느낌에 슬은 그 날 이후로 한동안 바다에 접근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닷가에 살면서 바다에서 떨어져 지낸다는 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그래도 좀 더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슬은 결국 바다를 다시 찾아갔다. 아무리 그래도 누군가의 머리가 물가로 굴러 나오는 꼴까지 보게 되지는 않을 테니까, 하고 위안을 삼으면서. 확인하고 싶었던 거였다. 자기가 미친 게 아니라는 걸, 혹은 자기가 정말로 헛것을 봤다는 걸. 뭐가 뭔지도 모르고 기억 속의 귀신에게 시달리면서는 지낼 수가 없었다.

그는 방파제를 찾아갔다. 파도는 희게 부서졌다가 밀려 나가며 또다시 덤벼들 준비를 했다. 몇 번이고. 보았던 여자 머리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슬은 용기를 내서 좀 더 아래로 내려갔다. 여전히 나타나는 게 없었다. 그는 기다리다가 앉아서 제가 만들어 본 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낯이 노랗게 뜬 달이 떴다.

새하얀 별은 밤하늘에 박혀 있다.

흑백의 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조각달은

차라리 삵의 눈

가지에 잘린 모양새가

눈길을 돌리게 한다.

구석진 곳에서 그림자가 분다.

먹이를 찾아 종종거리던 까투리를

생각한다, 어느 아침에

가을처럼 짙은 볕을 받으며

헤메이던 산꿩들을

바람에 쓸려 들어가기 전 고개를 든다.

달은 지고 있다.

밤도 같이 기울어진다.”

 

슬이, 누군가 물에 하반신을 담근 채 팔을 포개고는 자신을 구경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건 그 때였다.

 

그거 괜찮은데? 더 있어?”

 

그게 해화였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에 노란 눈의, 다소 이국적인 느낌의 여자. 갑자기 튀어나온 여자 머리의 정체가 해화였음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땐 왜 그랬어?”

 

슬이 문득 물었다. 그들은 바다 위에 나란히 등을 대고 누워 있었다. 귀까지 물이 들어차도 은근히 목소리가 들리긴 한다는 게 신기한 노릇이었다. 해화가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언제?”

처음 봤을 때 갑자기 튀어나왔잖아.”

 

해화가 코웃음을 쳤다.

 

웬 사람이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기에 멈춰 보겠다고 그랬지, .”

이젠 오히려 물속에 오는 걸 도와주고 있으면서.”

지금은 내가 보호자인 셈이니까.”

그런가.”

 

슬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시야 가득 보이는 하늘이 새파랬다. 거품기로 구름과 하늘을 섞어 버린 듯이 살짝 희기는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중에 몸은 끊임없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귀에서 잘그락거리는 바닷물 소리가 잔잔했다. 뜨듯한 햇빛이 닿은 이마에 바닷물이 부딪힐 때마다 슬은 눈가를 움찔했다. 거의 여름이었다. 바람이 이따금씩 불다가 그쳤다.

 

그러면 다른 질문 더 해도 돼?”

해 봐.”

내 시가 왜 좋은 거야?”

 

풍덩 소리가 났다. 슬은 자세를 바꿔 물 위에 머리만 내밀었다. 해화는 이미 배영을 그만둔 채 그를 향해 인상을 쓰고 있었다.

 

네 시가 어때서? 내 취향 무시해?”

 

화가 난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망망대해에서 집으로 돌아가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을 잘못 건드린다는 건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다. 슬은 단어 선택에 집중했다.

 

그런 뜻이 아냐, 그 전까지 내 시 갖고 그런 얘기 해 준 사람이 없으니까 그러지.”

그냥 내 취향이야.”

 

해화는 그러면서 그의 손목을 잡았다. 슬은 대답을 할 타이밍을 놓치고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물거품이 일더니 곧 시야가 트였다. 멀리, 흐릿하게, 무리지어 이동하는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보였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해화의 비늘은 물속에서 유난히도 반짝거렸다. 느리고 크게 움직이는 꼬리지느러미는 열대어보다는 돌고래의 것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해화는 과연 그가 바다에 대해 품은 동경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슬은 그런 걸 바라는 건 무리일 거라는 걸 잘 알았다. 해화는 그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어차피, 애초에 관계라는 건 퍼즐 조각 같은 거였다. 닮은, 하지만 다른. 아귀가 맞는 사람이 꼭 자신과 똑같은 사람일 필요는 없었다. 서로를 이해해 줄 수만 있다면 되는 거였다.

슬은 심호흡을 하고 다시 앞을 보았다. 새삼스레 두려웠다. 돌아가지 않고 영원히 바다에 있을 수 있을 수 있다면.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설령 인어로 정말 변하게 된다고 해도 또다시 그는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든 불행해질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슬의 슬 자는 한자어였지만, 실제로는 구슬이라는 단어에서 따 온 글자였다. 그의 태몽은 바닷가에서 크고 파란 옥구슬을 줍는 거였다고 했다. 여의주 같은 것을 상상하며 좋아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모든 사람의 태몽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차라리 일찍 알았더라면 나았을까.

해화는 주택과 가까운 해변에 그를 두고 떠났다. 슬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슬은 최대한 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가족들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바다에 있었는지를 알지 못하도록.

뉴스에서는 며칠 후면 장마가 시작될 거라고 했다.

슬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그리고 보고 싶지도 않았던 사람을 본 건 바로 다음날 저녁 무렵의 일이었다. 수산시장 쪽에서 그는 별 생각 없이 요리사가 물고기를 잡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요리사가 물고기의 등에 칼을 찔러 넣고 살을 갈랐다.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 빨갛게 피가 솟았다.

 

.”

 

처음에 슬은 그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 누군가가 그의 등을 한 번 치고 나서야 슬은 뒤로 돌아섰다. 얼굴은 확실히 아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이다?”

 

괴롭힌 패 중, 가장 주도적으로 행동했던 그 인간. 김상철. 잊어버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 하나도, 목소리 빼고는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지.

그는 다짜고짜 인어를 보고 싶다고 했다. 슬은 몽롱한 기분으로 대화 시도인지 협박인지 모를 것을 듣고 있었다. 상철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했다. 그가 가끔 바다로 나가서 특이하게 생긴 여자를 만나는 걸 본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제야 덜컥 겁이 났다. 해화를 만나서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최대한 거짓말 같지 않게 둘러대야 했다.

 

우연히 보게 된 거야. 나도 어떻게 했는지 몰라.”

 

상철은 들으려 들지 않았다.

 

그물로라도 잡아 와.”

그물로 잡을 수 있을까?”

, 이게 많이 컸다?”

 

상철이 슬의 뒤통수를 두어 차례 후려치며 웃었다. 아팠다.

 

내일 아침 여덟 시까지 절벽으로 나와.”

 

그는 그런 뒤에 갔다. 슬도 그가 말하는 절벽이 어딘지는 알았다. 동네 아이들이 주로 절벽이라고 부르는 장소는 딱 하나였다. 어느 쪽 바닷가인가에 솟은 바위 절벽. 굉장히 높은 건 아니었지만 아래의 물이 꽤 깊었다.

슬은 자신이 나와야만 한다는 걸 알았다. 피해 다니기 힘든 상대였다. 기억이 흐릿해지긴 했어도 약점을 잡는 데 얼마나 능숙한 사람이었는지 떠올리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만일 약점을 잡기도 힘들다면 헛소문이라도 퍼뜨릴 거였다.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과연 믿을 만한 내용인지의 여부는 상관이 없어지는 게 소문이었다. 그 시작점을 찾기도 힘들고 찾아 봤자 더 이상 막을 수도 없게 되는.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시키는 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슬은 절벽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건물에 가려 보이는 게 없었다. 어딘가에서 가로수들이 흔들리며 빗소리를 냈다. 쓰레기가 슬의 다리에 부딪혔다가 저만치 굴러갔다. 탁하게 구름만 가득 낀 날이었다.

 

너는 그 때 왜 그렇게 해변에 가까이 있었어?”

 

슬의 발목에서 파도가 부서졌다. 해화는 적당히 사람처럼 보일 깊이에 머무르고 있었다. 입을 뭐라 벙긋거리는 건 보이는데 바닷바람 탓에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슬은 바지를 걷고 좀 더 들어갔다. 해화는 그를 보다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봄이라 사람도 없고, 여름이면 더 이상 구경하러 올 수가 없었거든.”

 

차라리 바다에 가지 않는 편이 나았으리란 걸 알면서도 기어코 해화를 찾아간 건, 당부를 받고 싶어서였다. 절벽에서는 부른다 해도 오지 않겠다는. 남들이 뭐라 해도 슬은 절대 해화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잡아서 전시라도 하든가, 아니면 그의 면전에 대고 가짜니 뭐니 하면서 모욕만 할 게 확실했던 탓이었다.

 

해수욕장 개장하기 전엔 볼 거 별로 없지 않아?”

 

다만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해화에게는 아예 그 사정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실망하고 떠나갈까 봐 무서웠다.

 

인어 중엔 홀로 지내는 애들이 있어. 나도 그 중 하나고. 평소엔 괜찮지만, 가끔 외로워지거든.”

 

해화는 그러면서 빙그레 웃고 있었다. 홀로 지내는 인어. 어쩌면 인어는 사람보다는 늑대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고 슬은 잠깐 생각했다. 주로 무리지어 지내지만 가끔 홀로 떠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밟히는. 바다는 넓은데 가끔이 아니라 꽤 자주 외로워지지는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위험하지 않아?”

 

말할까. 말해도 좋을까. 고독이라는 것이 단순히 형벌과 같은 개념이 아니라는 걸 안다면 슬을 이해할 수도 있을 거였다.

 

어차피 아무도 자기가 본 걸 믿지 않을걸.”

나처럼 믿는 사람이 있잖아.”

 

대답하는 중에 슬은 해화의 머리에서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진주와 조개와 산호가 엮인 머리 장식이었다. 예쁘다고 하려는데 해화가 말했다.

 

너는 달라.”

?”

 

지금까지 다르다고 하면 다 부정적인 방식으로 다른 거였다. 그런데 이번엔 대체 어떤 식으로 달랐다는 건지, 슬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로 날 본 다음엔 카메라를 들고 돌아와. 넌 아니었어.”

하지만 어쨌든 네 덕분에 지금 관계가 유지되는 건 사실이잖아?”

 

슬이 말했다. 해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잊었어? 처음 온 건 나였지만, 날 다시 찾으려 한 건 너였어.”

 

그 날 집에 돌아가서 슬은 헤밍웨이가 쓴 책을 읽었다. 노인이 청새치를 잡는 소설이었다. 청새치는 굉장히 큰 물고기였고 노인은 굉장히 뛰어난 어부였다. 이야기의 끝에서 구경꾼들이 청새치의 뼈를 두고 영혼 없는 감상을 했다. 노인은 사자꿈을 꾸었다고 했지만 슬은 청새치 꿈을 꾸었다. 아주 어두운 바닷물 속에서 유유히 청새치 한 마리가 그에게 헤엄쳐 왔다. 청새치는 곧 해화로 변했다. 해화는 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다가 수면으로 올라갔다. 슬은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멀리서 인어의 꼬리지느러미가 반짝거렸다. 그들 사이로 참치 떼가 빠르게 지나갔다. 눈을 감으려는데 돌아오는 해화의 모습이 보였다. 슬은 팔을 뻗었다. 발길질을 하면서. 해화도 그에게 팔을 뻗었다. 손이 닿는 순간 슬은 꿈에서 깨어났다. 아침이었다.

그는 결국 절벽으로 갔다.

 

빨리 불러.”

 

절벽은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구조였다. 그 끄트머리에 서 있는 슬에게는 발을 붙이고 설 정도의 공간밖에 없었다. 상철과 그의 패는 뒤에서 길을 완전히 막고 있었다. 슬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밑에서는 그다지 높지 않아 보였음에도 위에서 보니 까마득했다. 파도가 바위에 몰아쳤다.

휴일이란 놈이 문제였다. 언제나. 왜 하필이면 휴일이 연속으로 있어서, 그리고 학교는 쉬어서 이 난리인지.

 

안 올지도 몰라.”

말만 하지 말고 불러. 밀어버린다.”

 

멍했다. 협박도 현실감이 없었다. 고개를 들자 바다에서부터 다가오는 먹구름이 보였다. 슬은 해화의 말과 카메라에 대해 생각했다인어를 보고 사진을 찍으려고만 한다는 게 사실이라면 사람들은 인어를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거였다. 인어라는 건 그렇게 프레임에 잡아서 억누르고 진짜니 가짜니 왈가왈부할 대상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청새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듯이 인어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목표가 아닌 꿈이라는 게 어떤 건지, 희망이라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해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인어야.”

 

슬이 중얼거렸다. 당연히 해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깨 너머에서 돌이 날아왔다.

 

제대로 불러. 이름 있을 거 아냐.”

바다 속에선.”

 

이름을 어떻게 바다 속에서 부르냐고 하려는데 이번엔 돌이 귓불을 긁고 날아갔다. 슬은 결국 자신이 해화에게 오지 말라는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저 전처럼, 시를 읊어 대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래도.

 

바다야!”

 

그가 즉석에서 대충 지어낼 수 있는 이름의 한계는 그 정도였다. 본명이 아니어서인지 시가 아니어서인지 다행히도 해화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돌이 날아오지도 않았다. 그는 이름을 몇 번 더 불렀다. 인어는커녕 물고기도 보이지 않았다. 슬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안 나타나려나 봐.”

 

무언가가 등을 밀었다.

 

떨어뜨리면 구하러 오겠지.”

 

아찔하더니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슬의 시야가 뒤집혔다. 바람이 몰아쳤다. 그는 본능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손이 허공만을 움켰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바닷물이 뺨까지 튀었다. 파도에 휘말려 절벽에 부딪히면 죽을 수도 있다던 게 떠올랐다.

반짝거리던 바다. 손을 잡아 이끌던 해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치즈 빛깔 노을. 조금 더 따듯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삶. 옅게 내리는 비. 비가 온 다음날 기다렸다며 웃던 해화. 읊던 시, 붉어지던 귓불, 그리고 웃음소리.

 

해화.”

 

어째서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불러 보고 싶은 이름이 그 이름인지. 공포 속에서 슬은 정신을 잃었다.

환각 속에서 해화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슬은 대답하지 못했다. 빛이 멀어져 갔다. 그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아프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미 죽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해화의 머리 위에 있는 꽃송이를 생각했다. 비가 오면 꽃은 쉽게 떨어졌다. 그랬다, 무너지는 것이 무엇인지 슬은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비 온 뒤의 낙화 같은 거였다.

해화가 그를 끌어안았다. 슬은 해화의 꽃잎이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모든 것이 뿌옇게 변했다.

그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잔잔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느 시에서는 죽은 사람의 나라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는데. 천천히 머리가 아파 왔다. 앞은 캄캄했다. 슬은 자신이 눈을 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닷물이 밀려와 옷을 적셨다. 슬이 눈을 떴다. 머리카락 속으로 들어간 모래가 까슬까슬했다. 그는 머리를 옆으로 돌렸다. 무언가가 반짝거렸다. 조개, 진주, 산호. 해화의 머리 장식이었다.

그 날 슬은 감기에 걸렸다. 밤새도록 창 밖에서는 천둥이 우르릉거렸다. 가끔씩 바다에 꽂히는 번개가 방 벽을 밝혔다. 비는 끊임없이 창을 때렸다. 창이 덜컹거릴 때 바람은 울었고 흘러내리는 빗물 위로 또 다른 빗방울은 떨어졌다. 슬은 열에 시달리며 파도가 몰아치는 소리를 들었다. 멀리 선착장에서 묶어 둔 배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폭풍우가 완전히 지나가기까지는 며칠이 걸렸다. 번개가 따라붙는 비는 없었지만 한동안 부슬비가 내렸던 탓이었다. 잠깐 날이 개었을 때 동네에는 인어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어느 아이가 해변으로 나갔다가 쓰러져 있는 인어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머리에 활짝 핀 꽃 탓에 논란이 많았지만 확실히 인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하반신이 물고기인 것도 그렇고, 물속에 오래 있었으면서 몸이 불지 않았던 걸로 봐서 인간은 아니라는 거였다. 그 당일 아침엔 비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시체는 그대로 방치됐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신이 인어를 잡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곧 몇몇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고 DNA 검사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물가에 있다가 폭풍우 때문에 죽었을 거라는 게 전반적인 사람들의 입장이었다. 왜 거기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러나 오후에 인어의 시체는 사라졌다. 한동안 그것 때문에 동네가 또 떠들썩했다. 잠시 동안 어떤 소년이 인어를 데리고 바다로 들어갔다가 한참 뒤에 돌아왔다는 얘기가 퍼졌다가 사라졌다.

슬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학교에 나왔다가 결국 전학을 갔다. 가족 중 하나가 새 직장을 구했다고 했다. 슬은 이사 당일이 될 때까지 바다를 찾아가지 않았다. 마지막 날 저녁, 짐을 다 정리하고 나가려는 차에 그가 어딘가로 달려 나갔다. 부르는 사람도, 쫓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슬이 멈춰 선 곳은 해화를 처음 보았던 해변이었다. 그는 신발을 벗고 모래를 밟았다. 발가락 사이로 모래가 올라왔다. 슬은 몇 걸음 가다가 멈춰 섰다. 근처에 한 무더기 핀 꽃들이 붉은 꽃잎을 떨어뜨렸다.

슬은 인어의 무덤에 대해 생각했다. 오래 전에 그가 밟고 서 있는 곳은 바다였다고 했다. 간척 사업을 했다고 했나, 아니면 천천히 물이 빠졌다고 했나,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바다로 좀 더 다가갔다. 손에 힘을 주자 머리 장식이 손바닥을 찔렀다. 그는 불현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다음엔 어린 왕자가 있는 별에서 태어나, 해당화야.

사랑하고 싶은 것을 사랑하고

네 꽃잎에 내리는 비가 없는

어린 왕자의 별에서 장미로 태어나, 해당화야.

죽어서라도 네가 있는 별로 왕자는 돌아오겠지

바다가 울던 날 내가 네가 바친 것은

시큰거리는 눈에서 꺾은 열꽃뿐이었어."

 

사방이 꽃밭이었다. 사계절 내내 그가 서 있는 해변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꽃들이 피곤 했다. 바다에서 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인어의 무덤이 정말 있다면 그건 당장 그가 서 있는 모래 해변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슬이 해화를 너무 멀리까지 데려가지 못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누군가 그 꽃을 꺾게 하기는 싫었지만, 그렇다고 홀로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해화가 외로워진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목이 막혀 왔다.

 

"별에서 태어나, 해당화야.

가시가 있어 더 아름다운 꽃,

네 가시에 뜯겨나간 솔기에서

모래알 같은 금가루는 쏟아졌지."

 

 슬은 기다렸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언젠가 슬은 시가 시인 자신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자신의 시를 들어 줬기 때문에 그간 견딜 수 있었다는 말을 하지도 못했건만. 해화의 죽음이 자기 탓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는 해화의 머리 장식에서 산호 조각만을 떼어 내고는 힘껏 바다로 던졌다. 빠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슬은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다들 그가 사라졌었다는 걸 모르는 것처럼 굴었다. 갈 데가 있었으면 빨리 다녀왔어야 하지 않았겠느냐는 책망만 한 번 튀어나왔다.

차에 오르면서 슬은 손에 쥔 것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산호의 색은 여전히 선명했다. 잃어버리지 않고 과연 언제까지 간직할 수 있을지. 그는 마지막 조각까지 완전히 바다에 던져 버렸었어야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슬은 산호를 잠시 동안 들여다보았다. 뒤늦게 몇 사람이 짐꾸러미를 들고 나왔다. 슬은 장식을 재빨리 주머니에 넣고 차에 올랐다. 작은 차가 털털거리며 길로 들어섰다.

사람이 없는 저녁 바다는 노을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dyeonba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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