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장 최고 맛집] 제주 동문시장 고기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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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가수 최성원이 부른 노래 가사다. 왜 제주도를 혼자 가지 말고 둘이서 가야 한다고 했을까. 친구나 연인이 없는 사람들 염장 지르려고 만든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어찌됐든 노래 가사가 알려 준대로 친구와 함께 제주도로 떠났다. 인터넷에서 추천하는 제주도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리스트는 거의 책 한 권의 분량만큼 엄청났다. 2박3일로 세운 여행계획으로는 최대한 아홉 끼밖에 소화할 수 없기에 제주도에 사는 지인을 협박했다. 동문시장에 있는 '동진국수'부터 시작하란다. 사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그런 메뉴를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좀 의외였다.

도착과 동시에 찾아간 동문시장은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이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하니 올해로 70년이 넘었다.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동문시장은 제주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만물상 같은 곳이다. 시장에 도착해서 상인들에게 동진국수 위치를 물어보니 모르는 사람이 없고 자신들도 모두 단골이라고 한다.

제주에서는 역사적 지리적 이유로 척박하고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도감(돼지고기를 관장하던 사람)이 돼지를 잡으면 먼저 고기를 삶아내고 그다음으로 내장과 피로 순대를 만들어 번듯한 것들을 손님상에 내어주고, 남은 나머지 자투리를 다시 넣고 걸쭉하게 우려낸 국물에 모자반(톳과 유사한 암갈색의 해초)을 넣은 '몸국'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50년대에 밀가루 건면이 생산되면서부터 국수를 넣게 된 것이 지금의 고기국수의 탄생이라고 한다.

주문과 동시에 주인 할머니는 펄펄 끓는 솥에 소면을 넣었다. 제주도의 고기국수에 주로 사용하고 있는 중면이나 대면 대신에 뭍에서 온 사람을 배려해서 소면을 사용한단다. 국수를 삶고 있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국수를 맛있게 삶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잘 삶으면 되지."

우문현답인가. 맛있게 삶으려면 잘 삶으면 된다고 하신다. 그럼 몇 분 정도 삶으면 되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몇 분 동안 삶는지 시간을 재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고 하신다. 그럼 국수가 잘 삶아진 것을 어떻게 아실까.

"그냥 딱 보면 알지, 면을 넣고 그 녀석을 한참 바라보다 보면 바로 이 순간이다 하는 시점이 있어. 그때 꺼내지. 45년 지기 내 유일한 친구가 국수인데 그걸 몰라."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고기국수가 나왔다. 진한 육수에 두툼한 고기가 올려진 고기국수는 뭍에서 먹던 멸치 국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단 육수를 한입 먹었다. 이건 흡사 부산의 돼지국밥을 먹을 때 느꼈던 진한 육수의 그것과 유사하다. 제주산 흑돼지를 10시간 이상 푹 우려낸 육수라는데 돼지 특유의 잡냄새가 전혀 없이 소고기 육수처럼 진하고 뽀얗다. 이번엔 돼지고기 차례다.

국수 위에 두툼하게 올려진 '돔베고기'는 유명 보쌈집의 수육보다 부드럽다. '돔베'는 제주도 방언으로 도마를 뜻하는데, 고기를 삶아서 도마에서 바로 썰어서 내던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따로 맛을 봤으니 이제 국수와 고기를 돌돌 말아서 한입에 같이 먹어본다. 단백질과 탄수화물의 절묘한 조화로 입안이 호사를 누린다. 쫄깃한 국수 면발에 한 번 감탄하고 부드러운 흑돼지 수육에 두 번 감동한다.


맛의 비밀을 알고 싶어 좀 더 캐물어 봤더니 고기국수 장사할 생각 있느냐고 되물으신다. 좋은 재료 써서 그냥 잘 끓이기만 하면 저절로 맛있게 되고, 이 시장에 있는 국수집들 모두 그렇게 장사한다고 하신다. 맛있는 고기국수 한 그릇이 탄생하기까지는 품질 좋은 100% 제주산 흑돼지와 눈으로 삶아 내는 할머니의 45년 노하우가 전부였다. 할머니는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 하루 14시간 국수를 삶는다.

오랜 세월 국수를 관찰하다 보니 면이 언제쯤 맛있어지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고 그렇게 한평생 국수와 함께 지내다 보니 어느 듯 국수와 친구가 되어 버렸다. 그 친구를 이제는 아들딸에게도 친구 맺어준다고 하신다. 사랑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할머니는 국수를 친구처럼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 할머니의 45년 지기 고기국수는 한 그릇에 5000원이다. 여름엔 비빔국수도 같이 맛봐도 좋다.

[이랑주 시장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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