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 이후 한국의 대중매체는 북한 지배세력 내에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 체제를 단순히 “혹부리 돼지 수령을 섬기는 늑대들”과 “그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불쌍한 동포들”로 거칠게 이원화했던 <똘이장군> 시리즈의 세계관을 비로소 넘어선 셈이다. 불행히도 <해빙>은 시청률 경쟁을 벌이던 MBC <제4공화국>에 밀려 이 대담한 세계관이 그리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문제는 충성심을 강요하는 체제”라고 고발
이후 온건파와의 대화로 강경파를 제압하고 평화를 불러와야 한다는 발상이 대중의 너른 열광을 불러일으킨 첫 작품은 영화 <쉬리>(1999)였다. 특수임무를 띠고 남파된 북한 강경파의 특수요원 이방희(김윤진)가 한국의 정보요원 유중원(한석규)에게 접근했다가 그와 연인이 되었다. 남북관계를 경색시켜 전쟁으로 몰고 가려는 북한 강경파의 부름 앞에 이방희는 눈물을 머금고 연인에게 총구를 겨눈다. 피도 눈물도 없는 훈련을 받은 특수요원조차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사랑으로 이념의 장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발상은 한국 관객들에겐 낯선 것이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민족이라는 이름을 호명해 남북 화해를 상상했다면, <쉬리>는 통일과 화해를 민족적 협력의 단위가 아니라 개인적 연애의 단위에서 상상한 것이었는데, 이는 혁명적인 변화였다.
철진에게 한껏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 장진은 해피엔딩으로 끝낼 것처럼 굴다가 마지막 순간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민족 화해 차원에서 한국 정부가 북에 슈퍼 돼지 유전자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하자, 북은 무력으로 유전자를 탈취하려 했던 시도를 감추기 위해 리철진을 제거한다. 장진은 머리에 뿔이 나고 엉덩이엔 악마의 꼬리가 달린 줄로만 알았던 간첩조차, 남북 간의 정세에 따라 얼마든지 제거될 수 있는 희생양에 불과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던진다. 심지어 남북 간의 화해 무드가 도는 순간조차, 누군가는 조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죽어가고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 그 덕분에 관객은 임무를 수행하고도 국가의 이름으로 희생당할 수 있는 존재, 국가와 별개로 존재하는 개인으로서 ‘간첩’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남북 간의 해피엔딩을 상상할 만큼 힘이 센 판타지를 떠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남북 간의 대화를 가로막고 공포를 불러온 책임이 다름 아닌 충성을 강요하는 체제에 있다고 고발하는 단계까지는 온 것이다.
이듬해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2000)와 몇 년 후에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2004)에서 한국 영화는 가족주의를 통해 남북 간 비극의 역사를 곱씹고 이를 넘어서야 하지 않겠냐고 웅변했다. 같은 시기 제1차 남북정상회담(2000년)이 열리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해 매스게임을 관람하던 중 카드섹션으로 대포동 미사일이 발사되는 장면이 연출되자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올브라이트에게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위성 발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남북은 물론 북미 화해 무드까지 조성되던 시대적 흐름과 대중문화는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랬던 시절을 뒤로하고 우리는 어떻게 다시 <인천상륙작전>(2016) 같은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시절로 회귀하게 된 걸까?
이승한 (칼럼니스트)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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