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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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6년 ~ 1991년에 걸쳐서 경기도 화성시(당시 화성군) 일대에서 일어난 연쇄살인 사건. 대표적인 영구 미제 사건이다. 영국에 잭 더 리퍼, 미국에 조디악 킬러가 있다면, 한국에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심각했던 사건이다. 과학 수사의 중요성을 알게 해줬다는 점, 이후에 모방범을 낳았다는 점에서도 서로 어느 정도 비슷하다.

2 추정 범인의 신원정보

  • 남성
  • 신장은 약 165~170cm정도의 호리호리한 체형
  • 당시 20대 중반의 외모, 현재는 50대초반 정도
  • 혈액형은 B형
  • 손이 매우 부드러움

3 피해자

모두 10명의 여성이 살해되었다. 1988년 9월에 일어났던 8차 사건은 범인이 체포되었으나, 8차 사건의 범인은 다른 사건의 범죄를 모방하여 벌인 모방범이었고 9차 사건과 10차 사건은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1] 다시 말해, 1~7차와 9차 사건에서 살인을 저지른 인물이 있었고 8차 사건을 저지른 범인과 10차 사건을 저지른 범인까지 총 3명이 일으킨 사건인 셈이다. 단, 이 3명이 한 조를 이루어서 살인을 저지른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이른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지칭하는 8명을 살해한 범인은 수수께끼이며 미제 사건으로 남아 공소시효가 종료되었다. 아래는 이른바 미해결 9건 사건 목록이다.[2] 상당히 시간이 흘러버린 관계로, DNA 검사를 해봤자 아마 영원히 진범이 안 잡힐 것이다. 물론 공소시효 종료로 잡아봐야 처벌이 불가능하지만... 모든 주소는 사건 당시 기준이므로 지금의 행정구역과는 차이가 있다.

  • 1986년 9월 15일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 이 모(71세)
  • 1986년 10월 20일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 박 모(25세)
  • 1986년 12월 12일 태안읍 안녕리 축대 권 모(24세)
  • 1986년 12월 14일 정남면 관항리 농수로 이 모(23세)
  • 1987년 1월 10일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 홍 모(18세)
  • 1987년 5월 2일 태안읍 진안리 야산 박 모(30세)
  • 1988년 9월 7일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 안 모(52세)
  • 1990년 11월 15일 태안읍 병점리 야산 김 모(14세)
  • 1991년 4월 3일 동탄면 반송리 야산 권 모(69세)

4 수사 과정

연인원 180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고, 3,000여 명의 용의자가 수사를 받는 등 국내 살인 사건 수사 분야에서는 최대의 인력이 동원된 사건들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기껏해야 할 수 있었던 건 피해자들의 주위인물이나 뒷사정을 캐보는 등의 탐문수사뿐,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수사는 전무했다고 한다. 당시에 살인 사건이라고 하면 그런 수사방식이 대부분이던 시절이었다. 흔히 알고 있는 DNA 감식이나 머리카락 채취 같은 과학적인 수사는 이 사건의 영향으로 90년대말에 들어서서야 제대로 확립되었다고.

영화 살인의 추억(원작 : 김광림의 희곡 날 보러 와요[3])에서는 각색된 부분이 많은데, 증거 부분에서도 그렇다. 영화에서는 증거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모든 걸 처리하는 범인으로 나오지만, 실제 사건에서는 상당한 증거를 남겼다고.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나 6가닥의 머리카락 등이 발견되었을 정도. 그러니까 영화에서 나왔던 범인처럼 프로페셔널하고 퍼펙트한 살인자는 아니었다는 뜻. 그러나 역시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대부분이 살인 사건이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발견되는 바람에 증거들이 알아볼 수 없게 변질된 경우가 많았고, 아닌 경우에도 빗물에 씻겨내려간 적도 있었다. 게다가 증거를 수집해도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인력도 장비도 노하우도 부족했다.

영화에서는 비가 오는 날에만 범인이 사건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비가 오는 날에 살인 사건이 일어난 건 2건 정도라고. 기껏 증거로 채취한 정액도 유력한 용의자와 일치하지 않는 등 수사는 말 그대로 난항을 거듭했다. 당시 국내에는 DNA 검사를 할 시설이 없어서 정액 샘플을 일본에 보냈는데, 정액 샘플의 DNA 패턴을 기록해두지 않고 용의자의 샘플이 보내질 때마다 새로 정액 샘플의 DNA 검사를 한 탓에, 몇 번 하고 나니 정액 샘플이 없어져버렸다는 사연이 있다.

(영화상에서 초반부엔 비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자만 죽인다는 방향으로 수사가 진행되다가, 네 번째 피해자가 비오는 날 공장에서 일하는 남편을 마중나갈 때 빨간옷을 입었다가 께름칙한 기분이 들어 옷을 갈아입는다. 형사들의 대사를 통해 언급하진 않지만, 이 장면을 통해 빨간옷을 입은 여자만 죽인다는 형사들의 가설을 감독이 파기한 셈. 그리고 이후의 유력 용의자인 박현규가 풀려난 이후 희생되는 여중생이 살해된 날은 비도 오지 않았고, 죽고 난 다음 날 시체가 발견됐을때 비가 온다. 비가 오는 날만 살인을 한다는 가설도 틀린 것이다. 영화의 극적 재미를 위해, 그리고 형사들의 잘못된 수사로 비와 빨간옷이라는 장치를 등장시켰다가 나중에 전부 파기한 거다. 그러니 이 영화는 실제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비오는 날 빨간옷을 입은 여자만 죽인다고 주장하려던 게 아니다. 오히려 그런 소문들이 사실이 아님을 말하는 것)

강간살인이 짧은 시간 간격을 두고 이루어졌고, 속옷을 안면 부분에 씌우거나 두 손을 뒤로 묶는 등 예나 지금이냐가 상관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범행 수법을 보여주었다. 무조건 목을 졸라 살해한 것도 아니고, 가슴 부분이 아홉차례나 난도질 된 시신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수사에 참가했던 형사의 말에 따르면, 이 자상에서 피가 많이 흐르지 않았다고 한다. 찔러서 죽인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기다린 후 찌른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 사람이 많은 도심이 아니라 한적한 시골에서 일어난 이 사건들은, 화성군[4]민뿐 아니라 전국민에게 상당한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당연히 범인을 빨리 잡으라는 여론이 빗발쳤다. 여론에 떠밀려 경찰은 엄청난 숫자의 용의자를 잡아들였지만, 범인을 골라내지는 못했다.

5 그것이 알고싶다의 분석

SBS그것이 알고싶다 초창기에 이 사건을 한 차례 다룬 적이 있었고, 2011년 5월 7일에 800회 기념으로 대한민국 3대 미스테리 사건의 첫 번째로 이 사건을 다루었다.[5] 당시에는 시도되지 않았던 프로파일링과 사건 현장의 지리적 특성 분석을 통해 범인을 추정해보고자 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일대에서 연쇄강간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경찰은 연쇄강간 사건의 상세한 자료를 남기기는 했고, 일부 수사진은 연쇄강간 사건과 연쇄살인 사건이 한 맥락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지만, 연쇄살인 사건이 너무 심각해서 묻힌 듯하다. 그러나 범죄학자들은 같은 지역에 연쇄강간범과 연쇄살인범이 같이 있을 끔찍한 확률은 매우 낮다면서 동일범에 의한 소행이라고 분석했다.

연쇄강간 사건과 관련된 파일을 살펴보면, 거의 모든 사건에 기록된 범인의 신상정보는 손이 부드럽고 욕을 잘하는 166~170cm 가량의 남자로 되어 있다. 당시 연쇄살인이 일어나던 시점에 강간사건의 한 피해자의 증언에서도 비슷한 묘사가 있었다.

또한 범죄 시간대와 범죄 장소를 분석해보면, 범인은 수원시에 사는 남자로 시외버스를 통해 수원과 화성을 오가면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실제 7차 사건 때에 화성에서 수원으로 가는 막차를 어떤 젊은 남자가 불러 세웠다. 이때가 유일하게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목격된 시점이다. 당시 버스기사는 역시 연쇄강간 사건이나 성폭행 피해자의 증언과 유사하게 욕을 잘하는 20대 중반 정도의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였다고 기억했다.

그리고 취재결과 87년 5월부터 88년 9월 사이 범인의 범행이 이뤄지지 않은 공백기에 수원에서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88년 1월 4일 수원 화서역 근처의 야산에서 여고생이 스타킹, 팬티 등에 묶인 채 발견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수법이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매우 유사했으나, 당시 수원과 화성 경찰서 사이에 연계가 이뤄지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수원서에서 이 사건의 용의자로 생각된 인물이 2주일 뒤에 고문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이 사건의 수사가 덮어져 버렸다.

제작진이 범인을 추정하기 위해 미국까지 직접 가서 유명 프로파일러들에게 관련 자료를 보여주었다. 프로파일링 결과 다양한 분석이 나왔는데 범인은 일단 무척 깔끔한 성격일 가능성이 높고 성장과정이나 일상에서 여성에게 억압받았을 가능성 역시 높다고 한다. 애인이 아닌 가족이나 보호자 위치에 있는 여성이 범인을 오랫동안 억압했을 것이라는 뜻. 피해 여성들을 살해하고 나서도 가지고 노는 듯한 정황에서 볼 때 어떤 억압된 감정이 느껴진다고 한다.

제작진은 당시 유일하게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목격한 버스 운전사의 목격담을 바탕으로, 당시 20대 중반이고, 키는 166-170정도, 손이 부드러운 남자이며 수원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몽타주를 3D로 재현하고, 그의 현재 모습으로 추정되는 그림을 공개했다.#
관련 동영상
기사에 따르면, 연쇄살인범인 유영철은 저 화성살인범이 사망했거나 교도소에 수감 중일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연쇄살인범의 경우 살인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 만일 그의 말이 맞다면 아래 목숨을 끊거나 죽은 용의자 중에 진짜가 있었을 가능성도 없다고는 볼 수 없을지도.[6]

MBN의 방송 프로그램 '아주 궁금한 이야기 아궁이' 16화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는데, 이 사건을 담당한 형사가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이 사건과 연관이 있을 수 도 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강호순이 범죄를 일으킨 날이 이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와 비슷하게 시작되었다는 점, 경기도 지역에서 성매매를 했다는 점, 강호순이 범행을 저지른 날짜(2004년 12월 12일, 14일)가 화성 3차, 4차 사건 날짜와 겹친다는 점(1986년 12월 12일, 14일), 화성 연쇄살인범의 몽타주와 비슷한 얼굴과 나이(1986년 강호순의 나이는 18세)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 그가 범인을 가능성을 내놓았으나, 그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알고 있었기에 유사한 유형이 발생한 거라는 말도 나와서 확신할 수는 없다.

또한 안양 초등학생 살인 사건의 용의자인 정성현을 꼽기도 하는데, 이는 당시 이니셜이 J라는 점과 화성과 가까운 안양 근처라는 점 등이 비슷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당시 정성현은 10대에서 20대 초반이었는데 대부분의 연쇄살인범은 나이가 어려도 30대 중반. 대개 40대 초반이 많다는 점도 이를 부정하는 요소. 그러나 목격자 증언에 의하면 용의자는 20대이다.

6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의 분석

2016년 9월 4일 방영되었다. 제작진과 최정예 추적단의 추적 결과 8차 사건의 유력한 범인의 DNA 감정서가 아직 남아있음이 확인되었고, 목격자가 버스기사 이외에 22명이나 더 있었음이 밝혀졌다. 이를 통해 새로운 몽타주가 공개됬다. #

7 괴담

사건 용의자들과 수사 담당자 상당수가 이상하게 죽어가자 이른바 ‘화성 괴담’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9차 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3차례 경찰조사를 받았던 중년의 차 모 씨(38)는 1990년 3월 화성시 진안동 병점역 철길에서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1991년 4월에는 10차 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의 추적을 받던 장 모 씨(32)가 아파트 4층 옥상에서 투신해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9차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다가 현장 검증 도중 범행을 부인했던 19세 청년은 1997년 20대 중반의 나이에 암으로 요절했다. 7차 사건의 용의자 박모 씨 역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뒤, 아버지의 무덤 근처에서 목을 메고 자살했다. 여기에 심령술사의 제보로 붙잡힌 4, 5차 용의자 김 모 씨도 고문 후유증의 스트레스로 사망했다.[7] 게다가 유일하게 범인을 잡은 8차 사건에서 범인 추적에 결정적인 공을 세우고 일계급 특진한 최모 순경은 1999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화성 수사본부 관계자 중에서도 최모 치안감, 장모 수사과장, 송모 서장 등은 모두 수사 일선에서 물러난 지 얼마 안되어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숨졌다. 네이버 영화 살인의 추억 해설 참조]

영화에서 나왔던 점쟁이 건은 사실이라고 한다. 범인이 하도 잡히지 않자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풍수가 좋지 않다고 해서 경찰서 위치를 옮겨보기도 하는 등 별별 수를 다 써봤다고. 너는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죽는다라는 말을 써 놓은 허수아비도 실제로 세워놨었다고 한다. 당시 사진 자료를 보면 관련 사진을 찾아볼 수 있다.빨간옷 입힌 허수아비가 더 무섭다

"비오는 날 밤에 붉은 옷을 입은 여자를 죽인다."는 괴담이 돌아 붉은 옷의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거나 비오는 날에 외출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사실 빨간 옷을 입은 피해자는 1명뿐이었고, 비오는 날에 일어난 사건은 2건뿐이었지만, 무서울 법 하기도 하다.

8 이후

어쨌든 이 사건들은 한국에서 과학 수사의 필요성이 더욱 요구되는 사건이 되었고, 이후부터 서서히 제대로 된 과학 수사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범인은 여전히 잡지 못했고, 결국 공소시효까지 끝나버렸다. 2000년 8월 8일 이후 저질러진 살인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전면 백지화되긴 했으나 법적 안정성을 위해 이 사건은 소급적용하지 않는다.

  • 영화 살인의 추억은 이 사건 자체를 직접 다룬 작품으로사건 뿐 아니라 80년대의 정서를 담고 있어 성공작으로 평가되었으며 동시대의 많은 한국 추리 작가들이 이 사건 관련 단편을 양산했다. 살인의 추억이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국민들 또한 잊혀져가던 이 사건을 재인식하였다.
  • 수사반장 마지막 회는 바로 이 사건을 다루었으며, 줄거리는 농촌 총각을 대상으로 한 결혼 사기단 때문에 피해를 본 아저씨가 그 사기단 관련자나 다른 여자들을 살해하는 식으로 가상의 범인을 만들었다. 이 사건을 해결해서 최불암은 반장에서 높으신 분으로 승진하는 줄거리로 마무리 되었다.
  • 2012년 개봉한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에 나오는 연쇄살인은 10명이 살해당하고,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발생하여, 2005년에 미제로 남은 채로 공소시효가 소멸한 것으로 줄거리가 귀결되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 tvN의 드라마 갑동이도 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 2016년 방영된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도 본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살인에 중독된 범인이 하반신마비가 되어 더이상의 살인을 할 수 없어 연쇄살인이 중단되었다는 설정이 붙었다.
  • 중국판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바이인 연쇄살인 사건이 있다. 다만 이 사건은 2016년 8월 26일에 범인이 검거되어 해결했다.
  1. 1990년대 초에 드디어 국내에도 DNA 감정 기법이 도입되어 9차 사건의 범인이 남기고 간 정액 등을 토대로 DNA 조사를 해본 결과 9차 사건의 범인과 10차 사건의 범인은 서로 다른 사람으로 드러났다. 거기다 10차 사건의 현장이 유독 어수선하여 당시 경찰에서도 이는 소매치기의 소행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2. 위키백과 참조. 시신 발견 시간이 아니라 살해 추정 시간인듯.
  3. 제목이 범인보고 보러 오라는 의미라고 한다. 범인이 자기 보러 오라는 게 아니고?
  4. 화성시로의 승격은 2001년 이루어졌다.
  5. 두 번째로 14일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세 번째로 15일 이형호 유괴 사건이 방영되었다. 화성사건과 함께 흔히 대한민국 3대 미제 사건으로 통한다.
  6. 믿기 어렵겠지만 연쇄살인범과 같은 강력범들에게는 의외로 교도소가 훌륭한 도피처이자 은신처가 될 수 있다. 아무리 흉악한 토막살인 사건이라 할지라도 언론이 관심 있게 취재하는 기간은 기껏해야 사건 직후 몇 달 동안이고 경찰의 수사망이 집중되는 기간도 초기 얼마 동안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대중의 관심도 서서히 식게 되고 경찰의 수사도 새로운 단서가 나오지 않는 한 흐지부지 되어버린다. 그 동안에 소매치기사기 등의 잡범으로 잡혀 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되면 못해도 몇 년 동안의 공소시효 기간을 흘려보낼 수 있다. 경찰도 대중들도 설마 그 흉악무도한 살인범이 벌써 교도소에서 다른 죄로 복역 중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는다는 점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7. 얼핏 저주 비슷한 초현실적인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상술된 강간 용의자의 고문으로 인한 사망을 봐도 느낄 수 있듯이, 당시 시대상황을 보았을때는 오히려 의학적으로 합리적인 원인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바로 용의자 전원이 끔찍한 폭행과 고문으로 육체나 정신이 영영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만큼 훼손되었을 가능성이다. 당시는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 시기로, 이미 사회에 알려졌다시피 전두환 정권에서는 삼청교육대 뿐만 아니라, 운동권 인물들에게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고문을 가했었다.(당연히 고문받다 죽은 사람도 있지만, 고문 이후 풀려나서 후유증으로 몇년만에 죽은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노태우 대통령때는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었다. 이는 전국민적 관심이 가장 크게 쏠린 이 사건에서 이보다 더한 짓이라도 해서 범인을 잡아내라고 윗선에서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고, 사건지역 근처 일반인 중 직접 증거없이 알리바이 증명 못함 등의 이유로 무혐의로 완벽하게 증명할 수만 없다면 일단 잡아서 자백을 강요하며 의심가는 부분이 많은 용의자일수록 더 끔찍한 고문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공권력한테 여자들 끔찍하게 죽인 놈 잡으라고 했더니, 증거도 별로 없이 그냥 의심가는 남자들 죄다 잡아 조져서 결국 죽은거 결국 무고한 자들이 죽기만 하고 진짜 정확한 놈은 없다 이는 그 중에 진범이 있었건 없었건 어차피 과학수사로 밝혀진게 단독범인데 그중 있는지도 모르지만 있어봤자 당연히 진범 아닌 무고한 피해자가 더 많았다 그와 무관하게 공권력에 의한 살인급이라 의심하기 충분하다. 저주나 귀신같은 초월적 힘으로 죽는 걸 의심하기보다, 현실에서 죽을만큼 당해서 죽었을 걸로 의심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8. 현재는 중앙경찰학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