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운명에 휩쓸린 비극적 인간, 황정민의 색깔로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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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이디푸스'의 황정민
오이디푸스, 전작보다 더 어렵지만 무대 설 때마다 자유로움 느껴
연극이 영화보다 좋아요..29일부터 예술의전당서 공연
황정민
'한때는 두 발로 걷고, 한때는 세발로 걷고, 한때는 네 발로 걷는데, 발이 많을수록 더 약한 것은 무엇인가?'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던진 수수께끼다.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어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의 남자'. 오이디푸스는 저주나 다름없는 신탁을 피해 길을 떠난다. 하지만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풂으로써 잔혹한 운명의 수레바퀴에 다시 휘말린다. 수수께끼의 답은 바로 인간. 인간에게 운명이란 무엇인가. 운명에 맞선 인간의 의지는 부질없는 것인가.

고대 그리스의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 원작 '오이디푸스'가 '1억 배우' 황정민의 몸을 빌려 되살아난다. "관객의 머릿속에 황정민의 오이디푸스가 각인됐으면 한다." "자식들에게 젊은 시절 황정민의 비극 '오이디푸스'를 봤는데 견줄만한 작품이 없었다고 할 만큼 잘하고 싶다." 지난해 12월 '오이디푸스' 제작발표회 때만 해도 황정민은 좀 더 야심만만했다.

하지만 개막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에 한창인 황정민은 말을 아꼈다. 이제 무대에서 연기로 입증해야할 순간임을 안다는 듯 그는 "공연이 잘되길 바란다. 감기에 걸리지 않게 조심 중"이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황정민은 "무려 2500년 전에 쓰인 고전이자 비극의 원형을 연기한다는 생각"에 결코 허투루 임하지 않았다. 늘 가장 먼저 연습실 문을 열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새롭고,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공연할 때마다 참혹한 운명을 깨닫고 휘몰아치는 감정을 잘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전작 '리처드 3세'가 너무 힘들어 이 작품만 끝나면 어떤 연극을 하건 두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틀렸다. '오이디푸스'가 더했다."
지난 24일 연극 '오이디푸스' 연습실 공개 행사에서 '테레시아스' 역의 정은혜와 앙상블이 열연하고 있다.

굳이 이 어려움을 자처한 이유는 뭘까. 그건 일종의 회귀본능이자, 연기 욕심의 발로다.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한 황정민은 1998년 영화 '쉬리'로 충무로에 진출했다. '세 친구'로 눈도장을 찍은 뒤 '부당거래' '신세계' '국제시장' '베테랑' '곡성' '군함도' 등 총 33편 출연작의 누적관객수가 2017년 1억명을 돌파하며 '1억 배우'라는 칭호도 얻었다. 하지만 최근작 '공작'(2018)을 찍으며 매너리즘에 빠진 자신과 마주했다. 지난해 '리처드 3세'로 10년 만에 무대에 선 데는 이러한 자각이 큰 계기가 됐다.

연극 덕분에 그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관객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커튼콜을 할 때 배우의 에너지와 관객의 에너지가 합쳐지는 그 순간, 관객에 대한 고마움이 물밀 듯 밀려왔고 행복해하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황정민은 "연극이건 영화건 연기를 한다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도 "영화보다 연극이 더 좋다. 무대에서 연기하는 내내 자유를 느낀다"며 연극 사랑을 드러냈다.

무대에 오르는 다른 이유는 그 옛날 자신과 한 약속 때문이다. '20대 중반에 관객이 없어서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던 그는 "나중에 유명해지면 연극을 해 많은 관객과 소통해야지 다짐했었다. 앞으로는 계속 연극을 할 것이다. 다음 작품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극중 오이디푸스는 말한다. "나는 살았고, 그들을 사랑했고,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배우에게 연기는 희열이자 고통일 것이다. 고통의 터널 끝에서 맞는 희열은 관객의 박수가 터져 나올 때 비로소 완성된다. 곧 새로운 관객과 만나야 하는 그는 떨고 있다. 서재형 연출은 귀띔했다. "연습실 공개를 앞두고 분장실에서 만난 배우들이 다 떨린다고 하더라. 연출자로서 말하건 데 이것은 잘 준비된 떨림이다. 배우들의 떨림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길 바란다." 좀 더 가까이서 황정민의 두려움, 성취, 열정, 떨림을 느끼고 싶은가. 1월 29일부터 2월 24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확인가능하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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