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국민에게 "너희는 몰라도 돼"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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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딸 가족의 해외 이주, 왜 그랬을까 의문투성인데… 靑, "그런 게 아니다" 부인만
적자 국채 발행 압박 의혹도 "좁은 식견 탓" 한마디로 끝… 국민은 궁금한 것도 못 묻나


김창균 논설주간

미국 주별로 선거를 치르는 주지사 혹은 상원 후보는 다른 주에서 사립학교에 다니던 자녀를 자기 지역 공립학교에 전학시키곤 한다. 자신이 대표하겠다는 지역의 공공 교육 시스템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역 주민에 대한 예의라는 정서에 바탕을 둔 득표 전략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위 공직 후보자로 지명되면 자녀의 다른 나라 국적을 정리하도록 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딸 다혜씨 가족이 해외로 이주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외손주는 그 나라 국제학교로 옮겼다. 다혜씨는 2017년 대선 하루 전 아버지를 응원하는 영상 메시지에서 "아이를 키우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달라. 아이 키우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어달라"고 했었다. 그랬던 다혜씨가 아버지 임기가 시작된 지 1년을 갓 넘긴 시점에 그것도 대통령 참모가 "헬조선이라고 불평하는 젊은이들도 거기 가보면 한국을 '해피 조선'이라고 느낄 것"이라고 했던 곳으로 아이를 데리고 떠났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궁금해진다. 필자만 그런 것일까.

다혜씨는 남편 명의의 빌라를 증여받은 뒤 석 달 후 처분하고 외국으로 갔다. 일반 국민은 이런 부동산 거래를 해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어떤 이유 때문에 이런 거래가 필요했던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청와대 대변인은 "경제 상황 관련이나 자녀 교육 목적을 위한 해외 이주가 아니며, 갖가지 억측 또한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그게 아니라면서 사실이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제기한 한국당 곽상도 의원에 대해 "(대통령 외손자의)학적 서류를 취득, 공개한 불법성을 확인해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국가 지도자 가족의 해외 이주는 어느 나라에서나 공개될 수밖에 없는 정보인데 야당 의원이 전학 시점 등 세부 사항을 밝힌 것에 왜 이토록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지 어리둥절하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 친·인척을 상시적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주요 사항은 빠짐없이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조국 민정수석은 작년 연말 운영위에서 곽 의원이 관련 사실을 언제 알았느냐고 묻자 "12월 28일 언론 보도가 나온 후에 알았다"고 했다. "어떤 불법 사항도 없기 때문에 저희가 조사할 사안이 아니었다"고 했다. 대변인과 민정수석이 같은 일에 대해 다른 말을 했다. 그것과는 별도로 불법이 아니라서 알아보지 않았다는 민정수석 말 자체도 이상하게 들린다. 청와대 민정은 대통령 가족이 불법에 휘말리지 않도록 예방적 차원에서 관리한다. 역대 민정 비서실이 대통령 친·인척 주변에 수상한 사람이 어른거리면 접근 자체를 차단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대통령 가족이 이미 불법을 저질렀다면 민정 소관이 아니다. 수사기관이 조사해서 처벌해야 할 일이다.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은 2017년 연말 세수 초과 상태에서 청와대가 4조원 규모의 적자 국채 발행을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박근혜 정부 마지막 임기의 재정 적자 규모를 의도적으로 늘리려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신 전 사무관이)자신이 보는 좁은 세계 안에서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도 청와대도 적자 국채 발행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적자 국채를 발행하려고 했던 봉황의 깊은 뜻을 '사무관 참새'가 헤아리지 못했다고 타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그 깊은 뜻이 무엇인지가 궁금한데 한 달이 다 되도록 설명하는 사람이 없다.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너희는 몰라도 돼. 쓸데없는 데 관심 갖지 말고 공부나 해"라는 핀잔을 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권위에 짓눌려 의문을 해소하지 못해서 답답했던 심정을 요즘 와서 다시 체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이 갖는 의혹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도 사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할 수 없는 이유조차 밝히지 않는다. 그러면서 의혹을 제기한 사람의 의도나 방법, 지위를 문제 삼으며 역공을 가한다. 청와대의 의혹 대처 매뉴얼을 배웠는지 손혜원 의원도 "내 재산과 의원직 목숨을 걸겠다"면서 뭐든지 통째로 부인한다. 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검찰 조사를 받자"고 협박한다.

요즘 들어 상식으로 납득 안 되는 일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궁금한데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다"라고만 하고 "의혹을 발설하면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까지 놓는다. 몸이 움츠러든다.

[김창균 논설주간 ck-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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