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엄지족은 모르는 '전통시장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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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1.31. 오전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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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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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우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 회사에서 재무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김모씨(41)는 2019년도 연간 계획을 수정하라는 지시를 받고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다. 당초 예상보다 경기 전망이 좋지 않아 수정에 재수정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설을 앞두고 명절 차례 상 준비도 해야 하는데, 퇴근시간 등을 감안하면 전통시장 방문은 물리적으로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온라인 장보기 시스템’이 없었다면, 차례 상 준비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미국에 체류 중인 이모씨(43)는 한국에 계신 어머님께 ‘온라인 장보기 시스템’을 이용해, 아버지 제사상 준비 물품을 배송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어머니와 함께 전통시장을 찾아 ‘생전에 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곳’의 음식들을 함께 준비했는데, 지금은 해외에 있어 ‘최소한의 자식 된 도리’만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요리 솜씨가 서툰 ‘새색시’ 최모씨(26)는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을 시간이 없다. 데우기만 하면 되는 반 조리 명절 음식에서부터 과일이며 밤 대추까지, 리뷰와 평점을 꼼꼼히 확인한 뒤 각종 차례음식을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는다.

처음 맞는 설 명절에 시부모님께 ‘품질 좋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비교·분석하는 등의 ‘쇼핑의 기술’을 발휘했다. 네티즌 평점이나 조언 등은 구매에 앞서 꼼꼼히 확인했다. 너무나 초보적인 단계라 전통시장에서 직접 설음식을 준비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직장맘 윤모씨(34)는 인근 대형마트에서 설음식을 마련했다. 정신없이 장을 보는 동안, 아이들을 마트 놀이방 코너에서 잠시 놀게 했다. 구매 물품은 마트 배송서비스를 이용해 집 문 앞에서 다시 만난다. 마트를 갈 때도, 돌아올 때도 양 손은 아이들과 함께이다.

이처럼 변화한 사회상, 녹녹치 않은 경제 상황에 전통시장 상인들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기업들의 2월 체감 경기 전망치는 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다. 내수 전망이 어두워지자 설 상여금을 줄인 기업이 여년에 비해 많아졌다.

설 상여가 줄어든 점도 전통시장 입장에서는 악재다. 대형 업체에 비해 도소매 업체는 ‘인내력’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은 억울하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37곳을 대상으로 4인 기준 설 차례상 비용을 비교한 결과, 전통시장은 22만5242원, 대형마트는 27만6542원으로 나타났다. 전통시장이 20%가량 저렴했다. 특히, 채소류, 수산물류, 육류의 가격 우위는 뚜렷했다.

하지만 ‘금액적인 이점’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제약 등으로 소비자들이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 전통시장은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이번 설에도 전통시장,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명절의 풍성함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온누리 상품권과 지역사랑 상품권을 대폭 늘려 발행할 예정이다.

온누리상품권은 지난 설보다 1500억원 많아진 4500억원 규모로 발행하고, 할인율도 5%에서 10%로 높였고, 구입한도도 30만원에서 50만원으로 20만원 더 늘렸다.

지역사랑상품권도 지자체들이 지난해 명절의 두 배 규모인 1250억원 어치를 조기에 발행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문 대통령은 설을 앞두고 제수용품이나 설빔을 구매할 때, 대형마트 뿐만 아니라 전통시장이나 골목골목의 가게를 찾아 값싸고 신선한 물품을 사면서 따뜻한 정을 나눠달라고 당부했다.

어렸을 때 설 연휴가 되면 언필칭 엄마를 따라 전통시장에 갔다. 한 손에 각종 차례 음식이 담긴 검정 비닐 봉투 몇 개를 쥐고 있었던 기억도 난다. 다른 한 손은 뜨끈한 호떡을 쥐어야 하기 때문이다. 호떡을 불어먹는 재미에 추운 날씨는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당시 정육점의 빨간 불빛, 생선가게 얼음과 축축한 바닥, 과일가게 아저씨가 덤으로 쥐어주던 생밤의 맛이 어우러진 기억은 참 따뜻하다. ‘전통시장’만이 가질 수 있는,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독보적인 훈훈함이다.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로 지냈던 기간 내내 나와 미국 생활을 함께했던 딸아이는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에 대한 기억만 있을 뿐, 전통시장의 따스함은 아직 모른다.

그래서 이번 설 연휴에는 딸아이를 데리고 집 근처인 종로 통인시장을 찾을 예정이다. 알뜰한 차례 준비는 기본이고 호떡을 손에 쥔 ‘따뜻한 기억’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최은영 (eun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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