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α’ 지급한 사장님들 “최저임금 때문에 망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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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2.04. 오후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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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수익률 떨어졌지만 경영으로 커버한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적응기


1월22일 서울 마포구 광성로 구대회 커피 2호점에서 구대회 사장과 직원 이경식씨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자영업계에서 비숙련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곧 ‘최고임금’이다. 사장 편에서는 ‘합법’인데다 ‘구인’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굳이’ 최저임금 이상을 줄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그 ‘굳이’를 실험하는 자영업자들이 있다. 통상 아르바이트로 때우는 일자리에 정규직을 채용하고 ‘최저임금+α’를 준다. 자영업계에선 최저임금 8350원만으로도 “가게 문 닫게 생겼다”는 절규가 울려퍼지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최저임금보다 더 주고도 이익이 줄지 않았다고 한다.

누가 하나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비온뒤숲속 약국’을 운영하는 장영옥 약사다. 장 약사는 2017년 6월 페이스북 페이지 ‘망원동 좋아요’에 ‘시급 1만원’ 구인 광고를 냈다. 시간당 최저임금이 6470원이던 때다. 요즘 1만원보다 훨씬 파격적인 조건이다. 그때 채용된 전산 처리와 매장 관리 하는 직원 김혜진씨는 그해 9월부터 현재까지 근속 중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구대회 커피’ 1·2호점과 커피랩을 운영하는 구대회 사장도 ‘최저임금+α’를 고집한다. 바리스타를 포함해 직원 5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사업주가 퇴직금과 4대 보험을 부담한다는 뜻이다. 2017년엔 최저임금이 6470원이었는데 근속기간에 따라 시간당 8천~9천원을 줬다. 2018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올랐으나, 전년과 같은 임금을 지급했다. 올해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불가피하게 최저임금만 주고 있다. 다만 휴가비 50만(1년차)~100만원(2년차 이상)과 각종 경조사비를 챙겨준다. 이번 설 선물은 모든 직원에게 전복 1㎏ 세트를 돌리기로 했다. 구 사장은 합법적으로 ‘최저임금의 90%’만 지급해도 되는 2개월 인턴 기간에도 100%를 준다.

왜 하나

장 약사는 2016년 겨우내 광화문을 지켰다. ‘촛불 시민’이 새 정부를 세웠지만, 세찬 바람에 꺼질 수 있는 촛불이라고 생각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공약보다 더 거센 반발에 부닥치리라 직감했다. ‘할 수 있는 일’이고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나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길을 나부터 먼저 가보자” 싶었다. 작은 발걸음이 마중물이 되어, ‘거스를 수 없고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이 생기길 바랐다.

2010년 문을 연 구대회 커피 1호점은 광흥창역 인근 주택가에 자리잡았다. 길 가다 우연히 들어오는 손님이 아니라, 애써 찾아오는 단골이 대부분이다. 커피 맛 비중은 40~50% 정도고, 나머지는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구 사장이 ‘알바’ 정도의 서비스로는 손님에게 만족을 줄 수 없다고 여기는 이유다. 더욱이 구 사장은 ‘커피 사업’을 확장할 구상을 가지고 있다. 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핸드드립 로봇팔이 개발되고 무인 커피숍도 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래도 조금만 버티고 살아남는다면 ‘인간 바리스타’ ‘인간 서비스’가 오히려 경쟁력이 있다고 믿는다. “키오스크(무인 단말기)가 불편하고, 자기 얼굴과 이름과 취향을 기억해주는 직원이 만들어주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하는 손님이 분명히 있다. 지치고 우울한 손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는 인간적인 서비스를 하려면, 사장부터 직원을 인간적으로 대해야 한다.”

아주 사적인 계기

장 약사는 79학번이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을 경험했다. 1970~80년대 거리에서 불렀던 노래를 2016년 촛불 광장에서 다시 부르다 울고 말았다. ‘30년이 지났는데 다시 이 노래를 불러야 하다니… 더는 안 되겠다’ 싶었다. 대학 졸업 뒤 결혼했고, 세금 잘 내고 법규 잘 지키고 아이 잘 키우며 살면 되는 줄 알았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문제에 집중하는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해주리라 믿으며 즐겁게 살았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나 하나 열심히 잘 살던 세월이 시민으로서 책임을 방기해온 시간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구 사장은 금융·보험업계에서 일했다. 한 보험회사에서 고연봉 계약직으로 일한 적이 있다. 회사는 그 시절 구 사장을 ‘함께 갈 사람’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겼다. 비품 하나를 신청해도 정규직 먼저고 계약직은 하세월이었다. ‘나는 나중에 사람 뽑으면 그러지 말자’ 결심했다.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4대 보험처럼 큰일이든, 앞치마 같은 사소한 물품이든 정당한 요구는 바로바로 처리해주는 이유다.

부담은 되고

1월22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비온뒤숲속 약국’에서 장영옥 약사와 전산·관리 직원 김혜진씨가 모니터를 보며 처방전 전산 처리를 하고 있다.


비온뒤숲속 약국엔 약사와 정규직 관리 직원, 바쁜 시간대 시간제근무(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총 8명의 직원이 있다.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을 지급하기 시작한 뒤 인건비 부담이 전보다 약 40% 늘었다. 장 약사 역시 인건비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어서, 임금을 언제 얼마나 올려줄지 고민이다. 아직은 시급 1만원에서 버티고 있다.

구대회 커피는 전체 비용에서 인건비 비중이 30% 정도를 차지한다. 영업이익이 15%다. 매출이 급격히 늘지 않는 한, 인건비가 30% 오르면 영업이익은 9%로 떨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구 사장은 커피숍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생활을 꾸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장이 확대되고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올라가면 시간당 1만~1만2천원까지 줄 계획이다. 월급 기준으로 ‘최소 300만원’은 줘야 한다고 본다. 그것을 자신의 숙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부작용도 있지만

장 약사는 구인 광고 전 며칠간 잠을 못 잤다. 그래도 답은 같았다. 우리 사회가 ‘직원 저임금에 기대 사장 수입을 보전하는 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최저임금 1만원 줬다고 내 형편이 어려워진다면 ‘그건 원래 내 몫이 아닌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무엇보다 약국, 병원, 잘되는 식당 등 수익률이 괜찮은 업종부터 최저임금 1만원에 동참해야 한다고 봤다. 물론 온라인·마트·편의점에서 의약품을 팔고 약국 간 경쟁도 치열해진 요즘, 약국 운영이 전보다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래도 다른 업종에 비해 약사들은 좀 낫고, 좀 나은 나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 사장은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신입과 경력자의 임금 차이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생겼다고 말했다. 신입도 법정 최저임금은 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최저임금 인상률만큼 경력자 임금까지 올려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구 사장은 “신입은 나라에서 주라는 대로 받는 거라 고맙다고 생각 안 하고, 경력자들은 신입이랑 비슷하게 받으니 또 서운하다”며 일정 부분 속도 조절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다.

단골이 버텨주고

구인 광고를 냈을 때 몇몇 언론에 비온뒤숲속 약국 사례가 보도됐다. 시민 반응이 두 가지로 갈렸다. 방송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봤다며 찾아오는 젊은 손님이 늘었다. 물론 발길을 끊은 사람도 있다.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지인에게 “그 사람(장 약사) 이상한 사람” “완전 좌(파)”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구대회 커피는 1월 초부터 영업시간을 줄였다. 전에는 연중무휴로 오전 9시~오후 9시까지 운영했다. 요즘은 1호점은 주중 오전 7시~오후 7시, 2호점은 오전 9시~오후 7시에만 커피를 판다. 아메리카노 값도 투샷 기준 1500원에서 2천원으로 올렸다. 손님들은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단골이 많아 괜찮은 것 같다는 게 구 사장 생각이다.

경영으로 커버한다

장 약사도 “경영 상태가 더 어려워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인건비가 늘었으나 어떤 형태로든 ‘보전’이 됐다는 설명이다. 약국을 365일 연중무휴로 운영하면서, 개점 시간을 30분 당기고 폐점 시간은 1시간 늦춘 영향이 크다. 장 약사 본인이 주당 65~75시간 일하며 늘어난 인건비 부담분을 메우고 있다. 시급 1만원이 화제를 모은 뒤 ‘믿을 만한 약국’을 찾아 굳이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도 늘었다. 통계는 없으나, 이런 손님들이 약국 경영을 유지해주는 듯하다는 게 장 약사의 생각이다.

커피 판매량은 계절을 탄다. 구대회 커피는 여름엔 매장당 하루 최대 400잔씩 팔린다. 겨울에도 250~270잔은 나간다. 지난해 1~2호점 매출이 4억원 정도 된다. 지난해 4월부터 2호점을, 12월부터 커피랩을 열었다. 두 곳 다 1월부터 매출이 생기는 올해는 매출 총액이 5억원을 넘으리라 예상된다.

부수 효과도 있다

장 약사는 ‘시급 1만원’ 시행 전, 임금을 적게 주는 것이 스스로 늘 마음의 짐이었다. 직원 표정만 조금 안 좋아도 장 약사 마음이 더 편치 않았다. 정당한 임금을 준다고 생각하는 지금, ‘이것 좀 해달라’고 일을 맡길 때도 한결 마음이 편하다. 직원도 최선을 다하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임금 인상이 경영에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라고 생각한다. 약국 업계의 전산·관리직 직원의 평균임금 기준은 통상 최저임금이었다. 비온뒤숲속 약국의 1만원 실험 뒤 조금씩 임금 인상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장 약사가 바랐던 ‘마중물’이 된 셈이다.

구대회 커피는 인건비 총액을 마냥 올릴 수 없어서 일단 근무시간을 줄였다. 지난해까지 ‘주 45시간 근무와 5시간 휴게’로 운영했으나, 올해부터 ‘주 40시간 근무와 5시간 휴게’로 바꿨다. 임금 총액 자체는 직원 1인당 적게는 5만~6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 정도밖에 안 올랐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저녁이 있는 삶’은 확실히 가능해졌다.

최저임금보다 중요한 것

17년째 성미산 마을을 지키는 장 약사의 약국은 ‘동네 사랑방’ 분위기다. 1월22일 낮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약을 사러 온 손님이 “임대료가 너무 비싸 경매로 공장을 인수했다”고 시시콜콜 개인사를 털어놓거나, 약도 안 사는 손님이 “스카치테이프 좀 빌려달라”고 오기도 했다. 장 약사는 “약국은 아픈 이웃이 찾는 곳이고, 아픔은 삶에서 오기 때문에, 이웃과 삶을 교류하지 않으면 약이 약 역할을, 약국이 약국 역할을 못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1월18일 오후 4시2분 구 사장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2호점 직원이 보낸 “퇴근” 메시지였다. 구 사장은 “직원들이 일주일에 두 번은 오후 4시면 퇴근한다. 퇴근할 때 허락받을 필요도 없고, 가게가 빌 수 있으니 갈 때 간다고 얘기만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구 사장 책상 위에는 직원 교육 일정표가 있다. 매니저는 구 사장에게 직업·손님·커피·직원 교육을 연 20회 받아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리포트도 낸다. 구 사장은 단순히 “손님에게 잘하라”고 지시하는 게 아니라, 잘하게끔 직원을 대우하고 어떻게 잘해줄지 교육하고 있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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