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10분이라도 잘 기회 생기면 놓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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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1.01. 오후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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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커버스토리|수면

시끄러운 클럽에서도 잘 자는 ‘숙면 왕’ 슬리피

틈틈이 쪽잠 잘 시간 놓치지 않아

숙면 비법으로 음악 감상·운동 추천


슬리피. 사진 윤동길(스튜디어 어댑터 실장)
일반적으로 연예인은 생활이 불규칙해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가수 슬리피(34·본명 김성원). 데뷔한 지 10년 째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가수 활동명보다 더 유명한 별칭이 있다. 바로 ‘프로 꿀잠러’다. 잠을 잘 자서 ‘꿀잠’이고, 꿀잠 자는 데 ‘선수’라서 ‘꿀잠러’라고 한다. 숙면하는 이를 지칭하는 신조어가 그를 대변하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슬리피는 어디서든 잘 잔다는 평을 듣기 때문이다.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걸까?



연예인들은 힙합 가수 슬리피가 부럽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잠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이로 보인다. 그가 녹음실, 헬스장, 방송 녹화장 등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머리를 댈 곳만 있으면 숙면을 취하는 듯한 그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오죽하면 ‘졸리다’는 뜻을 가진 영문 형용사 ‘슬리피’(Sleepy)가 가수 활동명이겠는가! 최근에는 그 명성(?)에 걸맞게 잠에 관련된 다큐멘터리 에도 출연해 시청자들의 시선도 잡아끌었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은 요즘, 숙면의 비법을 그는 알고 있을까?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우사단로에 있는 한 문화 공간에서 슬리피를 만나 숙면의 노하우를 들어 봤다.

-가수 활동명이 ‘졸리다’는 뜻인 ‘슬리피’(Sleepy)인데요.

“어렸을 때부터 잠이 많았다고 하면 김빠지는 얘기일까요.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 머리만 대면 잠 들어요. 하지만 학창시절 돌이켜보면 그런 사람들 많잖아요. 어쨌든 전 잠과 친한 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들이 ‘슬리피’라는 별명을 지어줬고 아예 이 별명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연예인 생활이 보통 불규칙하잖아요. 불규칙한 생활은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로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숙면 취하는 방법이 있나요?

“방법이 있죠. 이동 중 차안이나 녹음실에 있는 소파에서 쪽잠을 자면 돼요. 금쪽같은 그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죠. 눈치 보다가 허비하면 손해라고 생각해요. 시끄러운 클럽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는데 같은 이유에서예요. 음악이 크게 나오는 스피커 앞에서 자본 적도 있죠. 단 10분이라도 잘 기회를 잡으면 숙면해요. 그러다 보면 피로감이 줄어들어요.”

-어제도 숙면 할 틈새를 잘 잡았나요? 그래서 잘 잤나요?

“어제는 어떻게 잤는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하루 종일 일하고 한 끼도 못 먹다가 집에 와서 야식 먹었더니, 피곤하고 배부르니까 슬슬 졸음이 오더니 완전 숙면 했죠. 피곤함도 숙면에 도움이 되나 봐요.”

-‘프로 꿀잠러‘란 별명을 가진 이답게 최장 숙면 시간이 있을 것 같은데요.

“진짜 말도 안 되게 많이 잔 적이 있어요. 한 20시간 정도 잤던 것 같아요. 한 이틀 간 잠을 안자고 곡 만들었더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일에 몰입했더니 숙면이 저절로 따라왔어요.”

-잠을 잘 자니까 주변 연예인들이 부러워 하죠? 비결을 묻는 이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많이 부러워 하죠. 딘딘이 항상 물어봐요. 비결이 뭐냐고. 요즘에는 마미손도 묻더라고요. 스케줄 많아 피곤하다면서요. ‘못 잤다, 잠 안 온다’라고 스스로 말하면서 괜히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해요. 잠이 올때까지 머리를 비우고 편하게 기다리는 것도 숙면의 비법일 수 있어요. 제가 그렇거든요. ‘잠 올 때 자면 되지, 밤에 잠 안 오면 낮잠 잠깐 자면 되겠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요. 때로 불면증도 마음의 문제일 수 있거든요. 마미손도 요즘은 제 조언 듣고 나선 틈틈이 새우잠 잔다고 해요. 밤에 못 잤지만 그래도 낮에는 잘 시간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이에요. 연예인들은 그런 걸 알아야 해요.”

슬리피가 소파에서 평소 쪽잠을 자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반면에 일반인들은 아무 때나 자기 어렵잖아요. 이들을 위한 숙면 비법이 있을까요?

“평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자는 걸 추천하고 싶어요. 저도 요즘은 영국의 음악가 톰 미쉬(Tom Misch)의 곡들을 주로 듣거든요. 무의식 중에 좋아하는 선율을 들어서인지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해요. 아! 자기 전 운동하는 것도 추천해요. 원래 운동에 취미가 없다가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는데, 숙면에 효과 만점이에요.”

-잠과 친하다고 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어머니께서 어릴 때부터 ’배 부르면 억지로 먹지 말고, 졸리면 무조건 자라’고 교육하셨거든요. 그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한번은 아침에 너무 졸려서 눈이 안 떠지는 거예요. ‘졸려서 학교 못 가겠어요’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안 가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대신 자주 안 그랬으면 한다는 당부도 덧붙이셨는데, 잠과 관련해서는 화 한번 안 내셨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그래도, 연예인이고 창작을 해야 하는 예민한 아티스트인데 밤잠을 설쳐 본 적이 있을 거 같아요.

“2008년 힙합그룹 <언터쳐블>로 데뷔했지만 오랜 무명 생활을 견뎌야 했어요. 그 과정에서 밤에 잠 안 올 때도 많았죠. 그러다가 거의 10년 만에 <엠비시>(MBC) 인기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고정 출연하게 된 거죠. 대중에게 저를 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돼 놓치고 싶지 않았고요. 믿을 건 정신력 밖에 없었어요. 죽을 각오로 버텼더니, 그 마음을 시청자들께서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극복할 수 있어요.”

슬리피.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충분한 수면은 창의력의 원천이라는 말이 있다. 1965년 세계적인 록그룹 ‘비틀즈’의 명곡 ‘예스터데이’가 대표적인 예다. 비틀즈의 리드 보컬 폴 매카트니는 꿈속에서 들은 멜로디로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룹 ‘비틀즈’처럼 작곡할 때 잠에서 영감을 얻은 적이 있나요?

“잠 잘 때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보통은 가사를 외울 때 도움을 받아요. 힙합 래퍼다 보니까, 곡의 가사가 긴 편이거든요. 잠 들 때 제 노래를 들으면 무의식 중에 가사가 외워지는지 실전에서 가사 틀리는 실수를 거의 안하게 되더라고요. 수면에 관련된 책을 읽으니 공부하고 바로 잠에 들면 외웠던 게 오래 간다고 해요.”

-작사한 노래 중에 자기 전 가장 많이 들은 곡이 있다면요?

“‘잘’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기억나요. ‘가끔은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언제부턴가 난 두려워져/이 노래는 내가 내게 주는 선물’. 가수로서 불안했던 시절, 그 누구도 제게 ‘잘 하고 있어!’ 격려해주지 않았어요. 따뜻한 말이 간절히 듣고 싶었던 제 자신을 위해 적었던 가사예요. 살면서 다들 힘들잖아요. 누군가 이 노래를 듣고 위로받았으면 좋겠어요.”

자기 전 듣는 음악을 소개하는 슬리피.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슬리피와의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이미 밖은 어둑해진 상태였다. 저녁 8시가 넘어서자 그에게 물었다. 집에 가서 자기 전까지 뭐 할 거냐고. 슬리피는 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먹을 거라고 했다. 스무 살 때 독립했다가 어머니와 다시 산지 얼마 안 됐다는 그에게는 오랜만에 먹는 따뜻한 집밥이다.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잠에 들겠죠?”라고 덧붙이며 빙긋이 웃었다.

-오늘은 어떤 노래를 들으며 잘 건가요? 꿀잠 자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부탁합니다.

“제가 작사한 곡 ‘아이디’를 추천하고 싶어요.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사랑 노래예요. 좋아하는 상대방과 사계절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죠. 이제 완연한 가을이잖아요. 잠들 때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면서 잠이 솔솔 올 겁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수면 잠자는 일. 의학적으로는 피로가 쌓인 뇌를 회복해주기 위한 생리적 의식상실 상태. 폭염·직장 스트레스 등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숙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 결과 최근 기능성 침구·수면카페 등 ‘슬리포노믹스’(수면산업)가 뜨고 있다. 아이티업계도 이에 뒤질세라 숙면을 돕는 ‘슬립테크’ 제품을 내놓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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