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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신정근·배성우, 연기로 승부했던 중년 조연 배우들

너의길을가라 2018. 12. 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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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스틸러'라는 말이 있어 다행이다. 누구 못지 않은 발군의 연기력을 지녔지만, 그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수많은 배우들을 위한 찬사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치를 좀더 챙겨줄 수 있는 설명이기도 하다. 2018년 한 해를 정리하면서 인상적이었던 중년 조연 배우(남성)들을 떠올려 봤다. 언뜻 여러 이름들이 떠올랐지만, 아래 세 명의 배우의 활약을 빼놓고 2018년을 말하긴 힘들다. 



"당신 저녁은 서재로 가져다 줄게요. 오늘은 매운 맛이에요."


뼛속까지 권위적인 차민혁(김병철)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으로 일그러졌다.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JTBC <SKY 캐슬> 6회에서 노승혜(윤세아)의 저 대사가 어찌나 통쾌하고 짜릿하던지! 윤세아의 찰진 연기가 만들어낸 명장면이었다. 물론 저 카운터 펀치의 효과가 극대화됐던 건 역시 '맞는 사람'이 제대로 받아줬기 때문이었다. 완벽한 '샌드백'이 돼주었던 김병철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김병철이 연기하는 차민혁은 검사 출신의 로스쿨 교수로 야망의 화신이다. 겉으로는 정의 · 행복 따위를 설파하지만, 뒤돌아서면 "오만하기가 하늘을 찌르잖아 이것들이!", "같잖은 것들이 상전처럼 굴어?"라며 권위 의식을 드러낸다. 출세지향주의, 극단적인 이기주의, 속물근성. 이런 단어들이 차민혁을 설명한다. 김병철은 탄탄한 연기력과 강약 조절을 통해 차민혁이라는 캐릭터를 흥미롭게 그려나가고 있다.


강렬한 눈빛과 대사들로 순식간에 긴장감을 이끌어내다가도, 어느 순간 코믹한 모습까지 자연스럽게 표현해 낸다. 보통 내공이 아니다. tvN <도깨비>에서 간신 박중헌 역을 맡아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김병철은 <미스터 션샤인>에서 일식 역으로 출연하며 '김은숙의 남자'로 각광받았다. 그리고 이제 <SKY 캐슬>을 통해 비중있는 조연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의 연기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다.



"참말이여?"


그게 행랑아범(신정근)의 마지막 대사였다. 연정을 품었던 함안댁(이정은)과 손을 맞잡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일본군이 쏜 총에 맞고 쓰러지며, 결국 손 한번 잡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함안댁을 마지막 순간까지 바라보던 행랑아범의 애절한 눈빛에 수많은 시청자들이 숨죽여 울었다. 손이라도 한번 잡게 해주지, 그들의 애틋한 사랑이 어찌나 슬프던지.


tvN <미스터 션샤인>에서 고애신(김태리)과 유진 초이(이병헌) 커플만큼이나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았던 러브라인이 있었다. 바로 행랑아범과 함안댁이다. 애기씨를 지척에서 보필하던 두 인물의 활약은 <미스터 션샤인>의 감초였다. 함안댁을 연기한 이정은 '함블리'라는 별명을 얻으며 최고의 사랑을 받았고, 행랑아범 그 자체였던 신정근도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확실히 사로잡았다. 신정근의 재발견이었다.


1990년 연극 무대를 통해 탄탄한 연기력을 다졌던 신정근은 단역을 거쳐 영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4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고, 십수 편의 드라마에 얼굴을 비쳤다. 신정근은 팔색조라고 할 만큼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했을 만큼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다. 푸근함과 카리스마, 익살스러움까지 갖췄다. 지금까지 뚜렷한 대표작이 없었지만, <미스터 션샤인>의 행랑아범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여기 말고 다른 사회는 합리적이라디?"


오양촌 씨. 배성우를 그 이름으로 부르는 게 여전히 어색하지 않다. 그만큼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들었다. 배우 입장에서 극중 이름으로 불리는 건 반가운 일이다. tvN <라이브>의 오양촌은 엄격한 선배였지만, 서열로 후배들을 찍어누르지 않았다. 수평적인 관계를 맺을 줄 알았다. 새까맣게 어린 후배 상수(이광수)와도 마찬가지였다. 또, 아내 장미(배종옥)의 이혼 요구에 자신의 잘못을 진지하게 성찰할 줄 아는 남편이었다. 


영화 <안시성>에서는 양만춘(조인성)의 부관 추수지 역을 맡았는데, 분량이 적었음에도 돋보이는 캐릭터로 만들어냈다. 그건 배성우의 개성있는 연기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캐릭터에 인간미를 불어넣을 줄 아는 배우다. 무엇보다 현실감 있는 연기와 탁월한 캐릭터 분석력, 장면 하나마다 느껴지는 치열함이 배성우에 대한 신뢰감을 만들었다. 


이제 배성우를 신스틸러나 조연의 틀에 묶어둘 수 없게 됐다. <라이브>를 통해 명실상부 주연 배우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처럼 많은 작품에서 만날 수는 없게 됐지만, 배성우의 깊이 있는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반가운 일이다. 무엇보다 배성우의 예가 중요한 건 조연 배우가 연기력으로 평가받아 주연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 줬기 때문이다. 2018년, 배성우의 도약은 확실히 돋보였다. 


다가오는 2019년, 김병철 · 신정근 · 배성우 이 세 중년 배우들의 활약상을 추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게 훨씬 더 많은 알짜배기 배우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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