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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고래고래> 김보강 [No.144]

글 | 송준호 사진 | 김수홍 2015-10-12 5,155

상남자의 이유 있는 진화 

올해 김보강은 어느 해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여름 내내 <빈센트 반 고흐>에서 열연한 후 <곤, 더 버스커> 무대에 섰고,  그 사이 신작 <한 여름 밤을 꿈>과 <고래고래> 연습까지 병행했다.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에 지칠 만도 하지만, 김보강은 자신이 맡아온 캐릭터들처럼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여유롭게 웃는다. 

그런 그가 선보일 <고래고래>의  ‘목포 싸나이’ 호빈은 호탕한 성격의 김보강을 빼닮은 인물이어서 더욱 기대하게 한다.   



지금은 달려야 할 시간

김보강은 원래 동시에 여러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가 아니었다. 두 작품 이상을 병행하는 게 현실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년 전만 해도 ‘다작은 못 하겠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그였다. 그런데 올해는 하고 싶은 작품들이 계속 들어오면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왠지 지금은 타이트하게 움직여야 할 때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작품들을 다 놓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죠.” 초연 때 참여했던 <빈센트 반 고흐>와 <곤, 더 버스커>는 이번 재연을 통해 한층 더 완숙하고 디테일한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코믹하게 비튼 <한 여름 밤을 꿈>은 일인이역이 흥미로웠다. <고래고래>는 <곤, 더 버스커>와 비슷한 버스킹 소재에 드러머라는 역할까지 같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금방 익힐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욕심을 낸 결과 결국 네 편의 작품을 모두 하게 된 김보강은 올여름을 내내 극장과 연습실에서 보내게 됐다. 


특히 <고래고래>에 참여하게 된 건 인연의 힘이 작용했다. 우선 김신의와 허규 등 <곤, 더 버스커>를 함께했던 동료들의 출연이 그를 <고래고래>로 이끌었다. “특히 신의 형은 작품의 영화 버전에도 출연하지만 이 공연에서는 작곡가로도 참여하거든요. 그래서 또 한 번 같이 작업해 보고 싶었어요.” 더 신기한 건 드러머 캐릭터와의 질긴 인연이다. 김보강은 연극 <나쁜자석>과 <곤, 더 버스커>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드러머 역할이다. “<나쁜자석>의 앨런은 실제로 드럼을 치진 않지만 드럼 세트가 없는 상태에서 스틱만 가지고 흉내를 내는 ‘에어 드럼’을 해요. <곤, 더 버스커>의 원석은 휴대용 드럼을 갖고 다니며 연주하는 스트리트 드러머였죠. 이번에 드디어 정식 드럼을 치는 호빈을 맡게 되니 어떨 땐 ‘내가 드럼 칠 운명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다만 이번엔 정통 드럼이기 때문에 그는 요새 한창 드럼을 배우는 데 열중하고 있다. 


김보강과 호빈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목포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인 만큼 호빈은 호남 사투리를 가장 실감 나게 해야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김보강 역시 광주 출신이라 다른 배우들에 비해 훨씬 더 리얼한 말투 표현이 가능하다. 연습실에서도 다른 배우들의 호남 사투리 강사를 자처하고 있다. 특히 터프한 성격의 호빈이 ‘맛깔나게’ 거침없이 내뱉는 욕설은 김보강만이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런 그의 모습을 알고 있던 프로덕션은 캐스팅 단계에서 이미 그를 호빈 역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을 정도다. 


하지만 김보강이 그간 맡아온 역할들은 이런 모습과 반대로 온화하고 여린 감성의 소유자들이 많았다. “제 안에 있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남성적이고 거친 모습이 있다고 해서 그런 캐릭터만 맡으면 이미지가 굳어질 수 있으니까요. 알고 보면 제가 여리고 감성적인 면이 많거든요. 그런 모습들을 어필할 수 있는 역을 고르고 싶었어요.” 


그때 만난 캐릭터가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빨래>의 솔롱고다. 당시 의외의 캐스팅이라는 평가도 많았지만, 김보강은 그런 시선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솔롱고를 선보였다. <나쁜자석>의 앨런도 마찬가지. 그렇게 자신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깨달은 것도 많았다. 자신을 버려야 비로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역설적 사실이 대표적이다. “예전에는 연기할 때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런 ‘척’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정형화되지 않은 인물들을 연기하면서 고민하다 보니 진짜 제 모습을 자연스레 담아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고래고래>의 호빈은 김보강에게 흥미로운 도전이다. 자신에게 익숙한 상남자이면서도 그 안에 숨겨진 여리고 순수한 소년을 표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터닝 포인트가 가져온 변화

<마리아 마리아>의 예수 역으로 데뷔하며 뮤지컬에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배우보다는 그냥 무대가 좋은 음악인일 뿐이었다. 물론 80년대 록 밴드에서 키보드와 보컬을 맡았던 아버지, 90년대 가수로 활동했던 삼촌(김기하)의 영향을 받았을 청년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데뷔작에서도 그는 떨지 않았다. 당시 예수 역의 다른 캐스트가 허준호라는 대선배였지만 그는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배우를 천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똥배짱’도 있었기 때문이다. “뮤지컬을 해보거나 배워본 적도 없고, 심지어 무대에서 걷는 방법도 모르는 ‘미개한’ 존재였거든요. (웃음) 뭐가 뭔지 모르니까 그냥 한 거였죠. 지금은 뭔지 좀 알게 되니까 오히려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김보강이 돌아보는 신인 시절은 배우로서의 주체성보다는 연기를 배워가는 과정의 의미가 컸다. “서른 전까지는 배우로서 치밀하게 계산하며 연기한 게 아니라 그냥 시키는 대로 했어요. 연출이나 작가, 음악감독이 요구하는 대로 걷고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했는데, 그게 저에게는 좋은 트레이닝이 됐던 것 같아요.” 그러다 그는 <빨래>와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면서 연기에 눈을 뜨게 됐다. 솔롱고가 배우로서 가능성을 시험하는 계기였다면, 고흐는 연기에 대한 시각을 바꿔놓는 터닝 포인트가 됐다. 


특히 고흐는 그에게 특별한 캐릭터다. 이전까지 맡았던 인물들은 이미 완성된 성격을 표현하기만 하면 됐다면, 고흐는 그가 왜 미칠 수밖에 없었는가를 공연 내내 관객들에게 납득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트리트먼트 대본을 받았을 때 솔직히 ‘내가 이걸 어떻게 해?’라는 막막함이 있었어요. 개막하고 나서도 ‘내가 잘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있었죠. 그땐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배우조차 갈피를 못 잡던 프리뷰 공연은 당연히 악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공연이 거듭될수록 ‘합’이 맞으면서 작품의 진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보강은 그때 처음으로 자신의 호흡에 관객들이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처음으로 자신이 배우가 됐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정말 희열을 느꼈어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배우라는 게 그토록 매력적이라는 걸 몰랐거든요.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이 역을 계속하고 싶어요.”


배우들은 종종 본인이 잘하는 것을 계속하는 것과 새로운 배역에 도전하며 연기의 지평을 넓히는 것의 갈림길에 놓이곤 한다. 김보강도 지금 그 지점에 와 있다. 그에게 가장 익숙한 순수하고 건강한 에너지를 내뿜는 캐릭터가 하나의 길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고흐처럼 어둡고 내향적인 인물들이 있다. 고민이 될 법도 한데, 뜻밖에 그의 답은 명쾌하다. ‘작품만 좋다면 어떤 역이든 하고 싶고, 또 해낼 수 있다’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심지어 솔롱고도 ‘저런 캐릭터는 절대 못 하겠다’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결국 해냈거든요. 과정은 물론 힘들었지만 다양한 캐릭터들을 계속 맡고, 해내다 보니까 이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어요. 중요한 건 어떤 역할이냐보다 어떤 작품이냐죠. 사실 캐릭터는 어떤 모습이든 제가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곤, 더 버스커>와 <고래고래>가 비슷한 캐릭터라는 시선에도 김보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캐릭터를 보고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버스킹 스토리지만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히 다르고, 그 메시지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캐릭터의 비중이나 표현보다 작품 전체의 가치에 먼저 눈이 가는 것은 그에게는 전에 없던 변화다. 이는 그가 확실히 배우로서 발전해 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음악보다 연기에 욕심을 내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음악 활동과 연기 활동을 병행하는 김신의와 허규가 부럽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김보강의 목표는 이제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꿈인 스크린 진출을 위해, 우선 뮤지컬 배우로서 확실하게 입지를 다지는 것이 지금 그가 가장 관심 있는 목표다. 심지어 그는 원래의 미성을 인위적으로 중저음의 거친 목소리로 바꿀 정도로 그 목표에 몰두해 있다. 그가 보기에 멋진 배우들이 하나같이 중저음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는, 단지 그 이유에서다. 다소 귀여운 허세가 느껴지는 이유 때문에 그의 음역대는 완전히 바뀌었지만, 그런 모습이야말로 호빈이라는 폼생폼사 캐릭터를 기대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제 목소리가 약간 느끼하다고 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웃음) 하지만 이번에는 있는 그대로만 표현해도 제 매력이 제대로 어필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뭔가를 포장하기보다 그냥 편안하게 해볼 생각이에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4호 2015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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