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 시인 |
장승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숫돌
아버지는 거북 등짝 같은 손으로
새벽마다 낫을 갈아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일터로 나갈 준비를 하셨다
여덟 식구 태산 같은 짐을 낫 위에 얹고
곡예사가 되어 굽이진 길을 사셨던 세월
참빗 햇살에
등 한번 기대어 보지도 못하고
울먹이는 눈물 빛보다
시린 새벽 머언 길을 떠나셨다
달려온 갈바람은
지붕 위 어린 박을 쓰다듬는데
아버지의 분신 같은 숫돌에 물을 뿌려
녹슨 마음을 갈아 본다
돌틈사이 채송화가 졸고 있는 마당에
철없는 가을달이 뒹굴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