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구제’ 취지 무색...구제제도 요건 적극적 해석으로 급여 지급해야

박항주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국 국장이 토론자로 참석해 발언 중이다. / 서지민 기자

[공감신문] 서지민 기자=김포 거물대리 사례는 국내 첫 환경오염 피해구제 신청 사건이다. 주거 지역 근처의 공장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로 신체적 피해를 입었다며 주민들이 구제급여를 신청했지만 ‘불인정’됐다. 피해자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공적구제 방안으로서 환경피해구제법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음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김포 거물대리 주민 23명은 지난 2016년 1월 처음으로 환경오염피해구제제도를 신청했다. 주거지역 근처까지 들어선 공장에서 배출하는 먼지·악취·소음 등으로 주민들이 피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환경오염피해 구제제도를 주관하는 환경산업기술원에 지금까지 지출한 의료비를 지원해달라며 구제급여를 신청했지만, 기술원은 2017년 2월 “구제급여 지급대상이 아님”을 통보했다.

주민들이 구제제도를 신청하기 전 김포시는 자체 역학조사를 벌여, 2015년 10월 역학조사 결과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거물대리 일대의 대기, 토양에서 중금속들이 인위적인 활동의 결과로 높게 나타났고 생체지표검사를 통해 지역주민 대상자의 상당수가 중금속에 고노출 돼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박창신 환경정의연구소 법제도위원회 위원장 겸 변호사는 김포 거물대리 사건에 대해 “통상적인 피해구제 신청 사례보다 인과관계가 입증된 자료가 많이 제출됐다”고 소개했다.

토론자들이 박창신 환경정의연구소 법제도위원장 겸 변호사의 발제를 유심히 듣고 있다. / 서지민 기자

환경오염피해 구제제도는 민사소송, 보험제도 등 사적 구제가 어려운 피해자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국가에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이에 신청 요건에서 원인자가 불명확할 경우를 산정하고 있다. 환경오염과 피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고, 원인자가 분명한 경우에는 민사소송이나 보험제도를 통해 보상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구제 급여 신청 법률 규정은 “피해자 또는 그 유족이 일정한 사유(환경오염피해의 원인을 제공한 자를 알 수 없거나 그 존부가 분명하지 아니하거나 무자력인 경우, 제7조에 따른 배상책임한도를 초과한 경우)로 인해 환경오염피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배상받지 못하는 경우”에 구제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이렇듯 마지막 보루의 역할을 하는 공적 구제가 불명확하고 까다로운 심의에 따라 사실상 구제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인자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공적 구제를 신청했지만, 거물대리 사례에서는 “신청인의 개별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렵고” “피해를 발생시킨 기업이 주변에 있고” “배상자력도 있으므로” 구제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19일 국회 의원회관 제5간담회의실에서 '환경오염피해 구제제도 실효성 제고를 위한 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이 토론에 임하고 있다. / 서지민 기자

박 변호사는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면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취지로 기술원이 구제 심의를 하고 있는데, 이런 취지라면 구제제도가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이런 보충적인 성격이라면 대체 지급 대상이 누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박종원 부경대학교 법학과 교수도 법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환경오염피해의 범위를 시설의 설치·운영을 원인으로 한정한다는 것은, 이미 피해의 원인자를 안다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원인자 불명인 경우 구제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모순“이라고 짚었다.

이에 구제 급여 지급에 있어 보다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다.

국가의 공적 구제라면 적극적으로 구제 급여를 지급해 실질적 피해 구제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요건을 더 구체적으로 하고, 요건만 충족이 되면 구제 급여를 지급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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