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혜적 자연관의 걸작… 정자와 누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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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09.06.08. 오후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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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국토학교 6월 답사 <호남의 누정문화> 안내

 [프레시안 프레시안]

 우리 땅의 소울(soul)과 스피릿(spirit)을 찾아 떠나는 국토학교(교장 박태순. 소설가). 이번 달(6월) 답사는 호남땅으로 향합니다. 지난 4월 개교 답사 <남한강 뱃길 따라, 영남대로 옛길 따라>와 5월 <영남 전통마을 순례>에 이은 세 번째 답사로, 주제는 <호남의 누정(樓亭, 누각과 정자)문화와 원림문화>이며 답사 키워드는 <풍경의 발견과 재발견>입니다.

몸과 마음이 서늘한 곳을 그리워하는 6월, 호남 특유의 아름답고 시원한 누각과 정자, 원림문화를 누비며 우리 조상들의 심오한 호혜적(互惠的) 자연관을 만끽할 수 있는 답사입니다.

6월 넷째 주말인 27-28일의 1박2일, 교장 선생님의 <길 위의 명강의>와 함께 열리는 국토학교에 여러분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6월 27일(토요일)

08:00 서울에서 출발(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 유진여행사 경기76 아 9111)

<답사지 배경설명 : 호남 누정문화와 호혜적 자연관>

내장산(763m)에서 무등산(1,187m)을 거쳐 조계산(884m)으로 뻗는 산줄기를 호남정맥이라 하는데, 이 정맥의 동쪽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영산강이 흐른다.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동고서저(東高西低) 현상은 호남정맥에도 해당되어 섬진강 쪽은 산간지대이고 영산강 쪽은 평야지대를 이룬다. 산줄기와 강줄기를 얼싸안는 호남정맥의 율동은 특히 영산강 상류 지역이 되는 내장산-무등산 기슭에 호남 특유의 누정문화와 원림문화를 융성하게 한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 넘나들기를 하게 되는 호혜적 자연관의 가사문학이 16세기에 담양 일대에서 형성돼 나온다. 김인후의 한시 '자연가(自然歌)'도 있고,

청산자연자연(靑山自然自然) 녹수자연자연(綠水自然自然)
산자연수자연(山自然水自然) 산수간아역자연(山水間我亦自然)


'산 절로 나 절로'의 시조도 있다.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산 절로 수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절로


16세기 조선사대부 사회는 훈구파들의 중앙집권문화와 사림파들의 지방분권문화 사이에 심각한 갈등 양상을 빚어내고 있었다. 특히 조광조의 죽음을 가져오게 한 기묘사화는 재야 사림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로부터 사림파들은 중앙정치에 연연하지 않으며 향토 근거지에 장원과 원림을 조성하게 되는데 지역적 특성이 반영되고 있었다.

영남 사림은 서원과 서당 중심의 학맥을 조성해 나가고 있었던 데 대하여 호남 사림은 누각과 정자 중심의 예향(藝鄕)을 형성해 나가고 있었다. 영남이 산악지대이고 호남이 비산비야(非山非野)의 환경이라는 문화지리학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죽림에 둘러싸인 담양 일대에서 시인묵객들의 누정이 밀집되고 있었다. 송순(1493∼1582)은 '면앙정 잡가(雜歌)'에서 노래한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 한간 지어내니
반간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이라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16세기에 조영된 담양 지방의 대표적인 누정은 면앙정, 송강정, 식영정을 꼽을 수 있고 원림으로는 소쇄원과 명옥헌, 독수정을 들 수 있겠는데 최근에는 슬로우 시티, 가사문학관 등을 새로 조성해놓고 있다.

담양은 북쪽으로 담양호와 남쪽으로 광주호의 두 인공호수를 건사하고, 여러 고속도로가 중복되는 등 환경이 달라지기는 하였지만, 현존되고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은 33개소에 이른다. 망실되어 현존하지 않은 채 문헌기록으로만 전해지는 누정도 37개소에 달한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도 누정 건립은 계속되고 있는데, 어찌하여 유독 이 지역에서 누정과 원림의 전통이 살아나고 있는지 궁금한 일이기도 하다.

http://www.damyang.go.kr/tourism/01tour/cyber/01/?a=8&b=9&c=9

금성산성/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죽녹원/관방제림/소쇄원/한국대나무박물관/한국가사문학관/삼지천 마을(슬로우 시티)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담양군 제공)

12:00-13:00 점심식사 (덕인관 / 대통밥&죽순찌개)
13:00-14:00 담양문화원 강연 / 한국대나무박물관 관람


담양은 대나무 고을, 곧 죽향(竹鄕)이라 불려왔거니와 참빗의 무형문화 기능보유자 국양문 선생을 비롯하여 낙죽장, 죽렴장, 채상장의 인간문화재들도 배출해온 바 있다. 이 고을은 이처럼 죽림고회(竹林高會)의 문예학만이 아니라 죽물공예 장인(匠人)들을 배양하고 죽림산업의 육성에 정성을 바치고 있다.

도심지대에 있던 죽물박물관을 1998년에 담양읍 천변리로 이전하여 한국대나무박물관이라 개명하고 대나무종합관광단지를 조성하였다. 1만5천평(4만5천㎡) 부지에 박물관만 아니라 중요무형문화재전수관, 죽종장, 죽공예체험교실, 담양문화원 및 공원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담양문화원 사무국장이자 시인인 고재종 선생으로부터 '담양 정자문화'에 관한 특강을 듣는다. 담양문화원은 2008년에 <담양의 누정기행-자연에 안긴 예술과 풍류의 도량>이라는 책을 펴내어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이어서 담양의 역사문화생태 연구가인 이채연 선생의 안내를 받는다.

한국대나무박물관 사이트
http://www.damyang.go.kr/museum

14:30-15:30 면앙정(俛仰亭 /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땅을 굽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앙천부지(仰天俯地)의 자세를 지니어 송순이 세운 정자가 면앙정(俛仰亭)이다. 송순은 이 정자를 짓고 노래했다.

俛有地 仰有天 굽어보면(俛) 들판이 있고, 우러러보면(仰) 하늘이 있다
亭其中 興浩然 그 한 가운데에 정자가 있으니 흥취가 호연하다
招風月 揖山川 바람과 달을 초청하고 산천을 끌어 들여
扶藜杖 送百年 청려장 지팡이 짚고 백년을 보내리라


1533년(중종28)에 건립된 면앙정은 처음에는 초라한 초가의 정자로 겨우 비바람을 가릴 정도였는데 돌보지 못하여 5년 뒤에 무너지고 1552년에 다시 지었다. 이 정자로 인해 풍경(landscape)이 새롭게 발견된다.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풍경이 탄생된다. 송순의 한글 가사 '면앙정가'는 그가 어떠한 풍경을 탄생케 하고 있는지 노래한다(현대어 번역).

"무등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무등산을 멀리 떼어 버리고 나와 제월봉이 되었다. 끝 없는 넓은 들판에 무슨 생각을 하였기에 그러한지 일곱 굽이가 한데 웅크리어 우뚝우뚝 봉우리를 벌여 놓고 있다. 그 가운데 굽이는 구멍에 든 늙은 용이 선잠을 막 깨어 머리를 얹어 놓은 듯하다.

넓고 편편한 바위 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헤치고 정자를 앉혀 놓았다. 마치 구름을 탄 푸른 학이 천 리를 가려고 두 날개를 벌린 듯하다.

옥천산(玉泉山) 용천산(龍泉山)에서 내려오는 물이 정자 앞 넓은 들에 잇달아 퍼져 있으니, 넓거든 길지나 말 것이고, 푸르거든 희지나 말 것이어늘 쌍룡이 몸을 뒤트는 듯, 긴 비단을 가득하게 펼쳐 놓은 듯, 어디를 가려고 무슨 일이 바빠서 달려가려는 듯, 따라가려는 듯 밤낮으로 흐르는구나.

물 따라 벌여 있는 물가의 모래밭은 눈같이 하얗게 펴져 있다. 어지러운 기러기는 무엇을 통정(通情)하려고 앉았다가 내렸다가,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갈대꽃을 사이에 두고 울면서 서로 따라 다니는고?(하략)".


▲ 송순의 면앙정ⓒ담양군

면앙정 30영(詠)

면앙정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경치가 30개소나 된다고 한다.
1. 추월취벽(秋月翠壁-추월산의 푸른 절벽)
2. 용구만운(龍龜晩雲-용구산의 저녁 구름)
3. 몽선창송(夢仙蒼松-몽선산의 푸른 소나무)
4.불대낙조(佛臺落照-불대산의 낙조)
5. 금성묘애(錦城杳靄)-금성산성의 짙은 안개)

이러한 산의 경치를 비롯하여 대추리의 나무꾼 노랫소리(11), 목산 어부의 피리소리(12), 석불에서 울리는 종소리(13) 등의 경물, 그런가하면 숲 속의 그윽한 새소리(27), 맑은 물에 뛰노는 물고기(28), 시냇가의 붉은 여귀꽃(29), 모래톱에서 조는 해오라기(30)의 풍경도 포함된다.

면앙정에서 바라보는 30경의 경치를 김인후, 임억령, 박순, 고경명이 각인각색으로 읊었다. 이들의 시문을 모은 것이 '면앙정 30영'의 시문집으로 엮여졌다. '면앙정 가단(歌團)'이 이렇게 형성되었던 것이니 이들 외에 면앙정 정자에는 이황 임제 기대승의 시편들이 판각되어 있고, 송강 정철은 특히 면앙 송순의 문학에서 큰 영향을 받아 그의 가사문학을 크게 일으킬 수 있었다.

16세기에 조성된 면앙정의 조망 풍경은 21세기의 오늘에 와서 변화를 일으킨다. '면앙정 30영'의 경물시를 읊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며 강변으로 보이는 것은 백색의 비닐하우스들이고 산 이름도 달라져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오늘날 담양8경으로 꼽는 경관 중에서 영산강 발원지가 되는 가마골 용소, 추월산, 금성산, 병풍산, 삼인산, 용흥사 계곡의 6경은 면앙정에서 넓게 관망할 수 있으며 나머지 2경인 메타세콰이아 가로수와 죽녹원은 근대 이후에 조영된 풍경이다. 풍경의 발견과 재발견…, 송순이 16세기에 면앙정을 조영하면서 발견한 풍경을 오늘의 달라진 환경 속에서 재발견해 보아야 한다.

'면앙정가'가 노래하고 있는 담양 제월봉의 전원 풍광은 가령 워즈워드가 읊는 스코틀랜드의 초원 풍경과는 다르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라 읊어 노년의 워즈워드는 젊은 시절을 그리워했지만 권력과 욕망의 정치로부터 벗어난 노년의 송순은 천지인합일, 곧 조선 성리학의 천인무간(天人無間) 사상에 입각한 유교산수를 완성한 것이었다.

15:30-16:00 송강정(松江亭 /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송강정은 다른 이름으로는 죽녹정(竹綠亭)이라고도 한다. 1585년에 50세 나이의 정철이 서울 정계에서 배척을 받고 물러나와 어떤 스님이 세웠던 죽녹정을 고쳐 지어 송강정이라 부르고 4년간 은거했다. 정자 앞으로 흐르는 하천을 증암천(甑岩川)이라 하지만 정철이 재세할 적에는 송강(松江)이라 불렀고 또는 죽녹천이라 하기도 했다. 이 정자는 지금도 소나무와 대나무에 둘러싸여 있는데 정철은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의 두 미인곡을 이곳에 머물 적에 창작한 바 있다.

이 정자는 송강이 떠난 뒤에 폐허가 되고 말았던 것이지만 그의 6대손이 1770년에 중건하였고 1955년에 다시 중수된 바 있기도 하다.

▲ 정철의 송강정ⓒ담양군

16:00-18:30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 관방제림 / 죽녹원 걷기

1970년대에 조성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생태관광도로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가족, 연인과 함께 자전거 타는 도로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 빙하기 시대의 나무였던 메타세쿼이아는 1940년대에 중국 사천성에서 발견되어 전 세계에 보급되었는데 담양 가로수로는 현재 2,703그루가 남아 있다 한다.

▲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담양군

가로수 길은 관방제림으로 접속되고 있는데 푸조나무와 느티나무와 팽나무 등의 고목들이 울창하다. 1648년 홍수를 방지하기 위해 관에서 둑을 쌓고 숲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는데 200~400년 된 나무 숲은 2km에 이른다. 이 구역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됐다.

이어서 죽녹원과 죽향문화체험마을로 이어지게 되는데 대숲바람이 솔숲바람과 어떻게 다른지 느껴볼 필요가 있다. 삼림욕의 수림 목욕 중에서도 죽림욕이 특이하다. 5만평 부지에 분죽, 왕대, 맹종죽 등 각종 대나무가 빽빽하고 산책로에 명칭들을 붙였다. 체험마을 가는 길(1,100m), 사랑이 변치 않는 길(460m), 운수 대통길(440m), 선비의 길(440m), 철학자의 길(360m), 성인산 오름길(150m), 죽마고우길(150m), 추억의 샛길(150m) 등등.

19:00 저녁 회식 및 숙박 (담양 파라다이스 / 담양식 돼지갈비 또는 이탈리안 돈가스)

6월 28일(일요일)

06:00 기상
07:00 아침식사(담양리조트 / 북어국백반)
08:00-10:30 금성산성 트레킹


담양호의 북쪽은 영산강 발원지인 가마골 생태공원이고 서쪽은 추월산이고 동쪽에는 산성이 있는 금성산(603m)이 자리 잡고 있다. 사적 제353호인 금성산성은 호남의 3대 산성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데 외성은 6486m, 내성은 859m에 이르는 석성이다.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하였으며 1409년(조선 태종 9)에 개축하였다.

요새로 완벽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어 임진왜란 때는 남원성과 함께 의병의 거점이 되었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는 치열한 싸움터가 되어 성안의 모든 시설이 불에 탔다.

동서남북으로 4개의 성문터가 있는데 1994년부터 성곽복원사업을 벌여 외남문·내남문·서문·동문을 복원했다. 외남문은 보국문(補國門), 내남문은 충용문(忠勇門)이라 명명했다. 담양호반 일대를 관광단지로 삼아 금성산성에 대해서도 성곽 보수를 비롯해 동헌 등 관아 시설과 대장청 등 군사 시설, 그리고 민속촌 등을 조성해나고 있다.

▲ 금성산성ⓒ담양군

▲ 담양호ⓒ담양군

11:30-12:30 점심(들풀산채정식 / 산채정식)

12:40-14:40 식영정, 환벽당, 한국가사문학관, 소쇄원, 명옥헌 원림 탐방
(이 부분은 담양문화원이 발행한 <담양의 누정기행>을 참조하여 작성한 것임)

식영정(담양군 남면 지곡리 지실마을 산 75-1)

별뫼, 한자어로는 성산(星山)이라 한다. 무등산 북서쪽 자락에서 광주호를 굽어보는 별뫼에 식영정이 세워진 것은 1560년이었다. 서하당 김성원이 그의 장인인 석천 임억령(1496∼1568)을 위하여 지은 정자다. 김성원은 식영정 옆에 서하당을 지어 자신의 정자로 삼기도 했는데 송강 정철이 이곳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을사사화의 후유증 속에서였다.

정철의 누이는 종실인 계림군에게 시집을 갔는데 모함에 걸려 계림군이 죽고 정씨 집안마저 풍비박산이 되었다. 정철은 조부의 묘소에 참배하러 찾아왔다가 16세부터 10여 년간 담양 창평에 머물러 있었는데 식영정에서 지낼 적에 '성산별곡'을 지었으니 그림자도 쉬게 한다는 이 정자야말로 한국 가사문학의 산실 중의 산실이었다.

환벽당(광주시 북구 충효동 387)

나주목사를 지낸 사촌(沙村) 김윤제(1501∼1572)가 낙향하여 지은 정자인데 정철과 관련되는 용꿈 이야기가 이채로운 바 있다. 인공호수인 광주호의 조성으로 풍경이 흐트러지기는 했으나 환벽당(環碧堂)은 푸르름을 사방에 가득 두른 집이었다. 청산녹수로 둘러싸인 별당이었다. 송순, 임억령, 김인후, 김성원, 정철, 백광훈 등이 찬탄해마지 않았던 시문(詩文)의 산실이었다.

소쇄원(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

소쇄원에는 5백년이라는 시간의 무늬가 미세한 먼지처럼 공기 중에 떠다닌다. 풀과 나무와 돌과 물, 햇살과 바람과 비와 눈, 대봉대(待鳳臺)와 광풍각(光風閣)과 제월당(霽月堂)과 오곡문(五曲門) 등등, 그것들은 이미 지나가버려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시간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현재란 과거의 맨 끝자리일 뿐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과거를 끌고 미래로 간다. '소쇄원'이라는 하나의 전경이, 하나의 역사가 눈에 들어올 때 소쇄원은 과거이며 현재인 것이다.

조광조의 제자였던 양산보는 기묘사회로 스승이 죽자 출세를 단념하고 은거를 위한 원림을 세웠는데, 봉황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대봉대는 미래를 향한 거대담론이었다. 광풍제월은 한바탕 비가 퍼붓고 나서 말끔히 갠 하늘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말갛게 떠오르는 달을 가리킨다. 전국 도처에 특히 제월당, 제월대라는 이름을 붙인 누정들이 많은데 '제(霽)'는 비나 눈이 그치다, 마음이 개운해지다, 환난을 벗어나 평화로워지다 하는 뜻을 갖는 어휘이다. 비 그친 뒤에 나타나는 달빛에 대한 사랑은 양산보에게도 있었고 제월봉에 면앙정을 지은 송순에게도 있었고 도산구곡을 읊었던 이황에게도 있었다.

소쇄원 사이트
http://www.soswaewon.org/

▲ 양산보의 소쇄원ⓒ담양군

명옥헌(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산13, 후봉산 아래 장계동 위치)

골짜기를 저장해놓고 있다는 동네 이름을 따서 장계정(藏溪亭)이라 부르기도 하고 다른 정자들과는 달리 하나의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어 '명옥헌 원림'이라 하기도 한다. 동네 입구에는 인조대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친구를 만나러 찾아왔다가 말을 매어두었다는 30여 미터 높이의 은행나무 고목이 있고 명옥헌 초입에는 저마다 진분홍의 화사한 꽃구름을 매달고 있는 배롱나무(목백일홍)들이 장방형의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데, 경북 안동 병산서원의 목백일홍과 비교해보는 이들도 있다.

15:00-16:00 창평 삼지천 마을(슬로우 시티)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 마을은 고유의 생활방식을 유지해오고 문화유산을 간직해오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아 2007년에 '슬로우 시티'로 지정을 받았는데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 고경명의 후손들이 터를 닦은 마을이다. 문화유산으로 지정 받은 돌담길과 전통한옥, 지역 고유의특산물과 음식 등의 문화자산을 높게 평가 받고 있다. 창평 지역은 근대교육이 일찍 개화한 곳이기도 한데 고정주(1863∼1933)는 학숙과 의숙을 세워 인재 양성만 아니라 민족운동의 요람지가 되게 하기도 했다.

슬로우 시티 사이트
http://www.slowcp.com

▲ 삼지천 마을 옛 담장ⓒ담양군

한편 목판화가인 김억 선생이 6월 답사에도 소중한 작품을 제공하셨습니다. 담양 광주호를 따라 임억령의 식영정을 비롯하여 조어대, 김윤제의 환벽당, 김덕령의 취가정, 양산보의 소쇄원, 전신민의 독수정이 길을 따라 양옆으로 배치된 것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 담양 광주호ⓒ김억

그리고 명옥헌과 식영정의 부분그림도 감상하십시오.

▲ 명옥헌ⓒ김억

▲ 식영정ⓒ김억

16:00 서울로 출발

이번 6월답사 참가 규모는 30명이며 자세한 안내와 문의는http://www.huschool.com 또는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으로 해주세요.

▲ ⓒ프레시안


프레시안 (iloveyou6162@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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