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의 최고수 남회근, 주역 계사전을 말하다
계사전은 상하 12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과 땅의 자연 현상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인생 문제를 설명하며 그것을 정치사상적 철학으로, 또 처세의 학문으로 확장시키는 계사전은 역경을 읽기 전에 먼저 읽으면 그 체계를 잡아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입문서이자 지침서이다.
이런 계사전을 강의하는 남회근 선생의 관점은 철저히 전통적 견해에 입각해 있다.
먼저 계사전 저자에 대한 선생의 견해가 그렇다. 선생은 계사전을 공자의 저작이라 전제한다. 나이 오십에 역경을 공부하여 위편삼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역에 심취한 공자가 역경을 연구하여 체득한 바를 밝힌 보고서라는 것이다. 계사전이 공자 저작이라는 근거는 그 문장이다. 선생은 공자 외에 이만큼 격조 있고 빼어난 문장을 쓰기 어렵다고 말한다.
최근 학계가 정설로 받아들이는 것은 계사전이 공자의 저작이 아니라 공자 계열의 학자들이 지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역자는 계사전 저자에 대한 논란과 학계의 정설을 인정하나, "누구의 저작이든 논조가 품격 있고 견실한 것만은 틀림없다. 또 참고서라고는 해도 기원전의 작품이니 그것 자체가 이미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하며 계사전 저자에 대한 논란이나 남회근 선생의 전통적인 관점에 대한 문제제기를 뒤로 하고 텍스트 자체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역경 자체에 대한 선생의 견해도 전통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괘상이나 괘사, 효사를 복희씨, 주나라 문왕과 주공이 지었다는 데 대해 선생은 이견이 없다. 이는 선생이 저술한 를 본인 학문의 핵심이라고 밝힌 데에서 알 수 있듯 선생의 학문적 뿌리가 유교적 전통에서 출발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선생의 관점에 이런 보수적인 면이 있긴 하나 계사전 강의를 읽는 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남회근 선생만큼 자유자재로, 그야말로 종교를 넘나들고 시대를 뛰어넘고 학문 영역에 얽매이지 않은 채 종횡무진으로 풀이할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주공의 효사에 이어 공자가 체득한 인생의 경지가 남회근 선생의 강의로 살아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선생의 깊고 넓은 학문적 바탕,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과 탁월한 안목, 무겁지는 않지만 엄격한 학문적 태도에서 나오는 힘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 절판된 를 찾는 독자들이 그리 많은지도 모르겠다.
남회근 선생은 공자가 해석한 계사전을 꿰뚫어야 역경의 상수를 연구하기 위한 핵심을 손에 쥘 수 있고, 그런 후에야 동양 문화의 근본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이것이 이해되어야 공자 사상과 유가 학설의 근원을 탐구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선생은 공자가 지었다고 믿는 계사전에 유학의 뿌리, 동양문화의 근원이 담겨 있다고 본 것이다.
무엇을 주역이라 하는가
오경五經을 말할 때는 역경이라 부르는데 왜 일반적으로 주역이라 할까.
통상 주역이라 부르는 것은 역경易經과 역전易傳을 합한 이름이다. 역경은 64괘 괘상과 64괘에 달린 괘사, 64괘 아래 각각 6개씩 있는 효에 붙은 효사를 말한다. 역전은 역경을 해설하기 위해 덧붙여진 설명문으로 단사, 상사, 문언전, 잡괘전, 서괘전, 계사전 등을 일컫는다. 그러니 는 역경을 설명한 역전인 계사전을 해설한 책이다.
원래 역경과 역전이 분리되어 있었으나 후대에 통합되어 주역이란 책이 되었다. 단사나 상사, 문언 등은 역경 중간중간에 들어 있으나 계사전은 총론격인 글의 성격상 맨 앞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경전을 해설하는 전傳이 경經 앞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여 뒤에 붙었다고 한다.
역경과 역전은 지은이도 다르고 만들어진 시기도 다르다. 지은이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이렇다. 역경의 기본을 이루는 8괘는 상고시대 복희씨가 도안했고, 64괘와 괘사는 주나라 문왕이, 384효의 효사는 문왕의 아들 주공이 지었다. 역전은 공자의 저작이라는 게 예전의 견해였다가 요즘은 공자 계열의 학자들이 지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역경과 역전은 생성 시기도 다르다. 역경은 기원전 11-12세기 무렵의 것이고, 계사전을 포함한 역전은 공자가 지었으면 기원전 5세기의 작품이고 공자 계열의 학자들이 저자라면 그보다 몇 백 년 후의 것이다.
역경과 역전은 역할도 차이가 있다. 역경은 자연 현상을 여덟 가지-하늘天, 땅地, 물坎, 불離, 바람巽, 못兌, 산艮, 천둥震-로 대표하여 8상을 만들고 그것을 중첩시켜 64괘로 범주화하여 인간의 물음에 길흉을 점치도록 만든 것이다. 반면 역전은 후대인들이 역경을 공부하고 나서 법칙을 세우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연역적인 기록의 결과들로, 괘에 대한 설명, 배열 순서, 철학적 해석 등을 밝힌 것이다.
후인들이 덧붙인 이런 해설서들이 역경 본래의 뜻을 왜곡하여 역을 신비화하거나 복잡하고 현학적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비판도 많다. 하지만 계사전을 포함해 역전의 글이 없었다면 역이 후대에 전해지지 못했으리라는 주장이 있을 만큼 역전은 역경의 사상과 이용 원리에 대한 보충 설명을 담고 있어 주역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더욱이 역경에서 찾은 유교의 근본은 이후 중국을 비롯해 동양 사상의 기반이 되었다.
"子曰, 祐者助也, 天之所助者順也." 이것이 바로 공자의 종교 철학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신의 가호를 바랍니다. 그러나 공자는 말합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고요. 부처나 신도 바보가 아닌 이상 한 번 꿇어앉아 절을 한다고 도와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그렇게 안 해 줄 것입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의 가호를 비니 하나님인들 오죽 바쁘겠습니까? 한 장소에서 재판을 하는 원고와 피고가 모두 하나님을 찾으니 하나님인들 어떡하겠습니까? 게다가 사람들은 보살이나 신에게 빌면서 돈은 쥐꼬리만큼 내고 바라기는 엄청 바랍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삼천 원쯤 들여 바나나나 초를 사서 상을 차려 놓고 부자가 되도록 해 달라, 승진이 되도록 해 달라, 무사하도록 해 달라며 별의별 것을 다 원합니다. 세상에 그렇게 수월하게 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p.358)
하늘의 도움을 받으려면 반드시 내가 먼저 남을 도와야 합니다. 이것은 절대로 미신이 아닙니다. 신을 믿고 하나님을 받든다고 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하늘이 돕는 것은 순리이며, 사람이 돕는 것은 신의라고 한 것입니다. 신의가 있어야 다른 사람이 도와줍니다. 신의가 없는 사람을 누가 도와주겠습니까? 사람도 이러한데 부처님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p.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