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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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험이 만들어낸 ‘마음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이번 대승기신론 중권에서는 경험의 ‘세계’를 넘어선 ‘세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세계世界라는 것은 마음으로 분별하여 나누어놓은(界) 곳이라면, 세상世上이라는 것은 나눌 수 없는 불이不二의 세상으로, 우리의 감각으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 있지도 않은 세상, 그렇다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그 세상을, 감각으로 그려내어 가상의 그림 속에서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나’라는 것을 형성하여 세계 속을 운전해가며 삶을 이루는데, 이 ‘나’라는 운전자는 그저 잠시 운전대가 맡겨진 임시직일 뿐인데 스스로 삶의 주인이라 여기니 괴로움 속에 있게 됩니다.
그 타들어가는 듯한 번뇌는 생겨나는 과정이 있으니 바로 의식의 전개과정을 보면 명백히 드러납니다. 번뇌, 그 괴로움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먼저 그것을 번뇌로 느끼는 ‘나’라는 의식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형성되어 의식하게 되는 것일까요?
‘나’라는 것의 최초 기반이 되는 카르마Karma 즉, 타고난 경향성이라고 불리는 것이 업식業識입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적인 특성, 인류의 유산, 생명체로서 부여받은 경향들이 모두 모여 업식을 이룹니다. 예를 들어 성격이 급하고 빠른 경향도 고치기 힘든 업식이며, 인간 사회에 살아가면 언어를 저절로 터득하게 되는 것 등도 업식입니다.
이제 그러한 업식을 기반으로 마음이 한번 움직이면 ‘주체’와 ‘대상’으로 나뉩니다. 그것을 전식轉識이라 합니다. 마음이 ‘움직여’ 주체와 대상으로 나뉜다는 것은 이렇게 실험해볼 수 있습니다. 지금 눈을 감고 자신이 전에 가보았던 멋진 장소를 하나 떠올려 봅니다(실제 떠올린 후 글을 읽어가야 이해됩니다).
그런 후 자신이 그 장소를 마음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봅니다. 이때 마음은 보여지는 대상과 보는 주체로 나뉘었고 주체에서 대상을 향해 주의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움직여 주객이 생긴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렇게 주체와 대상으로 나뉜 것이 확고해지면 이제 대상이 하나하나 분별되며 세분화 됩니다. 그것이 현식現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계’라 부르는 현상이 드디어 나타나게 됩니다. 그동안 ‘나’와 ‘나 아닌 것’만 구분되다가 이제 ‘나 아닌 것’이 책상, 의자, 집, 하늘, 나무, 강 등으로 그 느낌이 세분화 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바로 이렇게 마음이 분별하여 나타나는 느낌의 세계입니다. 마음이 보는 상象의 세계가 나타난(現)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체분별 즉 분별자심一切分別 卽 分別自心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대상들이 하나하나 분별되고 나면 다음으로 대상들 간에 비교가 일어나고 그중 어느 것이 좋고 나쁜지 구별해내는 지혜가 호오好惡를 알게 합니다. 이것이 지식智識입니다. 그리고 이 지식에서부터 번뇌는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좋고 나쁜 것을 알게 되면 좋은 것에 끌리고 그것을 즐기며, 곧이어 집착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번뇌는 이렇듯 분별된 느낌에 집착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 과정을 명백히 보고 ‘나’가 살고 있는 경험의 세계, 그 느낌의 세계를 넘어 불이의 세상으로 들어가기를 기원하면서...
2018년 10월
월인越因
작가정보
‘깨어있기’와 ‘자연에 말걸기’를 통해 자연친화적인 의식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통찰력 게임’을 보급중이다.
저서:《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관성을 넘어가기-감정의 대해부》《주역-심층의식으로의 대항해》《죽음 속에도 봄이 넘쳐나네》
월인越因)은 ‘인연을 넘어서’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 만물과 우리 내면은 모두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저것이 있다’는 인연법칙의 소산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원천이 되어주고 있지요. 그 어느 것도 변함없는 제1 원인인 것은 없습니다. 우스펜스키의 말대로 ‘미지(未知)가 미지를 정의하는’ 현상이지요. 그것은 외부 물질세계와 내부 정신세계를 망라하여 모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의존하는 ‘인연’의 ‘뿌리 없음’을 보면 이제 인연을 넘어서게 됩니다. 인연의 파도를 넘어선 그곳에 근원의 물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의 모양은 이런 저런 파도로 가득하지만 모양을 넘어선 그곳엔 오직 아무런 모양도 없는 ‘물’만이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바로 이 인연의 세계를 넘어서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말하는 모든 이들을 대신해 월인越因이라 이름 하였습니다. 그 인연의 세계를 넘어 있는 곳을 향하여...
목차
- 책을 시작하며 ·11
감사의 말 ·13
일러두기 ·14
Ⅳ. 정종분正宗分: 해석분解釋分: 법장문法章門을 해석함
8. 생멸인연生滅因緣: 생멸상
아라야식, 개인성을 넘어선 집단무의식 ·17
물든 마음이 곧 깨끗한 마음이다 ·23
옮음을 주장하지 말고 실현시켜라 ·28
분별 없음이 분별을 만든다 ·31
물든 마음과 물들지 않은 마음의 동일성 ·34
아픈 마음과 아프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있다 ·39
경험의 세계와 경험을 넘어선 세계 ·41
일법계 - 상相을 넘어선 세상 ·45
의식의 전개 과정 ·47
좋고 나쁨을 분별하되 번뇌에 빠지지 않는다 ·53
상처 받는 자는 누구인가? ·58
‘보이다’와 ‘보다’의 차이 - 마음의 구조 ·61
‘내’가 ‘대상’을 보는 느낌 ·64
여섯 가지 물든 마음 ·67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물든 마음 ·70
둔한 번뇌와 날카로운 번뇌 ·73
근본 지혜와 현상적 지혜 ·75
동심動心, 주체와 대상을 일으키다 ·78
상相과 식識 ·79
분별 없는 세상과 경계지어진 세계 ·82
물든 마음은 식識을 일으키고 상相에 빠진다 ·86
에너지가 ‘나’에 머물지 않는다 ·91
초월이란, 경계의 사라짐이 아니라 그것에 구애받지 않음 ·95
여섯 가지 마음의 진화 단계 ·98
생멸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104
지복, 이유 없는 기쁨 ·106
삶은 환상이 아니며, 영원한 아트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108
‘느낌’과 ‘의도’ ·113
상相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상相을 초월한 것 ·116
‘나’라고 느껴지는 현상 ·121
어디에도 머물지 않을 때 이미 그대는 근원이다 ·122
전체의 조화를 위해 쓰여지다 ·125
9. 훈습론熏習論
근본도 물이 들다 ·127
격랑의 파도와 잔잔한 파도는 모두 파도일 뿐 ·130
현상만이 물들 수 있다 ·132
열반을 추구하는 마음도 하나의 환상 ·135
물든 본질의 그림자 ·137
‘알았다’ 하는 순간 또다른 마음의 상相 속으로 ·139
걸림 없이 마음을 쓴다 ·142
물로 만들어진 물고기 ·144
청정한 마음은 왜 고락에 물드는가? ·146
10. 훈습론熏習論: 염법훈습染法熏習
끊이지 않는 물든 마음은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150
‘안다’와 ‘모른다’의 상호의존성 ·153
우주의 다양함은 한마음(一心)의 표현 ·157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자아’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160
번뇌의 발생 ·163
깨닫지 못한 마음의 근본적인 세 가지 상相 ·167
세계에 대한 집착과 나에 대한 집착 ·171
근본불각, 서로에 기대어 존재함을 모르다 ·173
분별하고 이름 붙이면 왜 괴로움이 오는가? ·177
본질은 마음 상태의 변화가 아니다 ·179
물든 마음에 젖어 근본을 잊다 ·183
11. 훈습론熏習論: 정법훈습淨法熏習
마음이 맑아질수록 더 힘들어지는 이유 ·187
무심삼매로 가는 마음의 전개 과정 ·190
괴롭다가 괴롭지 않게 된 것은 상태 변화일 뿐 ·191
최초의 오해, 스스로 개인이 존재한다고 믿다 ·193
모든 나눔은 자기 마음을 나눈 것 ·198
주체와 대상이 생겨나는 과정 ·201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수련법의 두 가지 귀결 ·205
공空과 색色의 차이는 경계 유무의 차이 ·210
통찰 이후 분별은 보리菩提의 또 다른 이름 ·216
1차원의 점은 3차원의 입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219
전기가 나타나려면 다양한 회로가 필요하다 ·221
왜 ‘산’과 ‘물’이 보이는가? ·225
‘나’라는 것이 있다고 여기는 견해 ·227
마음의 구조를 아는 것과 내용에 빠지는 것 ·230
배움의 단계 ·233
경험을 추구하는 것과 근본에 대한 갈증의 차이 ·237
진정으로 고통을 싫어하는 마음도 능력이다 ·239
세계, 경험자와 경험 대상 사이의 관계 ·243
사물의 경계와 마음의 경계 ·247
선재동자가 되라 ·250
의식 자체가 이미 분별을 기반으로 한다 ·253
카르마, 관성을 다루다 ·256
분별은 양날의 칼 ·261
무분별심을 얻은 사람 ·264
믿음이란 일종의 거대한 에너지 ·267
존재와 비존재 ·270
정법훈습은 지치지 않는다 ·275
‘나’라는 현상 ·277
오직 모를 뿐, 신비로 가득한 모름 ·286
시각始覺과 본각本覺 ·290
마음으로 잡을 수 없는 본질, 그것을 파악하라 ·292
스스로 서는 것이 없이 본래 평등하다 ·295
Ⅳ. 정종분正宗分: 해석분解釋分: 의장문義章門을 해석함
1. 체상體相 이대二大
‘내’가 무한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한 속에 ‘내’가 녹아드는 것 ·303
상相을 ‘보는 자리’는 상이 아니다 ·306
세 가지 길 - 관찰하기, 경험하기, 파도타기 ·310
희로애락은 경험의 구름 아래서의 일 ·316
진정으로 무無를 체험했다면 거기, 체험한 ‘내’가 없다 ·319
직선은 곡선을 의지해 존재한다 ·320
‘모습’으로 ‘질’을 묻다 ·323
마음이 움직인다 ·325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은 마음의 일일 뿐 ·327
진정한 벗어남 ·330
마음의 이분열과 삼분열, 그것이 전부다 ·332
하나를 보면 나머지는 보지 못한다 ·335
우주적 오르가즘은 번뇌의 씨앗 ·338
수많은 분별 속에 마음은 한 치도 움직임이 없다 ·340
현상의 통찰지혜, 의타성 ·342
2. 용대用大
부처가 되었다고 여기는 중생 ·345
아무런 ‘함이 없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351
모든 경험은 ‘느낌’이다 ·354
진리의 세 가지 모습 ·356
절대와 상대가 만나다 ·359
어디까지가 ‘나’인가 ·364
견見,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을 나누다 ·367
법신, 보신, 화신은 전상轉相을 기반으로 일어난다 ·370
무의식적인 마음의 흔적을 떠나다 ·373
부처는 중생을, 사랑은 분리를 기반으로 한다 ·376
거미가 거미줄로 공간을 분리하듯 ·378
메타 커넥션 ·380
부록 : 깨어있기TM 용어 정의
감각感覺 : 있는 그대로를 느껴 앎 ·385
감지感知 : ‘익숙하다’, ‘안다’는 느낌 ·386
주의注意 : 생명의 투명한 힘 ·388
생각과 의식 : 감지들의 네트워크 ·390
동일시 : 삶을 ‘알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 ·390
감정 : 감지들 간의 밀고 당기는 관계를 보여주다 ·391
감각에 열려있기 ·392
깨어있기 : ‘있음’을 깨닫기 ·394
각성覺性 : 의식의 본질을 깨닫기, 느끼는 자로 있기 ·395
찾아보기 ·397
책 속으로
파도의 세계와 물의 세계가 함께 있기 때문에 기신론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라야식은 수많은 분별 경험의 흔적이 저장되어있는 세계이니 파도의 세계이고 현상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예를 들어 모두 원자로 구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분별없음이 분별을 만들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아라야식은 분별과 분별없음이 동시에 있다고 말하며, 이런 의미로 여래의 씨앗이 있는 여래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래如來 는 항존불변이고 식識 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인데, 이 변화하는 현상과 불변의 진리가 동시에 둘로서 같이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냥 하나라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를 뿐입니다. 식識 이면서 곧 여래如來 인 것, 이것이 아라야식에 대한 대승기신론의 입장입니다. 반면 유식론에서는 아라야식이 식識 일 뿐이며, 이 식識 이 사라질 때 진리가 드러난다는 입장입니다. 아라야식은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므로 잘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논리적인 마음으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_p.34
의식, 호오好惡 , 고락苦樂 이런 것들이 없는 세계로 가는 것은 돌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괴로움, 슬픔, 두려움이 없는 세계로 가는 것을 추구할 필요가 없어요. 그렇게 된다는 것은 기쁨, 흥분, 환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양상만 다를 뿐 똑같은 분열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분열의 세계를 넘어서 분열을 경험하려고 해야 합니다. 대부분 의식 속에서 헤매며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의식을 넘어서 의식을 사용하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일법계一法界 를 ‘아는’ 것입니다. 분열 있는 현상의 세계法界 와 분열 없는 진리의 세계法界 가 하나의 법계임을 아는 것이 일법계一法界 를 안다는 의미입니다. _p.63
대승기신론에서는 중생심에 부처와 중생의 마음이 다 있다고 했습니다. 소승은 부처의 마음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대승은 이미 자신이 부처인데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소승은 깨달음을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고, 대승은 시장통에서 중생과 함께 하죠. 왜냐하면 중생이 곧 깨닫지 못한 부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깨달음은 훈련하고 수련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번뜩 오는 것입니다. 훈련하고 수련해서 되는 것은 99.9℃까지일 뿐, 수증기로 바뀌는 것은 그냥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미 파동인데 스스로를 분자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초점이 분자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파동과 원자와 분자와 육체가 동시에 있습니다. 내 시각이, 내 주의가, 내 에너지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 이미 파동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자신이 육체라고 우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동시에 있는 것이니까 초점을 바꾸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이란 따로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눈감고 코잡는 것만큼이나 쉬운 것이라고 합니다. _p.136
독일의 신과학자인 빅터 샤우버거Viktor Schauberger 가 쓴 《살아있는 물》이라는 책을 보면 좌선성左 旋性 과 우선성右旋性 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물을 관찰해보면 왼쪽으로 도는 물과 오른쪽으로 도는 물이 있다는 것인데, 이와 마찬가지로 왼쪽으로 도는 에너지와 오른쪽으로 도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도는 에너지는 폭발성을 가지고, 왼쪽으로 도는 에너지는 응축성을 가집니다. 동양적으로 말하면 양陽 과 음陰 이죠. 흐름의 차이는 없고 도는 방향만 차이가 있다는 것인데, 이 두 에너지가 서로 밀치거나 끌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음陰 과 양陽 은 방향성에 의한 구별일 뿐, 근본베이스는 돌고 있는 에너지 끈이라는 점에서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의 주체와 대상도 이와 같습니다. 대상과 주체가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에요. 마음의 장場 안에 한 방향으로 도는 대상의 상相 이 있고, 그와 반대 방향으로 도는 주체의 상相 이 있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파도가 갈라지듯이 두 개의 물줄기가 나뉘어 있지만, 똑같은 물의 바다일 뿐입니다. _p.157
물과 물의 소용돌이를 생각해 보지요. 소용돌이가 만들어지려면 일단 물줄기가 두 개로 나눠져야 되고, 서로를 밀치는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물이 나눠져 있으니까 어떤 작용이 일어날 수 있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도 나눠져서 작용이 일어나는 과정을 통해 생사生死 의 고통을 멀리하고 열반을 즐겨하는 일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물줄기를 두개로 나누는 분별 작용만 없으면 그냥 물이듯이, 마음에서 부처와 중생을 나누는 분별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도달하고자 하는 길인데, 처음에는 경계를 만들어 나눠 놓고 중생과 이승인二乘人 들을 열반이나 부처를 향해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즉, 원래는 분열 자체가 없는데 현재 둘로 나눠놓아서 어떤 왜곡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단박에 깨우쳐야 될 것은 이런 구분 자체가 없다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모든 구분은 마음의 구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전에 구분을 해서 괴로움이 있는 상태로부터 괴로움이 없는 상태로 가게 만드는 것이 일단은 바람직하지요. 그렇지 않다면 괴로움 속에서 그대로 살아가게 될테니까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분별하는 작용, 나누는 작용, 경계를 긋는 작용을 통해 열반을 향해 가도록 만드는 용훈습用熏習 입니다. 분별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별로써 설명하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계를 통해 열반을 향해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초기 단계에서는 그 분별이 의미가 있지만, 공부가 깊어질수록 경계는 불분명해지고 없어지게 됩니다. 마음이 경계 짓지 않는 곳에는, 즉 소용돌이가 없는 마음에는 어떤 분별도 없기 때문에 부처와 중생도, 열반과 생사의 고통도 없습니다. 그런 나눔 자체가 분별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에 분별이 없어지면 생사고生死苦 는 저절로 스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_p.212
무분별심을 얻는 다른 훌륭한 방법은 자재업自在業 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열심히 행동하지만 ‘내가 한다.’는 생각 없이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심인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는 에너지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생명력이 제한되어 있는 사람이지요. 생명력이 ‘자기의 이익’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어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아무 이유 없이 정성을 기울이고, 전체를 위한 조화로운 일에 혼신의 힘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는 생명력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위無爲 의 위爲 ’를 통해 가는 길인 카르마 요가입니다. 석가모니가 2500년 후에는 카르마 요가의 시대가 올 것을 예언했다고 합니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중용에 ‘정성은 하늘의 도道 이고, 성실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도道 다(誠者 天之道 , 誠之者 人之道也 ).’라는 말이 있는데 이와 비슷한 의미입니다. 정성 자체라는 것은 아무 이유없는 에너지의 몰입입니다. 어떤 것에도 에너지를 꺼내 쓸 수 있게된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력 자체에 대한 터득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에나 아무런 이유 없이 정성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은 생명력을 터득한 사람입니다. _p.268
불교에서는 아트만 같은 것이 계속해서 영원히 존재한다는 견해인 항존상恒存相 , 즉 상견常見 을 부정합니다. 또 모든 것은 멸하여 사라지고 결국엔 아무것도 없다는 단멸상斷滅相 , 즉 단견斷見 도 부정합니다. ‘진아眞我 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고, ‘진아眞我 가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합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항존상의 오류이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멸상의 오류입니다. 두 가지 다 오류에요.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마음이 뭔가를 ‘안다고 붙잡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진아眞我 가 있다.”고 말하면 마음은 거기에 뿌리박고, ‘그것을 주장하는 내’가 생겨납니다. “윤회가 있어.”라고 말하면, 그때부터 윤회가 없다고 믿는 사람과 부딪치기 시작하죠. 윤회는 있지도, 없지도 않습니다. 믿는 사람한테는 있고, 믿지 않는 사람한테는 없어요. 뭔가가 정말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칸트의 말처럼 물物 자체를 건드릴 수 없는 것과 똑같아요. 우리는 결코 존재 자체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어요. 이렇게 말하면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 가 되어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를 주장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 사람은 또다시 불가지론不可知論 의 ‘자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승기신론에서는 쌍비론雙非論 을 사용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 무엇도 붙들고 늘어지지 못하게 만들어요. 非有, 非無, 非非有, 非非無 또는 非有非無 등이 우리 마음이 어딘가에 안착하지 않도록 하는 방편인 것입니다. 숭산선사는 “오직 모를 뿐!”이라고 얘기했죠. 그때의 ‘오직 모를 뿐’은 쌍비론이나 불가지론의 ‘오직 모를 뿐’이 아닙니다. 무한과 ‘신비로 가득한 모름’이에요. 진여가 공空 이라는 뜻은, 충만함의 상대적인 개념인 텅 빈 공空 이아닙니다. 절대적인 공空 , 무한한 신비로서의 공空 , 가득 찬 텅 빔, 충만한 텅 빔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_p.287
무분별은 그 마음에 분별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분별하는 상相 을 떠나있게 되고, 이런 이유로 둘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눈앞에 분별이 가득한 세계가 펼쳐져 있지만, 지금 이 순간 분별없음이 동시에 있는 것이 바로 무분별입니다. 본질은 분별상과 차별상을 떠나있기 때문에 따로 둘이 없습니다. 원효의 대승기신
기본정보
ISBN | 9788994139234 |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10월 15일 | ||
쪽수 | 404쪽 | ||
크기 |
160 * 231
* 30
mm
/ 690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번뇌즉보리총서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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