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과 안성에 목판대학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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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는 박물관과 미술관 8] 진천 판화미술관 ① <일상풍경>전

[오마이뉴스 이상기 기자]

 
 목판대학 전시회
ⓒ 이상기

 
목판문화원을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된 판화

한국 목판문화원이 있다. 목판화가 6명과 미술평론가 1명이 만든 단체로, 한국 목판화의 예술성과 기능성을 연구 발전시키기 위해 2017년 출범했다. 그들은 한국의 전통 목판화와 현대 목판화를 연구하고 제작하고 교육하는 단체다. 그들이 연구와 교육을 통해 목판화가를 양성하려고 시도한 첫 번째 프로젝트가 <목판대학 2017>이다. 서울, 안성, 진천에 있는 화랑과 작업실을 활용해 레지던시(합숙) 형태로 수업을 진행한다.

제1스튜디오는 안성시 금광면에 있고, 제2스튜디오는 진천군 백곡면에 있다. 그리고 서울의 화랑은 인사동에 있다. 2017 목판대학은 이들 스튜디오에서 4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운영되었다. 4월부터 11월까지 총 32주 동안 교수와 학생이 함께 판화작업을 한다. 월 3회는 작품 제작실습을 진행하고, 1회는 이론수업을 한다. 12월에는 평가와 토론을 거쳐 자료집을 제작하고 전시회를 연다.
 
 목판대학 전시
ⓒ 이상기

 
필자는 2017년 12월 16일 목판대학 전시회에서 교수와 학생이 1년 동안 연구하고 실습해 만든 목판화를 안성 제1스튜디오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교수로는 김준권, 김억, 윤여걸, 류연복, 정비파, 이윤엽의 작품이 있다. 초빙작가와 목판대학 수료생 10명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었다. 작품은 채묵(彩墨)목판, 흑백목판, 다색목판, 일러스트목판, 한지릴리프목판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작품에서는 예술성도 느껴지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스토리가 좀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작품의 핵심은 이미지가 아니라 콘텐츠라고 말한다. 그게 이들 목화문화원 작가들이 지향하는 바다. 그것은 그들이 민중미술계열 작가로 출발, 메시지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졸업생 이용훈의 작품은 노동의 문제를 다룬다. 초빙작가 이태호는 전쟁의 문제를 다룬다. 교수 김억은 절과 별서(別墅)정원 등 전통공간을 흑백목판으로 재현했다.
 
 이태호의 작품
ⓒ 이상기

 
한국 목판문화원이 추구하는 것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젊은 작가를 양성, 목판화를 순수예술, 디자인, 공예와 같은 반열에 오르게 한다. 둘째 목판화를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유통시킨다. 셋째 목판화 전문전시장, 출판사, 연구소를 만든다. 전시와 출판은 인사동에 있는 나무아트 화랑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연구소로는 김준권이 운영하는 한국목판문화연구소가 있다. 넷째 목판화 컨설팅 사업을 전개한다. 인테리어 사업, 축제와 행사 기획, 목판학교 운영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국목판문화연구소는 어떤 곳인가?
 
 한국목판문화연구소
ⓒ 이상기

 
한국목판문화연구소는 채묵목판화가 김준권의 작업실이다. 이 연구소는 안성이 아닌 진천에 있다.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 마을 끝자락 언덕에 있다. 이곳은 판화 작업실, 목판대학 교육장, 목판문화연구소 세 가지 기능을 한다. 작업과 교육은 대개 1층에서 이루어진다. 연구와 컨설팅, 전시 등은 2층에서 이루어진다. 이곳에서 김준권은 죽은 나무를 살리는 예술인 목판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판화(版?)라는 말보다는 인화(印?)라는 전래의 우리말을 더 선호한다. 그것은 판각을 강조하는 판화보다는, 찍어내는 과정에 중점을 두는 인화가 예술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찍어내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느낌의 예술 즉 인화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1985년경부터 판화를 시작하는데, 몇 작품을 빼놓고는 채색 판화다. 여기서 인화가 아닌 판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초창기 작품들이 인화로 찍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판화가 김준권
ⓒ 이상기

 
이때 그는 이미 목판화에 관심이 많았지만, 목판문화연구소까지 차릴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 했다. 그의 전공이 서양화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6-88년 오사카, 뉴욕, 도쿄에서 열린 <한국 민중판화전>에 출품하면서 판화로 방향이 정해진 것 같다. 그는 1987년부터 민주교육, 참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88년 <그림마당 민>에서 개인전을 열 때 그의 관심사는 민중과 민주 그리고 통일이었다. 그는 주제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을 통해 동시대의 문제를 부각시키려 했다. 그런 측면에서 민중미술가들은 시대정신이 투철한 예술가였다.

그가 진천에 자리 잡은 것은 전교조 교사로 해직을 당한 후인 1992년이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한국목판문화연구소를 차리고 판화작업에 더욱 매진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메시지 중심의 운동권 판화로부터 예술성을 추구하는 순수판화로 돌아간다. 전통, 산수, 국토 이미지를 통해 서정성과 서사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의 작품은 이제 보는 이의 감성을 통해 메시지를 은근하게 전달한다.
 
 통일대원도(1987)
ⓒ 이상기

 
김준권과 목판대학을 함께 운영하는 미술평론가 김진하는 김준권의 작품경향을 네 시기로 나눠 설명한다. 1980년대, 김준권의 판화는 저항적 이미지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1990년대, 풍경을 통해 국토와 산하를 형상화했다. 2000년대 산수와 자연에 수묵화와 문인화 기법을 도입했다. 2010년대, 산수화의 차원을 높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숲, 대나무, 보리밭, 자작나무 같은 대상을 좀 더 자세하게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그의 관심은 바다와 섬으로 향하기도 했다.
 
진천 생거판화미술관에서 열린 <일상풍경>전
 
 김억의 <남도풍색>
ⓒ 이상기

 
목판대학 전시회, 한국목판문화연구소를 방문한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에 있는 생거판화미술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일상풍경>전이 열리기 때문이다. 판화미술관에서는 일상을 소재로 한 판화가 16인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그러나 주제나 작품경향에 있어 통일성이나 일관성 같은 것을 찾을 수는 없다. 그것은 경향과 사조를 나눌 정도로 전업판화가가 많지도 않고,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도 한 개인의 전시를 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풍경>전에는 판화대학 교수로 있는 김억과 윤여걸의 작품이 있어 그들의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김억의 주제는 <남도풍색(南道風色)>이다. 전라도의 풍경과 색채로 풀이할 수 있으며, 전시된 작품은 '덕룡산 용혈암', '덕룡산 농산별업', '도암마을 소석문'이다. 덕룡산과 도암마을은 호남정맥이 흘러내려 만든 산과 마을이다. 호남정맥은 백련사가 있는 강진 만덕산으로부터 서남쪽으로 흘러 해남 두륜산에 이르게 된다. 그 중간 도암면에 석문산과 덕룡산이 있다.

 
 윤여걸의 <헌화>시리즈
ⓒ 이상기

 
석문산에는 석문과 소석문이 있고, 덕룡산에는 용혈암이 있다. 용혈암은 현재 절터만 남아 있지만, 백련결사를 이룩한 천인 천책, 정오국사가 흔적을 남긴 절이다. 그리고 덕룡산 아래 윤개보(尹皆甫)의 별업(別業: 별장)인 농산(農山)이 있다. 이들 역사 속의 명소가 그의 손을 통해 흑백목판으로 되살아났다. 정선이나 김홍도처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을 사용했다. 그러므로 그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윤여걸의 <헌화(獻花)> 시리즈는 8개의 작품을 하나로 묶었다. 그러나 이들 개개의 작품은 헌화, 넋, 생고(生苦) 같은 독자적 제목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삶과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안내 팜플렛에 보면, 인간이 죽음에 대해 가지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태도를 표현했다고 적혀 있다. 삶의 의지, 그리움, 번뇌를, 원시적인 인체 해석과 강렬한 형상성을 통해 드러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고길천의 <앞 못 보는 새>
ⓒ 이상기

 
고길천의 <앞 못 보는 새>는 메시지가 분명한 에칭이다. 제주도 하도리(下道里) 철새도래지를 답사하면서 마주친 죽은 새의 고통을 표현했다. 머리를 천으로 감싸 더 이상 날지 못하게 했고, 그 아래에는 현장에서 채집한 새의 깃털을 콜라주 형식으로 갖다 붙였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환경오염과 생태파괴를 고발하려는 작가의식이 두드러진다.

강정헌의 <과잉도시>도 빌딩과 건물로 넘쳐나는 도시를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은 과잉을 풍요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인정은 결핍되어가고 정서는 메말라가는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작가는 그러한 사회를 고발한다. 이주학의 <꿈의 공간> 역시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이 환상과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양탄자를 타고 나는 모습, 구름 위에서 낚시하는 모습, 구름 위에 지은 별장의 모습 등에서 환상을 본다.
 
 <일상풍경>전
ⓒ 이상기

 
이에 비해 김현숙의 <부드러운 힘>은 제주도의 여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했다. 삼다도(三多島) 제주를 상징하는 여자, 돌, 바람을 소재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런데 그 모습을 동화적이면서도 비유적으로 그려냈다. 그림 속에 여성의 부드러운 힘, 돌처럼 강인함, 바람과 같은 생명력이 드러난다. 김현숙은 이미지의 단순화, 여백의 미학을 통해 주제의식을 부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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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9년 목판대학 3기 수강생을 모집한다. 접수는 2월 20일까지 받으며, 수강기간은 3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다. 그리고 12월 작품전시회가 열린다. 수업은 안성과 진천의 제1-3스튜디오, 서울의 제4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진다. 지원서는 양식에 따라 내용을 완성한 후 E-mail(booibooi@hanmail.net)로 접수하면 된다. 합격자는 2월 25일 카톡과 이메일로 통보한다. 입학금은 10만원이고, 재료비는 월 10만원으로 총 80만원이다. 문의: MP 010-2272-7760 김진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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