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물이 새 생명체로 굴절?…‘돌연변이 구역’에 들어오셨군요 [이로사의 신콜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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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1.19. 오후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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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넷플릭스 영화‘서던 리치 : 소멸의 땅’

X구역으로 탐험을 떠난 5명의 여성 과학자가 중심이 된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여느 SF영화들과 사뭇 다른 방식으로 외계 생명체의 침투를 그려낸다. 넷플릭스 제공


외계생명체가 지구를 침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는, 형태를 특정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의 몸 자체를 장악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이 모르는 사이 침투해 몸과 정신 모두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최근의 SF영화를 예로 들면, <산책하는 침략자들>에서 외계인들은 인간의 몸 안에 들어가 언어를 하나하나 빼앗아 그 개념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인류 내부에 침투했다.

넷플릭스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에서 일어나는 자연과 생명체의 기이한 변이도 그런 경우다. 물론 그것은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 일어난다. ‘외계생명체’인지, 고차원의 ‘에너지’인지, 아니면 ‘운석’ 같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서던 리치>에서는 ‘X구역’이라고 부르게 된 지구상의 어느 지역에 뭔가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여성 과학자로만 구성된 탐험대가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미지의 구역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이들은 불가해하고 통제 불가능한, 초자연적이고 반인간적인 세계를 마주한다.

그런데 <서던 리치>에서 그리는 외계생명체의 침투는 이런 방식의 침략을 설정으로 삼은 여느 SF영화들과도 좀 다르다. 영화는 스토리보다 직관의 영역에 집중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를 보는 일은 외계생명체가 ‘지금 이렇게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는 이상한 감각의 체험에 가깝다.

이런 생각의 근원이 된 놀라운 장면들은 영화의 후반부 30분에 집중돼 있다(다소 지루하고 부실한 중반부를 견디면 반드시 그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다). 주인공이 찾아 헤매던 것을 마침내 마주한 이 결정적인 시퀀스들은 거의 환각인 것처럼 기이하다. 웅장하고도 신비한 전자음악이 배경에 흐르는 가운데 거대하고 우주적이고 소름끼치고 아주 이상하지만 동시에 아름답기 짝이 없는 희귀한 이미지들이 연이어 시각을 강타한다. 보고 있으면 ‘외계생명체가 지금 이런 방식으로, 이런 모양과 이런 소리와 질감으로 인류 내부에 침투해 오고 있어’ 하는 감각이 전기장이 퍼지듯 내장으로 퍼져나가는 기분이 된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형이상학적 타격은 뒤에 등장하는 이런 정도의 (왜소한) 언어로 압축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건 파괴하고 있지 않았어요.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있었죠.”

상어 이빨을 가진 악어와 같이 기이한 생명체가 눈길을 끈다. 사진 속 주인공은 탐험대에서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생물학자 리나(내털리 포트먼). 넷플릭스 제공


■ 침투

이상한 현상 발생하는 ‘X구역’엔

사람·드론 들어가면 나오지 못해

원인 찾으러 여성 과학자 5명 탐험

뒤틀린 동식물 번성 모습에 놀라


<서던 리치>는 탐험대에서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생물학자 리나(내털리 포트먼)에 대한 취조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방호복을 입은 조사관의 질문에 “알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녀는 ‘X구역’에 4개월이나 있었는데 뭘 먹은 기억이 없다. 시간 감각도 교란당한 듯, 얼마 동안 그곳에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른 대원들에 대한 질문에도 둘은 죽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나머지에 둘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말뿐 달리 뭐라고(죽었다고도 아니라고도) 말할 수가 없다는 얼굴이다.

뒤이어 등장하는 설명에서 우리는 그녀가 ‘쉬머(희미한 빛)’의 경계로 둘러싸인 ‘X구역’으로 탐험을 떠났던 5명의 여성 과학자 중 하나임을 알게 된다. 여성 탐험대 이전에 X구역으로 들어간 사람, 동물, 드론 어떤 것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유일하게 돌아온 것이 리나의 남편인 케인(오스카 아이작)이었다. 그러나 케인의 몸과 마음은 예전과 달라졌다. 리나는 다른 과학자들과 함께 그 원인을 찾고자 ‘소멸의 땅’으로 떠났던 것이다.

탐험대가 색색의 본드 풍선과 같은 형상의 ‘쉬머’를 지나 다다른 X구역의 생태계는 선명한 초록빛으로 아름답지만 어딘지 이상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곳이 생물학적으로 뒤틀린 동식물들이 번성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징후들이 나타난다. 돌연변이를 일으킨 꽃부터 머리 위에 꽃나무가 돋아난 사슴, 상어 이빨을 가진 악어, 자신이 삼킨 인간의 신음을 울음소리로 장착하게 된 반쯤은 해골인 얼굴의 거대한 곰…. 영화는 기이한 시각적 이미지들을 점차 강도를 더해가며 하나씩 우리 앞에 들이민다.

그들은 점차 자신의 몸과 정신이 변해감을 느끼며, 이것이 모든 생물의 유전적인 신호를 굴절시키는 쉬머의 작용 때문임을 알게 된다.

여기에 더해 영화가 철학적인 분위기를 띠게 되는 것은, 쉬머가 침입자들의 내면을 반영하는 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다. 리나를 제외한 다른 대원들은 각자 암, 우울증 등 다양한 이유로 ‘자기 파괴’의 갈망을 갖고 이곳에 들어온 인물들로 그려진다. X구역은 차례로 그들을 자신의 일부로 변형해 흡수한다. 자기 파괴의 욕구가 강하면 이 공간의 에너지에 굴복하기도 쉽다.

■ 재창조

대원들도 변해가는 몸·정신 느껴

‘파괴’ 아닌 ‘재창조’ 사실 깨달아

“그건 파괴하고 있지 않았어요

뭔가 새로운 걸 만들고 있었죠”


‘결함이 있는 탐구자의 가장 내밀한 소망이 외계와 관련된 신비한 현상으로 구체화’한다는 러브크래프트식 SF소설의 설정은 많은 픽션들로 반복돼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외계생명체가 쉬머를 작동함에 있어 인간의 많은 욕구 중에서도 하필 ‘자기 파괴’의 욕구를 반영하게 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들의 목적은 아마 쉬머의 영향력을 넓히는 것일 텐데, 그렇다면 이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인류의 가장 내밀한 소망=자멸’로 여기게 되었다는 뜻이다.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의 원제는 ‘어나이얼레이션(Annihilation)’, 즉 ‘전멸’이다. 쉬머는 정말 전멸, 소멸의 땅일까? 이제 대원 중 리나만이 유일하게 남아, 이 희미한 빛이 시작된 곳, 애초의 목표 지점인 해변의 등대에 이르렀다. 여기부터 앞서 말한 놀라운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눈과 귀를 때리며 펼쳐진다.

리나는 등대 안에서 마치 열반에 든 수행자처럼 앉은 채로 불타 죽은 시체를 발견하고 그것이 남편 케인임을 알게 된다. 겁에 질린 채 기이한 구멍 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변형이 시작된 탐험대장 벤트리스를 만난다. 잠시 후 벤트리스는 총천연색의 우주적 오로라를 내뿜으며 흩어져 소멸하고, 산산이 흩어진 빛의 조각들은 공기 중에 떠다니다 색색의 분말이 농도 짙은 액체 속에 퍼져나가는 듯한 프랙탈의 형태로 결합한다. 리나는 홀린 듯이 그 가운데 뚫린 빛의 구멍을 바라보는데, 그녀의 피 한 방울이 결합하는 순간 그것은 다시 리나를 닮은 휴머노이드의 형상으로 변해간다. 그러는 동안 웅대하고 묘한 앰비언트 뮤직이 청각을 자극하고, 메탈 재질의 부처상 같은 형상의 이 복제품은 이제 리나의 동작을 거울처럼 따라서 한다. 리나가 복제품과 씨름하는 2분여간의 장면은 마치 잘 짜여진 2인무를 추는 것처럼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정신을 차린 리나는 복제품의 손에 수류탄을 쥐여주고, 그것이 폭파하는 것을 보며 그곳을 떠난다.

이쯤 되면 우리는 직관적으로 지금 진행되는 것이 파괴가 아닌 재창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류는 자멸해도 자연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자연은 이런 식으로 원시의 하나의 세포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체로 재탄생할 작정인가?

리나는 자신의 복제물을 불태우고 돌아오긴 했지만 이미 예전의 리나가 아니다. 쉬머 안에서 그녀 안의 무언가 변경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소멸시키고 나보다 더 큰 무언가에 속한 새로운 존재가 되어버린 듯하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 자신을 완전히 없애고 싶은 자멸의 욕망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것은 그냥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통과 번뇌로 가득 찬 자신을 불태우고 순수한 본래적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니르바나’에 대한 갈망에 가깝다. 마지막, 케인을 만난 리나는 말한다.

“당신은 케인이 아니군요. 그렇죠?”

“아닌 것 같아요.”

“당신은 리나인가요?”

순간 둘은 포옹하고, 리나의 눈에선 희미한 빛이 일렁인다. <서던 리치>는 시청각 영상이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내며 불가해한 외계의 감각을 전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이로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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