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로 스텔라데이지호 탔던 아들 소식만 기다립니다”읽음

이하늬 기자
2017년 3월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3등 기관사 문원준씨의 아버지 문승용씨가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2017년 3월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3등 기관사 문원준씨의 아버지 문승용씨가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청와대에서 200m가량 떨어진 청운동주민센터 맞은편에 2년째 농성을 하는 두 아버지가 있다. 2년째라고 하지만 변변한 농성장 하나 없다. 매일 아침 두툼한 돗자리와 피켓 2개를 가져와 하루종일 자리를 지킬 뿐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돗자리가 뒤집어지고 피켓이 쓰러진다. 돗자리 앞 나무에는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원인을 밝히는 블랙박스 회수하고 생사확인 구명벌을 찾아내라!!!”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달려 있다.

“침몰 원인 밝히고 구명벌 찾아내라”

문승용씨의 아들 원준씨(26)와 윤종률씨의 아들 동영씨(26)는 2017년 2월 ‘승선근무예비역’으로 스텔라데이지호에 올랐다. 배에서는 각각 3등 기관사, 3등 항해사로 일했다. 승선근무예비역은 대체복무제의 하나로 기관사, 항해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이 배에서 3년을 근무하면 현역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해사고와 해양대를 졸업한 청년들이 주로 지원한다. 중간에 그만두거나 5년 안에 36개월을 채우지 못하면 현역으로 입대해야 한다.

승선근무예비역은 일반 병사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다. 일각에서 “돈 벌러 가놓고 사고 나니까 국가 탓이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당사자나 가족들의 주장은 다르다. 해양대를 졸업한 뒤 해운업계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승선근무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승선근무를 마치면 이들은 2등 항해사, 2등 기관사 자격을 얻게 된다. 회사는 경험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청년들은 어떻게든 36개월을 버텨내려고 한다.

동갑내기인 둘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원준씨는 2016년 1월 한국해양대 졸업식에서 졸업생을 대표해 연단에 올랐다. 명예사관장이었던 그는 “온 국민이 가슴 아파했던 이 사고(세월호)를 우리는 누구보다 오래 기억해야 한다”며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무책임하게 회피하거나 봐주기식 대응을 하지 않는 용기와 힘을 기르는 68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 ‘폴라리스쉬핑’에 입사했다.

동영씨는 목포해양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한의대에 가라는 부모의 권유에도 동영씨는 “바다가 좋다”며 해양대를 택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동영씨는 진도 팽목항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2016년 겨울에는 여자친구와 함께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동영씨는 한진해운 소속이었다. 하지만 한진해운이 부도가 나면서 엉겁결에 폴라리스쉬핑에 입사했다. 군 복무를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배가 아니라 떠다니는 관이었다”

2017년 3월 31일, 스텔라데이지호는 우루과이 동쪽 해상에서 갑자기 침몰했다. 길이 312m, 폭 58m, 축구장을 3개 합친 정도 면적의 초대형 선박이 완전히 침수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5분 남짓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2명이 실종됐고 필리핀 선원 2명만 구조됐다. 구조된 이들에 따르면 항해 중 배 한가운데서 마치 분수처럼 물이 솟구쳤고 배가 쪼개졌다. 한 선원은 “배 밑부분이 브이(V)자로 됐다”고 증언했다. 그날 날씨는 맑았다.

동영씨는 사고 20분 전까지 어머니와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가족의 안부를 묻는 등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대화였다. 2017년 대선을 앞둔 때라 선거 이야기도 나눴다. 동영씨는 ‘배에서 선상투표를 할 것 같다’고 했다. 20분 뒤, 스텔라데이지호 선장은 선사 관계자에게 ‘긴급상황입니다. 본선 2포트 물이 샙니ㅏ(샙니다). 포트 쪽으로 긴급게(긴급하게) ㄱ울고(기울고) ㅣㅆ습니다.(있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배가 갑자기 침몰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필리핀 선원 2명은 “출항 전부터 우리 배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배가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사고가 난 뒤에야 스텔라데이지호가 25년된 선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업계에서는 15년 이상 선박을 노후선박으로 분류한다.

스텔라데이지호는 1992년 일본에서 유조선으로 만들어졌다. 2009년 한국 폴라리스쉬핑은 폐선 직전인 이를 인수해 개조했다. 기름도 싣기 어려웠던 배는 개조 후 철강석을 실어 날랐다. 침몰 당시에도 배에는 철강석 27만톤이 실려 있었다. 아버지들은 “그런 배에 군인을 태우면 안되는 것 아니냐”며 “배가 아니라 떠다니는 관이었다”고 말했다. 선사뿐 아니라 낡은 배에 승선근무를 승인해 준 해양수산부와 국방부(병무청)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 실종자는 8명이다. 승선근무예비역인 원준씨와 동영씨, 그리고 2등 항해사 허재용씨(35) 등이다. 이들이 희망을 거는 건 발견되지 않은 구명벌 한 척이다. 스텔라데이지호에는 구명정 2척과 구명벌 5척이 있었다. 구명정은 모터가 달려 있어 항해가 가능하고 구명벌은 모터가 없어 파도에 의해 떠다니는 배다. 구멍벌 5척 중 두 개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구명벌에는 최대 16명까지 탑승이 가능하고 사흘치 식량과 낚시도구 등이 갖춰져 있다. 물이 닿자마자 자동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배가 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채 1분이 되지 않는다. 당시 구조된 필리핀 선원 2명도 구명벌을 타고 있다가 발견됐다. 구명벌에 타고 있다가 몇 달 혹은 1년 뒤에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멕시코 한 어부는 438일 만에 발견돼 구출되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1월 30일, 가족들이 원하던 심해수색이 시작된다. 수색업체로 선정된 미국 인피니티사는 한국 정부의 용역을 받아 선체와 확인되지 않은 구명벌의 위치, 선체 상태를 확인하는 임무를 맡았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블랙박스로 불리는 ‘항해기록저장장치’도 찾을 계획이다. 블랙박스를 찾을 경우 사고 원인도 조금은 규명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고 원인이 규명돼야 책임도 물을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구명벌이 배의 한 틈새로 빨려 들어갔을 경우다. 아버지들은 “남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런 경우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구명벌 한 척에 의지해 바다나 무인도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수색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2월 첫째 주, 한국의 가족들은 설을 맞는다. 문씨는 “현장에 가보고 싶지만 가면 (가슴이) 무너질 것 같다”며 “부디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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