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 쓰려면 6개월치 일일근무표 미리 짜라?… 기업들 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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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2.24. 오전 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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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근로기준법엔 '탄력근로 기간만큼 근무표 사전 확정' 조건
날짜별 시간 넘기면 연장근무… 주12시간 이상 연장근무땐 불법


'주(週) 52시간제' 보완책으로 탄력 근로제 개선을 정부가 논의하고 있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 논의를 거쳐 내년 1월까지 보완책을 내놓고, 2월 국회에서 관련법을 개정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논의는 탄력 근로제 단위 기간(최대 3개월)을 6개월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그보다 선행돼야 할 과제가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특히 탄력 근로제를 도입할 때 미리 해당 직원의 수개월치 일일 근무표를 짜야 한다는 도입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고치는 게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6개월치 근무시간표 미리 짜라니…"

탄력 근로제는 일이 몰리는 기간에는 주 최대 64시간까지 일하고, 한가할 땐 일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근로시간을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단위 기간(현재 최대 3개월) 내 평균 근로시간을 주 52시간 이내로 관리하면 된다. 제대로 도입되면 에어컨 제조, 아이스크림 산업, 휴가지 숙박·음식점 등 특정 시기(계절)에 일이 몰리는 산업 분야 등에서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현행 근로기준법은 탄력 근로제를 도입하는 과정을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다. 탄력 근로제의 단위 기간이 2주를 넘기면, 도입 시 근로자 대표(노조 위원장)와 서면으로 합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연구직·생산직·행정직이 있는 제조업체에서 연구직만 탄력 근로제를 하려고 해도 전체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한다.

기업들이 더 곤혹스러워하는 건 '근로시간 사전 특정' 요건이다. 미리 단위 기간 내에 개별 근로자가 '며칟날에 몇 시간 일할지' 모두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내년 1~3월 탄력 근로제를 시행하는 기업의 경우, 'A직원은 1월 21일에는 6시간, 22일에는 10시간 일한다'는 식으로 사전에 확정해둬야 한다. 이 같은 일일근무표가 올 12월 31일까지 직원별로 다 작성돼야 한다. 미리 정한 시간보다 더 일하면 바로 연장근로가 된다. 예컨대 6시간 일하기로 한 날에 8시간 일하면 2시간이 연장근로가 된다. 연장근로가 1주 12시간을 넘기면 불법이다.

문제는 단위 기간이 6개월~1년으로 확대되면, 미리 일일 근무표를 짜는 게 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단위 기간이 1년일 경우, 올 연말에 '2019년 12월 26일에는 몇 시간 일한다'고 정해둔다는 것이다. 갑자기 주문량이 늘거나 결원이 생겨도, 미리 정해둔 근무표를 사측이 임의로 바꿀 순 없다.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기업 "탄력 근로제가 탄력적이지 않다"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10~11월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2436곳에 '탄력 근로제 개선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물었더니, 가장 많은 응답을 받은 게 '근로시간 사전 특정 요건 완화'였다. 아직 탄력 근로제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 절반(46.4%·복수 응답)이 이 요건을 풀어야 한다고 했고, 탄력 근로제를 쓰고 있는 기업 넷 중 하나(24.6%)가 이같이 답했다. 반면 '탄력 근로제 단위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대답은 탄력 근로제 도입 기업(3.5%)과 미도입 기업(0.9%) 모두에서 '근로시간 사전 특정 요건 완화'보다 적었다.

현실이 이렇자 경영계에서는 "탄력 근로제가 탄력적이지 않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런 조건을 손대지 않고 단위 기간만 늘려봤자 '속 빈 강정'이라는 것이다. 경총은 지난 14일 '근로시간 단축 보완 입법 조속한 마련에 대한 경영계 입장'에서 "시장 상황이 가변적이라는 걸 감안해 단위 기간 내 근로시간 조정에 관한 기본 계획만 합의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예컨대 1~2월에는 더 일하고, 3월에는 조금 덜 일한다는 식의 큰 원칙 정도만 정해두자는 것이다.

노동계는 반발한다. 노동계에선 "탄력 근로제 도입 요건까지 풀면 기업이 멋대로 노동시간을 늘렸다 줄였다 할 것"이라며 "이는 근로자의 근로 예측 가능성을 침해하고, 건강권 침해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탄력 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추진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도입 요건 완화에는 아직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고용부 관계자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한 공식 입장은 없다"면서 "앞으로 노사정 대화 과정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탄력 근로제를 개편하는 취지는 근로시간 단축에 기업이 연착륙할 수 있게 도우려는 것"이라며 "시장 상황에 신축적으로 대응하도록 도입 요건도 어느 정도 풀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일이 몰릴 때는 주 최대 64시간까지 일하고, 한가할 땐 줄일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단위 기간(현재 최대 3개월) 내 주당 평균 근로시간을 52시간 이내로 관리하면 된다. 경직적인 주 52시간제를 보완하기 위한 대책으로 논의되고 있다. 다만 현행법에선 단위 기간이 2주를 넘는 탄력 근로제를 도입하려면 근로자 대표와 서면으로 합의해야 하고, 미리 일일 근무표를 짜둬야 하는 등 도입 절차가 까다롭다는 지적이 있다.

[이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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